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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멋에는 나이가 없다

Writer: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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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동현 작가는 스트릿 패션 포토그래퍼입니다. 특히 한국의 시니어 스트릿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머리를 식힐 겸 동묘를 찾았다가 아주 멋진 어르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느낀 멋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어요. 동묘, 인사동, 남대문, 탑골공원, 명동 등을 돌아다니며 오랜 시간 인고 끝에 얻은 멋쟁이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은연중에 젊은이에게 한정했던 멋이란 게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김동현 작가의 작업과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한국의 시니어 스트릿 패션을 담은 책 『(멋) MUT : Street Fashion of Seoul』을 출판한 사진가 김동현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창작자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스스로 관찰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았죠. 군대에서도 패션 서적을 자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요. 우연히 구한 스콧 슈만Scott Schuman의 『사토리얼리스트The Sartorialist』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전까지 패션은 유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통해 패션은 스타일 그 자체를 말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스트릿 패션에 빠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때도 막연했어요. 20대 초반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걸러지더군요. 좋아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요. 그리고 알게 됐어요. 저는 자유분방하게 옷 입는 걸 좋아하고 패션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러던 중 25살에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나서 처음으로 스트릿 패션 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그때 느낌이 무척 설레고 짜릿했어요. 아직도 생생해요. 패션을 배우고 싶어서 서울로 상경해 패션 학교에 진학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스트릿 패션 사진을 계속 찍었어요. 그때만큼은 학생이 아니라 제가 패션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죠. 졸업 후에는 당시 유행하던 타이다이Tie-dye 티셔츠를 만들어 플리마켓에 팔아보기도 했어요. 여러 활동을 하면서 제 생각을 표현하고 구현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러다 취업 준비로 힘들어서 머리도 식힐 겸 동묘를 찾았는데, 거기서 아주 멋진 어르신을 보게 됐어요.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동묘는 자주 들르던 곳이었어요.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는 생활비 내기도 빠듯했거든요. 그런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분이 그날따라 유독 눈에 들어왔어요. 문득 궁금했죠. ‘내가 왜 저 사람을 보고 멋있다고 느낄까?’ 그래서 제가 멋지다고 느끼는 저 사람들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자주 가던 현상소에서 전시회 제안이 왔어요. 현상소에서 열린 전시다 보니 필름을 맡기는 사진가들이 방문했고, 그중 한 분이 제 사진을 보고 ‘사진 참 멋있네요’라며 칭찬하셨어요. 저를 모르는 분이 제 생각에 공감해준 게 감사했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진을 모아서 책을 내보자고. 그렇게 3년째 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스트릿 패션 사진은 그 특성상 길거리에서 주로 작업해요. 동묘, 인사동, 남대문, 탑골공원 등지에서 작업하고 최근에는 명동에서 촬영하고 있어요. 후보정은 주로 집에서 진행합니다. 참고로 저희 집은 옥탑방인데 감성 충전하기에 최고예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물음표’에서 시작해요. 지금 진행하는 시니어 스트릿 패션 프로젝트도 동묘를 방문했을 때 멋진 할아버지를 보고는 ‘저렇게 멋진 사람들이 있는지 이전에는 왜 몰랐지?’라는 물음에서 시작했어요. 그걸 점차 확장하는 식이죠. ‘저 사람은 어떻게 옷을 선택하는 걸까? 어떤 색깔을 왜 선택했을까?’처럼요. 사람들은 가끔 인터넷에 있는 정보가 전부일 거라고 착각해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 누군가 발견해서 편집한 후 올린 정보거든요. 현실에는 더 재밌는 사람들과 상황, 스토리가 많아요. 탐구하지 않는다면 잊힐지도 모르죠. 거기에 물음표를 던지고 탐구하는 거예요. 비록 그 과정이 힘들지라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그들’이 자주 갈만한 곳을 찾아가요. 멋쟁이가 많기로 소문난 동묘, 오래된 화방이나 갤러리가 많은 인사동, 옛날부터 장사하는 분들이 많고 한국 유통의 중심지인 남대문 등이죠. 만약 한복을 입은 사람을 찍고 싶다면 그런 분들이 많이 모일 고궁 앞을 찾아야겠죠.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골목에 어떤 스폿이 있는지, 어디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파악하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기다려요. 그리고 대상이 나타나면 그가 관심 있을 만한 사진을 휴대폰에서 고르고 다가가 말을 걸죠. “안녕하세요. 저는 아버님, 어머님처럼 멋진 분을 찍는 사진작가인데요. 지금 너무 멋지셔서 사진 한 장 부탁드리고 싶어요. 혹시 한 장 찍어드려도 될까요?” 제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는 건 사진을 허락하신 분께 사진을 드린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꼭 저렇게 말해요. 실제로 사진을 보내드리고요. 그리고 처음 거리를 돌아다니며 파악했던 곳 중 섭외 지점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괜찮은 곳으로 모시고 가서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받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촬영 후 사진을 보내기 위해 저장해 놓은 전화번호들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서울에 계신 멋진 어르신들의 길거리 패션을 담는 프로젝트를 2년 반에 걸쳐 작업하고 책으로 출판했어요. «보그 코리아»와 함께 작업한 ‘스트릿 한복 파이터’도 재밌었고요. MZ세대의 한복 패션과 한복을 사랑하는 그들의 인터뷰를 담은 작업이에요. 생활한복이 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찾아보니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더라고요. 그런 간극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요. 그에 대해 담아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멋에는 나이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은연중에 멋있는 건 젊은이들에게 한정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젊은 순간은 인생에서 극히 제한적인 시기죠. 현업에서도 패션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력과 연륜이 충분히 쌓인 50~80대입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디자인 작업을 계속했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특정한 이미지로 그들의 순간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는 지금 소주를 마시지 않아요. 하지만 스무 살 때는 마셨어요. 그게 저랑 맞는지 아닌지 몰랐거든요. 술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술을 거치면서 취향이 생겨났어요. 저는 증류주보다 발효주가 더 맞는 사람이에요. 맥주 중에서는 라거를 더 좋아하고요. 옷을 입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20대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취향이 점점 분명해지는 시기죠.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패션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봐요. 제가 작업하는 분들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옷을 좋아하셨어요. ‘언젠가 갑자기’가 아니라요. “왜 몰랐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요”로 대답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질문을 던져볼 시기예요. 자기 눈으로요.

최근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불만족하는 부분은 없어요. 후회 없이 작업했거든요. 모든 걸 쏟아부었죠. 사람들에게 제 작업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상이라고 할 게 딱히 없어요. 평일에는 일하고, 퇴근하면 미팅하거나 출판사 일을 처리해요. 주말에는 작업하며 시간을 보내고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하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어요. 한 가지 주제에 관해 제 생각을 기록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생각 정리도 되고요. 예전에 ‘남친 룩’에 대해서 게시물을 썼는데 사람들이 공감해서 신기했어요. 비록 온라인에 올리진 않지만, 패션에 관한 견해도 적어두고 있고요. 또 옛날 작가의 사진을 스크랩하기도 해요.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거장들의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끼게 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러운데, 제가 좀 싹싹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렇다 보니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장점으로 통하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고 나서 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미소를 짓고 있더라고요. 책을 만들 때 에디터로 참여한 분이 말씀하셔서 알았어요. 책을 본 독자분도 제 책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고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예전에는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새로운 걸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신호로 생각하려고 해요. 비슷한 공간, 비슷한 대상을 찍다 보니 그 결과 또한 비슷하게 나와서 지루해지고 작업도 하기 싫고 슬럼프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해요. 전에 안 가본 장소에서 작업하거나, 찍는 대상을 바꾸거나, 찍는 시간을 바꿔가며 새로운 결과가 나올 때 ‘나 이것도 좋아하지?’ 깨달으면서 슬럼프에서 빠져나와지더군요. 또 하나는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는 거예요. ‘내가 저것도 견뎌냈는데 이것쯤이야’하는 생각이 들죠. 게시물에 달린 응원 댓글을 볼 때 힘이 나요. 제 생각에 공감하면서 성장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 힘을 얻죠. 그렇게 힘을 얻고 또 작업을 해나간답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내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에요. 예전에는 생계를 해결하면서 작업을 병행하는 게 문제였어요. 더 많은 작업을 하기 위해 성장할 필요성을 느끼는 지금, 이 문제는 제가 쓸 수 있는 시간과 힘의 문제가 됐어요. 무명작가의 사진집을 받아주는 기성 출판사를 찾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독립 출판사를 만들어서 책을 냈어요. 그러다 보니 유통, 마케팅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더라고요. 운이 좋게도 해외 출판은 좋은 에이전시를 만나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 일은 대부분 제가 직접 해야만 해요. 그와 동시에 작업도 하다 보니, 중간에서 밸런스를 찾기 어려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소통하는 장소는 인터넷이지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세상에는 아직도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고 믿어요. 힘든 길을 걷는 만큼 ‘나는 더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한 장을 찍을 때 열 번을 거절당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거절당하며 찍어야 할 거예요. 운이 좋아서 두 번 만에 찍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거절당하는 일을 견디는 걸 지속하기는 힘들 거예요. 왜냐하면 한 장을 찍는 것과 스무 장, 서른 장, 백 장을 찍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니까요. 어렵고 힘들지만, 그럴수록 작업은 더 희소성을 지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고생이 결과물로 나왔을 때 자부심으로 바뀌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힘들었던 것도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에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먼저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정하세요. 그리고 그 주제가 어떤 차별점을 가졌는지 생각한 다음 표현 방식을 한두 가지로 좁혀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세요. 그게 첫 번째 단계예요. 사람들에게 자기가 어떤 걸 만드는 사람인지 인식시키는 거죠. 만약 스스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에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정해진다면 다음 단계는 성장하는 것이에요. 시니어 패션 이전에도 저는 스트릿 패션 사진을 찍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멋진 사람을 찍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일 거라 생각했지만…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던 거죠. 그런데 방식을 바꾸니 달라졌어요. 동묘에서 멋진 어르신을 보고 영감을 얻은 후 저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그때 떠올린 게 ‘전신이 나오는 풀샷으로 찍자. 그리고 필름 카메라로 찍자’였죠. 디지털로 스트릿 패션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았지만, 필름 카메라로 찍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그리고 스타일 전체를 드러낼 수 있는 풀샷을 찍는 방식으로 바꾸어 40명을 기록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동묘 패션을 찍는 작가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장소나 화각, 대상을 바꿔가며 작업하면서 동묘 패션이 아닌 시니어 패션을 찍는 작가로 저를 확장했죠. 그게 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패션사를 말할 때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패션이 제 삶에서 중요한 만큼요.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 세상이 많아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얼마 전 알버트 왓슨Albert Watson의 전시회를 다녀왔어요. 80대의 노작가인데도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시더군요. 저도 그때까지 작업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계속해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Artist

김동현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패션사진가다. 2년 반 동안 찍은 서울의 시니어 스트릿 패션 사진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보그 코리아»와 ‘거리에서 마주친 패셔니스타 여인들’, ‘스트리트 한복 파이터’ 작업을 했고, «경향신문», «한겨레», 영국 «가디언», 영국 방송 Channel 5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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