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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하나만 그어도 속이 다 드러나는

Writer: 최수인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최수인 작가는 솔직함을 사랑합니다. 선 하나만 그어도 자신을 통제 없이 드러내는 그리기에 매료되어 작가의 길을 시작했을 정도예요. 정리하기 힘든 감정을 거칠게 꺼내어 바라보는 공간이 곧 그의 평면인데요. 스스로 겪는 불편한 관계 속 감정을 새로 만나는 자연물에 투영하곤 한답니다. 결국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관객과 함께 경험하고픈 최수인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는 오일 페인팅을 하면서 드물게 건성 재료로 드로잉하는 최수인입니다. 아주 가끔 타투 도안도 그려요. 사실 ‘어떤 분이신가요’라는 첫 번째 질문이 당황스러워서 꽤 오랫동안 생각했답니다. 매거진 이름인 BeAttitude를 돌이켜보며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질문입니다. 나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답하고 싶지만, 최근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져서 고민이 많아요. 남이 말하는 저에 대해 정리하자면,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외부의 작은 자극이나 현상, 상황에 영향받아 터무니없게 생각이 길어지는 사람이고, ‘스몰 토크’를 잘하지 못하는지라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해요. 미소 띤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이 생기거든요. (사실 오랫동안 제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지 몰랐답니다)

‹불구경 Looking that fire›, 2019, Oil on canvas, 162.2 x 112cm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잘하던 일이 ‘그리기’였어요. 그리기에 자신 있었고 제가 잘하는 것 위주로 성실하게 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선’을 그으면 그 선을 그은 사람에 대해 보인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체로 선 하나만 그어도 사람은 자신을 통제 없이 드러내거든요. 이런 그리기의 솔직한 과정이 좋았어요. 제가 만드는 평면 공간은 혼자 쓰고 보는 글보다 더 편안한 장소예요 (물론,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요) 정리하기 힘든 감정을 거칠게 꺼내어 바라보는 공간이 곧 제가 그리는 평면입니다. 또한 제 그림을 보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관람자를 만나는 게 좋았어요.

‹네개의 이상한 생물들 Four strange creatures›, 2021, Oil on canvas, 130 x 130cm

‹거북이바위가 몰랐던 것(The things that turtle rock didn’t know)›, 2022, Oil on canvas, 72.7 x 72.7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실이 성북동 주택가에 있어서 주변이 매우 조용해요. 10년 동안 을지로에서 작업실을 구했을 때는 인쇄소가 많아서 매우 시끄럽고, 기계 소리에 맞춰 건물이 흔들리곤 했었어요. 그 시절엔 불편한 걸 잘 모르다가 성북동에 온 후에야 그곳이 정말 시끄러웠다는 것을 알게 됐죠. 성북동은 매우 조용합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따라 불러야 작업이 잘되는 느낌을 받는 편인데, 너무 조용해서 음악을 못 틀고 있어요…지금 작업실에는 흰 캔버스 몇 개가 벽에 걸려 있고요. 드로잉 전시를 준비하는 중이라 건성 재료를 사용한 드로잉이 다양한 크기로 여러 점 붙어 있습니다. 작은 소파도 있고, 흰 책상 위에는 필기구와 휴지, 종이, 술병, 시계, 15년째 모시고 다니는 호랑이 인형이 앉아 있습니다. 작업실을 지켜준다고 믿으며 데리고 다녀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가 경험하는 불편한 관계와 생경한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결국 스스로가 겪는 관계에서의 힘든 감정을 새롭게 만나는 자연물에 투영하며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만난 자연물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2차로 가공한 자연물 이미지를 사용해 만들어진 장소를 그리는 식이에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자연물을 비롯해 현대에 소비하는 수많은 영상 관련 소스에서 마음에 드는 표현을 기록하는 편입니다. 개인의 상상력만으로는 대부분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수집한 소스를 재구성해서 되도록 새로운 조형 이미지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연필로 기록한 드로잉을 기반으로 캔버스에서 다시 유화로 스케치해 작업합니다.

‹Show off›, 2022, Oil on canvas, 200 x 100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 한 달 정도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도 간단한 드로잉을 했는데요. 이빨을 드러내고 화가 난 듯한 산, 나무,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듯한 물결과 윤슬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한라산을 등산하다가 만난 꿩도 목탄으로 그리고 있어요. 근래의 작업에 바위산과 바다, 물결 이미지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실제로 매일 경험하는 바다와 바위섬, 산이 반가우면서도 버거웠던 것 같아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결국 ‘숨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저와 관람자가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작가의 신체적 기록으로, 관람자는 감상이라는 행위로 다 드러나 버리는 각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욕심을 부려 한 화면 가득 조형을 메웠다면, 요즘은 많이 덜어내어 수적으로 적은 이미지로 화면의 분위기와 감수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주 조금 방법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저의 유화 실력이 상당히 불만족스럽습니다. 재료를 다루는 기술을 많이 훈련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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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 dance›, 2021, Oil on canvas, 130 x 89cm

‹Clouds›, 2022, Oil on canvas, 90.9 x 65.1c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주로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작업 외 쉬는 시간에는 영상물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집중해서 보는 것은 아주 일부입니다. 일종의 소음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잠시 여유가 생길 때는 남편과 만나서 운동하고 식사하고 커피도 마십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 중심을 잡고 하게 되는 말, 그리고 저와 관계 맺은 사람의 기분입니다. 제게 상처 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방법 또한 찾고 있어요.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Hug me›, 2021, Oil on canvas, 130 x 130cm

‹Rhapsody in blue›, 2022, Oil on canvas, 130 x 130c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자기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불쌍한 스토리를 갖고 있어도 봐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속이 다 드러나 버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온 적은 없고, 어떤 이가 제 그림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면 2~3일 정도 기분이 안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요.

‹Non-conceptual dance›, 2022, Oil on canvas, 160 x 80cm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호흡 곤란과 기분 조절입니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숨을 잘 쉬지 못할 때가 있어요. 캔버스라는 평면은 내 것을 꺼내 놓기 더없이 좋은 장소가 맞지만, 점점 더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지 않은 행위인데 말이죠. 기분 조절은 아침에 눈뜰 때 한 번 크게 어렵고, 장소를 이동할 때 한 번 어렵습니다. 무언가가 변하는 상황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누군가를) 참고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창작하는 것입니다.

‹숨어서 파도잡기 Catch the waves›, 2020, Oil on canvas, 145.5 x 89.4cm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합니다. 창작자가 본인 외에 다른 것에 눈치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참고하지 않고 본인에게만 집중하는 게 아주 힘든 일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잘 안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기만의 것을 단단히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끄집어내야 할 테죠.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작품에 많이 가려져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먼저 떠올리고, 진짜 삶은 사실 모르고 싶은 것처럼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제약 없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미래가 왔으면 합니다. 다수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을 편하고 당연하게 나눌 수 있는 미래가 오길 바랍니다.

‹Purple rain›, 2016, Oil on canvas, 117 x 80cm

Artist

최수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개인전 «파랑»(2012, 이목갤러리)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너의 빌런»(2021, 아트사이드 갤러리), «Fake Mood»(2020, 아트사이드 갤러리), «날 보고 춤춰줘»(2019, 갤러리조선) 등이 있으며, «편집된 풍경»(2022, 가나부산, 부산),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2019, 금호미술관), «THE CONSERVATION»(2018, 아트사이드 갤러리)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 금호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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