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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그리운 느낌

Writer: 안유진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안유진 작가는 일상의 이상한 부분에 끌려 작업을 시작하곤 해요. 낯설지만 그리운 것이랄까요. 미성숙한 시절의 부정확한 표현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요. 실제 작업을 접하면 마치 감정이 몽글몽글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답니다. 삶에서 어렵고 힘든 상황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면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안유진 작가. 이야기를 소곤소곤 건네는 이 매력적인 창작자를 아티클에서 만나 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하는 안유진입니다. 낯설지만 그리운 것에 끌립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영화와 게임을 좋아했던 터라 자기만의 세계관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갔어요. 특히 일본 ‘가이낙스GAINAX’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죠. 그래서 대학교도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진학하게 됐는데요. 막연히 붕 떠 있기 일쑤라 제대로 된 작업을 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작업에 대한 두려움만 커졌던 휴학 시기에 학교 선배들이 만든 «만화잡지 쾅»에 함께하며 다시금 창작의 즐거움을 알아갔던 것 같아요. 잃어버린 조각을 겨우 찾아가면서, 이미지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만화로 작업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 보니 10여 년이 지났어요.

‹잃어버린 친구에게›,2019, 만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년 초, 처음으로 개인 작업실을 갖게 되었어요. 회사가 밀집한 가산디지털단지의 어느 섬유무역회사에 있는 사무실이에요. 생소한 동네에 숨겨진 뭔가를 발견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첫 작업실도 그런 면에서 꽤 재미있는 곳에 있죠. 여러 가지 상황에 감사하고 있답니다.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은 아니라서 어쩌다 가끔 눈치 보일 때도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해이해질 수가 없네요. 북쪽과 서쪽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하늘이 잘 보이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날씨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내부가 넓어서 커다란 공간이 필요한 캔버스 작업을 여기서 처음 하기도 했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일상의 이상한 부분에 끌려 무언가를 시작하곤 합니다. 낯설지만 그리운 것일 때가 많아요. 최근에는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요. 그곳을 거쳐 간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공간 자체가 지닌 모호한 빛과 분위기를 발견하는 일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미성숙한 시절의 부정확한 표현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도 빠질 수 없습니다. 요즘은 1990~2000년대의 J팝을 들을 때 그런 감성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즐겨 들어요.

‹뜻모를 기쁨›,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계획과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며 풀어가기보다는 ‘일단 움직이고 보자!’라는 성향이에요. 그림이든 메모든 뭔가 끄적이거나 자료를 마구 수집하면서 시작하는 편이죠. 그래서 나중에 노트를 확인하면 알아볼 수 없을 때도 많아요. 구상한 것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본 작업을 할 때는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해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어떤 가나다
어릴 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모호하고 무거운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작업입니다. 자음을 적은 낱말 카드의 형식을 빌리되 그 내용은 가볍지 않게! 반대로 그림은 흐릿하지만 빛을 머금고 있다면 아름다울 것 같다고 상상하며 진행했어요. 보는 순서와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글과 장면을 조합할 수 있어요. 몇 가지 풍경은 제가 오랫동안 살던 동네 일상을 담아서 그런지 작업하면서 위로가 되는 면도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어두움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반짝이기도 하는 시절이란 생각 때문에, 카드에 홀로그램 코팅을 입힌 것도 도전이었어요. 오타쿠 게임의 굿즈와 아이돌 포토 카드에서 영향을 받았는데요. 이 또한 유년의 감성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가나다›,2022

‹어떤 가나다›,2022

흐름

오랜만에 작업한 루프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늘에 숨은 아이가 그림자의 움직임을 보면서 여러 모양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만화를 그렸는데요. 그 아이의 시선이 담긴 짧은 상상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마커가 번진 색과 형태가 조금씩 섞이면서 변화해요.

‹흐름›,2022, 루프 애니메이션

일단 걸어보겠습니다

재작년부터 어린이 교양지«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산책 만화입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사라지거나 의미 있는 장소를 무대로 10대 소녀와 다양한 친구들이 겪는 짧은 모험을 다루고 있어요. 달리기 유망주였던 주인공은 부상으로 꿈을 포기했는데요. 달리기 대신 천천히 걷고 주변을 살피는 산책을 통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평소 산책과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만화 작업을 해왔는데요. 매달 꾸준히 장소성을 나타내며 만화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중간중간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이 더욱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동네를 방문할 때마다 취재 자료를 찍는 일도 습관이 되었어요.

‹일단 걸어보겠습니다›,2022, 만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걸 오래 비추어 바라보기. 최근 그림과 이야기를 작업할 때의 태도와도 이어져요. 표현하고 싶은 빛깔을 발견하려면 시간이 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소중한 주제입니다. 미숙한 만큼 더 다양한 각도로 풀어내고 싶어요.

최근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꽤나 고민하며 도전한 작업은 결과가 투박하고 보여주기 부끄러울 때가 많아서 결국 평소 하는 느낌으로만 모면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만족과 불만족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습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굼뜬 편이라 집에서 아침 시간을 좀 길게 보내요. 다행인 건 얼마 전 거주지를 바꾸면서 작업실까지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해졌답니다. 20분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작업실로 걸어가는 길은 커다란 아울렛들과 회사 건물, 물류센터, 시시각각 전철과 열차가 지나는 철로, 그 위를 건너가는 육교 등 제 기준으로 조금 비일상적인 스케일로 이루어져 있어요. 풍경과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작업실에 도착해서 좋아하는 리듬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덧 여유 부리기 힘든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부터 조급한 마음이 생기면서 작업을 하기 시작해요.

‹금붕어가 사라졌다›,2021, 책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덕질하는 팬 문화와 간단한 식사 만들기. 여러 면에서 인풋과 아웃풋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신작과 구작을 가리지 않고 애니메이션도 챙겨보려 하는데요, 아무래도 창작의 원동력인 제 안의 ‘중2(!)’를 깨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영화처럼, 일상 속 엉뚱한 소재, 열린 결말을 다루는 작업을 좋아하는데요. 삶에서 어렵고 싫은 상황이 존재하지만, 한쪽으로만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면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하고 싶은 작업의 방향도 비슷하게 따라가는 편이에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높은 이상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상주의자니까요. 비록 지금 덤덤히 말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에게 징징거린답니다. 그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껴요. 지금 작업하는 게 마지막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작업을 하다 보면 이전에 생긴 고민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더군요. 그렇게 10여 년이…(또르르)

‹OPP›, 2022

‹수족관2›, 2022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월세 그리고 시간과 집중력 부족.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기획 단계에서 상상에만 잔뜩 기대다가 결국 모든 걸 미루고 도망친 적이 많아요. 그래서 요즘은 한번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을 보는 태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svnr›, 2022

‹svnr›, 2022

‹네 시, 놀이는 점점 지겨워지고›, 2022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독자가 많든 적든, 자기 작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서만 생각하고 표현하면 점점 남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리고 최초의 두근거림을 선사한 것을 다시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저는 그럴 때 힘을 얻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야기를 소곤소곤 건네는 창작자. 은근히 마니아층이 있는 작가.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작업하는 게 꿈입니다. 제작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상상하는 걸 표현하는 작가라면 가장 좋겠네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더 많이 웃고 지내는 미래였으면 좋겠습니다.

‹수족관›, 2022

Artist

안유진은 만화와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한다. 모험심도 조금 있는 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그곳에서 만난 작가들과 《만화잡지 쾅》을 함께하며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해오고 있다. 여행 만화책 『싱글룸』을 집필했다.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작업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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