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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저는 화가가 꿈이에요

Writer: 이우성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우성 작가는 자신을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화가가 꿈이래요. 수많은 국내외 전시에 참여한 그가 말하는 화가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집니다. 생활과 미술을 주제로 삶의 다양한 군상을 포착해 천에 그려 걸어놓은 작업을 보면 마치 제 모습을 몰래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길거리 풍경을 콕 집어낸 것 같기도 하고요. 작업에 써놓은 꿈, 열정,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나 낭만적이라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득히 찾고 싶은 노스탤지어를 선사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낭만을 말하고 싶은 이 ‘낭만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이우성입니다. 저는 화가가 꿈이에요. 제가 사는 세상을 닮은 무언가를 제 손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을 다시 보는 것도 좋아해요. 당시 고민하던 제 모습이 보이거든요. 그 시기에만 가능한 그림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실기를 지도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슨해지지 않고 긴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수업에서는 작가로 활동한 경험도 재료로 쓰이거든요. 점점 제 말을 줄이고, 학생의 말을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치원 다닐 때가 기억나요. 꽃병을 그리다가 시든 꽃을 상상해서 그렸어요. 꽃잎이 테이블 위에 떨어진 장면이었죠. 어렸을 때는 대부분 상상해서 그리는데, 그때의 그림을 특별하게 봐주신 선생님과 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Always on My Mind›, 2020,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수성 페인트, 143x480cm

‹좋은 하루 되세요 Have a Golden Day›, 2020,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수성 페인트, 150x240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성북동 언덕에 있는 작은 주택은 제 주거 공간이면서 동시에 작업장이기도 해요. 벌써 5년이 되어 갑니다. 가을이면 낙엽을 쓸어야 하고 눈 오면 눈을 쓸어야 하는 곳이에요. 언덕길이라 게으름을 피울 수 없죠. 대문 안에서 온전히 제 삶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대문 밖 주변을 살펴봐야 하는 장소입니다. 크기가 작은 작업실에서 큰 그림도 몇 번 그렸는데, 그림을 접고 옮기면서 그리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여름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려면 좀 더 큰 벽이 있는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빛나는, 거리 위의 사람들 Floating lights on the street›, 2016, 천 위에 수성 페인트, 젯소, 300x543cm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현재를 충실히 살면 좋은 작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일주일에 4일을 일하다 보면 제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맞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게 다 재료가 될 수 있어요. 제주도의 명물인 용천대를 아시나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 마실 수 있는 지하수가 되어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곳이에요. 그처럼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다 녹아든다고 생각해요. 마치 지하수처럼요. 스스로 정제할 수 있도록 놔두면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림으로 나올 거예요. 그동안 해온 작업을 다시 보거나 정리하면서 잊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메모장에 적어둔 글에서 찾기도 하고요. 평소에 무언가 남기는 습관은 중요해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지난 10년간 사용한 개인 웹사이트를 최근 다시 만들면서 그동안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어요. 켜켜이 쌓아둔 서가를 정리하는 기분입니다. 아주 특별한 시간이죠. 빠진 작업 자료를 보충하고 언어로 정리하지 않았던 부분을 글로 써서 설명을 붙이고 있어요. 이런 작업을 통해 앞으로 해야 할 계획도 생겼어요.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보충이 필요한 작업 사이사이를 이어서 진행해보려고 해요. 이런 것도 영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접혔다 펼쳐지는 그림 뉴욕 (2016) 강변북로 Riverside Expressway›, 2015, 천 위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210x210cm

‹접혔다 펼쳐지는 그림 뉴욕 (2016)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Relay to Continue›, 2015, 천 위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210x210cm © Photo by 권용주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먼저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메모를 벽에 붙이기도 해요. 이번에는 어떤 작업을 해볼까 쓱쓱 아이디어 스케치도 하고요. 이것도 잘 보이도록 벽에 붙입니다. 그리고 드로잉에 이름이 생길 때까지 방치해둬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긴 시간을 가지면서 작업에 관해 생각하는 순간은 무척 귀하고 소중해요. 물론 마감 기한 때문에 여유로움이 점점 초조함으로 바뀌기도 하지만요. 작업실을 정리하고 그림 한 점을 어렵게 시작해 봐요.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요. 사실 처음 그린 그림은 대부분 마음에 잘 안 들 때가 많아요.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을 어느 정도 해두고 다른 그림으로 넘어가죠. 그러면서 처음 그린 그림을 두고두고 봅니다. 그렇게 한 점, 두 점, 세 점으로 늘리며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요. 조금씩 자기 존재를 드러내길 기다리는 작업을 주변에 둘러놓고 작업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그림을 함께 마무리합니다. 창작 과정을 거슬러 생각해 보면 무언가 나올 때까지 쥐어짜고,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그림과 겨루기도 하고, 항상 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아서 작업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웃음) 창작이라는 말은 참 근사해요. 고된 과정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는 것 같아서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에 한강을 그렸어요. 저는 가끔 한강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데요. 혼자 즐기는 시간과는 다르게 전시 작업을 준비하려니 부담감이 생기더군요. 몇 번씩 한강에 가서 보고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생각하던 순간들이 떠올라요. 한강에 갈 때는 보통 무엇을 얻기보다 비우려고 가거든요. 그래서 그림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내가 왜 한강에 갔을까?’ 생각하면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담아서 그린 작업입니다. 무엇이 저를 움직이게 했는지 자문해 본 거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한강에 갔다 I went to Han River because I didn t know what to draw›, 2022,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수성 페인트, 246x413cm

‘자수정 회화’라는 이름의 연작을 그리기도 했어요. 색이름이 자수정색이라서 연작의 이름으로 삼았죠. 자수정색은 분홍 같기도 하고, 연보라색 같기도 한 오묘한 색채를 띠어요. 어떤 경계에 있는 색처럼 다가오기도 하고요. 정확히 명명하기 어려운 색이죠. 그런 색 하나만 이용해서 작업했어요. 제가 단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노래로 치면 발라드 장르와 비슷해요. 사랑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소묘하듯 그림을 그리게 되더군요. 제 그림이지만, 좋아요. 좀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다 같은, 다 다른 사랑 사람 그림 Love and People and Wishes›, 2020,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과슈(자수정 색) 63x78cm (9점으로 구성)

또 다른 소묘 작업으로 ‹기대고 포개고 반복하는›이 있어요. 사랑과 정체성을 주제 삼아 그린 작업입니다. 부모님의 손과 제 손 그리고 제 애인의 손을 모델로 사람 손을 그렸어요. 거기다 글씨도 쓰는 등 종이와 연필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재미난 시도를 했죠. 그동안 갈 길을 잃었던 연필 소묘 작업을 이어서 그리는 연작이라서 제게는 더욱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연필의 짙음과 아주 연약하고 여리게 쌓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좋아해요. 이 작업 역시 제가 아낀답니다.

‹기대고 포개고 반복하는 Leaning, Overlapping and Repeating›, 2021, 종이 위에 흑연, 레터링 종이 조각 위 에 흑연, 35.6×29.7cm (4점)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물결은 계속 변하고 흐트러져요. 결코 잡히지 않죠. 그런 모습이 마치 회화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결이 부서지고 만나는 흐름 말이에요. 그걸 한자로 표현하면 ‘낭만(浪漫)’이죠. 저는 제 그림을

통해 낭만을 말하고 싶어요. 이런 표현이 촌스러워 보여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을 많이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만족은 작업을 좀 더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단체전 «수행하는 회화» 전시 전경(2021, This is not a church) © Photo by 이의록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에는 수영을 하고, 오후에는 주로 수업을 합니다. 일정이 항상 규칙적이진 않지만, 그동안 주로 일을 했어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작업을 했고요. 주말에는 보통 본가에 가서 쉽니다. 전시를 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적으니까 굉장히 별거 없이 단순하네요. 근데 왜 작업할 시간이 없고 바빴던 걸까요? 하하하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전 작업에 관한 생각뿐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천을 사용해 온 과정이 저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표현 방식과 매체 면에서도 여러 방법을 시도했고요. 유연하게 바람처럼 타고 넘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동시에 우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바위 같은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기대고 포개고 반복하는 Leaning, Overlapping and Repeating›, 2021, 종이 위에 흑연, 레터링 종이 조각 위 에 흑연, 35.6×29.7cm (4점)

‹기대고 포개고 반복하는 Leaning, Overlapping and Repeating›, 2021, 종이 위에 흑연, 레터링 종이 조각 위 에 흑연, 35.6×29.7cm (4점)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붓이 잡히지 않는 때가 있어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저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림과 조금 거리를 두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보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주변에 작업을 열심히 하는 동료 작가나 선배 작가의 전시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러면서요. 하지만 이런 것도 일단 쉬고, 한숨 돌리고, 주변을 둘러볼 때 보이겠지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는 바위 같은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바람 같은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해요. 그림 그리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게 확실하지만 즐겁게 하고 싶어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제대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수업도 줄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보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지원서를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다행히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앞으로 좋은 환경에서 1년간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접혔다 펼쳐지는 그림 서울 (2015) 쌀농사 Landscpae of Farming Village›, 2015, 천 위에 수성 페인트 , 아크릴릭 과슈, 210x210cm 

‹강변북로 Riverside Expressway›, 2015, 천 위에 수성 페인트, 아크릴릭 과슈, 210x210cm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떤 아이디어든, 어떤 그림이든,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완성한다. 내가 좋아서 해야 남들도 즐길 수 있다. 스스로 만족하는 작업을 만드는 일이 가장 우선이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다음에는 조금 덜 힘든 작업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작업의 힘듦은 갱신하는 것 같아요. 쉽게 가는 길은 없습니다, 없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우성 작가는 꾸준히 참 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다음 신작이 기다려지는 작가도 좋을 것 같네요. 하하하.

Artist

이우성은 ‘생활과 미술’이란 키워드로 다양한 그리기를 시도하는 작가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전공 전문사 과정을 끝냈다. 그는 지금까지 학고재 갤러리, 두산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풀, 아마도 예술공간, OCI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과 덕수궁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 경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다수의 국공립미술관과 독일 볼프스부르크 미술관, 인도 뉴델리현대미술관, 중국 샹동미술관, 대만 가오슝미술관, 일본 요코하마 페이미술관 등 해외 미술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레지던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더피직스룸 레지던시 등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와 2021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2023년 8월에 예정된 개인전(학고재 갤러리)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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