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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지금까지 그래왔듯, 예술가로 살아남기

Writer: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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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선우 작가는 도도새를 매개로 현대인의 삶을 그려냅니다.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스스로 날기를 포기한 도도새는 결국 300년 전 인간에 의해 멸종되었는데요. 그는 도도새의 모습이 현실과 타협하며 점차 개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차오르는 호기심은 도도새가 존재했던 모리셔스섬으로 그를 이끌었고, 도도새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이래 김선우 작가는 도도새를 매개로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세상 속 어디선가 꿈틀거리는 희망을 끈질기게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태도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매일 온 힘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는 김선우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Wishers and dreamers›, 2022, gouache on canvas, 145.5 x 112 cm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도도새를 그리는 작가 김선우입니다. 도도새는 원래 날 수 있었지만,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스스로 날기를 포기한 새예요. 결국 인간에 의해 300년 전에 멸종되었는데요. 저는 그런 도도새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퍽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현실과 타협하며,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잃어간다는 면에서요. 지난 2015년 실제 도도새의 서식지였던 아프리카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한 달간 머물러보았는데요. 예술가에게 여행 기회를 제공하는 ‘일현 트래블 그랜트’ 프로그램 덕분이었죠. 그렇게 도도새의 죽음에 대해 더욱 풍부한 조사를 마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도도새를 매개로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에도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재수 끝에 미대에 입학했습니다. 예술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자기 삶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철학을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로 살면서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소통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이 좋기도 했고요. 제가 그런 발견을 통해 궁극적인 ‘덕업일치’를 이룬 것처럼 다른 분이 제 발견을 밑거름 삼아 자기만의 작은 단서를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The Hitchhiker of the galaxy›, 2023, gouache on canvas, 181 x 227 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2014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작업실을 일곱 번 옮겼어요. 작가에게 잦은 작업실 이주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려나요? (웃음) 다행히 이전보다 형편이 나아진 덕에, 현재 머무는 일곱 번째 작업실은 작가 인생 중 가장 쾌적한 공간이에요. 반지하긴 하지만 지대가 경사면이라 작업실 한쪽 벽은 전면이 유리로 뚫려있어요. 덕분에 사계절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죠. 게다가 방이 세 개라 각각 용도를 달리해 사용할 수 있어요. 하나는 주요 작업 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응접실로, 남은 하나는 창고 겸 밑 작업 전용 공간으로 쓰고 있죠. 작업실에서 점심 먹고 가볍게 산책하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요. 작업실이 위치한 평창동이 원체 산자락에 형성된 동네잖아요. 본의 아니게 가벼운 등산을 한다는 점도 지금의 작업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 작업은 주로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가장 강력한 영감은 여행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존재하지 않는 도도새를 찾으러 모리셔스섬으로 무모한 모험을 떠났을 때 살면서 가장 강력한 영감을 얻었으니까요. 그래서 팬데믹 이전에는 여건이 되는 대로 낯선 곳으로 떠났어요. 제 주변의 모든 환경을 바꾸고, 생각을 환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코로나19도 잠잠해졌으니, 다시 여행을 떠나봐야겠어요.

‹Ce qui embellit le désert, c est qu il cache un puits quelque part›, 2021, gouache on canvas, 130 x 162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창작 과정을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자면 ‘여행’일 것 같아요. 작업실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작가는 수없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요. 때로는 작은 그림 안에서 짧은 시간 동안, 혹은 넓은 캔버스 위에서 긴 시간 동안 여행을 떠나죠. 그 과정에서 작가의 자아와 세상이 제 영토를 조금씩 확장하는 느낌이에요.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는 말에 크게 동감하는 이유죠.

‹Hold the line›, 2022, gouache on canvas, 145.5 x 112 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난 3월에는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을 준비하느라 바빴어요. 평면 작업을 입체로 구현하고 싶어서 예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롭고 다양한 방식을 선택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평면 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어느 순간 비슷한 욕구를 느끼는 것 같아요. 재작년부터 레진 소재의 한정판 도도새 피규어를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단순히 평면을 입체로 구현한 물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오브제로 오롯이 존재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당시의 고민을 기반 삼아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Diorama Series›를 마칠 수 있었죠. 개인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완성해 더욱 기억에 남아요. (웃음) 작업은 ‘디오라마’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평면을 입체로 구현하는 게 콘셉트였습니다. 기존 작업에서 선보였던 시각 요소를 석분점토로 재해석하며 열두 가지 테마에 맞는 오브제로 만들었어요. 각각의 작업은 테마에 어울리는 평면 작업과 함께 구성했습니다. 오브제와 평면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융합된 형태로 선보였기에, 어쩌면 이 오브제들은 ‘변형 캔버스’라 말할 수도 있겠네요.

‹Diorama : Under the moonlight›, 2023, sponge in aluminum case

‹Diorama : Under the moonlight›, 2023, gouache and stone clay on resin (좌)

‹Diorama : The Traveler›, 2023, gouache and stone clay on resin (우)

‹Diorama : The Traveler›, 2023, gouache and stone clay on resin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시도하며 제가 지닌 상상력과 가능성의 확장에 대해 탐구했어요. 도도새라는 소재로 여전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면, 최근 전시를 준비하며 돈을 탕진했어요. (웃음) 해보지 않았던 종류의 작업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재료비가 눈덩이처럼 커지더라고요. 그래도 과정과 결과물만큼은 모든 부담과 수고를 잊게 할 만큼 만족스러워서,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생각해요.

‹Diorama : The moonlight›, 2023, gouache and stone clay on resin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늦어도 새벽 5시 전에 작업실로 출근해요. 그리고 가장 먼저 동네를 가볍게 산책합니다. 다시 돌아와서는 부담스럽지 않은 식삿거리로 요기하고, 커피를 내려 마셔요. 점심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해결합니다. 오후 5시에서 오후 8시 정도까지 작업하고 노원구 집으로 퇴근하죠. 그런데 최근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루틴이 조금 망가진 것 같아요. 동일한 시간에 출근하면서, 야근을 많이 했거든요. (웃음) 보통 저의 하루 루틴을 말씀드리면 다들 의아해하세요. 예술가는 자유로운 직업인 것 같은데, 저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고 있으니까요. 사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제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습관과 태도를 발견했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죠. 제게 있어 작업이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좌절의 연속이거든요. 끝나지 않는 싸움에서 회복탄력성을 갖게 해주는 건 결국 좋은 습관에서 나오는 지구력과 항상성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저의 가능성과 상상력에 대해 가장 관심이 갔어요. 제가 가진 소재나 주제를 단순히 소모하기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할 방법을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Mauritius Souvenirs›, 2015, mixed media, 250 x 180 cm (모리셔스에서 작업한 드로잉들로 구성한 작업)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술가’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고, 작품에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가는 그런 독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험을 인지해서 솜씨 좋게 처리해 내는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저는 이 말을, ‘독소가 내재 되지 않고서는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다’는 말로 이해했어요. 하루키가 마라톤을 포함해 자기만의 루틴을 철저하게 지킨 이유는 ‘독소’를 다루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일이 그에게는 어떤 방법론보다 쉬우면서도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효율적이고 만족감을 주는 행위 아니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작업이란, 알베르 카뮈식으로 말하자면 “자살하지 않게” 해주는 강력한 방어기제예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죽음과의 싸움을 지속하게 만드는 저만의 생존 수단이자, 삶을 살아내는 철학 그 자체라 할 수 있죠. 그러한 종류의 일은 부족한 재능을 원망할 겨를이 없더라고요. 매일, 온 힘을 다해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해나가야만 해요.

‹Paradise›, 2021, gouache on canvas, 227.3 x 181.8 cm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확실한 방법은 어디론가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행을 통해 도도새라는 강력한 영감을 예기치 않게 마주친 것처럼요. 내 주변의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바꾸는 행위는 언제나 새로운 해결책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미국의 밴드 토킹헤즈Talking Heads의 노래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를 좋아해요. 터전을 불태우고 나서야 완전히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으니까요.

‹Ce qui embellit le désert, c est qu il cache un puits quelque part›, 2021, gouache on canvas, 130 x 162 cm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세상은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수많은 거짓을 사실인 양 속이려 들죠. 예술가는 세상의 폭력적인 서사 속 어디선가 꿈틀거리는 희망을 끈질기게 발견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이라면 익숙함 속에서 다름을 찾아내는 일, 그렇게 발견한 다름이 빛날 수 있도록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파리 시테 국제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홍보 포스터, 2022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삶에서 ‘하고 싶은 일’의 파이를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비율을 필사적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무명 시절에는 재료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시콜콜한 일을 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서 말한 과정에서 ‘나의 일’과 세상이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이에 대해 책임을 담보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그 과정의 대부분은 고통스럽고, 강한 인내가 필요하겠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업(業)이 되는 건 자칫 (다양한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스릴과 즐거움이 존재해요.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의 눈금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는 사실은 늘 설레는 일이죠. 물론 그 설렘이 종종 두려움의 동의어가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리스크를 선택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돼요. ‘가능성을 선택하는 일’을 택한 모든 창작자분의 용기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작업의 주제로 자주 언급되는 어휘는 ‘탐험(expedition)’인데요. 저는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되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특정한 목표를 설정하고 싶지 않아요. ‘탐험’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의미처럼, 끊임없이 표류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삶의 정점과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지향합니다. 비록 그 바다에는 예측 불가능한 두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죠. 하지만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이 동트는 새벽을 예고하듯, 어두운 시간 속에서 결국 찾아내는 나 자신만의 목적지야말로 찬란한 새벽빛을 불러오리라 믿어요. 앞으로도 이 마음을 품고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람들에게 언제나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예술가로 살아남기.

Artist

김선우(@dodo_seeker)는 멸종된 도도새를 매개로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2014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Paradise»(2021, 가나아트센터) 외 18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생의찬미»(20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In bloom»(2021, 하이트컬렉션), «일현 트래블 그랜트»(2015, 일현미술관)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해외 레지던시 및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요 작업 방식은 전통적인 회화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이용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및 기업과의 협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작업 영역의 확장을 모색한다. 현재 프린트베이커리 전속 작가이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 및 컬렉터가 작품을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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