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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내 의자에 비친 우리 모습

Writer: 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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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정선우 작가의 세라믹 작품에는 ‘의자’가 자주 등장해요. 이렇게 의자에 집중하기 시작한 건 기존에 놓인 위치를 벗어나 거리로 버려진 의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동질감 느꼈기 때문이에요. 작가 자신도 사회에서 명확한 기능과 역할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는 아닌지 하는 의문도 계기가 되었죠. 그 결과 의자라는 사물이 일괄적 기능에서 벗어나 마치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듯한 새로운 사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며, 각각의 작품에 주변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주고 있어요. 이렇듯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 그리고 작업을 통해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고민하는 정선우 작가의 더 많은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라믹을 주재료 삼아 가구와 관련한 조각과 디자인 오브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Avery, 127 x 75 x 100mm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것을 그리고 만드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20대에는 미술의 영역 안에서 여러 분야를 시도한 끝에 현재 세라믹 분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제 조그만 작업실은 암스테르담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요. 네덜란드는 철거하기로 한 노후 건물을 실제 철거하기 전까지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작업 공간 또는 사무실로 대여하는 ‘안티크라크Antikraak’ 제도를 운용하는데요. 제 작업실도 안티크라크 건물입니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기에, 바깥세상과 떨어져 내면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어서 제게는 은신처 같은 공간이에요.

에토레 소트사스가 1981년 발표한 ‹Carlton Room Divider›. 멤피스 그룹의 대표작 중 하나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1950년~70년대 빈티지 가구 디자인, 1980년대 멤피스 그룹 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디자인하진 않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필립 스탁의 디자인을 모아둔 책을 접하며 가구 및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생겼거든요. 그 외에 옷 디자인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요. 무한히 다양한 실루엣, 컬러 조합, 보풀거리고 올록볼록 독특한 텍스처의 패브릭, 옷을 인체에 입힐 때와 인체 외부에 놓을 때의 차이 등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와요. 이렇게 다른 분야에서 영향을 받으며 제 세라믹 작업이 더욱더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해요.

정선우 작가한테 영향 끼친 멤피스 그룹의 오브제들이 모여있는 공간 사진.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상에서 마주한 장면 및 이미지를 바탕 삼아 목적 없는 드로잉을 습관적으로 남겨요. 주로 추상화, 단순화한 라인과 형태로 표현하는데요. 평소에 축적한 추상 드로잉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어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드로잉북을 훑어보며 적합한 드로잉을 골라 그 출발점으로 삼거든요. 일단 출발하면 이제 작업이 그 드로잉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둡니다. 결과물을 미리 계획하지 않고, 최대한 직감적이고 그 순간에만 가능한 선택을 하도록 저 자신을 가볍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무거운 진지함은 자유로운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가벼움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선우 작가의 작업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드로잉 작품 ‹Free Drawing›, 2020, digital drawing on iPad, ‹Free Drawing›, 2017, pencil, marker on paper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2021년 졸업 프로젝트 «Reconfigured Chairs»는 거리에 버려진 의자를 주워서 그것을 관찰하고 분해하거나 때로는 다른 사물과 결합하는 행위를 일종의 놀이로써 반복한 프랙티스의 모음입니다.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리며 기존에 놓인 위치에서 거리로 버려진 의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나도 내가 속한 사회에서 명확한 기능과 역할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의자와 비슷한 존재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이를 더 관찰해 전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2021년 졸업 전시 «Reconfigured Chairs» 전시 전경, 장소: 암스테르담 Gerrit Rietveld Academi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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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Pool, 46 x 48 x 86cm

‹Exhausted›, 72 x 120 x 38cm

예를 들어, 주워 온 클래식 ‘토넷Thonet’ 의자의 라탄 좌판을 관찰하다가 탄생한, 벽에 거는 조각 작업 ‹Woven seats›에서는 전통 나무줄기 위빙 테크닉을 유튜브에서 배운 후 재료를 바꾸어 따라 해보기 시작한 작업이에요. 좌판을 지탱하는 링 형태의 프레임은 세라믹으로 만들었죠. 인체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테크닉에서 기존 재료를 세라믹, 실처럼 내구성이 약한 재료로 교체하자 기능이 빠지고, 테크닉이 무의미해지는 과정을 경험했어요. 이 노동 집약적, 시간 소모적인 행위가 마치 명상처럼 느껴졌고, 사물의 목적보다는 이를 구성하는 물질 간의 긴장과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Woven seats, 59 x 76 x 1.5cm

지금도 진행 중인 ‹Tiny Friends› 프로젝트는 다양한 세라믹 미니어처 의자의 모둠입니다. 코로나 봉쇄가 시작되며 집에서 큰 조각 작업을 못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집에서 가능한 작은 작업으로 시작했다가 이후로도 계속된 작업이죠. 기능적인 도구를 지닌 의자 만들기가 아니라 그날그날의 일상적인 감정을 다양한 형태와 색, 표면으로 표현한 행위의 축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의자라는 사물의 일괄적 기능에서 벗어나 마치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듯한, 새로운 사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각 피스에 제 주변의 친구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기한을 두지 않고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정선우 작가의 ‹Tiny Friends› 프로젝트를 관객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 © Pierre Banoori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에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지 않는 것이에요.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작업이 그 자체로 어떠한 목적을 가진다기 보다는 어떤 종류의 순수함을 띄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명료한 목적성으로 가득한 목표 지향적 성향에 염증이 나서 이를 빼내고 비워내는 행위적 실천을 하는 작업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사진 제공 © Pierre Banoori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생각이 자주 바뀌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최근 생각에 한정해 말씀드릴게요. ‹Tiny Friends› 작업을 통해 매일 실천하는 조그맣고 사소한 행위가 쌓여 시간이 흐른 후 하나의 집합체로서 마주할 때 생긴 에너지, 개체의 집합 그 이상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 무척 놀라웠어요. 매일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며 가끔 ‘내가 뭘 하고 있지?’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런 에너지를 마주할 때 일종의 위안을 느끼게 돼요. 반대로 고민스러운 부분은 어린 시절 시작한 관심사에서 시작해 오랫동안 다룬 주제가 다소 인간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근본적으로 고민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좋아서 하는 창조 행위를 통해 세상에 보이는 결과물이 지구 환경 오염에 일조한다는 자괴감도 들고요. 지속해서 고민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Helen, 87 x 67 x 137mm

Gary, 95 x 83 x 122m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잔잔한 하루의 반복입니다. 그 반복적인 순간에 몰입하다 보면 늘 조금씩 새로운 차이를 경험하는데요. 이런 차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적인 삶의 태도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노력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껏 긍정해왔던 것에서 부정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태도… 답을 찾기 어렵지만, 최근 저의 주된 질문이자 관심사입니다.

Paul, 73 x 100 x 90mm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욕심부리지 않기’가 삶과 작업을 대하는 공통적인 태도인데요. 세라믹 작업은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음’과 ‘통제 불가능함’을 동시에 다루게 돼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적절히 개입하고, 그 외에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받아들일 때 우연의 효과가 마치 선물처럼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세라믹 작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작업을 통해 삶의 태도를 많이 배워간다고 느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창작 행위의 결과로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하루하루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지속하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면 더욱 오랫동안 기쁜 마음으로 창작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순수함과 따뜻함을 품은, 미소가 지어지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 © Almicheal Fraay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끔 지금 생활이 꿈만 같다고 느낄 때가 있고, 과연 미래에도 ‘이런 꿈같은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들곤 해요. 지금처럼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작업에 할애하는 환경을 유지하는 상황이 미래에도 계속된다면 이상적일 것 같습니다.

Artist

정선우는 네덜란드 헤릿 릿펠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에서 세라믹을 전공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세라믹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일상적 물건의 기능, 효율성과 명확성을 탐구하고 질문한다. 발견물(found object)을 세라믹과 병치하고 합치면서 원래 기능을 모호하게 하거나 부재의 환영 같은 착각을 부르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의 형태와 기능의 관계를 실험하고, 일상적 오브제의 디자인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최근 암스테르담의 유명 편집숍 ‘프로즌 파운틴The Frozen Fountain’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결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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