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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부숭부숭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것들

Writer: 띠로리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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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허술해 보여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작업을 소개합니다. 띠로리 작가는 현실의 작은 모순을 귀엽고 가여운 인형으로 풀어낸답니다. 부숭부숭하고 귀여운 작업을 들여다보면 이 작은 친구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아야할까 궁금해져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띠로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은 B(A)SHOP을 통해 소장할 수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형 작업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인 인형은 귀엽고도 가여운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빼어나게 군더더기 없는 형태라기보단 어딘가 허술해서 귀엽고 또 웃긴 기분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듭니다. 이를테면한입거리 쥐방울은 한입에 털어 넣어도 될 만큼 보잘것없이 작고, 또 한 주먹 거리도 안될 것처럼 약해 보여요. 그래서 마음이 쓰이고 왜인지 곁에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이처럼 무언가 가슴이 미어지는 이름과 형태를 담아 주변 사물이나 동물을 닮은 인형을 만들고 있답니다. 저의 활동명이 ‘띠로리’인데요. 처음으로 제 인형을 볼 때 사람들 머릿속에 어떤 멜로디가 울려 퍼질까 하는 호기심에서 붙이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형들을 더 소개해볼까요. 클래식 오므라이스는 일본식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 오므라이스 메뉴를 표현한 것인데요. 대충 흘린 듯한 온화하고 묘한 케첩이 미소처럼 입가에 새겨져 있습니다. 또 헤비 스모커 캣은 담배를 하드하게 피우는 불량하고 유쾌한 고양이 인형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만든 인형이고요. 비교적 최근에 제작한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눈치보는 스탠드는 방 안에 있는 집기와 소품을 재현한 연작인데요.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는 미식가 생쥐를 위한, 거의 모든 치즈의 정보를 적은 치즈백과라는 콘셉트의 책 모양 인형이고, 눈치보는 스탠드는 진짜 스탠드가 아닌 걸 들킬까 봐 눈치만 보고 있는 스탠드 인형이랍니다.

클래식 오므라이스› © 띠로리 소프트

클래식 오므라이스› © 띠로리 소프트

헤비 스모커 캣› © 띠로리 소프트

해당 작업에 대한 계기와 콘셉트가 궁금합니다.

한입거리 쥐방울은 친구가 일본에서 사다 준 고양이 모양 동전 지갑 구석에 있던 손톱만 한 생쥐 모티브를 보고 시작했어요. 너무나 미물 같아 잘 보이지도 않던 그 생쥐가 매우 귀엽고 눈에 띄어서 제가 직접 만들어 가지고 싶었습니다. 시중에 있는 공산품 인형은 형태적으로 완전하고 훌륭하지만, 어떤 전형성을 다들 가지고 있잖아요. 스마트폰 이모티콘에 있을 법한 모양만 용인하는 것 같달까요? 그런 게 저는 아쉽더라고요. 사실 저는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의 생쥐 인형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고양이용 장난감으로는 존재하지만, 고양이가 마구 갖고 놀 수 있게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든 희미한 모양이죠. 그래서 일전에 가지고 있던 자투리 원단과 손바느질로 무작정 만들어본 게 한입거리 쥐방울의 시작입니다.

클래식 오므라이스는 별다른 고민 없이 형태의 재현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평소 저는 모형 음식처럼 생긴 요리를 좋아하고 그런 것만 먹는데요. 이런 저를 두고 친구들은 ‘기표만 먹는다’라고 말해요. 그런 음식을 먹으면 참 가짜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전 더 좋아요. 놀이공원의 푸드코트에 가면 이런 음식들이 참 비싼데 신기하게도 아무 맛도 안 나요. 생긴 건 모형과 똑같고요. 그런 게 참 묘하고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제 작업인 클래식 오므라이스도 가짜고, 또 먹을 수 없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그래서 더 가짜같이 생긴 음식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헤비 스모커 캣은 주변 친구들이 “이따 같이 담배나 피울 겸 만날까?” 말하곤 하던 것에서 가벼운 착상을 얻었는데요.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피울 때 같이 피울 동무를 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담배를 피우러 주섬주섬 나갈 때, 같이 챙겨나갈 동무 인형이 있으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건 고양이가 되면 좋겠다. 불량한 짓을 함께 할 친구로 고양이만 한 적임자가 없어’라는 사고의 흐름에서 탄생했습니다.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는 게임 아이템의 특성에서 착안했는데요.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템을 줍거나 얻게 되는데 그때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해당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몇 줄 나오죠. 그런데 그게 어떤 전설에 대한 책이라고 할 때 플레이어는 ‘전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적었다’란 문장만 볼 뿐 그 책을 직접 펼치지는 못하잖아요.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도 온라인 스토어에 ‘거의 모든 치즈의 정보가 적힌 치즈백과’라는 상세 설명이 있지만, 인형이기 때문에 펼쳐보진 못하죠.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책이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줄무늬가 새겨진 흰색 책 배와 ‘BOOK’을 적은 책 표지 뿐이죠. 사실 아무래도 좋은 허풍 같은 건데, 저는 이런 점이 모든 작품에 넣고자 하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해요.

눈치보는 스탠드는 어떤 집기의 외형을 굉장히 닮았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닮지 않은 인형입니다. 누구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한 형태의 조명인데, 인형이라 불을 켜거나 끌 수 없죠. 그래서 ‘언제 들킬까…’ 눈치를 보고 있는 콘셉트예요. 가전제품을 닮은 인형을 만들면 그 형태는 닮을지언정 기능은 전혀 없잖아요. 그런 인형을 보면 우리는 당연히 기능을 기대하지 않죠. 그런데 원형과 너무 닮아서 헷갈리고, 그래서 불을 켜려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아! 인형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인형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보았어요.

생쥐를 위한 치즈대백과› © 띠로리 소프트

눈치보는 스탠드› © 띠로리 소프트

작업에서 재미있는 점, 주목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유휴시간에 가끔 소설이나 시를 쓰는데, 제목을 짓는 게 좋아서 써요. 인형 이름 짓기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심하고 멋지게 한 단어로 지을 수도 있지만, 저는 구구절절해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입거리 쥐방울의 영어 이름은 ‘핑거 푸드 마우스Finger Food Mouse’라고 지었는데, 그 어감이나 느낌이 무척 재미있어서 혼자서 키득키득 생각하면서 웃어요. 핑거 푸드를 떠올리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저는 전시 오프닝 케이터링이 떠올라요. 케이터링 테이블에 한 아름 놓인 쥐방울의 이미지가 별안간 머릿속을 떠다니죠. 사람들을 만날 때나, 안 만날 때나 저는 말장난을 계속 생각하는데, 그런 게 작업할 때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일전에 제 인형을 소장하신 분이 “띠로리의 인형은 귀여운데 웃기고, 웃기는데 매력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게 제 작업의 중심 모토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마냥 귀엽기만 한 것을 보면 왜인지 심술이 나서 귀엽지 않다고 느끼곤 하는데요. 그래서 꼭 웃기거나 허탈한 요소를 넣으려고 해요. 이 점을 알아봐 주고 즐긴다면 제 작품을 잘 바라보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작업하면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혹은 사람들의 작업에 대한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특별하다기보단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요. 인형을 만들다 보면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요. 패턴을 그리기도 여전히 쉽지 않고, 원단과 부자재도 한 번에 딱 맞게 하지 못해서 여러 후보를 사두었다가 보관만 하고 있을 때도 많죠. 그럴 때는 저도 마르게 자책을 하는데, 신기하게 이때 겪으며 쌓는 시행착오가 새로운 작업의 토대가 될 때가 많아요. 패턴도 그렇고, 영 쓰임새를 찾지 못해 보고만 있던 원단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인형을 떠올리게 된다던가… 오히려 그런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좋은 인형들이 많은 것 같아요.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일까요? 그래도 제게는 작업할 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 친구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서 한입거리 쥐방울›을 소중하게 양손으로 쥐고 가만히 보고 계신 분을 봤다고 전해준 적이 있어요. 저는 오프라인 스토어를 운영하지도 않고, 주로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만 하므로, 제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체감하기가 힘든데요. 이렇게 제가 만든 인형을 실제 구입하고 소중히 들고 다니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 실감하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비애티튜드»는 창작자의 시선과 태도, 처해 있는 상황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기본적으로 지니는 태도나 관점이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해요. 제가 말하고 싶고,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을 창작하려 합니다. 유년 시절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 중 임주연 작가의 『CIEL』이란 게 있어요. 그 만화에는 신적인 인물로 마리온에버릿이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그녀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존재들이 있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아무 힘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을 쓰러뜨릴 만한 아주 강한 힘을 얻기 위해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련을 해서 결국 최초의 마녀가 된다는 설정입니다. 제게 그만한 거대한 사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작업할 때 저는 마리온에버릿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껴요. 작업해서 크게 성공하거나 알려지는 건 어렵지만 저는 계속해서 작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게 제 인생의 태도가 될 것이라는 건 보지 않아도 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멋진 작업을 막 만들어 냈을 때가 아닐까요?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딱 두 가지 있는데요. 수영할 때와 훌륭한 작업을 해냈을 때랍니다. 그다음으로는 제가 넌지시 작업에 담으려 노력한 요소를 사람들이 알아봐 줄 때 기쁨을 느껴요.

‹하와이안 스위머 캣과 나이트 스위머 캣› © 띠로리 소프트

한국에서 창작자로 홀로 살아남기란 참으로 힘든데요. 혹시 어려움을 겪어보셨는지요.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학부 시절 조소를 전공했는데 가장 고민하던 지점이 제 작업을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무겁고 돈이 많이 드는 재료로 밤낮없이 매진해서 작업해도 그걸 팔 수 없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죠. 아무리 예술에 대해 값을 매길 수 없다 해도, 그건 농담을 조금 섞어서 악의적인 클리셰이고, 그동안 예술가는 현실적인 가난을 겪게 되잖아요. 이것 또한 엄연한 노동인데 제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다 인형을 만들어 팔면서 무척이나 기뻤지만, 학부 시절에 가졌던 의문은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인식의 지형도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극복하기에 더 어렵지 않나 싶어요. 더불어 저는 수제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늘 공산품의 입지와 견주어보는 시선에 놓이게 되는데요. 인형이라는 장르에서 비롯하는 문제 같아요. 저 스스로 작업을 하려 노력하지만, 시장에서의 상품적인 면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창작자로서는 지난한 부분이죠. 하지만 딛고 넘었어야 할 문제라고 봐요. 이게 고질적인 종착점이 아니라 보다 더 합리적인 국면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힘’,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작업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버티는 힘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에 임하다 보면, 작업이 좋을 때는 오만해지기 쉽고 나쁠 때는 자신이 조그마해지기에 십상이거든요. 완벽주의에 매몰되기도 하고요. 오히려 손발을 가볍게 탈탈 털고,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꾸준히 하는 게 작업 면에서나 작가의 건강 면에서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Artist

띠로리소프트는 띠로리가 운영하는 오리지널 굿즈숍이다. 띠로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코미디 조각 연구가로 활동 중이다. ‘띠로리’는 당황스러운 순간에 주로 쓰이는 멜로디인 바흐의 오르간 연주곡 ‘토카타와 푸가’의 도입부에서 따온 이름이다. 귀여움과 가여움이 느껴지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인형과 스티커 등의 굿즈를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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