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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내 안의 것을 꺼낸 가방

Writer: 우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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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여성, 신체, 패브릭. 이 세 가지 주제에 관심을 두는 우한나 작가는 몇 년 전부터 ‹Bag with you›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어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이 작업은 신체 내부의 장기를 소재로 다양한 의미와 가상의 기능을 지닌 패브릭 오브제를 만들고 사람들이 직접 걸치며 체험하는 웨어러블 오브젝트인데요.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작업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아래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 우한나입니다. 제 관심사는 무척 다양해요.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면 여성이 만드는 이야기, 패브릭의 다양한 특성 그리고 신체가 있어요. 이들은 몇 가지의 궤를 따라 독립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협력하며 섞이기도 해요. 설치 작업을 시작으로 조각, 웨어러블 오브젝트, 페인팅, 드로잉도 꾸준히 합니다. 특정 작업을 위해서 음악을 함께 제작하기도 하죠.

웨어러블 오브젝트 작업인 ‹Bag with you› 시리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가방만큼 매일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지니게 되는 오브젝트가 없더라고요. ‹Bag with you›가 가방으로부터 출발했던 이유에요. 한편 내장은 웬만해선 맨눈으로 볼 수 없고, 그래서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죠. 장기도 가방처럼 기능을 상실하면 쉽게 바꾸고, 상황에 따라 특정 기능의 장기를 추가로 지니거나 갈아 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공기가 안 좋은 날엔 여분의 폐를 하나 더 들고 다니고, 머리를 너무 많이 써야 하는 날엔 좌뇌와 우뇌의 배터리 팩을 추가해서 메고 다니는 것처럼요. 이런 생각에는 개인적인 사건이 영향을 끼쳤어요. 원인불명으로 한쪽 콩팥이 기능을 상실해 수축하며 줄어들었고, 다른 한쪽은 상실한 기능만큼 일하기 위해 비대해진 사실을 2019년 처음으로 했던 건강 검진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 후 추적 검사를 받으며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있고, 매년 정기검진을 받으며 점점 안심하고 있는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각종 검사를 받고 한 달 넘게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장기에 대한 여러 자료를 뒤져보고 뭐든 이해하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러다 기존의 신체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패브릭으로 만들던 덩어리를 장기와 닮게 만들기 시작했고, 덩어리감을 줄 때도 좀 더 물컹하게, 주름을 잡을 때도 위나 소장의 주름을 연상하며 재현하기도 했고요. 어쩌다 마음에 드는 비정형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면 쌍을 이루게끔 하나를 더 만들기도 하고요. 아마 저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6개로 시작한 작업은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렸던 개인전 «Woo Hannah : Ma Moitié»에서 30개 이상 더 만들어졌죠. 그때의 오브젝트는 웨어러블한 것도 있었지만 좌대 위의 조각으로 제시되기도 했어요. 게다가 시작은 현실의 내장이었지만, 만들면 만들수록 희망 사항이 담긴 미지의 기능을 지닌 장기도 제작하게 됐죠. 예를 들어, ‘캔서 서커 Cancer Sucker’, ‘나이트메어 서커 Nightmare Sucker’, ‘메모리 파우치 Memory Pouch’처럼 우리 신체 능력 밖 영역의 그 무언가를 상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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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공개하는 신작에 대해서도 귀띔해주시겠어요?

Bag with you 2022_Take your shape이라는 작업이에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조각전인 «조각 충동» 참여작이죠. 뮤지엄 내부에서 관객 참여형으로 진행할 예정이라 어떤 면에서는 전보다 과감해도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거의 Bag with you 시리즈처럼 들기 용이한 작은 가방 형태를 벗어나, 크기도 좀 더 커지고 동세도 화려한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말 그대로 각기 다른 신장(키)과 의복 그리고 헤어스타일을 가진 남녀노소의 신체가 Bag with you를 착장하면서 자신만의 형상을 가지고 움직이는 오브젝트가 되는 거죠.

‹Bag with you›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을까요?

성별에 따라 신체에 다른 기능의 장기를 지니게 되는 차이점, 또는 (저도 포함되지만) 쌍을 이루어야 하는 기관이 쌍을 이루지 못하는 신체를 가진 사람들, 아직 자라고 있는 어린 신체, 이미 성체에 이르러 이제 노화의 과정에 드는 신체들이 ‹Bag with you›의 작업 세계 안에서는 어떤 위계나 편견 없이 그저 동등하게 나열되어 존재할 수 있는 점이죠. 그 안에는 상실도, 차이도, 새로운 것과 낡은 것도 그저 다양한 형상이 되고, 그 자체가 본질로 보이며 또한 그렇게 보여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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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이라는 신체 장기의 부재에서 출발한 작업이지만 표현 방식은 산뜻함을 잃지 않고 있어요. 시각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저는 늘 양가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슬프고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걸 외양으로 표현해보는 거죠. 반대로 너무 티 없이 맑고 친절한 존재를 보면 저변에 깔린 가늠하기 어려운 위험성을 느끼기도 해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극을 당하면 그만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반응이 존재할 거라 여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계속 만들어질 미래의 가방에 대한 계획과 기대를 밝히셨어요. 앞으로 가방은 어떻게 확장할까요?

웨어러블한 특징을 갖는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신체와 같이 가는 상태를 뜻하죠. 신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갖도록 만드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 ‹Bag with you 2022_Take your shape›를 마무리한 이후에 긴 텀을 가지고, 그다음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업이 저라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다양한 요소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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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인 ‹Bag with you stroller›를 통해 장기 오브젝트가 사람들에게 가까워질 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Bag with you stroller는 관객 참여형으로는 첫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과연 어떤 사람이 무슨 오브젝트를 고를까 무척 궁금했죠. 제가 확인할 게 있어서 현장에 들렸던 날, 덕수궁 연못 근처에서 어떤 20대 커플이 Bag with you를 착장하고 제 앞을 지나가셨어요. 근데 그 중 남성분이 제가 만든 50개의 오브젝트 중 자궁이 묘사된 피스를 허리춤에 걸치고 계시더군요. 제가 그걸 만들 때 꼭 남성분이 착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관객분을 실제로 만나서 너무 기쁘고, 흥분됐어요. 용기를 내어 다가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죠. 초상권 때문에 여기에서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그동안 제가 작업을 통해 관객과 나눴던 소통 중 가장 짜릿했어요.

자유분방해 보이는 드로잉에서도 작가님의 시선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 같아요. 드로잉과 설치작업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별다른 스케치 없이 직관적으로 천을 이용한 설치를 자주 했기 때문에, 제게는 종이 위의 드로잉과 공간 속의 설치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무계획과 무의식을 최대한 이용해요. 천을 바닥에 깔고 가위로 원단을 러프하게 툭툭 잘라내면 그때 생기는 선도 동일한 궤를 갖는답니다. 여기에 부피를 부여하면 조각이 되고, 묶고 구축하면서 공간을 장악할 때 설치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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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업에서는 몸과 운동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 형태가 있을까요?

저는 결국 중력을 이기고, 힘을 받쳐 내고, 서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 있는 사람처럼 조각의 직립에도 관심이 있답니다. 누워만 있던 신생아가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서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처럼, 조각이 뉘어 있고 어딘가에 박혀서 세워지고 매달리는 일은 쉽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서 있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에요. 은유를 섞어 번역하자면, 불가항력(중력)에 대항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질량과 무게를 오롯이 체화(직립)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저는 조각이든 사람이든 직립하고 자립하는 것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실제 스스로 설 수 없는 모양의 조각이 평면 위 드로잉으로, 페인팅으로 직립한 채 존재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아직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민 중입니다.

작가님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태도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남들보다 무척 예민해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죠.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잘 빠져나오기 위해 터득한 태도가 있어요. 특히 정신적으로 손상이 왔을 때, 저를 ‘저 자신’으로만 보지 않고, 현재 ‘우한나’라는 사람의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왜 이런 결과가 생겼고, 이게 치명적인 건지, 지나갈 만한 문제인지, 지나간다면 어떤 과정으로 인정하고, 혹은 무시하고 이 끔찍한 상태를 빠져나갈지 고민해요. 마치 자신을 어떤 서사 속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멀리서 그 주인공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조금은 남을 덜 탓할 테고, 저를 통해 문제를 풀어낸 기분이 들어요. 결국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저를 구할 수 있는 건 저 자신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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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삶의 태도와 가치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부끄러울 정도로 제 가치와 태도가 드러나요. 바느질의 촘촘함, 천을 다루는 방식, 그 모든 것의 마감, 그에 대한 타이틀은 저의 태도와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죠. 그렇게 작업을 할 때면, 현저히 적게나마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저와 비슷한 에고의 미지의 인물을 떠올리곤 해요. 제가 아닌 저와 정말 비슷한 누군가에게 제 작업이 공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계속 발견하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자극을 주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작은 자극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호기심은 무언가에 빠져들게 이끌죠. 시각이든, 청각이든, 평소에 감각기관이 바로 발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버티는 노하우는 딱히 없어요. 늘 정통으로 부딪히고 깨닫는 편이에요.

Artist

우한나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다. 패브릭을 재료로 한 조각과 설치가 주된 매체다. 2019년부터 웨어러블 오브젝트, 2020년부터 회화 작업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전에 참여하며 작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hannah.flashed.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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