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의 세계에 잠입하기

,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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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네 번째 주인공은 ADOR의 민희진 대표입니다. 우리에게는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신한류 시대를 이끈 인물로 잘 알려져 있어요. 2019년부터 하이브의 CBO로 일하다, 작년 하이브의 독립 레이블인 ADOR를 론칭하며 CEO를 맡고 있습니다. 평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작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통해 처음으로 방송에 나오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비애티튜드»는 K팝 업계에서 20년간 네임 밸류를 쌓아온 민희진 대표를 독점 인터뷰했습니다. K팝에 대한 그의 인사이트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4: 민희진

«비애티튜드»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특정 아티스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네 번째 주인공으로 민희진을 선택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아트 디렉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신한류를 대표하는 K팝 산업에서 늘 화제를 모았던 그는 2019년부터 하이브에서 CBO로 일하면서 작년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인 ADOR의 대표를 맡아 ‘민희진표 걸그룹’ 데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비애티튜드»는 대중문화평론가인 차우진을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초대하고, K팝 소비에 적극적인 내부 인원을 인터뷰어로 보강해 총 다섯 명이 민희진 대표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두 편의 아티클을 발행한다.

Part 2. 민희진의 세계에 잠입하기

K팝 브랜딩을 혁신한 대표적인 인물로 현재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 ADOR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와의 익스클루시브 인터뷰, 그 첫 번째 편이 공개된 후 «비애티튜드» 편집국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급격히 올라간 조회수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유입된 독자 분포도에 한번 놀라고, 발행 직후 아랍어, 스페인어, 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인터뷰가 번역되는 상황에 고무됐다. 트위터를 매개로 두 번째 편에 대한 기대감 어린 반응이 지속적으로 공유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한국어와 영어로 단단히 채워진 콘텐츠가 독자를 제대로 만날 때 벼락같은 즐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이에 예정된 발행일을 미루고, Part 1을 공개한 이후 민희진 대표에게 찾아온 변화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소셜 미디어를 가로지르는 독자의 반응에 대한 생각, ADOR에서 데뷔를 준비 중인 걸그룹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영감을 주는 트랙 리스트 등의 콘텐츠도 더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Part 2를 통해, 민희진이란 인물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며 그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보기 드문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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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하) 파트1을 발행한 후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오해가 풀리기도 했고, 진정성에 감동하기도 했죠. 희진 님은 어떠셨나요?

하고 싶은 얘기를 전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얘기할 수 있어서 시원했던 건 좀 있었고요. 무엇보다 소비자분들과 교류한 기분이 들어 제게도 유의미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전 인터뷰들과는 조금 다른 결로 진행했기 때문에 저도 제 얘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했는데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파트2의 인터뷰는 편집국에서 ‘인간 민희진’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신 만큼 좀 더 편하게 얘기해볼 생각이에요. 주제가 제 개인적인 얘기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라 혹 기대하시는 내용이 아니거나 긴 내용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당부드리고 싶은데 장문이 힘드시거나 저의 개인사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지금 창을 닫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드려봅니다. (웃음)

(진채민) 희진 님이 프로듀싱하는 걸그룹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어요. 론칭 예정인 걸그룹에 대한 희진 님의 애정이 사람들의 기대감을 모았는데요. 희진 님은 자신을 어떤 육성자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마음은 엄마죠. (웃음) 엄마를 대신하는 역할이자, 친구의 마음이에요. 실제로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예뻐서 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죠. 저는 어린시절에 아이돌을 좋아해본 경험도 없고 스타에 환상을 갖던 타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전 회사에서도 연예인은 제게 동료나 동생, 자식 같은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제가 처음 만든 회사의 연습생들은 더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오히려 늘 냉정한 마음으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 주지해요. 몇 주 전에 우연히 들은 얘긴데, 회사의 타 부서 구성원분들이 ‘ADOR 연습생들은 인사도 잘하고 참 예의 바르다’고 칭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순간 정말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었죠. “아빠 힘내세요~” 노래가 들려오는 기분이었달까요. (웃음) 바로 멤버들 단톡방에 폭풍 칭찬 메시지를 보냈죠.

저는 겉으로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것에 잘 속지도 않고요. 모든 상황에서 누구에게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길 바라요. 보여주기 위한 친절은 자발성이 결여돼 해야 하는 ‘일’이 되고 결국 피곤함으로 이어져 지속이 어려워요. 내면의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한다면 더 그렇죠. 인간이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매사 친절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겉으로 보이는 인성에 연연하기보다는 내실이 단단하고 따뜻한 우리 친구들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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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_[Electric Shock]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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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Junior_[Sorry, Sorry] © SM Ent.

(김재훈) 말씀을 듣고 보니 ‘트레이닝’이라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네요. 어떤 방향성을 갖고 계신가요?

20여 년 동안 일하면서 동안 업의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였고, 나름의 노하우와 철학이 생긴 지점이 있어요. 흔히 캐스팅이나 트레이닝을 실제 제작 과정과 분리하곤 하는데, 저는 완성도 높은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를 위해서 캐스팅 및 트레이닝의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에는 아무래도 트레이닝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별도의 레이블을 론칭해 캐스팅, 트레이닝을 포함한 전 과정을 맡고 싶었던 거죠. 아무래도 아이돌을 지망하는 친구들의 평균 연령대가 어리기 때문에 특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히 트레이닝 과정 중에 생기는 여러 사소한 일에도 상당히 신경 쓰고 있어요.

그간 조직 내에서 갖가지 예기치 못한 변동 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아마 외부적으로도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합작 걸그룹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이후 ADOR 걸그룹 프로젝트로 변화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는 2021년 9월부터 ADOR 걸그룹 프로젝트의 전체 진행 시스템을 관리하게 되었어요. 그 첫 단추가 트레이닝 단계였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건강·생활 컨디션 점검과 숙소·연습실 컨디션 체크였어요. 데뷔조가 되면 다양하게 준비할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보통 학교생활이 어려워져요. 그런데 막상 학교생활을 해야 할 땐 학교가 싫다가도 정작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되면 그에 대한 아쉬움과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갖기 마련이라…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우리의 연습 생활이 작은 학교생활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를 대신해 회사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가 연습하는 내용이 음악, 미술, 역사, 어학 영역과 비슷하거든요. 어찌 보면 관심 있는 분야를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되는 셈이기도 하죠.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 트레이너들을 통해 관계성, 사회성도 공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조직의 관련 구성원분들에게도 모두가 선생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요.

그런 맥락에서 곡의 가사를 쓰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일종의 국어, 문학, 작문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선, 제가 음반에 대한 전체 콘셉트와 곡의 방향성에 관해 설명해주고 해당하는 각자의 경험을 짤막하게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멤버들의 경험을 듣는 과정도 유의미하고 재미있었지만, 제출한 내용에서 가능성이 보여 대견하더라고요. 그래서 적게나마 곡의 가사로 일부 실릴 예정이기도 해요. 배움의 과정으로서의 선택인 거죠. 어리기 때문에 미숙하지만, 미숙하기 때문에 용감하기도 하거든요. 수려한 가사가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 자기감정을 솔직히 풀어낸 과정과 내용은 그것대로 참 귀하고 빛나요. 재능의 유무 여부를 섣불리 판단하기에 앞서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관찰하는 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당장은 재능이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지속해서 연습하면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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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소녀시대_[The Boys] © SM Ent. | f(x)_[Pink Tape] © SM Ent.

(차우진) 멤버들은 희진 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건 제가 모르죠. 하하. 제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도 나이 차와 대표라는 위치 때문에 그래도 좀 어렵겠죠? (웃음) 호칭이 주는 어색함이 있거든요. 대표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딱딱해서 싫은데, 그렇다고 희진 님, PD님, 디렉터님이라고 부르기엔 전부 하나같이 다 이상해서 그냥 우리끼리는 호칭을 대표님으로 정리하긴 했어요. 그런데 우리 멤버 중 한 명이 제게 문자를 보내왔는데 오타로 ‘대퓨님’이라고 보낸 적이 있거든요. 사실 그 표현이 제일 웃기고 귀엽고 좋더라고요. 하하하.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제가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 보니 우리 멤버들을 무의식적으로 너무 아기처럼 언급한 것 아닌가 싶어서요. 멤버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막상 만나보면 재능과 끼, 열정이 엄청나서 마냥 어린 느낌만도 아니거든요. 각각의 재능과 매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 특장점이고요. 아무래도 함께 연습해 온 기간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서로 매우 끈끈하고 언어적으로 모든 멤버 개개인이 한국어, 영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팬분들과의 접점이 보다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종현) 멤버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모두를 각각 언급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음… 이럴 땐 보통 막내를 꼽아서 얘기하죠? (웃음)  우리 막내는 쿨하고 세련된 친구예요. 저희 집에 놀러온 날 같이 밥 먹고 서점도 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동네를 걷는데 어색함도 잠시, 나중엔 제 친구와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재능과 끼가 참 많죠. 어린데 속도 깊고 그 나이대의 천진한 모습까지. 그날의 청명했던 날씨까지 더해져 상쾌했던 기분이 생각나요. 한 번은 멤버 전원이 콘셉트와 방향성에 대해 들을 겸 저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제가 집에서 듣던 음악을 듣고 이 꼬마가 너무 좋다고 연신 감탄하며 메모하더라고요. 하하하. 또래들이 알 만한 곡도, 들어봤을 곡도 아닌데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보면서 문득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신기하더라고요. 세대를 뛰어넘는 이상한 동질감도 느껴지고. 마음 같아선 멤버들 모두에 대해 전부 말하고 싶지만 얘기하자면 끝도 없죠. 참 어려우면서도 재밌고 귀엽고 신기한,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진채민)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민희진 키즈’라는 말이 생각나요. 혹시 민희진 키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려요.

우리 팀원 중에 김나연 님이 사용했던 말이에요. 제가 만든 콘텐츠를 좋아하고 즐기며 자랐는데 함께 일하게 되어서 너무 신기하다고요. 저도 신기하고 감동적이면서 머쓱해요. 제 입으로 표현하는 게 어색하고 말 자체가 참 황송한 느낌이에요. 수년 전 기억이 떠오르네요. 어느 강연에 연사로 참여했는데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이 찾아와 사인을 부탁했어요. 제게 사인이라는 건 결재용뿐이라 남에게 해주는 게 영 어색하고 오그라들어서 막상 못하겠더라고요. 그 친구들은 저를 만났다고 감격하면서 글썽글썽하더니 울더라고요. 음… 그때 느낀 기분이 잊히지 않아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뭔가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기분으로 울컥해요. 제가 뭐라고 만났다는 이유로 눈물까지 흘리는 건지, 그 마음이 저를 놀라게 해요. 옆집 언니나 마찬가지인데 울지 말라고 달래줬어요. 그 마음이 고맙고, 찡했죠. 가끔 업무 미팅으로 만나는 분들이 본인을 그렇게 표현하시기도 해요. 혹은 자녀, 조카분들이 그렇다고. 우리 팀 나연 님이 그렇듯 이 친구들도 어느 분야에서든 잘 성장해 재능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좀 벅차오르는 기분이에요. 너무 감사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마운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엄청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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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_[Pink Tape] | f(x)_[Pinocchio] | 소녀시대_[The Boys] | Red Velvet_[Ice Cream Cake] | Red Velvet_[Ice Cream Cake] | 소녀시대_[The Boys] | NCT U_[일곱 번째 감각] © SM Ent.

(진채민) «비애티튜드»와의 첫 번째 인터뷰가 발행된 뒤 희진 님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나요? 아주 사소한 것도 좋아요.

변화를 설명하려면 사전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좀 긴 얘기가 될 수 있어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상당 기간, 미움(?)받고 있다는 기분을 꽤 느끼면서 지내왔거든요. 앞선 인터뷰에서 잠깐 밝혔는데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나 비평 외에 기준과 근거 없이, 비방하고 싶어 이유를 붙인 경우를 꽤 오래 경험해 온 것 같아요. 정작 제 작업이 아닌 경우도 많아서 넘기기도 했지만 무시하고 방치하다 보니 어느 순간 프레임이 되면서 올가미화 된 느낌이었어요. 제 일에 대해, 혹은 저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일일이 대응할 수는 없어요. 반박과 정정을 한다 해도 그 또한 상대가 받아들일 태도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고요. 그런데 추측도 오랜 시간 방치하니 정설이 되어 이름만 알고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쉽게 매도하기도 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어요.

애당초 비방을 목적으로 했다면 사실 확인을 한다 해도 의미는 없어요. 실상 타인의 진실에는 큰 관심이 없죠. ‘난 모두가 그렇게 말하길래 그런 줄 알았지’ 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해요. 아이러닉하죠. 저에 대한 모니터링을 안 하는 편이라, 그나마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웃음) 타인에겐 잠깐 지나치는 남의 일일테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수년간 마음고생이 심했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땐 공황과 불안이 심해져서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인터뷰 첫 편이 공개되고 조회수에 놀란 종현 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 이런 게 엔터 업계에서 일하는 느낌인가요?” 제가 ‘양날의 검’이라고 답했죠. 대체로 사람들은 유명세를 선망해서인지 그 반대 일면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이 비방으로 괴로워하는 것에도 대체로 둔감한 것 같고요. 아마 이런 제 얘기가 의아하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어떤 업에든 명과 암이 존재하죠. 제가 관심을 즐기는 타입이 아닌 데다 일을 강박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고통이 배로 느껴진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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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_[Hoot] © SM Ent. | f(x)_[NU ABO] © SM Ent. | EXO_[EX’ACT] © SM Ent. | EXO_[XOXO] © SM Ent.

(박산하) 무척 뜻밖이에요. 예상보다 어려움이 크셨군요.

조직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결과로 성취에 이른다는 건 특히 개인에게는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에요. 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회사·동료·소비자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 다중고를 겪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일도 막상 성취하고 나면 그간의 고생이 허무하게도 금세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조직이 정비되고 없던 시스템이 만들어지며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죠. 이를 주도한 개인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내·외부적으로 다양한 일을 겪으며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아요. 공(功)은 회사로, 과(過)는 개인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이런 지난함이 길어지니 의욕도 사라지고 마음이 어려워졌죠. 결국, 번아웃 중 하나의 요인이 되었고 퇴사 결정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면 참 좋겠는데… 지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대중문화 일을 하는 디렉터의 고충이라 생각하며 고행하는 기분으로 지나왔지만요. 오히려 좀 대충 일했더라면 고통이 좀 덜했을 것도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허무감이 심해졌을 땐 이직이 아니라 아예 업을 내려놓을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박산하) 안타깝네요. 요즘은 어떠신가요. 극복하셨나요?

퇴사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퇴사를 결정한 뒤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되풀이되더라고요. 저는 금전적 보상 때문에 퇴사와 이직을 결정했던 게 아니에요. 이직하는 회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동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심적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남들처럼 퇴사 전에 미리 이직처를 결정하지도 않았어요. 세상을 지배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 기준이나 목표와는 다른, 제 나름의 어떤 기준과 이유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 이유를 꼭 남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요. 어쨌든 삶을 살아가는 가치 기준이 모두 다르고 또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을 테니 그러려니 해왔지만, 개인적 이슈인 이직에 대해서까지 엉뚱한 추측과 소문이 붙을 땐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체념이 되더라고요. ‘아, 그냥 나를 싫어하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밖에선 제가 ‘인간 SM’으로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직하면서 들었던 얘기예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놀랍고 신기했어요. 외부 인식과 달리, 제게는 오래 재직한 것에 비해서 회사와 좁힐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이 늘 있었거든요. 보상이나 처우의 문제는 아니에요. 젊은 나이에 등기이사라는 타이틀을 얻고도 퇴사한 이유에 관한 질문을 자주 듣는데, 등기이사 등재라는 것이 실상 제게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 아니었어요. 임원의 타이틀보다는 제 일이 더 중요했죠. 저는 조직에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갖는 타입이 아니에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모를까. 조직 내 사람 간의 의리는 매우 소중해요.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죠. 저는 제 일에 로열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흔한 이직마저도 이슈가 되고야 마는 상황에 마음이 참 어려웠어요. 매사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고 반응을 전해 들으며 만감이 교차했어요. 마음에 드는 피드백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제 기대보다 공감과 이해를 받은 느낌 같아서요. 이해해주시고 기대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웠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 ‘변화한 점’이라면, ‘두 번째 인터뷰를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겠다’는 것과 단절된 줄로만 알았던 소통의 가능성에 대해 작은 발견을 했다는 걸까요. 저는 그간 현업에서 제작자, 소비자의 관계라는 것이 묘하게 낯선 관계로 느껴졌어요. 그 거리감이 싫었던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해 제작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죠. 또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제 일의 기본인데, 관계가 멀다면 의견을 들을 수 없어요. 전에는 제가 나서서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좀 다르기도 해요. 제가 워낙 솔직해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지나간 고통을 토로하고자 함이 아니라, 진심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를 직시하긴 어렵거든요. 제가 먼저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멀게만 느껴졌던 소비자분들과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겠다는 내심의 기대와 확인이 생긴 점이 개인적으로 고무적이에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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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혹 변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아니면 찾아왔으면 하는 변화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오해나 억측은 있겠죠.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싫어하기로 마음먹으면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것이 싫은 법이에요. 각자의 이해도는 모두 다르니까요. 그래서 찾아왔으면 하는 변화는, 편견이 해소되길 바라는 거예요. 말씀드렸듯이 제가 좀 강박적인 성격이라 생각이 많아서 매사 피곤해요. 정말 뭐든 간에 애쓰는 타입이거든요. 애써서 일하고 열심히 이해시키고 싶어 하고 최선을 다해 오해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역할에 대한 각자의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저는 여러분의 고정관념 속 디렉터나 CEO와 좀 다를 수 있어요. 제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기존의 회사나 대표라는 각자의 프레임에 저를 가두지 마시고 제가 진행하는 일의 과정을 조금 찬찬히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먼저 색안경을 끼고 관성의 프레임을 씌우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거든요. 자기 인생을 걸어 엉뚱한 시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좀 편한 길을 택해도 되겠건만, 굳이 피곤하게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중이에요. 제 개인 선택인 만큼 그걸 이해해달라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팔짱을 좀 풀어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하죠. 조금 느슨하게요.

대부분 «핑크 테이프»를 언급하며 기대하시곤 해요. 하지만 정작 유사한 작업이 나오면 자가 복제라는 평이 나올 것이고, 전혀 다른 작업이 나오면 ‘기대했는데 의외다, 아쉽다’는 평이 나올 것도 예상돼요. 그래서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을 수 있는, 리스크가 큰 일인 것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임하고 있어요. 솔직히 어떤 기분이냐면 비가 막 쏟아지고 있는 장소에서 ‘비를 맞지 않고 비 사이를 통과해 목적지에 도착하세요’ 같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웃음)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있어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우선 가치라 앞으로 다양한 선택에 있어 딜레마가 생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 결정의 우선순위는 ‘최소한의 양심’이 될 것 같아요. ‘도전’이 정말 아름답고 유의미한 가치라고 믿는 분들이라면, 감히 바라건대 앞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나 억측은 거둬주시고 신뢰로 지켜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재훈)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부담이 크시겠어요.

부담은 어쩔 수 없는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인터뷰를 계기로 소비자분들을 비롯한 팬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 ADOR 팀원들이 알려줬는데, 지난 인터뷰와 관련해 그간 잘못 전달된 내용에 대해 국내·외 팬분들이 일일이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감격) 꼭 이 일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그간 한국과 해외 각국의 팬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컸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저희 팀의 팬 여러분들, 너무 감사해서 사실 뭐라고 표현이 어려울 정도예요. 아직 정식으로 공개한 멤버가 없음에도 큰 관심을 보내주시는 점 진심으로 황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놀랍게도 정말 여러 나라에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계세요. 제가 브라질리언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일까요? (웃음) 브라질을 비롯해 정말 제가 다 언급하고 싶지만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나라에서 기대와 격려를 해주시는 것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에요. 기대가 크면 또 실망도 클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커요. 무한 기대보다는 여유 있게 즐겨주시길 바라요. 저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굉장히 노력 중이에요. 가끔 턱턱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이런 관심 속에 프로젝트를 론칭하는 일이 또 얼마나 횡재인가!’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부담감 때문에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되어 말씀 전해요. 열심히 해서 때가 되어 좋은 결과로 정말 모든 분들께 보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민희진,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레드벨벳, 엑소, exo, redvelvet, minheejin, kpop, girlgroup

Red Velvet_[Russian Roulette] © SM Ent. | Red Velvet_[Rookie] © SM Ent. | EXO_[12월의 기적] © SM Ent.

(진채민)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라는 질문에 희진 님 주변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대중들은요?

제가 뭐라고 저에 대해 꼭 다 아셔야 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아무래도 팬 여러분들을 소비자로 만나다 보니 총 책임자인 저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면 비즈니스가 훨씬 수월해지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특히 요즘이요. 그래서 전례 없던 이런 긴 인터뷰도 하는 것이고요. 제 나름대로 팬분들과 친해지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하게 인터뷰를 해도 왜곡되어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어요. 혹은 제 말이 길어서 짧게 요약되어 퍼지다가 왜곡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안 하면 안 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니까,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언급될 것이라면 솔직하게 얘기하자!’로 방향을 잡았어요. 보통 회사의 임원이나 대표에 대해 편견을 가지곤 하잖아요. 아시겠지만 덮어놓고 세대나 직업, 직책으로 그룹핑해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사람 바이 사람이죠.

제가 아트 디렉터 출신이기 때문에 매니지먼트나 음악을 걱정하는 의견도 왕왕 들어요. 이미 다양한 하이브리드 작업이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인걸요. 설명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는 편견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그간 밝히지 않아서일까요. 전 그간 아트 디렉팅에만 국한해 일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비주얼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어요. 이전 회사에서도 꾸준히 악곡 선정과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내왔어요. 음반명을 바꾸기도 했고, 제가 이견을 제시해 유례없던 직원 투표로까지 이어져 바뀐 타이틀 곡도 있었죠. ‘10 꼬르소꼬모’와 협업 제작한 컴필레이션 음반도 제 기획이었어요. 다양한 DJ들과 협업한 프로젝트였는데 그것도 벌써 2013년의 일이네요. 드러난 일 외의 수행 이력은 외부에서 알 수 없긴 하지만 이미 음악과 무관한 경영인이나 매니저 출신 제작자가 음반을 제작해 온 전례의 역사가 길잖아요. 기출 변형되어 헷갈리는 것일까요. 2022년인데 차별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에 새삼 놀라요.

10 Corso Como Seoul Melody

(차우진) 사회 곳곳에 암묵적으로 편견이 존재하죠. 그래서인지 더욱 음악이 궁금해지네요.

대부분 콘셉트와 디자인에 대해 기대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독립 레이블을 론칭해 전권을 보장받고자 했던 이유는 제작의 모든 분야가 상호 연결되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제안을 해보고 싶었어요. 기분 좋은 사실은 멤버들이 우리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는 점이에요. 블라인드로 청취할 때 나온 반응이에요. 이후 우리 곡인 걸 밝혔을 때 모두 환호했죠. 우리 ADOR 팀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저희가 좋아한다고 만인이 좋아하리란 보장은 없지만요. 대중적 인기는 드러나기 전까진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어쩌면 ‘더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요. 저는 이전에도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업이 좀 힘든 편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족하는 음악으로 작업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의 작업 만족도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돼요. 특히 그림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음악, 사운드에 민감하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전에도 좋은 곡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강조하고 싶어 음악을 위한 티저나 트레일러 영상을 만든 경우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샤이니의 «Odd – View» 트레일러 시리즈가 그랬죠. 좋은 그림은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 감상이 훨씬 극대화돼요.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라기보다 모든 영역이 상호 조화됐을 때, 감상의 쾌감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사업의 영역까지도 중요해지는 것이고요.

SHINee_[Odd] Comeback Trailer © SM Ent.

(차우진) 갑자기 희진 님이 진행하셨던 브랜딩 PT가 떠오르네요. 희진 님께는 기존의 일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노하우가 있어 보여요. 회사설명회였는데 새로운 시도로 느껴졌습니다.

2021년에 발표되었던 ‘HYBE: New Brand Presentation’ 최초 기획안을 작성하고 발표 진행 시나리오를 구성했을 때, 이전에 없던 포맷이었기 때문에 완성된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주변으로부터 다양한 걱정을 들었어요. 완성된 작업물로 보이기 전까진, 아무래도 기획자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그림일 수밖에 없어 타인이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해요. 이제는 스스로 이런 설득의 과정을 으레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골이 난 것 같아요. (웃음) 우리 팀의 김예민 디렉터, 신동훈 바이스 프레지던트(VP)와 PT 발표 당일까지 꼬박 밤을 새우며 준비했었죠. 발표회 이후 가장 쾌감을 느꼈던 순간은 회사 외부 사람들로부터 “내가 왜 남의 회사설명회를 재미있게 보고 있지?”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였어요. 보통 회사설명회는 지루하잖아요. 기대하지 않은 상황을 통해 만족감을 선사했다는 사실이 가장 유의미했죠. 그렇지만 이전에 없던 일을 만들어 주위를 설득하기란 참 어렵다는 걸 다시금 체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역시나 힘들어도 기존의 편견을 깨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생기는 희열이 또다시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남을 재밌게 놀라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 같아요. 우리 ADOR 걸그룹을 통해 그걸 또 실현해보고 싶고요.

HYBE: New Brand Presentation

(김재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희진 님이 팀원들을 굉장히 신뢰하시는 게 느껴져요. 직장 동료와 개인적인 연락을 나눌 정도로 친밀해지는 일은 흔치 않은데, 희진 님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시나요? 희진 님이 생각하시는 우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언급한 김에 제 동료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김예민 디렉터는 워낙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인터뷰한 것을 알게 되면 저를 분명히 ‘엄청나게’ 타박할 것 같지만요. (웃음) 이전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저와 오래 일했죠. 세상이나 일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비슷해요. 예민 님은 저와 상당히 오랫동안 주요 작업을 같이 해왔어요. 엑소의 ‘Pathcode’ 프로젝트에서도 기여분이 상당한데, 외부에선 잘 몰랐겠지만 제가 저를 포함해 예민 님까지 딱 세 명으로 TF를 꾸려 진행한 일이었어요. ‘Pathcode’ 프로젝트도  f(x)의 Art film 작업과 유사한 경우였죠. 당시 상황상, 제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자체적으로 진행한 일이었어요. 외부에선 프로젝트에 대단히 많은 인력이 동원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더라고요. 업무에 투입되는 인력의 수와 결과물의 퀄리티 간의 상관관계는 꼭 비례한다고만 볼 수 없어요. 주어진 시간 내 정확한 이해력과 대단한 집중력이 중요하죠. 이 일 외에도 저와 함께 다양한 작업을 함께 하며 고민과 고난의 시간을 함께 버텨준, 성실하고 재능 많은 디렉터예요. 여러 난관을 같이 넘어왔기 때문에 자연히 우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함께했던 뮤직비디오 감독이나 다른 스태프 중에도 그렇게 친구가 된 케이스가 많죠. 제가 집순이이기도 하고 비교적 사교적인 성향이 아니라 아무래도 일에 집중해 살아온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신동훈 VP는 ‘인간 도덕 교과서’ 같은 분이고요. (웃음) 제가 마음고생으로 힘들 때, 마치 정신과 주치의 같은 조언으로 도움을 주셨죠. 한 명 한 명 모두 고마운 우리 ADOR 멤버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해준 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글을 읽는 제 지인 중에 ‘혹시 나도?’ 하시는 분들은 모두 해당될 것 같네요. (웃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고난이 좋은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그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순간 관계의 진전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져요. 아마 미래엔 우리 ADOR 걸그룹 멤버들과도 이런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겠죠.

(박산하) 희진 님 집에 방문했을 때 계속 들리던 ‹The Girl from Ipanema›를 요즘 자주 듣고 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평소에 많이 듣는 음악은 K팝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취향과 현업의 거리감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네요.

주류 시장에 저 같은 인간도 한 명쯤 있어야 업계가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자꾸 딴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업이 꾸물꾸물 변형되겠죠. 우리 막내 멤버도 제가 듣는 오래된 생경한 곡을 좋아하잖아요. ‘이런 스타일이 먹힌다’, ‘이런 게 정답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좀 답답해요. 정말 그런 공식이 있다면 일부가 아닌 모두가 성공했겠죠. 현업을 재밌게 하기 위해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레 취향을 투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듣기 좋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해보고 싶어요. 대중문화를 만드는 관점에서 그 접점에 대해 늘 고민하는 것이고요. 세상엔 좋은 음악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그 좋음이 결코 한 가지 스타일로 귀결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다양성을 소개하고 싶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음악 프로듀서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고정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도 있죠. 좋은 건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ADOR의 음악 총괄 프로듀서는 제가 굉장히 인정하고 신뢰하는 분으로 선택했어요. 함께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제가 의외로 상처를 잘 받지만, 호기심이 많고 무모한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안 하니까 제가 해보려고 해요. ‘좋은 것’을 제안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민희진, 보이그룹,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크리스탈, krystal, minheejin, kpop, boygroup, girlgroup
민희진, 보이그룹,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크리스탈, krystal, minheejin, kpop, boygroup, girlgroup

© «W Korea» | Taemin_[ace] © SM Ent.

(박산하) 인스타그램 댓글을 보니 희진 님의 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더라고요. 생활과 일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희진 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의식하지 못했지만 살다 보니 제가 삶을 사는 방식이 애초에 좀 일반적이진 않았다는 걸 뒤늦게 자각하게 됐어요. (4차원 병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병은 절대 아닙니다!) 회사를 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일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집을 대하는 방식도 그랬던 것 같아요. 투자적 관점보다는 제가 즐거운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차피 전부 뜯어고칠 생각이라 애당초 비싼 집을 고를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집을 약 1년여간 비운 상태에서 천천히 만들어갔어요.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벌써 12년을 보냈네요. 제 친구들은 물론이고 저희 팀원들도 저희 집에 놀러오거나 여기서 일하는 걸 좋아해요. 저도 그게 참 즐겁고요. 저희 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이 공통으로 하는 얘기가 있는데, 아 «비애티튜드» 분들도 그러셨죠? 이 집에 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다들 새벽까지 떠들다가 가셨죠. 하하하. 딴 얘기지만 하이브의 신사옥 설계도 마찬가지로 머물고 싶은 공간에 초점을 맞췄어요. 착한 척하며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 구성원 모두 회사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했어요. 정신없이 바빴는데 그것도 어느덧 1년이 지났네요.

(김재훈)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희진 님은 ‘좋은 것’에 대한 안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처음 만났던 ‘좋은 것’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음악이나 책, 혹은 어떠한 경험도 상관없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는 것, 정말 좋아해요. 하하하. 음악을 정말 사랑해요. 음악이라는 게 공간의 분위기와 기분을 지배하잖아요. 과거의 어떤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좋은 음악을 공유하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흔한 것이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요. 제가 어릴 땐 지금과 아주 다른 환경이었기 때문에 음악을 찾아 듣는 디깅도 능력에 속했어요. 저는 좀 조숙한 편이었고 어릴 때 책, 음악, 영화에 완전히 빠져 지냈죠. 상대적으로 만화는 별로 보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래도 『러프』나 『슬램덩크』 같은 히트작은 즐겨 봤어요. (웃음) 아무튼 저는 장르에 국한해 음악을 듣기보다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어요. 어릴 때 라디오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눌러서 만든 음악 테이프가 집에 수두룩했죠. 초등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때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라디오에서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ônio Carlos Jobim의 ‹Desafinado›를 처음 듣곤 누워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마치 모든 악기가 분리된 듯 제각각의 화음과 리듬이 들리는데 그것끼리 만들어낸 엄청난 조화가 절묘하게 환상적으로 느껴졌어요. ‹The Girl from Ipanema›는 마치 제 주제가(?) 같은 곡이고요. (웃음)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몇 곡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하겠습니다. 하지만 ‘ADOR 걸그룹의 노래가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이나 오해를 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복선을 까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하하. 물론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되긴 하겠지만 이건 제 취향일 뿐 비즈니스와는 또 다른 얘기니까요. (웃음)

Metti una sera a cena by Florinda Bolkan, 1969
惑星 by Pizzicato Five, 1988

Under Control by The internet, 2015 

Meaning of you by Yang Soo-kyung, 1990
Margery, My First Car by VULFPECK, 2016 
Only Trust Your Heart by Stan Getz, Joao Gilberto, Astrud Gilberto, 1964
Underwater Boy by Virna Lindt, 1983
The Blue Rose by Francis Lai, 1975
Monet by Beenzino, 2021
Mirage by Toro y Moi, 2017
Betty by Ed Lincoln, 1970s
Homage by Mild High Club, 2016
Chompy’s Paradise by BADBADNOTGOOD, 2016

(전종현) 희진 님은 비지니스적으로 많은 사람이 소비하는 작업이, 작업자에게도 결과물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마다 성공을 판단하는 잣대가 다르잖아요. 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 같아요. 자기만족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공감 없는 작업은 자칫 개인의 만족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계해야 해요. 작업의 밀도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인기나 명성으로 인해 흥행으로 이어진 케이스 또한 허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성공의 척도는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자기검열이 되려면 자신을 괴롭힐 수밖에 없게 되고요. 인내 없는 과실은 없다고 하잖아요. 나이 들고 보니 어른들의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결국 세상에 편하고 쉽고 만족스럽기만 한 길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밖에서 보기엔 유명세나 연봉 때문에 부러움의 시선이 있을 수 있는데, 쭉 말씀드렸다시피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제가 괴로움 속에서 발견했던 한 줄기 빛은, ‘모두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는’ 성공이라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자기만족과 자기검열의 사이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어요. 외롭고 고통스럽겠지만 자기만의 해법과 방식을 고민하며 찾을 때 ‘넥스트 스텝next step’이 보이더라고요. 그 ‘다음’ 스텝이라는 것도 결국 모두에게 해당될 수 없는 나만을 위한 스텝이거든요. 그냥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끊임없이 자기만의 다음 스텝을 찾아가는 과정이요.

(전종현) 매일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었고 희열과 고통이 상존하는 세월을 보내셨어요. 그리고 아직 동종업계에 남아 계시죠.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희진 님이 가장 중시하는 ‘일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렇게까지 일할 수 있는 원동력도 궁금합니다.

제 친구, 동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아,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 (웃음) 자문자답도 많이 해봤는데, 사실 저는 제 인생에 크게 바라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좀 하루살이처럼 사는 것 같기도 해요. 먼 미래에 무언가를 이뤄야겠다, 혹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게 별로 없어요. 그저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그 목표를 달성하면 어차피 주위 여건이 그에 맞춰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또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거든요. 기대감으로 가는 거랄까. 바람이 아닌 상상을 해봐요. ‘와, 이걸 달성하면 그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라고요. 호기심이 동력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인생으로 일종의 행위 예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요. 제 인생을 재료로, 해보고 싶은 테스트를 해보는 느낌? 일은 너무 좋아서 한다기보다 어쩌면 그 수단으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일을 안 하면 인생이 무료하고 심심할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외성을 재미로 느끼는 것 같고요.

그와 별개로 책임감은 그냥 타고난 천성 같아요. 이 두 개가 절묘하게 맞물려서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을 사랑하는 워커홀릭으로 보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제가 하는 일 자체를 대단하게 생각한다거나, 너무 사랑한다거나, 자부심이 넘친다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아요. 당연히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해온 일이라 앞서 말했듯이 제 일에 로열티가 있을 뿐이에요. 이상한 표현으로 들리실 수도 있는데 제 일에 대한 의리가 있는 거죠. 그리고 책임감은 일로 얻어진 것이 아닌 타고난 천성이라서 직업윤리까지 자연스럽게 동반한 것 같고요. 이 둘은 태생적으로 이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형태적으로는 비슷하게 발현할 수 있겠지만 일을 너무 사랑하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인 거죠. 아무튼 포지션의 무게감이 달라짐과 동시에 이전의 테스트가 이젠 실전 시험이 된 기분이에요. 그래서 긴장되기도 해요. 모쪼록 여러분들의 재미를 비롯해 제 인생과 그리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재미있는 인생을 위해 이번 시험에서 제가 무사 합격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Artist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Red Velvet, NCT 등 소속 아이돌의 실험적인 콘셉트를 주도했다. 2019년 하이브의 최고브랜드책임자(CBO)로 합류해 하이브 브랜딩과 신사옥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하이브가 신규 론칭한 레이블인 ADOR(All Doors One Room)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 첫 번째 신인 걸그룹 데뷔를 준비 중이다. 2022년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에 선정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사람이다. 팬덤과 콘텐츠/음악 산업,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다룬다. 개인 뉴스레터 TMI.FM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고, 여러 매체에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인디펜던트 워커』 『음악산업, 판이 달라진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등의 책을 썼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음악산업백서 및 포럼 등에 기획 자문을 맡고 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한국대중음악상, 현대카드뮤직라이브러리 등의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했다.

Photographer

송시영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다.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다양한 음반 커버 작업에 참여했고, 독일의 «Zeit Magazin», 미국의 «W»,  한국의 «매거진B» 등과 협업했다.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지금까지는 박민희, 람한, 노상호 등 동시대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 네 번째 인터뷰는 색다릅니다. K팝 산업에서 20여 년간 활동 중인 민희진을 만나보았어요.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하이브의 CBO, 하이브 신규 레이블 어도어ADOR 대표로 국제적인 네임 밸류를 쌓아온 민희진과의 독점 인터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심도 있는 그의 인사이트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4: 민희진

우리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의 네 번째 주인공으로 민희진을 선택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신한류를 대표하는 K팝 산업에서 늘 화제를 모았던 그는 2019년 하이브에 CBO로 합류했다. 작년 말부터는 하이브의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ADOR의 대표를 맡아 ‘민희진표 걸그룹’ 데뷔를 진두지휘하는 중이다. «비애티튜드»는 대중문화평론가인 차우진을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초대하고, 민희진 키즈와 K팝 소비에 적극적인 내부 인원을 인터뷰어로 보강해 총 다섯 명의 인터뷰어가 민희진 대표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두 편의 아티클을 발행한다.

Part 1.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얼마 전 신선한 소식이 들려왔다.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ADOR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인 «버라이어티Variety»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 리스트에 선정된 것이다. 선정 이유도 명확하다. K팝 브랜딩 혁신가로서 ‘콘셉트’의 개념을 재정립하며 과거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새로운 걸그룹 시대를 열었고 샤이니, 엑소 등을 통해 혁신적인 아티스트 브랜딩을 제시했다는 것. 더불어 2022년 어도어에서 새로운 걸그룹 론칭을 준비 중인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아직 멤버조차 공개되지 않은 신인 걸그룹은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K팝 걸그룹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체 노출을 극도로 지양한 까닭에 우리가 접근 가능한 최근 소스는 첫 방송 출연인 유 퀴즈 온 더 블럭 정도다. «비애티튜드»와 민희진 대표의 만남은 글로벌해진 K팝 산업의 중심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인 그의 시각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전종현) 안녕하세요. «비애티튜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에 저희와 함께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강박적이고 솔직한 성격 탓에 말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훼손되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특히 일의 성격상, 맥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복잡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통상 인터뷰는 분량 제한이 있잖아요. 제한된 분량 내 충분히 설명하고 맥락을 전달하기 어려워서 인터뷰는 최소한의,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응해 온 편이긴 해요. 받아들이는 사람이 각자의 이해도에 따라 같은 단어도 각기 다른 개념으로 인식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말을 아끼다 보니 생기는 오해도 있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작년 겨울 처음으로 방송 출연을 하게 됐어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요. 노출이 너무 없으니, 마치 ‘상상 속 동물’ ― 정확히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 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고, 감정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렸으면 좋겠다는 ‘어도어ADOR’ 팀원들과 지인들의 조언이 있었어요. 마침 레이블도 론칭했고, 제작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느꼈고요. 그런 맥락에서 «비애티튜드»는 분량에 제한이 없는 웹진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좀 엉뚱한 얘긴데, 인터뷰를 처음 요청하실 때 당연히 제가 거절할 줄 아셨나 봐요. 거절도 하기 전에 미리 예상하시고 장문의 설득 문자를 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그 예상을 엎고 싶었죠. (웃음)

(전종현) 하하. 처음 경험한 방송 출연은 어떠셨나요?

2020년 겨울에 첫 섭외가 왔는데, 제가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아서 처음엔 어떤 프로그램인지 몰랐고 애초에 방송 출연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2021년 봄, 재차 출연 제의가 와서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진솔하고 따뜻한 내용에 완전히 반했어요. 그럼에도 출연 결정이 어려웠는데 몇 달에 걸친 작가님과의 대화로 부담이 좀 덜해졌어요. 따뜻한 마음으로 진행을 해주신 스태프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런데 방송에서 말했던 내용이 다르게 해석된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전종현) 어떤 내용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업계에서 (내가 아닌) 남이 말해줬을 때 듣기 좋았던 단어가 세계관과 아티스트더라”라고 말했는데, 그 내용이 ‘업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두 단어’로 좀 다르게 해석됐더라고요. 아무래도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그렇게 해석된 것 같아요. 저는 평소 스스로는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아요. 조금 복잡한 설명이 될 수도 있어요. 작업을 할 때 작업 방향성을 구상하면 그에 맞는 내러티브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저는 ‘가능한 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설정보다는 대상의 본래 모습이 투영된 자연스러운 흐름과 복선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물론 때에 따라 설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요. 아무튼 자연스러운 열린 전개를 원하기 때문에 결말을 확정짓는 방식보다는 주로 화두를 던지는 방식을 좋아해요. 그러면 그 이후의 전개는 어느 때든 훨씬 자율성을 갖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최근 K팝 신에서 자주 사용하는 ‘세계관’의 의미나 어감이 제겐 다소 과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본래 제가 지향하는 맥락과는 거리가 있는 느낌이죠. 하지만 소비자가 작업물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묶어 ‘세계관’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제 작업의 방향성이 타인에겐 어떤 ‘세계관’으로 충분히 인지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세계관의 개념은 주입보다는 스스로 깨달아지는 개념에 가까워요. 그래서 ‘내가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남들이 말해주는 편이 나은’이란 의미로 말했던 거예요. 말과 글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 새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렇게 텍스트로 실리는 인터뷰에도 응하게 됐고요. 요즘 친구들은 읽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분명 기록이 갖는 힘이 있거든요.

(김재훈) 이번 인터뷰는 희진 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SM엔터테인먼트를 퇴사한 후, 개인 인터뷰는 물론 각종 출연 제안을 모두 거절해왔어요. 과거를 논하고 싶지 않았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때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방송에서도 가급적 이전 회사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거의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가 그간 여러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젠 회사를 대변하는 입장이 아닌, 비로소 제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는 우연찮게 다양한 인터뷰어가 참여하게 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터뷰어 구성을 보니 ‘대중음악평론가’, ‘직접 K팝을 소비하고 즐겨온 20대’, ‘K팝 화제도에 주목하는 대중’으로 그룹을 나눌 수 있더라고요. 언젠가 공급자(제작자) 입장에서 ‘비평가/직접 소비자/간접 소비자’라는 모든 소비 집단을 한 번에 만나 동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재밌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간략하게 실현된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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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우리가 아는 희진 님은 SM엔터테인먼트의 아트 디렉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하이브의 CBO, 그리고 현재는 어도어의 대표입니다. 대화에 앞서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BO, 레이블 대표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알고 있는 것과 희진 님이 생각하는 간극을 줄이고 싶어서요.

용어 정리를 위해 인터뷰 분량을 할애하고 싶진 않네요. (웃음) 제겐 직함이나 타이틀이 중요해지지 않은지 꽤 됐어요. 조직 내에서 역할이라는 개념은 분명 중요해요. 하지만 자발적이라는 전제하에 업무 수행 영역이 애초에 주어진 역할 이상의 것이 되는 순간, 타이틀은 이미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이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역할의 확장은 기본적인 수행 영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바탕으로 시작되죠. 명확한 목표나 목적을 성취하려면 본연의 업무 이상의 것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역할의 확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이고, 오히려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상식적인 경우라면요. 그렇게 역할이 확장되기 시작하면 어차피 하나의 타이틀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워져요. 타이틀은 조직 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개인의 의식 수준이겠죠.

(차우진) 한국 콘텐츠 산업의 빠른 성장을 목격하는 입장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K팝이라는 점을 부인하진 못합니다. K팝의 성장은 다양한 아티스트 덕분이겠지요. 그렇지만 K팝 성공 공식에서 자주 말하는 시각적인 강점에서 희진 님이 차지하는 지분은 굉장히 크다고 느낍니다. 주류 K팝 디자인에도 어떤 흐름이라는 게 생겼고요. 스스로 생각할 때 K팝 산업에 기여한 바는 무엇이라고 분석하시나요?

저 스스로는, 그간 진행해온 업무 영역을 시각적인 부분에 한정하지 않아요. 앞선 언급처럼 저는 직함을 조직이 조직 관리를 위해 부여하는 분류명 정도로 생각해요. 실제 업무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설명한다고 해도 각자가 지닌 기존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완벽한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요. 사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원하는 결과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죠. 영혼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제가 SM엔터테인먼트에 처음으로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K팝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어요. 당시의 고정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개성을 부여하고 싶었죠. 주류 아이돌 시장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일에 뛰어들 수 있었던 치기가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는 ‘K팝 산업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는 개념에 의의를 둬요. 시각 요소와 디자인에 한정한 이야기는 다소 작은 개념이지만, 동시대성 측면과 가시성의 관점에서 여전히 주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 요소가 진정한 강점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사실 시각 외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지능적인 융합이 필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해요. 시각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업의 근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과 결합을 기반한 새로운 시도만이 오히려 새로운 시각 문화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어요. 

(차우진)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가 보이는 것 같네요.

그간 매니저, 연예인, 작곡가, 프로듀서가 주로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해왔어요. 매니지먼트 출신 대표가 음악이나 시각 분야에 관여하는 것이나, 작곡가 출신 대표가 매니지먼트, 시각 분야를 관장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잖아요. 앞선 언급처럼 기존의 역할과 실제로 수행 가능한 역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게 실상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기 때문에 더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제가 그리는 큰 그림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음악이 바탕이 돼야 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캐스팅, 트레이닝, 디자인, 사업으로까지 이어져야 하죠. 그래서 레이블을 설립한 것이기도 해요. 청사진이 확실할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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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Hilfiger © VOGUE

(박산하) 희진 님은 2000년대 후반부터 K팝 아이돌의 신한류를 이끌었고, ‘민희진 감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어요. 민희진 감성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외부의 인식과 제 개인적 시각이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저는 저의 모든 작업을 다 알고 있지만, 외부에서 인식하는 제 작업이란 어쩔 수 없이 접한 일부의 것 혹은 기억하고 싶은 영역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간극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요. 그간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대다수가 에프엑스의 ‹핑크테이프›만 언급하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관통되는 어떤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죠. 제가 촬영한 사진을 본 어떤 스태프의 말 중에 마음에 들었던 표현이 있어요. “희진 님 사진 속의 사람은 전부 사연이 있어 보여요.” ‘사연’이라는 말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번역하기도 어려운 굉장히 한국적인 표현이에요. 저는 작업을 통해 모두 다른 개개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각자만의 사연이요.

(박산하) 지금껏 많은 아이돌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오셨어요. 획일화되기 쉬운 산업 속에서, 아이돌에게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했나요? 그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아이돌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고 느껴요. 저는 지금도 아이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늘 어색한 기분이 들거든요. 뭔가 애초에 잘못 쓰인 말이 일상어로 고착된 느낌, 표준어가 아닌 말이 표준어로 쓰이는 걸 목격하는 기분 같다고 할까. 어떤 산업이든 안정화될수록 시스템 내 고유의 프로토콜 아래 운영되는 체계가 생겨요. 이런 체계를 선호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효율성을 위해 시스템을 부인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돼요. 특별한 극복 방식이 있다기보다는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극복 가능한 해법을 찾고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내는 집요함과 이에 따르는 피로함을 당연한 것으로 감수했던 것이요. 시스템의 파훼를 바라면서 보존하기도 해야 하니, 그 딜레마는 엄청난 피곤함을 만들죠.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모순을 동반해요. 시스템 의존성이 강해지면 몰개성으로 이어지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시스템은 안정화를 유도하고 자본력을 향상해 생태계의 근본을 구축하기도 하죠. 결국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균형감을 유지하려면 조직 내 한 파트를 담당하는 전략만으로는 부족해요. 결국 전체 전략이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귀결되죠. 일하다 마주하게 된 각종 딜레마와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결국 레이블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박산하) 지난 인터뷰와 작업을 살펴보면 희진 님이 고수하는 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반합’이라든지, 서로 상반되는 것을 함께 다루려고 노력한다든지, ‘숨겨진 진짜’를 추구한다든지, 본질과 진정성에 충실하다든지 등등요. 창작할 때 어떤 것을 마음에 담고 잊지 않으려고 하시나요?

일부러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긴 해요. 설사 당면한 현실에서 외면받는다고 해도 본질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찌 보면 ‘노력’ 그 자체가 에너지인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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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ystal_[I Don’t Want To Love You) © SM Ent.

(진채민) K팝 업계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희진 님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사전 미팅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라고 말씀하셔서 모두가 놀랐죠. (웃음)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가상 공간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어 비평과 해석의 대상이 되고, 찬사와 비난을 받으며 소비되기 일쑤입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많은 관심은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어설프게 알려져서 괴로운 것도 사실이에요. 이 또한 누군가 허세로 오해할까 벌써부터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네요. 일하는 동안 상업적인 제안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광고 모델, 방송, 출판 등 종류도 다양했죠. 하지만 응한 적이 없었어요. SNS도 하지 않았죠. 그게 제 캐릭터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명세로 부수적인 이득을 취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세로 인한 고통만 당하는 것 같아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드러나지 않고 정보가 없어 그런지 더 쉽게 도마 위에 오르는 것 같아서, 작년 말에 방송에도 출연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개설해봤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저 스스로는 지금 시대와 그리 잘 맞는 인간 유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의 형태가 바라던 것인지 모르겠어요. 소통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실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애써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 측면에서 소비자와 진짜 소통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공들여 만들었는데 오해가 생긴다면 너무 속상할 테니까요. 해법을 모색하고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생각대로 잘 진행되어야 할 텐데요. (웃음) 

(진채민)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해법은 무시 또는 초연함 밖에 없는 걸까요?

비평과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제 호불호를 떠나 응당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하지만 근거 없는 황당무계한 내용이 저를 힘들게 하죠. 이유를 모르겠는데, 저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안에 연루되는 이상한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타 레이블에서 론칭하는 팀의 특정 멤버 영입을 제가 주도했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었고요. 참고로 저는 만나본 적도 없거든요. 또 타 레이블 팀의 해체에 제가 관여했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소문이 있다고도 들었어요.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일까 정말 궁금해요.

(진채민) ‘민희진 만물설’인가요? (웃음) 그런 소문을 접하면 무척 힘들겠어요.

무섭죠. 그리고 슬프고요. 오히려 너무 비상식적이면 웃고 넘길 수 있지 않으냐 하시는데, 저도 처음엔 무시했어요. 제가 가십을 찾아보는 성격도 아니고요. 그런데 안 봐도 들려오더라고요. 그런 엉뚱한 내용이 기사화라도 되면 근거 없는 내용도 믿는 사람이 속출하고, 그 내용이 비상식적일수록 소문의 근원지를 가늠할 수 없어 적발도 어려워요. 특히 출처 없는 소문이 기사화되는 걸 경험하면 세상이 무서워져요. 이전 직장에 다닐 때도 시달려왔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이에요.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된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디렉터로서 각종 고단함이 있었어요. 일관적이지 않은 잣대도 경험해봤고요. 혹평일 땐 무조건적인 개인 탓을 하다가도 호평이면 ‘혼자 했겠어?’ 한다든지. 그래도 이런 일들은 디렉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여왔어요. 총괄 책임자는 찬사도 비평도 대표로 받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정신을 피폐하게 해요. 제가 겪는 사회와 세상일 대부분이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한 과정과 이유로 엮여 있어요. 단번에 한마디로 요약이 어렵고, 누군가를 단순히 단죄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복잡미묘한 레이어를 단숨에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꼭 저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잘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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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_[4 Walls] © SM Ent.

(김재훈) 희진 님은 ‘기괴한 아름다움’ 같은 단어의 조합으로 콘셉트를 정하거나, 아이돌의 필름에 오래된 이탈리안 재즈를 덧입히는 등 상반적인 것을 결합해 사람들을 끌어당긴 바 있어요.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모순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런 모순의 법칙을 활용한 창작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표현하는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거나 늘상 똑같다면 금세 흥미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죠. 특히 아이돌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있어 그런 전형성이 곧잘 드러나곤 하는데,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력해왔어요. 그래서 어떤 프레임을 장착하고 바라보는 소비자 입장에선 일종의 트위스트된 개념으로 보였을 거예요. 특히 저의 이런 디렉팅 방식은 제가 관여하기 이전의 초기 SM 스타일 ― 1세대 아이돌의 성공과 함께 정착된 SM의 상징적 스타일 ― 이 존재했기에 그와 대비되어 흥미로울 수 있었어요. 당시 기존 1세대 SM 스타일의 반대 개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과 함께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죠. 산업적 관점에서도 기존 아이돌의 전형성을 탈피한 개념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어요. 내심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나름의 계산하에 작업을 진행했었죠. 통상적으로 집단의 크기와 혁신의 속도는 반비례하기 마련이라,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시도만이 혁신의 인상을 만들 수 있어요. 따라서 모순의 활용, 그 자체로 유효하기보다는 적기와 적소를 파악해 입체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이 훨씬 영리하다고 생각해요.

(김재훈) 무척 흥미롭네요. 하지만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겠어요.

일반적으로 규모가 있는 조직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작업이 나오면 반갑기 마련이에요. 시각적 완성도를 위한 호기였다기보다 회사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쓸쓸하게도 현재의 풍요는 과거의 어려움을 흐릿하게 만들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시각 요소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따라서 지금과 달리, 중요 개념이라는 인식의 부재로 예산 편성이나 시간 할애에 대한 배려가 존재할 수도 없었죠. 산업에 있어 주요한 전략이자 개념으로 인지시키기까지 의외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열정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퇴사하기까지 10여 년가량 SM의 시각적 구현 방향성은 제가 구축한 방식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죠. 그래서 퇴사 당시 아무 미련이 없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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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e_[Married to the music]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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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Velvet_[The Red]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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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Velvet_[Perfect Velvet]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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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e_[Odd]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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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_[SING FOR YOU] © SM Ent.

(진채민) 희진 님은 매일 치열한 하루를 보내실 것 같아요. 창의적인 일에 대한 생산성이 절대적인 면, 상대적인 면 모두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놀라운 생산력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견해 또한 묻고 싶습니다.

업무의 효율은 스스로의 목표 의식 수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억지로 심어줄 수 없는 개념이죠. 타고난 재능이 각자 다르듯, 효율의 방식을 공식화할 순 없어요. 공식화한 대표적인 예가 주입식 교육이죠. 모두 그 폐단을 알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요. 자발적 깨달음 없이 남이 주입하는 효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해요.

(진채민) K팝의 스테레오타입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죠. 희진 님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스테레오타입을 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전제부터 암묵적으로 학습된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안정’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올바른 개념인 양 인지되어서 그렇지, 교육된 올바른 개념과 개인이 현실에서 원하는 실제 내용은 매우 다를 수 있어요. 겉으로는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삶이 이상적인 듯 말해도, 사실 속으로는 각종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요. 그래서 대부분 새로움을 바란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새로움을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기도 해요. 

새로우면 낯선 것이 당연하거든요. 그런데 찬찬히 제대로 뜯어보기도 전에, 즉시 낯섦에 대한 불평이나 비판이 선행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요. ‘시대를 앞선 비운의 ○○○’… 저희 모두 많이 봐왔잖아요. (웃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다거나, 낯선 것이 무조건 새롭고 좋은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에요.

(진채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예를 들어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전형성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해요. 즉 ‘새로움이라는 가면을 쓴 관성’은 오히려 새로움이라는 개념에 잘못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분별해내야 해요. 결국, 새롭다(낯설다) 라는 개념에 천착할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갈구하는 이유, 궁극적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죠. 의외로 각자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말로만 새로운 것을 찾을 때, 대환장 파티가 열리죠. 각자의 눈높이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뻔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새롭게 만족시키는 건 어찌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신기(神技) 같아요. 그럼에도 본질을 상기하며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는 것에 대한 피곤함을 감수하는 것이 제가 하는 노력 같고요. 레이블 대표가 되고 일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어요. 중압감이 엄청나 가끔은 해내야 할 일들을 떠올리다 압박감에 잠을 설치기도 해요. 제가 모든 상황을 가늠하고 계산한다고 해도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에 대한 여지를 인정하고 오히려 기대한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겠네요.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차우진) 하이브는 ‘음악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업의 방향성으로 잡고 있어요. 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통한 가치 창출’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희진 님이 CEO를 맡은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 어도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요?

논문을 쓸 수도 있는 주제 같습니다. 문제가 없는 업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죠. 주제가 무거워 단숨에 말하기 어렵네요.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해서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지만, 요약해보자면 기존 사업의 정형화된 루틴을 벗어나서(뻔한 말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죠), 용기 있게 새로운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대안적 출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이브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방시혁 님과 저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각자 추구하는 결은 달라요. 그 다름에 대한 필요와 인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레이블을 론칭하게 되었죠. 하이브의 CEO인 박지원 님도 동일한 생각이었고요.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기보다 조직 내 서로 다른 가능성이 공존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져요. 산업이 어느 정도 고도화되면 기존의 안정적 방식에 안주하는 정체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지만, 현재 K팝 신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해지려면 적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고요.

(김재훈) 지금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겪으셨을 것 같아요. 선택이란 행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편인가요? 희진 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대부분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감이 왔던 것 같아요. 매사 저의 선택엔 나름의 결연한 당위가 분명했기 때문에 막상 우선순위로 나열하자니 후순위로 밀려날 다른 선택들에 미안해져서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제일 크게 다가오는 건 오래 일한 회사를 그만둔 일 같아요.

(차우진)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밸런스와 텐션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사람은 현실 감각과 몽상가적 기질을 동시에 가져야 하죠. 크리에이터 민희진과 CEO 민희진은 밸런스와 텐션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조절하나요?

크리에이터로 존재하고 싶어 CEO가 되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기 굉장히 다른 역할입니다만, 또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어요. 자본으로 치환할 수 없는 상업 창작물은 생명력이 떨어져요. 마찬가지로 창작물과 이질적인 사업은 대성하기 어렵다는 선례를 무수히 봐왔고요.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상업물에서 창작과 자본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순간, 모든 일이 꼬이더라고요. 

저는 CEO라는 타이틀 자체엔 관심이 없어요. 겪는 와중이지만 엄청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하는,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의 괴로움과 피곤함이 가득한 역할이에요. 제가 원하는 의사결정을 위해 레이블을 설립했고 그래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책일 뿐이죠. 좋은 창작물이 효율적인 사업과 만나 상업적인 성공으로 꽃피게 된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이 펼쳐질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날을 위해 오늘의 균형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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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민) K팝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늘 궁금했던 지점이 있어요. 아이돌과 팬의 심리적 거리를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기획사의 전략인데요. 희진 님이 콘텐츠를 만들 때 이런 거리감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최대한 가까운 것을 좋아해요. 애초에 제가 밀당 하는 성격이 아니고 퍼주는 성격이라 더 그럴 수도 있고요. 피곤한 건 딱 질색이에요. 밀당을 의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제가 진행하고 주도하는 작업에서만큼은 매사 솔직하고 친절한 것을 선호합니다.

(전종현) 해외 K팝 팬이 투표한 ‘2022년 가장 기대되는 K팝 걸그룹’으로 어도어의 걸그룹이 선정됐더군요. 아직 멤버 구성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면서요. 그만큼 희진 님에 대한 기대가 굉장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올해 데뷔하는 걸그룹에 대한 비밀은 언제 풀릴까요?

2019년 9월에 오디션을 진행했고 그해 연말 즈음 오디션 외 캐스팅 작업까지 마무리해서 2020년 초부터 약 2년간 연습한 친구들이에요. 처음에는 합작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2021년 론칭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이슈로 늦춰졌고, 그 사이에 제 레이블 론칭이 예정보다 앞당겨지며 2022년에 어도어에서 선보이게 됐어요. 오래전부터 제가 그려온 새로운 걸그룹에 대한 방향성이 있어요. 올해 3분기 중 론칭할 예정입니다.

(박산하) 방향성이 있으시다니 멤버들이 궁금해져요.

급한 데뷔는 어린 멤버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격무에 시달린 고통을 알기 때문에 모두를 조급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팬분들의 오랜 기다림도 간과할 수 없고 분명 타이밍상의 적기라는 것도 존재하기에 어느 한쪽에 치중하기보다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인 시기를 도출한 것이 올 3분기입니다.

우리 멤버들은 남이 채근하지 않아도 이미 굉장히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걱정이 많죠. 애초 우리가 하는 일은 엔터테인먼트(오락)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에요. 기록을 경신하거나 등수를 매기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 아니죠. 제가 진정 바라는 건 서로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상황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즐겁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거든요. 즐거운 마음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비롯되고,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런 노력의 에너지는 분명 다르게 발산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저희 팀의 지향점을 ‘숙련’보다는 ‘즐기는’에 두고 있어요.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엄청나게 강력해서 보는 사람까지도 춤추게 해요.

(전종현)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팀이 나올지 더 기대돼요.

저희 나름의 기준점을 만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희 팀의 에너지는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바라는 건 모두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거예요. 평소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즐기는 문화 와중에도 경쟁의식을 갖는 거예요. 적당한 경쟁은 건강한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죠. 오랫동안 봐 온 모순인데,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아이돌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친구들에게 다소 과한 기대를 걸거나 줄 세우기, 혹평하는 행위 말이에요. 일상에서 겪는 모순을 즐기는 대상에까지 그대로 투영시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올해 참 많은 팀이 데뷔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팀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데뷔하는 모든 친구들에게도 따뜻한 응원을 바랍니다. K팝이 경쟁보다는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길 바라요.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차우진) 거칠게 정의하자면, K팝 산업은 ‘아티스트십을 프로듀싱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희진 님이 보시기에 K팝 산업은 과거 2010년대에 비교해 현재 2020년대에 이르러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요?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K팝 산업에 대한 의의나 정의 또한 정말 다양해졌다고 생각해요. 이 또한 논문감이라 짧게 요약하기 어렵겠네요. 근 10년 새 참 많은 것이 빠르게 변했어요. 인식의 변화도 크게 달라졌죠. 따라서 투입되는 자본력도 향상됐고요. 제가 이직한 후 최근 3년간의 음반, 뮤직비디오 제작에 쓰인 예산 규모만 보더라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더라고요. 그런데 공급(제작)이나 소비 방식이 규모 외의 영역에 있어 급격히 달라진 위상만큼 크게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었으면 하는 지점은 변화에 대한 수용력이에요. 언젠가부터 고착화된 패턴에 안주하며 일관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마냥 비슷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소비되고 있어요.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마찬가지로 누가 더 문제냐고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아 보여요.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노력하는 자는 조금이라도 다른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에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도전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어요. 소비 없는 공급이란 존재할 수 없죠. 그래서 앞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인식의 개선, 경쟁보다는 즐기는 자세에 대한 바람을 말씀드렸어요. 

코로나 시대의 비극인지, 심화된 반목이 개인적으로 참 아쉬워요. 사소한 일에도 과하고 심각한 잣대와 검열을 내세워 싸우는 모습을 거의 매일 목격하는 기분이에요. 넓은 포용력과 수용력이 생긴다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특히 문화 산업에서는 새로움을 수용하는 자세가 선행, 수반하지 않는다면 다양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어요. 비단 크리에이티브 영역뿐 아니라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당면한 기본 숙제를 외면하면서 미래의 이상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공염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art 1.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Part 2. 민희진의 세계에 잠입하기.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Artist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Red Velvet, NCT 등 소속 아이돌의 실험적인 콘셉트를 주도했다. 2019년 하이브의 CBO(최고브랜드책임자)로 합류해 하이브 브랜딩과 신사옥 공간 디자인을 총괄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하이브가 신규 론칭한 레이블인 어도어(ADOR, All Doors One Room)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 첫 번째 신인 걸그룹 데뷔를 준비 중이다. 2022년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으로 선정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사람이다. 팬덤과 콘텐츠/음악 산업,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다룬다. 개인 뉴스레터 TMI.FM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고, 여러 매체에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인디펜던트 워커』 『음악산업, 판이 달라진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등의 책을 썼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음악산업백서 및 포럼 등에 기획 자문을 맡고 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한국대중음악상, 현대카드뮤직라이브러리 등의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했다.

Photographer

송시영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다.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다양한 음반 커버 작업에 참여했고, 독일의 «Zeit Magazin», 미국의 «W»,  한국의 «매거진B» 등과 협업했다.

노상호가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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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세 번째 주인공은 노상호 작가입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죠. 현대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노블, 아트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노상호 작가는 말합니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3: 노상호

«비애티튜드»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특정 아티스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세 번째 주인공으로 노상호를 선택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다. 현대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노블, 아트 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그는 말한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활짝 열려 있는 자세로 실제와 가상 세계 사이에 ‘얇게’ 서 있는 것이 자신의 창작 태도라고 자처하는 노상호.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두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2. 노상호가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

현실과 가상에서 셀 수 없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다. 우리는 이 거대한 홍수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보고, 지나친다. 이미지를 숨쉬듯 소비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러나 노상호는 이미지를 인풋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아웃풋으로 재생산하며 마치 ‘필터’처럼 동시대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차곡차곡 쌓아간다. 자연스레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굳이 왜?” 이번 파트2에서는 아티스트 노상호가 이미지를 그리는 이유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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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포트폴리오를 쫙 펼쳐보면 맹렬하게 바뀌는 흐름이 느껴지지만, 대외적으로 ‹데일리 픽션› ‹The Great Chapbook 1› ‹The Great Chapbook 2›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특히 밴드 ‘혁오HYUKOH’의 앨범 커버 네 장을 작업하며 대중에게 큰 어필을 한 게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혁오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제가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 그게 스테레오타입이 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죠. 누구나 작업을 하면 스테레오타입이 생기기 때문에 그걸 엄청난 압박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저라고 다른 사람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보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가수 나얼 씨가 무슨 노래를 한다고 하면, ‘아 나얼 씨가 나얼했구나’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니까요. 물론 당사자인 나얼 씨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당연히 타인을 스테레오타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걸 굳이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건 오히려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해요. 혁오 앨범 커버가 제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미술계 밖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큰 영향을 주었죠. 제가 혁이 앨범의 아트 디렉터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쪽 사람도 알게 되고, 뮤직비디오 감독,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업계 분들에 대해 알게 된 포문을 열어주면서 그것 때문에 제 작업이 조금씩 변했다고 생각해요. 평소와는 다른 이미지들을 보면서 제가 좀 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된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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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20›, ‹22›, ‹23›, ‹24: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 Artist

혁오가 2020년 발표한 ‹사랑으로› 앨범 커버에는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 작업을 사용하면서 협업도 마무리된 느낌인데요.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일단 대답을 먼저 하자면, 아쉽지 않았어요. 볼프강 틸만스와 함께 앨범 커버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틸만스가 너무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와 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어요. 그리고 혁이 입장에서는 그 앨범이 약간 다른 성격이었거든요. 원래 만 나이를 앨범 제목으로 삼아서 작업하기 때문에 아마 다음 앨범은 기존의 결이 이어지는 앨범 커버가 다시 붙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고 있어요. 하지만 꼭 제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해도 되니까요.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과 ‹사랑으로›는 정말 잘 어울렸어요. 진짜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고 하면, ‹사랑으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혁오의 앨범이거든요. 음악적으로요. 거기에 제 이름이 안 들어갔으니 그런 면에서 아깝죠. 근데 뭐 혁이가 카니예 웨스트도 아니니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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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사랑으로› ©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오혁 씨와 인연이 깊다고 알고 있어요. 오혁 씨는 작가님에게 어떤 분인가요?

개인적으로 그 친구를 리스펙하는 면이 있어요. 정말 많은 걸 보고 그걸 얘기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 트렌디한 걸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죠. 근데 친한 사이인 만큼 저를 심적으로 괴롭힌 면도 크기 때문에 감가상각을 하면 0인 것 같네요? 하하.

트렌디한 걸 놓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뭘까요?

그 말에는 좀 어폐가 있을 수 있는데요. 그 친구는 그냥 계속 뭘 많이 봐요. 그리고 계속 생각하고, 말해요. 그런 걸 제가 트렌디하다고 느끼는 거죠. ‹사랑으로›를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혁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면서 스테레오타입도 생겼거든요? 근데 그 친구는 물론 고민도 했지만, 약간 ‘상관없는데?’ 이런 태도가 있었어요. 혁오의 스테레오타입을 이용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지금 자기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 해야 한다는 태도. 저보다 훨씬 큰 유혹 앞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대단하면서도,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만 하지 않고 다른 걸 계속 추구했을 때 약간 ‘쯧쯧쯧’ 한 적도 있거든요. ‘굳이 왜 그러냐, 예능도 좀 나가라’고 한 적도 있는데 자기가 집중해서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의 완성판을 ‹사랑으로›에서 본 것 같아서 굉장히 감동했고, 그런 의미에서는 많은 영감을 주는 친구예요. 결국 이런 거죠. 20대 초에 ‹무한도전›에 나오면서 잘됐어요. 앨범 미팅할 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계속 같이 있었는데 회의를 하면 소속사 쪽 사람들이나 우리들은 대중영합적인 얘기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늘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제일 멋있는 걸 해야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계속 남을 수 있다’ 이러니까, 저희도 어떨 때는 ‘그래’라고 하지만, 또 어떨 때는 ‘그래도 이런 거는 좀 그냥 하는 게 어떠니? 정신 좀 차려’ 이러기도 했는데 계속 묵묵부답인 부분이 있었단 말이죠. 그렇게 3~4년이 지났을 때 나온 ‹사랑으로›는 저도 납득이 가는 앨범이었던 거죠. 물론 제가 오케이를 한다고 걔가 기뻐하진 않겠지만(웃음), 어쨌든 저는 그런 느낌이 좋았으니까요. 어렸을 때는 맨날 제가 밥 사 먹이는 친구였지만, 서로 커리어가 쌓이고 나니 그런 태도가 부러웠고 무척 좋게 다가오더라고요.

요즘 작가님은 최신작인 ‹The Great Chapbook 4›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계세요. 수성 유화 대신 에어브러시를 사용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하루 단위로 시스템을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무언가를 빨리 그려내야, 다음 이미지로 또다시 빠르게 받아낼 수 있어요. 그림의 크기가 커질 때 가장 빨리 그릴 수 있는 용이한 방식은 에어브러시예요. 작업 맥락과 연결된 부분도 있고요. 에어브러시가 캔버스와 물리적으로 직접 닿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라서 제 신체가 들어가지 않는단 말이죠. 그렇다고 또 이게 아예 안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애매해요. 이런 애매모호한 도구의 특성이 제가 가진 태도와 굉장히 유사하죠. 가상과 현실을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요. 이런 걸 은유할 수 있는 도구로서 에어브러시가 잘 어울리는 거죠.

노상호, NohSangho, 비애티튜드, BeAttitude, 더그레이트챕북, TheGreatChapbook, 현대미술, Contemporaryart, 일러스트, illustration,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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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회화 작가들이 에어브러시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말하는 이유와 상응한다고 봐요. 완벽하게 신체성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 가상도 아닌 어떤 매개가 필요한 거죠. 실제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많이 하는 말인데, 그림을 붓으로 그리는 것과 에어브러시로 뿌리는 감각 간의 이질감이 지금 저희가 사는 세상의 상황, 즉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의 세계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이 융합되는 모습을 잘 은유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점도 재미있어요. 원래 에어브러시가 굉장히 고전적인 미술 도구인데요. 이게 한동안 안 보이다가 갑자기 요즘 돌아온 이유에 대해서 디지털 페인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포토샵의 에어브러시 툴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굉장히 많은데요. 근데 실제로 그들이 실물의 에어브러시를 써봤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포토샵으로 작업 인생을 시작했고, 그래서 포토샵에 있는 에어브러시 툴을 자연스럽게 쓰는 건데, 이런 이미지들을 많이 보다 보니 현대미술 작가들도 이렇게 그리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거죠. 근데 조사해보니까 이게 원래부터 존재하던 미술 도구인 걸 알게 된 거죠. 원래 포토샵은 현실의 에어브러시를 따라서 툴 기능을 만든 건데, 지금 사람들은 포토샵의 에어브러시 효과를 따라 하고 싶어서 진짜 에어브러시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서 다들 에어브러시를 새로 써보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포토샵에서 써먹던 그 감각을 현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적용하고 싶다. 감각이 넘어온다는 것은 아까 말한 왔다 갔다 하는 감각과 붙어있는 말이기도 하죠.

방금 말씀하신 포토샵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네요.

일단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어요. 물론 다른 이유도 더 있죠. 미술을 그렇게 한 가지로만 후려칠 수는 없으니까요. 스트릿 예술의 그래피티 이미지와도 연관이 있어요. 최근 한 5년간 스트릿 예술가들이 전시장으로 호명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피티도 또 다른 의미로는 에어브러시의 일종이니까요. 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린 그래피티의 미감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봐요. 제가 보기에 그런 분들은 똑같은 에어브러시 작가로 보면 안 되는 측면이 있는데요. 어찌 됐든 가상, 현실, 신체성에 대한 것을 어떻게 아웃풋으로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다들 여러 방식을 찾고 있고 에어브러시도 그중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노상호, NohSangho, 비애티튜드, BeAttitude, 더그레이트챕북, TheGreatChapbook, 현대미술, Contemporaryart, 일러스트, illustration, 3D

혹시 작가님은 작업을 진행하며 보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쉬운 점이 있으신가요?

작업 언어만 보면 저는 단점도, 약점도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가장 지금’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따라서 보강도 하지 않는 게 지금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정보가 너무 많이 흩뿌려져 있고 작가가 좋아하는 만큼 수확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게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에 뭔가 덧대고 싶지 않고, 덧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거죠. 제가 요즘 고민하는 건,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한 장, 한 장이 더 강해야 하고, 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아무도 전체적인 맥락을 읽으려고 하지 않아서요. 지금 전시를 열라고 종용하는 태도가 마치 디지털 싱글을 내는 사람에게 “정규 앨범이 진짜 음악 작업이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이미지 하나로 살아남고, 거기에 모든 걸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약한 면이 있다고 봐요.

이미지를 강하게 만드는 해답은 찾으셨나요?

아무래도 제가 ‘지도’ 작업이라고 부르는, 드로잉한 그림을 한데 모으는 작업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의 이미지로 대표되고 있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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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Chapbook 3 – Osoi›, 2021, 캔버스에 유채, 50 x 120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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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Chapbook 3›, 2021, 캔버스에 유채, 145 x 112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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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내 작업이 살아남기 원하는 욕망은 없으신가요?

저는 작업에 위계를 두는 편도 아니고, 제게 이미지가 들어와서 다시 나갈 때 즐거웠으니까 그 과정을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애정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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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087›, 2018 © Artist and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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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087›, 2018 © Artist and Arario Gallery

‹P-002›, 2018 © Artist and Arario Gallery

어떤 인터뷰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즉 내러티브는 이미지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제가 보고 있는 것, 혹은 시대의 인상이 그렇게 바뀌고 있어요. 예를 들어 두 시간짜리 영화와 10분짜리 유튜브 영상, 11초짜리 인스타 스토리 중 어떤 게 즐거울까의 문제죠. 점점 짧아진다는 걸 제가 느끼기도 하고, 내러티브가 빠지면서 이미지만 남는 게 요즘 매체 언어의 속성으로 작용하니까요. 근데 이미지가 내러티브가 아니냐, 그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니까요. 결국 그 정도만 작동하는 세계관이 지금 열리고 있고 점점 짧아지고…그게 지금 시대의 이미지 언어가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두 시간에 말해야 하는 내용을 10분으로 압축해 말하거나, 혹은 아예 두 시간짜리 이야기를 지을 생각조차 안 할 수도 있고, 10분짜리 이야기 대신 아예 이미지 한 장만으로도 이야기가 연성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거랄까요.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않고 자극적인 단초만 제공하는 것 자체에 호응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세상에서 이제 세계관만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저희 같은 사람들은 굶어 죽겠네요. (망연자실)

아, 그렇다고 두 시간짜리 영화가 안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요즘 저는 오히려 다시 페인팅이, 조각이 보고 싶어요. 뉴미디어를 체험하고 나니까 역으로 뉴미디어의 중간에 있는 것에 관심이 가지 않고 가장 원시적인 것에 끌리는 거죠.

어느 정도로 원시적이요?

사람이 손으로 그린 것, 만든 것이 제게 강렬하게 오고 있어요. 이 시대에서 신체를 떠나는 것을 너무 강조하니까 반대로 더 신체적인 걸 좋아하는 거 아닐까 유추하고 있어요. 제가 회화를 놓지 않는 이유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나는 왜 회화를 하는가에 대한 어떤 답이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글도 가장 원초적인 것에 해당하니까 살아날 것 같아요. 결국 뉴미디어와 원시적인 것 중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이 죽지 않을까? 그러니 어설픈 데 있지 말아야겠다, 이런 얘기예요.

어설픈 예로 무엇이 있을까요?

수업 때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예를 들어 3D, VR 아트가 유행하기 전에 애프터이펙트나 포토샵을 활용한 작업이 유행했었어요. 뉴미디어라고 하면서. 지금 보면 정말 모두가 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수준이에요. 그때 활동하던 작가들을 지금은 아무도 호명하지 않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지금 3D, VR 작업을 하는 작업은 추후 더 발전된 뉴미디어가 나오면 애매모호한 상태에 빠질 확률이 높을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 보고 싶은 건 맨 뒤에 있는 회화, 조각, 글은 아닐까 고민이 드는 거예요.

노상호, NohSangho, 비애티튜드, BeAttitude, 더그레이트챕북, TheGreatChapbook, 현대미술, Contemporaryart, 일러스트, illustration,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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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미술이란 동시대 혹은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감각과 정서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의 정치학을 연구/조사하고 시각적으로 완성도 있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트위터에서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작가님이 정의하는 미술은 아주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문장을 만들기까지 1년 동안 계속 고쳤어요. 제가 장르 구분이 너무 없는 사람인지라 그래서 더욱 장르 연구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미술은 무엇이고, 동시대에서 미술이 무슨 기능을 해야 하는지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동시대 미디어 환경에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들을 제가 보고 그 정서에서 어떤 감각인지 발견한 후. 이 감각이 왜 나왔을까 고민하잖아요. 에어브러시를 예로 들면, 왜 갑자기 요즘 들어 에어브러시로 그린 그림이 많이 보일까? 저에겐 이게 동시대이니까 그 출현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 이면에서 기능하는 장치도 고민해 보고요. 에어브러시는 가상과 현전을 오가는 지형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초라는 결론이 나오면 ‘아 그래서 에어브러시로 그리는 그림이 계속 보였구나’ 납득하면서 그 소스를 가지고 작업을 해야겠죠. 원래 여기까지만 썼었는데 뭔가 아쉬운 거예요. 그냥 보여주기보다, 기가 막혀야 하거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완성도 있게’라는 말을 덧붙였어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이미지의 정치학을 찾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완성도를 획득해야 하니까요. 제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도 이런 과정을 밟아서 가장 완성도 있는 시각물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 기준에 대해서는 계속 바뀔 테니, 계속 생각하고 노력해야겠죠. 생각만큼 잘 되고 있진 않지만. 사실 동시대 혹은 세대도 미술적 수사에 가까워요. 사실은 ‘내가’죠, 근데 대놓고 말하면 조금 민망하니까… 하지만 그 작업물을 보는 사람은 저에 한정해서 읽지 않고 세대, 시대, 시간대까지 염두에 두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미지의 정치학이란 말도 제 눈에 많이 보이는 것에 대한 다른 연유를 통칭하는 단어랄까요. 그래서 많이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것이죠.

노상호, NohSangho, 비애티튜드, BeAttitude, 더그레이트챕북, TheGreatChapbook, 현대미술, Contemporaryart, 일러스트, illustration, 3D

‹R_001›, 2022 © Artist and Arari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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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_002›, 2022 © Artist and Arario Gallery

혹시 많이 보이는 것 중에 부정하는 경우도 있나요?

부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윤리의식을 세우려고 노력하긴 해요. 동시에 이게 시대적 현상 중 하나라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연구 조사할 때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최근 3D 이미지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로 여성 신체 훼손이 있어요. 3D도 너무 많으니까 더 자극적인 걸 추구하게 되는데요. 여성이 좀 더 사이보그로 바뀐다든지, 이상하게 강화된 신체처럼 보인다든지, 가슴이 너무 커진다든지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서 시각적으로 좀 더 머무르게 만드는 거죠. 이런 게 엄청 많이 보이는데 고민이 돼요. 살아남기 위한 이미지의 종착인가 하고요.

많이 보이는 걸 긍정한다면 이런 여성 신체 훼손 이미지도 다뤄야 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래서 제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고민이 드는데, 또 사이보그 중에 어떤 것은 포스트-휴먼과 관련된 작업일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땐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드니까, 결국 이 애매모호한 경계에 따라 매일매일 내리는 결론이 달라져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제가 보는 건 팔로잉하는 계정에서 나오잖아요. 그건 저만의 큐레이팅 목록이에요. 시공간 자체가 제 윤리에 맞춰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면, 제 타임라인이 곧 저의 동시대이고, 제 감각과 정서, 그리고 윤리선이겠죠. 제가 팔로잉을 계속 취소하면서 관리하는 이유에요.

‘작업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네요.

그래서 저는 항상 뒤돌아서 생각하는 존재예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다시 보면서 ‘아 그때는 이런 걸 좋아했구나, 내가 이런 생각으로 이런 이미지를 모은 건 아닐까, 그때 나의 윤리선은 이랬구나’ 정리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작품에 자신의 삶이 완전히 노출되는 메커니즘인데요. 혹 스트레스는 없나요?

이런 이야기를 아내와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런 걸 그리는 게 이해가 안 된대요.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고 마음속에서 싫을 수도 있는데 도대체 왜 그리냐는 거죠. 이건 사실 굉장히 원론적인 얘기인 것 같아요. ‘작가는 왜 작업을 하는가? 왜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가?’에 대한 동일한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그냥 하는 거예요. 여기에는 정말 답이 없어요. 누가 무슨 계산을 하고 하진 않아요. 만약 ‘멋있어서 했다’고 말할지라도 그 ‘멋’에 대한 기준은 매일 바뀌어요. 그 자체를 어떤 기준으로 세울 수도 없고요. 아내는 답답해하죠. ‘멋있으면 보면 되지 왜 굳이 하냐’고요. 스위치가 올라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뭔가 들어오면 뭔가 내보내야 하는 게 당연한 사람인 거예요. 아마 대부분의 작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을 내보내야만 하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라고요. 모든 창작을 하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성향인 거죠.

결국 그런 사람이 작업을 하는 거군요.

언젠가 미대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엄청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장점이 너무 없어서요. (웃음) 그러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미대에 와서 좋은 점은 딱 한 개인데, 선생님들이 계속 ‘너는 누구니? 너는 뭐 하는 사람이야? 너는 무슨 생각해?’ 이런 질문을 4년 동안 해요. 이게 진짜 미칠 것 같은데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전공을 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았어요. 이런 훈련을 미대에서밖에 안 한다는 걸요. 미대를 나온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화해서 생각하고, 자신이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걸 해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걸 4년이나 하는 건 문제예요. 다른 건 안 가르쳐주고. 어쨌든 저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가치관을 세우고 그걸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것 자체가 나를 건강하고 이롭게 한다는 걸 굉장히 믿는 사람이라 작업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제가 보는 것에 대해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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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전경

자, 저희의 시그니처 질문인데요. 작가님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작가님으로 하여금 창작을 지속하게 만들까요?

아주 작고 소박한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하루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를 한 후 ‘굉장히 즐거웠다’고 느끼고, 이걸 스캔해서 JPG 파일로 저장하면 폴더에 하나 채워지는데 마치 보상이 하나 채워진 것처럼 다가올 때요. 엄청 크지도 않고, 엄청 작지도 않은 그 정도의 기쁨이 저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뒤를 볼 때도 그렇고요. 뒤에 쌓여있는 것들을 가끔 보거나 체크를 한 번씩 하면서, 그냥 뭐랄까… 작업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좋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냥 내가 보기에 좋구나’… 이런 부분이 계속 창작을 할 수 있는 동인이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비애티튜드»에게 기대하시는 역할이나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부탁드릴게요.

이 답변까지 읽는 분은 엄청난 텍스트의 강을 건너오셨을 확률이 높아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기까지 오신 분들 덕분에 제가 위안을 얻는다고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까지 제게 관심을 가져주신 사람이 잘 없고, 별로 기대하지도 않는데 가끔 그런 분이 있을 때 너무나도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죠. 무척 좋으면서 미안하면서도, 뭔가 애매하고 이상한… 암튼 제 마음은 그렇다고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팔랑거리는 필터처럼 이미지를 흡수하고 다시 내뱉으며 동시대를 탐구하는 노상호. 그의 작업실에서 포착한 척척박사 노상호의 일상들.

아티스트 프로젝트 03: 노상호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척척박사 노상호의 비밀들›

Part 2.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노상호가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

노상호, NohSangho, 비애티튜드, BeAttitude, 더그레이트챕북, TheGreatChapbook, 현대미술, Contemporaryart, 일러스트, illustration, 3D

Artist

노상호는 현실과 가상 세계 속 쏟아지는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얇은 사람’이다. 그는 매일 가상환경을 부유하는 저화질 스톡 이미지를 다수 수집한 후, 먹지를 이용해 장면 속의 조각을 연결해가며 상상력에 기반한 특유의 감각으로 새 화면을 구성한다. 먹지를 매개로 한 제작 방식은 이미지의 범람,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이동과 변환으로 정의되는 디지털 시대를 대하는 작가만의 유연한 이미지 철학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최근 2D 회화와 3D 입체 영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NFT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의 입체적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노상호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18), 송은 아트큐브(2017), 서울시립미술관 웨스트웨어하우스(2016)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일민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척척박사 노상호의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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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세 번째 주인공은 노상호 작가입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죠. 현대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노블, 아트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노상호 작가는 말합니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3: 노상호

«비애티튜드»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특정 아티스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세 번째 주인공으로 노상호를 선택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다. 현대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노블, 아트 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그는 말한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활짝 열려 있는 자세로 실제와 가상 세계 사이에 ‘얇게’ 서 있는 것이 자신의 창작 태도라고 자처하는 노상호.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두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1. 척척박사 노상호의 비밀들

노상호는 ‘The Great Chapbook’이라는 단어의 조합 아래 자신의 작업 세계를 전개해왔다. ‘1달러짜리 싸구려 책자’라는 뜻의 ‘챕북’ 앞에 ‘위대하다’를 붙이는 그 절묘함을 보라. 과다한 이미지에 파묻힌 실제와 가상 세계 사이에 ‘얇게’ 서 있는 노상호는 보이는 것은 모조리 그려버리고자 한다. 이미지에 대한 왕성한 식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The Great Chapbook›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 환경을 반영하며 진화해왔다. 노상호의 다채로운 작업 세계에 지금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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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술계에 데뷔한 지 11년 차세요. 3040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군에서 빠지지 않고, 작품도 정말 잘 팔린다고 들었어요. 감회가 어떠신가요?

크게 뿌듯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 걸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가봐요. 딱히 제가 대단하다는 감각도 없고, 미술사에 획을 긋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MZ 세대 작가군에 호명될 때에도 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잘나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제 마음속엔 늘 잘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런 거랑 비슷한 거죠. 제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했는데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홍대생이 너무 멋있었어요. 근데 막상 홍대에 들어가면 주변에 다 홍대생이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홍대생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어떤 단계를 올라간다고 하면, 올라가는 느낌이 즐거운 것보단 거기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이 재미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또 다른 재미일 수도 있죠. 게다가 미술 작가가 더이상 멋있는 직업으로 다가오지 않는 점도 있어요. 실제 지난 2019년에는 작가 생활을 쉴 생각까지 했었어요.

왜요?

저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도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제가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앞서요. 이게 어떨 때는 굉장히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평소 아내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당시 제가 미래 계획을 쫙 얘기하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목적이 뭔데?’라는 질문이 날라왔어요. 앞에 전제를 깔아놓긴 했지만 결국 목적은 돈이라고 말하니까, ‘그럼 돈 버는 일을 해. 왜 굳이 미술 작업으로 돈을 벌려고 해?’라는 충고를 받았죠. 사실 목적이 돈에만 있던 건 아니고, 제가 멋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걸 받쳐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했던 건데, 이런 고민이 계속 늘어나며 작업을 공격하게 되니까 작업에 대한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면서 딜레마가 되더라고요. 더불어 작가를 쉬려 했던 건 그런 배경뿐 아니라, 충동적인 면도 있었어요. ‘미술계에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르고, 내가 생각하는 미술은 아무도 미술이라고 불러주지 않고, 그래서 미술이 재미가 없어지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보니 직업을 바꾸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업을 평생 하려면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데 제가 멋있다고 생각지도 않은 걸 하면서 굳이 왜 계속해서 고생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어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시는 ‘미술을 미술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죠?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미술인 것들이 좀 많은 거죠. 당시 3D 아트워크를 굉장히 많이 접하고 있었는데요. 제 인스타그램 피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작업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익을 미술에서 내지 않았지만, 제게는 작가로 다가오는 지점이 꽤나 많았어요. 실제 강연을 하러 가면 저는 작가라는 직업이 미래에 없어질 거라고 말해요. 왜냐하면, 미래에는 모두가 작가가 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작년에 게임 GTA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갑자기 초록색 옷을 입은 유저 세 명이 나타나서 난데없이 몽둥이로 다른 유저를 패고 다닌 거예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계속 패니까 어떤 사람이 짜증 나서 보라색으로 똑같이 옷을 맞춰 입고 그들을 쫓아서 패고 다녔어요. 이게 갑자기 유행이 되어 유저들이 미션 수행은 안 하고 초록색, 보라색 진영으로 나뉘어서 몽둥이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게임 회사도 이걸 막지 않고 오히려 자기네 공식 이벤트로 선정하고 초록색 옷과 보라색 옷을 무료로 배포해서 게임 세계가 난장판이 됐었죠. 여기서 저는 처음 몽둥이를 들고 출현한 세 명이 결국 작가라고 생각해요. GTA라는 메타버스 안에서 활동하는 작가요. 근데 그 친구들이 작가로서 수익을 얻었을 까요? 공식 이벤트가 됐지만 로열티를 얻지 못했죠. 하지만 500만 명이 넘는 유저가 활동하는 GTA에서는 굉장한 사건으로 남았죠. 저는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거라고 보고, 이런 게 훨씬 작업적이고 미술적인 일이라고 느껴요. 앞으로 메타버스와 현실을 오가며 살 거로 예측하는데 실제 세계에서 작가인 저는 메타버스에서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생겨나겠죠. 이런 상황이 형성되면 굳이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존재할까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재미없어진 거예요. 왜냐면 현실에서 작가로 활동하려면 어떤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마련해야 하는 창구들이 존재하거든요. 이런 일들이 제가 가진 진보적인 태도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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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작가님은 작품을 어떻게 판매하세요? 결국 컬렉터들은 기존 미술 시장의 법칙에서 움직일 텐데요.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범위는 기존 미술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거 같아요. 그래서 설득을 하기보다 미술계에 맞추고 있어요.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제가 장르마다 통용되는 언어를 정말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저 자신이 장르에 대한 구분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장르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먹고 살려고 하니 장르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러면 지금 작가님에게 장르가 구분된 일은 몇 가지가 있을까요?

제가 지금 일하는 장르는 다들 잘 아시는 현대미술이 있고요. 더불어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있죠. 그리고 3D 아트워크와 3D 스튜디오가 있어요. 아트 디렉팅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 제가 운영하는 ‘.Pic’은 아트 디렉팅 회사로 출발했는데요. 포토그래피와 영상에서 3D로 아트 디렉팅의 기반이 확장되면서 이제는 자체적으로 3D 스튜디오 일도 맡고 있어요. 사실 제가 인스타그램 계정이 네 개예요. 이 중 활동하는 장르에 따라 사람들은 두 개를 알기도 하고, 한 개를 알기도 해요. 다들 다른 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메일이 오면 이제 앞줄만 읽어도 상황 파악이 돼요. 노상호 실장님이라고 하면 .Pic으로 온 거고, 노상호 작가님이라고 하면 현대미술이나 기타 등등으로 왔겠지, 뭐 그런 거죠. 그렇다고 제가 이걸 꼭꼭 숨기는 것도 아니에요. 제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다른 계정들이 붙어 있어서 알고 싶으면 알 수 있는 구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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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 작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 © Artist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나서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일을 마무리 짓고 그 이후로는 자유 시간 혹은 밀린 일을 처리하는 루틴한 생활 습관으로 유명하세요. 이게 현대미술 작가 노상호의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인간 노상호의 일과는 어떤가요?

오후 6시 이후에도 일이 계속 존재하죠. 그래픽 노블을 하기도 했고 아트 디렉팅 미팅도 했죠. 너무 과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2019년에 작가를 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던 거예요. 지금은 더 심해졌어요. 3D 스튜디오 일까지 하니까 지금 장르가 한 네 개 되거든요? 장르 별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다른 사람은 1인분 할 때 저는 4인분을 해야 해요. 오전에는 제 작업을 온전히 하고, 오후에 미팅이 없으면 작업과 3D 일을 겹쳐서 해요. 미팅이 있을 땐 12시 이후로 잡아서 돌리고 서류 업무가 필요할 땐 6시 전에 끝내요. 그리고 저녁 6시 이후에 퇴근하면 집에서 3D 스튜디오 일을 하죠.

대체 몇 시에 주무세요?

다행히 잠은 잘 자요. 여덟 시간 이하로 자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요. 근데 이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도 인터뷰로 있나요?

최선을 다해야죠. (웃음) 그나저나 작가님 말씀대로라면 저희가 본의 아니게 작가님의 하루를 온전히 차지하게 된 셈이네요. 오늘 인터뷰는 일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너무 당연하게도, 야근하겠죠. 직장인도 그러잖아요. 그냥 이런 거 있으면 야근하는 거예요. 일이 생기면 뒤로 밀리는 거죠. 그래서 진짜 이렇게 온종일 인터뷰 잡는 경우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해요. 다행히 1월에는 모든 기업이 계획을 세우는 달이라서 일감이 좀 없는 편이고, 지금 스튜디오 일은 주말에 몇 번 만지면 보낼 수 있는 정도만 남은 터라 오늘은 온전히 그림만 그리면 되는 날이었어요. 그림 그리기도 최소로 줄일 때가 있는데, 그 최소가 드로잉 한 장이죠. 이건 최후의 보루라서 이따 집에서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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