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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진심을 거듭하기

Writer: 나무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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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나무13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경쾌하고 매력적인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작업은 많은 사람과 브랜드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시작은 우연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작업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꼼꼼하고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임한 인터뷰에도 확실하게 각인되었어요. 명언이 너무 많아서 계속 읽어보게 되는 나무13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나무13’입니다. 서브컬처 및 오프라인 상업 매체의 그래픽 요소에 영향받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힘이 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전역한 후 누나가 자취하던 서울로 별다른 비전 없이 올라왔던 게 2017년 11월이었어요.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림 그리기와 포토샵 기술, 딱 그 정도였습니다.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겠다고 이거저거 해볼 때 다른 사람 작업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깎여나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긴 한가’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오래 좌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킬라킬KILL la KILL›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어요. 역동적인 선과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문득 ‘나도 저렇게 그림을 그려볼까?’ 하면서 누나의 아이패드를 꺼내 그림을 그렸던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옛날 잡지, 음악, 팝스럽고 키치한 것을 모조리 섞고, 타이포도 넣어서 뭔가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내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어요. 일상의 도피처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렇게 그린 결과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웠지만,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를 하기 시작했어요.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이런 생활을 반년 정도 꾸준히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소니엔터테인먼트코리아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외주를 받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져서 얼렁뚱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멋없는 얘기지만, 저도 모르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버렸네요.

‹Love and Peace›, 2020

‹Mega Beer›, 2021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실을 구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방 한 칸에 짐을 다 때려 박아두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오디오, 브라운관 TV, 조명…누군가는 제 방에서 골동품 냄새가 난다고 해요. 저 역시 동감합니다. (웃음) 책상은 원래 깨끗하게 유지하는 걸 선호하지만 지금 사는 곳은 좁기 때문에 여기저기 수납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냥 늘어놓은 상태예요. 그래서 영양제가 놓여 있기도 한데요. 때가 되면 화판과 라이트 박스, 작화지 및 온갖 미술 용구가 책상의 절반을 차지한답니다. 드물게 실물 작화를 할 때요. 작업과 수면이 공존하는 단칸 창고 같은 방이라서 설명할 요소가 없기에 부끄럽네요. 다른 분처럼 화려한 작업용구가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중에 이사 가거들랑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초기에는 일본의 쇼와(昭和) 시대―1926년 12월 25일~1989년 1월 7일―후기에 나온 음악, 식품,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당시 활동하던 작가의 아트워크도 자극을 줬죠. 그래서 초창기 작업에서는 쇼와 느낌이 지금보다 더 짙어요. 지금은 그 스펙트럼을 넘어 오디오 기기와 가구까지 제 작품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음악만 하더라도 예전엔 시티팝만 애청했는데, 이제는 재즈나 한국 인디 음악까지 두루 듣고 있죠. 이제는 무엇이라고 지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처럼, 그림 역시 바뀌니까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어렵네요…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면 이 정도 아닐까 싶어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면 딴짓을 합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르거나 갖고 싶어지면 아이패드로 스케치를 시작해요. 그리고 일하다 중간중간 쉬는 겸 개인 작업을 하는 겸 그 스케치를 구체화합니다. 프로크리에이트로 채색까지 완료하면 컴퓨터로 옮겨 포토샵으로 타이포그래피를 얹히고 필터를 활용해 완성합니다. 근데 이렇게 설명하는 게 맞나요?

‹A Short Vacation›, 2022

‹Sound Round – ROOM›, 2020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Maison Kitsune›(2022), «Kitsune Magazine»(2022)
메종 키츠네와 공식으로 협업한 아트워크입니다. ‘매거진 키츠네’라는 콘셉트로 잡지를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잡지 콘텐츠에는 아트워크가 여러 종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저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었기에 굉장히 뜻깊은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더 잘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도록 도와준 작업이라, 앞으로도 자주 떠올릴 것 같습니다.

‹OHKA Baseball -2-›(2022)

제가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설정한 여고 야구 동아리 이야기입니다.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지만) OHKA는 제 고향인 대구의 지명을 한자로 바꾼 뒤 일본식으로 표기한 이름입니다. 이 외에도 같은 시리즈가 제법 있는데, 하나같이 제가 딸처럼 여기는 그림이라 애착이 가요.

‹Maison Kitsune›, 2022

«Kitsune Magazine», 2022

‹Maison Kitsune›, 2022

«Kitsune Magazine», 2022

‹OHKA baseball›, 2022

‹Kagari Kissa -4-›(2022)

‘킷사텐(きっさてん)’ 이라는 일본 특유의 찻집에 대해서 여러모로 관심을 가지던 때가 있었어요, 제가 카페를, 킷사텐을 차린다면 어떤 느낌으로 진행할까 궁금해서 로고와 아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린 네 가지 종류가 모두 콘셉트가 달라요. 그만큼 하고 싶은 찻집의 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증거겠지요.

‹Tobacco›(2019)

제가 우울감을 느낄 때 나오는 작업은 대체로 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잘해 나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때에 그렸습니다. 여름밤이었던 것 같은데요. 한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영감을 얻던 때라 그런지 자막까지 넣어가며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그림이에요.

‹Kagari Kissa -4-›, 2022

‹Tobacco›, 2019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이해, 그리고 표현의 방식입니다. 말이 좀 거창한가요. (웃음) 사실 별 건 없고 그냥 좋아하는 것을 그릴 때 좀 더 깊이 관찰하고 이해한 후 실행하면 더욱 좋겠다는 얘기입니다. 그저 유행하기 때문에, 팔리기 때문에 그린다는 식의 접근은 제가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따라 그린 그림이 잘 되길 바라는 건 확정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고집 때문에라도 저는 하나를 그려도 좀 더 멋지게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합니다. 전 아직 성장 중인 그림쟁이예요. 그렇기에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진심을 거듭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어요. 제 말이 너무 자의식 가득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아무튼 전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면이 그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어떠한 작품인지 콕 집어서 설명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만족하는 부분이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 제 작품에서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거의 없어요. 늘 완성 후 ‘이게 최선이었나? 좀 더 시간을 썼으면 이보다 나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하죠. 물론 작업하는 당시에는 열심히 하지만 완성본을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레이아웃에서 개선해야 하는 점, 개체 표현에서 미숙한 점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해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게 좋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개선의 여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JK Magazine POP-UP STORE IN TOYKO CULTUART by BEAMS, 2021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건강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가 공존하는 생활 패턴이에요. 오전 10시~12시쯤 느지막이 일어나서 메일 및 처리할 사안을 확인하고 운동을 다녀옵니다. (일이 바쁘면 안 갈 때도 많아요.) 그 후 늦은 식사를 하고, 잠시 넋을 놓은 채 무념무상 인터넷 여기저기를 보며 정신을 깨웁니다. 오후 5~6시 정도 되어야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때부터 새벽 2~3시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요. 바쁘지 않을 땐 12시쯤 일을 멈추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봅니다. 혼술도 자주 하고요. 규칙적이라면 규칙적인 생활이지만 바이오리듬이 일반인과 다소 다른 느낌이 적잖아서, 건강을 위해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역시 쉽지 않네요.

‹Type!-city›, 2021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강과 이사입니다. 의자에 장시간 앉다 보니 좌골신경통이 심해졌습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자세를 제대로 할 걸’하며 후회 중이에요. 다리가 너무 저려서 눕지도, 엎드리지도 못할 땐 과거의 저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리고 마감에 쫓기느라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잦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을 때도 많아서 최근엔 영양제를 잔뜩 사서 먹고 있어요.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 피로감이 덜하네요. 

이사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 지금 사는 자취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요. 좋지 않은 말이 나올까 봐 조금 말을 아끼겠습니다. 3년 전부터 ‘내 집을 갖고 싶다’, ‘집을 꾸미고 싶다’는 갈망이 심해져서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요. 너무 무리하지 않고 제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지만, 주변 어른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서 독단적으로 행동하진 않고 있어요. 제 맘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늘 그립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무 일도 안 할 때도 있고, 그냥 될 때까지 아무거나 그릴 때도 있어요. 손을 놀리다 보면 뭐가 되든 하나쯤 얻어걸릴 때가 있는데요. 여기에 몰두하면 다시 내면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평소에 슬럼프 아닌 상태가 잘 없기 때문에 영 답이 없겠다 싶을 땐 누워서 자버려요. 극도의 슬럼프에는 영감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입니다.

«極小vacance», 2021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대할 것. 그리고 이를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할 것. 물론 저라고 늘 완벽하게 지킬 수 있지는 않아요.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자주 있고요. 그래도 다시금 원점을 생각해볼 때마다 늘 저 말이 그 중심에 있더군요. 제가 저일 수 있는 상태를 늘 고민하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저도 아직 미완성인 사람이기 때문에 노하우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저로 인해 어떠한 종류의 영향을 받을 때 좋은 방향으로 자극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러한 조언은 피하고 있습니다. 결국 여기에 대한 팁은 자기가 처한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며 저절로 체득한다고 생각해요. 다소 책임감 없는 대답으로 들릴까 염려되지만, 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Sound Round›, 2022

‹Hanabi›, 2022

‹Sound Round›, 2022

‹Hanabi›, 2022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꽤 재밌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영감을 주는 사람. 그렇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여기에 대해선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내일도 미래라고 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날씨가 맑을 것, 커피가 맛있을 것, 그리고 너무 바쁘지 않을 것…지금의 저에겐 가장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너무 생각 없이 말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부끄럽기도 한데요. 그냥 그림 그리기에 좋은 환경이길 바랄 뿐입니다.

Artist

나무13은 서울에 기반을 둔 일러스트레이터다. 레트로 풍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 오가며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옛날 잡지와 포스터를 좋아해 타이포그래피와 팝 무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병합한 포스터 형태의 아트워크를 주력으로 전개한다. 난해하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되는 그림을 지향한다. 메종 키츠네, 로에베, 아디다스를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와 끊임없이 협업하면서, 단체전에 20여 회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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