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은 아무것도 모른다

Festival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인 루이 비통은 디자인과 장인 정신에 관심이 많습니다. 장인과 창작자에 대한 존중을 자신들의 애티튜드로 자주 내세우는데요. 세계 최고의 디자인 축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가구 컬렉션인 오브제 노마드의 신제품과 마크 뉴슨과 협업한 스페셜 에디션을 발표하는 행사에서는 그런 애티튜드가 처참할 정도로 무너졌답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루이 비통의 행사 진행에 맞서 에세이 한 편이 맹렬히 뚝딱 써졌어요. 우리 모두 ‘I don’t know’를 남발하는 루이 비통의 신비한 세계로 떠나보실까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알리는 공식 포스터. ‘Home of Design’이란 어구가 인상 깊다.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 다녀왔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구 박람회로 알려진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가 바로 밀라노에서 열린다. 매해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전문가들이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를 찾으면서 거대한 박람회장인 피에라 밀라노를 벗어나 밀라노 도심 곳곳으로 각종 행사가 파고들었다. 도심에 거대한 쇼룸을 가진 가구 브랜드는 더욱더 멋진 공간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IT 브랜드, 자동차 브랜드, 심지어 럭셔리 브랜드까지 거대한 예산을 들여 공간을 빌린 후 다채로운 콘셉트로 브랜드 체험 공간을 열고 있다. 이런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와 살로네 델 모빌레를 두 축 삼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디자인 축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돌아간다.

푸오리 살로네에서 화제가 되는 브랜드 중 루이 비통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이래 지속적으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호화롭고 기념비적인 장소를 골라 그들의 컬렉션을 공개해 왔다. 옷, 가방, 신발 등 루이 비통의 주된 상품이 주인공은 아니다. 가구의 성지인 밀라노이지 않은가! 루이 비통은 지난 2012년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 컬렉션을 론칭했다. 브랜드의 오랜 철학인 ‘여행 예술’에 초점을 맞춰 세계 유수의 스타 디자이너와 협업한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 제품이다. 첫 공개 장소로 컬렉터블 디자인 페어의 대표 주자인 ‘디자인 마이애미/’를 선택할 정도로 브랜드의 철학, 참여하는 디자이너의 이름값, 작업 자체가 지닌 예술적인 조형성, 이를 구현한 자사의 장인 정신을 고루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해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며 작업 수를 늘리던 오브제 노마드가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리빙 제품보다 독특하게 다가온 이유는 꽤나 명백했다. ‘여행 예술’이란 브랜드의 핵심 철학에 맞춰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완전히 열어놓아 상대적으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없는 흥미로움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컬렉션을 대놓고 판매하지 않았던 점이 한몫했다. 새로운 작업은 시제품에 머무를 때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주문 제작이란 익스클루시브한 형태로 소비자에게 다가섰다. 그래서 오브제 노마드를 지켜보는 사람 중에는 루이 비통이 리빙 디자인 신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이미 리빙 분야로 브랜드를 확장해 뻔한 제품을 내놓는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비교되는 신선한 긴장감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루이 비통이 어디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브랜드던가. 몇 년 전부터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에는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의 뺨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였는데 루이 비통이란 라벨이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정작 문제는 루이 비통이 오브제 노마드를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었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브랜드 철학과 예술성, 장인 정신의 결합을 보여주는 브랜드 활동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세일즈 경쟁의 콜로세움에 서버린 물건의 일부가 됐다. 그만큼 지금껏 쌓아온 순수한 화양연화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특히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오브제 노마드 행사는 개인적으로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오브제 노마드를 흠모했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기분이다.

현지 시각으로 18일 화요일 저녁, 밀라노의 아름다운 명물 팔라조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에서 프라이빗 파티가 열렸다. 루이 비통이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멀리서부터 건물에 걸린 두 가지 현수막이 펄럭였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스타 디자이너 마크 뉴슨과의 협업을 알리는 ‘Louis Vuitton by Marc Newson’, 다른 하나는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Louis Vuitton Objets Nomades’였다. 프레스로 미리 등록했던 터라 무리 없이 제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의 중정에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Marc Fornes가 구축한 노마드 파빌리온이 눈에 띄었다. 거대하고 환상적인 형태로 결합한 유기적인 금속 구조물의 아름다움은 잊지 못할 강력한 여운을 남겼다. 여기까진 완벽했다. 사건의 발단은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전시에 입장할 때부터 시작됐다.

‘Louis Vuitton by Marc Newson’이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좌)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Louis Vuitton Objets Nomades’ 컬렉션. (우)

‘Louis Vuitton by Marc Newson’이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상)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Louis Vuitton Objets Nomades’ 컬렉션. (하)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환상적인 노마드 파빌리온. (좌)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내부 모습. (우)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환상적인 노마드 파빌리온. (상)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내부 모습. (하)

우아한 소용돌이 계단을 오르며 입구에 가려는데, 계단 가운데 빈 공간에 길게 늘어진 거대한 샹들리에가 무척 독특한 게 아닌가. 내 호기심 버튼을 누른 샹들리에의 정체가 궁금해서 근처에 서 있던 루이 비통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이건 누구 작업인가요?” 루이 비통 특유의 깐깐한 말투를 상상하던 나는 답변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잔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I don’t know.” 럭셔리 브랜드에서 외부인을 응대할 때 부정적인 표현을 쓰던가? 특히나 브랜드 이미지를 결벽적으로 관리하는 루이 비통이라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브랜드가 주최하는 행사에 존재하는 스태프는 곧 그 브랜드의 얼굴이자 브랜드 자체로 치환되기 마련이고, 이는 모든 브랜드 운영의 상식 아니던가. 손님의 안전을 돕는 경호원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루이 비통이라면 분명 따로 언질을 주었을 거라는 의아함이 교차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

전시장 입구는 아주 화려했다.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란 전시명 앞에는 이번 행사를 위한 특별판 두 점이 전시대에 올랐다. 브라질의 캄파냐 형제Campana Brothers가 예전에 만들었던 봄보카Bomboca 소파를 매끈한 금속 재질로 바꾸었고, 유명한 코쿤Cocoon 체어는 번쩍거리는 디스크 볼처럼 장식한 채로 제자리에서 끝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화려한 변신이 반가워서 입구에 서 있던 스태프에게 물었다. “이 작업들, 캄파냐 형제의 작업이 맞죠?” 그러자 이윽고 돌아온 대답은 바로 “No”. 응? 몇 시간 전에 캄파냐 형제의 특별판 기사를 읽었는데 이게 그게 아니라고? 나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누구 작업이에요?” 그는 전시대 앞으로 가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패널을 확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캄파냐 형제요.”

캄파냐 형제의 봄보카 소파는 이번 전시를 위해 금속으로 다시 만들었다. (상)

미러볼처럼 화려하게 겉면을 처리한 후 계속 제자리에서 돌며 반짝이던 코쿤 체어 특별판. (하)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그는 사람들이 작업을 건드리지 않는지 확인하는 ‘경비원 2’일 거야. 그런데 이게 캄파냐 형제의 특별판이라는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패널에는 디자이너 이름과 작업 명뿐이고, 주변에 이 사람 말고 다른 스태프도 없잖아. 설마 루이 비통 가구 전시를 찾는 사람에게 예습을 기대하는 건 아닐 테니, 그냥 눈 호강만 하고 가라는 깊은 뜻인가? 머리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눈앞에 있는 전시에 집중하자고 구호를 외치며 내부로 들어가니 화려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며 동선을 계속 이어 나갔다. 참으로 환상적으로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마구 사진을 찍다가 그중 천장에 걸린 작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조화가 강렬하면서도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우아한 형태로 깃털이 반복되는 모습이 분명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의 작업이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지난 16일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서 비슷한 작업을 봤기 때문이다. 갤러리 버전은 색을 칠하지 않은 내추럴한 모습이었지만 디자인 어휘가 워낙 일치했다. 기억하지 못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할 정도였다.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화려한 깃털의 새, 케트살quetzal을 닮은 아틀리에 오이의 모빌 작업. (좌)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에 출품한 케찰 모빌과 시각 어휘가 매우 유사한 아틀리에 오이의 작업.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 전시했다. (우)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화려한 깃털의 새, 케찰quetzal을 닮은 아틀리에 오이의 모빌 작업. (상)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에 출품한 케찰 모빌과 시각 어휘가 매우 유사한 아틀리에 오이의 작업.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에 전시했다. (하)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여기에는 전시에 관해 설명해 줄 스태프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로사나 올란디에 있는 작업과 어떻게 다른 걸까? 궁금증을 잠시 참고, 가장 전시 스태프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섰다. “여기 천장에 있는 작업은 아틀리에 오이가 디자인했나요?” 순간의 침묵과 함께 몇 분 전 들었던 말이 또다시 반복됐다. “I don’t know.” 와우. 지금까지 부정형이 세 번 연속이다. 이 정도면 루이 비통이 선사하는 신세계에 더 놀라야 하는 것 아닐까. 한 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설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루이 비통 스태프가 오브제 노마드 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곧장 실험에 들어갔다.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의 작업이 모인 곳에 가서 근처 스태프에게 말을 걸었다. “이 작업은 누가 디자인했어요?” “I don’t know.”라는 대답은 이제 반갑기까지 했다. 아아. 루이 비통은 이번 전시를 어떻게 운영하는 걸까?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온갖 디자인 거장과 협업한 가구들을 전시하는 까닭이 단순히 좋은 홍보 기사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일까? 아무리 그래도 스태프가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탑재해야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없을 텐데…오히려 루이 비통과 상관없는 내가 좌불안석이었다.

마르셀 반더스의 캐플린 조명과 다이아몬드 소파.

나는 작업 관람, 사진 찍기, 패널 확인을 병행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실제 가구를 체험하는 곳이 등장했다. 전시대가 없기에 패널도 찾을 수 없는 상황. 운 좋게도 상주하는 스태프가 있었다. 그녀에게 스툴의 출처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눈앞에 대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주르륵 내리며 무언가를 계속 찾았다. 이윽고 그녀는 빠르게 말했다. “@#₩%&^₩#.” 당황한 나머지 “What?”이라고 대꾸하자, 그녀는 아주 쿨하게 답했다. “이탈리안 디자이너예요.”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전시를 열어도 이것보단 더 성의 있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랐다. 루이 비통처럼 이미지에 목숨 건 럭셔리 브랜드에서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의구심은 무척 빠르게 풀렸다. 함께 왔던 지인에게 그동안 겪은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는 대놓고 영업했어. 가구 사라고 계속 말을 걸더라고. 그리고 어떤 스태프는 여기 건물이 좋다는 얘기만 계속하던데? 나폴레옹이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라나 뭐라나.” 그때가 돼서야 눈앞에 환해졌다. 사람들로 가득한 이 활기 넘치는 전시는 애초에 그 목적이 관람에 맞춰진 게 아니었다. 고객에게 새로 나온 ‘물건’에 대해 소개하며 구매를 종용하는 거대한 쇼룸이었을 뿐이다. 작업 앞에 서 있는 스태프는 모른다는 말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앵무새와 비슷했고,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스태프는 자기 고객에게 가구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비즈니스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전시에 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신고전주의 양식의 인테리어와 벽화가 돋보이는 장중한 팔라조 세르벨로니의 모습.

그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모르겠다. 다만 무례한 사람이 곳곳에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마크 뉴슨과 협업한 작업을 보지 않은 게 찜찜해서 전시 층에 있는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마크 뉴슨의 신작인 ‘호기심의 캐비닛(A Cabinet of Curiosities)’은 어디에 있는지. 처음으로 분명한 답을 들었다. 야외에 있단다. 이상하다. 야외라면 마크 포르네스의 파빌리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20분 동안 와인을 마시면서 계속 둘러봤던 터였다. 할 수 없이 중정 쪽으로 내려가서 근처에 있는 스태프에게 물었다. “마크 뉴슨의 신작인 ‘호기심의 캐비닛’은 어디 있나요?” 그는 짜증이 한가득한 표정으로 저 아름답고 복잡한 파빌리온을 가르켰다. “Go, Go, Go! That’s it”. 마크 뉴슨과 마크 포르네스를 완전히 착각하는 그의 두둑한 배짱이 부러워졌다. 아니, 그래서 마크 뉴슨 작업은 어디 있는데?

이런 어정쩡한 상황을 그냥 넘기기엔 오기가 생겼다. 나는 22일 토요일 오후 팔라조 세르벨로니를 다시 찾아갔다. ‘루이 비통 by 마크 뉴슨’,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현수막들이 평온하게 펄럭이는 전시장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마크 뉴슨의 작업만 확인할 요량으로 저널리스트임을 밝혔다. 그리고 마크 뉴슨의 신작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중정 끝에 있단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걸어가 보니 화요일에는 닫혀있던 외부 통로가 존재했다.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경비원이 제지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널리스트인데, 마크 뉴슨의 작업을 보려고 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오직 루이 비통 스태프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마크 뉴슨과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글자를 함께 인쇄한 현수막을 건물에 저리 크게 걸어놓고 스태프 전용 출입이라니? 그때부터 난 루이 비통 스카프와 배지를 착용한 사람이 보일 때마다 말을 걸었다. “마크 뉴슨의 새로운 작업은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나요?” 제각기 다른 대답이 나왔다. “당신은 못 봐요”, “미안해요. 저는 다른 부티크에서 나와서 여기 사정을 전혀 몰라요.”, “고객님이랑 얘기해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건물을 뱅뱅 돌며 입장을 위해 줄 서 있었다.

토요일 다시 만난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좌)
마크 뉴슨의 작업이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 문.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했다. (우)

토요일 다시 만난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드 파빌리온. (상)

마크 뉴슨의 작업이 있는 정원으로 향하는 문.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했다. (하)

여러 번 입씨름 끝에 단서를 잡았다. 루이 비통 웹사이트로 들어가면 된단다. 글로벌 사이트가 아니라 이탈리아 사이트 말이다. 그러자 스마트폰 화면에 마크 뉴슨의 사진이 최상단에 떴다. 급하게 눌러보니 이탈리아어가 나와서 번역기를 돌려 확인했다. 결론은 입장 불가. 하도 답답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48시간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그리고 일요일에 전시가 끝나므로 결국 이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나는 항변했다. 화요일 저녁에는 아예 입구가 닫혀있었다고. 그리고 인터넷 예약에 대한 어떤 사전 고지도 듣지 못했다고. 루이 비통 이탈리아 사이트를 통해야만 한다면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는 전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마크 뉴슨의 신작을 볼 수 있겠냐고. 그러자 루이 비통 배지를 단 남자가 말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규정상 서 있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비켜주세요.” 그가 말한 자리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들은요?” 그는 지겨운 듯 한숨을 쉬며 우리 모두에게 자리에서 떠나라고 말했다. 화요일 저녁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서 있었고, 바로 옆에는 오브제 노마드에 참여한 작가들의 포트레이트를 박은 패널이 있는 그곳에서.

루이 비통 직원이 얼른 비키라고 했던 자리 바로 옆에는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소개와 이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포트레이트가 패널로 세워져 있었다.

루이 비통이 팔라조 세르벨로니에서 진행한 행사는 한 마디로 사람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귀한 시간을 내고 오랜 시간 기다려서 전시를 보는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관람할 수 있었을까. 전시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신기한 기물을 구경하는 느낌으로 전시장을 배회했으리라. 루이 비통이 유일하게 챙긴 대상은 가구 매상을 올려줄 손님뿐이었고, 환한 미소는 그들에게만 허락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따로 있다. 바로 루이 비통과의 협업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창의성을 발휘하며 루이 비통의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성심성의껏 준비했다. 그리고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떨리는 기대를 하고 있었으리라. 그들은 자기 작업이 관람 대상이 아니라, 단지 구매 리스트의 일부로 취급되는 상황을 알고 있었을까? 화려한 인테리어와 멋진 작업을 기록한 설치 이미지와 좋은 말로 가득한 언론 보도에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는 기괴하고도 슬픈 세계가 세계 최고의 디자인 축제에 기생하는 풍경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브랜드 철학이 담긴 멋진 창작물을 보여준다는 미명 아래 전 세계 창작자가 모이는 축제 기간에 근사한 장소를 빌리고 철저하게 물신을 숭배하는 루이 비통의 모습을 몸소 접하니, 지금까지 루이 비통이 외치던 장인 정신, 디자인, 예술성, 협업에 대한 원대한 의지가 허상처럼 흩어지는 느낌이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4월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루이 비통에 기대한 장면은 결코 이런 게 아니었다. 창작자의 축제에 참여한다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다. 바로 창작에 대한 존중이다. 루이 비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거세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수준으로. 이 글을 본 루이 비통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I didn’t know.” 그리고 다음 행사 때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 “I don’t know.” 아무것도 모르기에 언제나 당당한 루이 비통의 모습이 처연하다.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DESIGN» «SPACE 空間» «NOBLESSE»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HUFFINGTON POST KOREA»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BRIQUE»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THE EDIT»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읽을 수 있는 소리, 들을 수 있는 문자

Festival

지난 9월 2일부터 4일까지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22-2023(이하 ‘사이사이’)’이 열렸다. 행사의 흥미로운 부분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타이포잔치: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타이포 잔치’)’와 ‘사이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해 보인다. ‘사이사이’와 ‘타이포잔치’는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행사다. 그중 ‘사이사이’는 지난 2011년부터 격년으로 열리는 ‘타이포잔치’의 사전 행사에 속한다. 즉 올해 ‘사이사이’의 경우, 내년 9월에 개최하는 ‘타이포잔치 2023’의 주제를 미리 탐색하며 기대감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참고로 내년 타이포잔치는 ‘타이포그래피와 소리’를 다룬다. ‘사물화된 소리, 신체화된 문자’라는 이름 아래 진행한 이번 ‘사이사이’는 총 두 번의 강연과 워크숍 그리고 공연을 선행 스터디 개념으로 알차게 살펴보았다.

첫 날 열린 강연인 ‹음n음o음d음e음s음›은 교육자이자 글쓰는 디자이너 그리고 장서광인 알렉스 발지우Alex Balgiu가 연사로 참여했다. 시에서 문자와 소리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고 소리·시·그래픽 디자인을 광범위하게 연결하며 ‘우리 삶에서 시를 구체화하는 데 악보(score)와 교점(node)은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음n음o음d음e음s음›은 둘째 날 오전에 열린 워크숍 ‹시s시o시u시n시d시i시n시g시›와 긴밀하게 짝을 이룬다. ‹시s시o시u시n시d시i시n시g시›는 첫 강연의 연사인 알렉스 발지우의 인도 아래 참가자가 문화역서울284 주변을 산책하며 도시의 소리와 문자를 채집하고, 타자기·복사기·가위 등을 활용해 채집한 소재를 재구성한 뒤 그 결과물을 한데 모아 ‘타이포 성가(typochant)’를 완성하며 끝났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는 소리 시(sound poetry)를 배우고, 직접 지어도 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며 타이포그래피의 열린 에너지를 경험하는 기회로 삼았다.

둘째 날 오후에 열린 두 번째 강연 ‹연주할 수 없는 악보, 보기 위한 음악›은 신예슬 음악 비평가가 이끌었다. 그는 서양 음악사에서 형성된 문자적 악보의 긴 흐름과 20세기 들어 달라진 기보 양상을 소개하고, 특히 그래픽 기보를 매개로 1950~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기보 실험을 들여다보았다. 강연 후에는 신동혁 그래픽 디자이너가 대화자로 참여해 타이포그래피와 음악의 접점에서 다양한 사례를 공유했다. 청중에게는 소리가 없더라도 청각적 연상을 촉발하는 텍스트나 이미지, 기호를 읽는 행위 또한 그 자체로 음악을 향유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성찰하는 계기로 충분했다.

마지막 날에는 ‹문장 부호 이어말하기›라는 독특한 옴니버스 공연이 펼쳐졌다. 시인, 성우 지망생, 그래픽 디자이너, 글자체 디자이너, 뮤지션 등 총 6명의 퍼포머는 각자에게 주어진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영역에서 문장 부호를 다뤄 온 경험을 각자의 언어와 문법으로 공유하며 문장 부호에 관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영감의 시간을 만들었다. 특히 디자인 스튜디오 1-2-3-4-5가 일명 ‘문장 부호 통역사’로 참여해 퍼포머의 발화나 연주에서 감지한 문장 부호를 실시간 그래픽으로 스크린에 띄우는 장면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형과 유형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어젠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와 소리의 기묘한 관계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는 시도는 둘 사이의 양가적인 특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이번 ‘사이사이’의 강연과 워크숍, 공연은 내년 본 행사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맡았다.

Event

«타이포잔치 사이사이 2022-2023»

참여자: 김민정, 서경수, 신동혁, 신예슬, 신인아, 알렉스 발지우, 이랑, 이수성, 채희준

기간: 2022.09.02 – 2022.09.04

Place

문화역서울284 RTO: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