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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만약’이라는 질문으로 쌓아 올린 미래

Writer: 셀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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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셀린박 작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을 다뤄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마주칠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고, 디자인적으로 해결점을 찾는 시도인데요. 여러 미래학자와 관련 분야의 연구진과 소통하고, 미래 사회의 이슈를 지금 여기로 가져와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해 왔죠.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Data Slave›,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셀린박입니다. 저는 2014년부터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이너Speculative Designer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아이러브아트센터와 셀린박갤러리 관장으로 일했고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프랑스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이후 캐나다, 미국, 덴마크,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석사 과정을 이수했어요. 2017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셀린박 스튜디오를 창업해 다양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수행한답니다. 국내외에서 강의와 전시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며 조수아 레이 스테픈스Joshua Ray Stephens 교수님을 만났어요. 교수님 수업이 열리는 날이면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온 교환 학생과 밤늦게까지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곤 했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름다움의 측면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 메이킹, 포스터 디자인 작업을 하며 제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게 기억나요. 당시에는 지금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심리를 캡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뉴욕의 유니언스퀘어Union Square에서 6000명 넘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여러 조사를 거치며 작업을 진행했죠. 디자이너 혼자 진행하는 작업의 한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키운 기간이라고 봐요.

그 와중에, 보그Vogue, 니켈로디언Nickelodeon, 리핀콧Lippincott에서 인턴과 프리랜서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디자인 이야기를 하던 중, 제 답답한 심정을 알던 사람이 앤서니 던Anthony Dunne과 피오나 라비Fiona Raby가 이끌던 영국왕립예술대학(RCA)의 ‘디자인 인터랙션’ 전공 링크를 보내줬어요. 링크를 연 순간, 제가 정확히 원하던 걸 바다 건너 영국에서 10년 가까이 진행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던 기억이 나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 중 «Design and the Elastic Mind»는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는데요. 해당 전시가 방금 말씀드린 디자이너들과 그 제자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더욱더 놀랐어요. 당시 학부생이던 제게 디자인의 새로운 경지를 깨닫게 해준 전시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 끝에 해당 전공에 지원했고, 2014년 극적으로 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디자인 인터랙션에서 공부한 덕분에 현재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죠. 이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작업 중이에요.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Object Marriage› Performance, 2018, V&A Museu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압구정 아이러브아트센터에서 4년간 작업하다가 올해부터 새로운 작업 공간을 물색 중이에요. 그동안 사용한 공간은 모두 편해서 좋았어요. 때마다 마음에 드는 작업실을 자연스레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기에, 지금도 제게 맞는 공간을 기다리며 열심히 물색 중이에요. 요즘은 제가 있는 자리가 곧 작업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켜서 연구와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구 작업실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던 중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경우가 많아요. 기도하기 전에는 항상 복잡한 생각의 트랩에 갇힌 기분이 종종 드는데요. 기도를 하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어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떠오르곤 해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일을 진행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떤 주제가 인상에 깊게 남으면, 전문가와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양의 연구를 찾아요. 그리고 전문가와 이메일 혹은 대면으로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죠. 제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이게 먼 미래에 가능한 시나리오일지 타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연구 과정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관점으로 바라볼 때 윤리·문화적으로 문제 된다는 판단 아래 반대하는 전문가분들이 더러 계신데요. 미래학자의 추측에 근거해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이해하시더라고요. 도리어 연구를 더욱더 후원해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갑니다. 관객 이해도를 높이려고 영화 시나리오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제 작업에서 여러 번 촬영 감독으로 참여해 주신 구본영 감독님을 비롯해 영화감독 출신의 형부, 샤글리 마키제Charlie Marquiset가 큰 힘을 줘서 자주 프랑스에 갑니다. 프랑스에선 형부가 조감독으로 도와주기도 해서 촬영할 때 너무 큰 도움이 돼요.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The Object Right›, 2017~2018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1년 작업한 ‹Data Slave›는 박은희, 김다예 디자이너와 리서치를 협업으로 진행했어요.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이 고안한 ‘에너지 노예(Energy Slave)’ 개념과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2020) 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현재 데이터에 대해 집착하는 사회적 현상이 극대화되는 걸 고려하면, 미래에는 더욱 나쁘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해요. ‘만약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과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몸에 흘려보내면서까지 데이터를 얻는 상황이 미래에 펼쳐진다면?’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를 생각했죠. 사람 몸에서 전류를 내보내는 수치를 마치 전기뱀장어처럼 극대화한 상황을 떠올려 봤어요. 그리고 사람이 몸에서 전류를 에너지로 흘려보낸 만큼 데이터 은행에서 바꿔서 가상화폐처럼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세웠고요. 작업을 구상하는 중, 인체에서 전기뱀장어만큼 전류를 흘려보내는 연구를 진행한 국내 메커니컬 엔지니어 팀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저는 국내 최초로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한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Data Slave›, 2021

‹Data Slave›, 2021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데이터의 범람 속에서 난무하는 거짓 정보를 살피고, 분별하기 어려운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더욱더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연구의 범주와 시나리오 측면에서는 만족하지만, 미적인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워요. 예전 작업에서 빠지지 않던 유토피아적인 영상, 즉 맑고 명랑한 색으로 가득한 이미지가 최근 작업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가보지 않은 나라에 가거나, 먹어보지 않은 걸 맛보거나, 해보지 않은 체험에 도전하는 일은 아주 어려서부터 좋아했답니다. 새로움을 경험하고,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을 기대하며 일상을 보냅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거대한 침체(Great Stagnation)’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시대보다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해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960년대까지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류는 자동차, 텔레비전, 전구, 시민권, 원자력 등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경험했어요. 이런 진보는 미래에도 여전할 거라 믿었지만, 현재는 과거 기술을 조금 더 발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가 과대하게 불어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 관련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에요. 소셜 미디어로 인해 전 세계가 손바닥 안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것 역시 원인의 일부 아닐까 싶습니다.

‹Object Matcher›, 2018 2019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잘 정돈한 작업실을 좋아해요. 머릿속이 번잡할 때 작업실을 청소하면 생각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이런 태도가 작업에도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오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책을 읽습니다. 2023년 1월부터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을 맡아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나 홀로 아이디어의 블랙홀에 빠져있을 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블랙홀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돌아와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작업을 한 지도 어언 6년이 흘렀는데요. 여전히 한국에서는 해당 개념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것 같아요. 중국과 일본으로 향한 대학원 동기들이 말하길, 그곳에서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또렷한 윤곽을 보인다고 해요. 예를 들어, 중국은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CAFA) 총장이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의 영향력과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디자이너의 발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10년 가깝게 여러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초청해 강의를 열고 수업과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해요. 그런 영향 덕분에 중국은 이제 디자인에 대한 견해가 전과 같지 않고, 발전 가능성이 놀라울 만큼 성장 중인데요. 한국 디자인 교육에서도 과거의 보편적인 디자인 경계를 넘어 더욱 다양한 디자이너를 양성하길 바랍니다.

‹Object Matcher› Exhibition, 2020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요즘에는 ‘정성(精誠)’이 깃든 디자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시각적인 호기심을 끄는 것은 디자인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 이상 깊이와 성의를 다하는 과정이 빠진 듯한 작업을 접할 때가 많아요. 물론 과거에 본 작업을 융화하거나 조금 바꾸며 새로운 작업을 하지 않고, 완벽히 새롭게 작업하는 건 저에게도 무척 어려운 일이죠. 다만 최대한 자기 색깔과 취향을 살리고, 내면의 이유와 철학을 불어넣지 않으면 디자인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작업을 완성하는 데 의의를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찾고, 자신의 다름을 타인의 강요에 맞추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또한 지금 쫓는 일의 방향이 달라지더라도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를 바라요. 모든 과정이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제게도 하고 싶은 말을 남길게요. “Just Do It.”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무뎌진 생각을 날카롭게 만든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없는 미래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 아닐까요?

Artist

셀린박은 셀린박 스튜디오, 아이러브아트센터의 설립자이자 대표 디자이너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셀린박 갤러리, 아이러브아트센터를 운영했다. 그는 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끊임없이 이주하며 유럽과 한국의 대학,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전시와 강의를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캐나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 인터랙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런던 V&A 뮤지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주프랑스한국문화원 등 유럽과 한국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2019년부터 제주도 프랑스영화제 단편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책 집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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