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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피규어 작업을 한다고 오타쿠는 아니라구요

Writer: 돈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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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돈선필 작가는 태평한 작가가 꿈이에요. 현재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작품으로 만들어냅니다. 특히 그는 피규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드는데요. 피규어의 캐릭터에 담긴 여러 사람의 기호와 이미지가 자기 취향이 아니더라도, 뜯어고치기보다는 관망하며 지켜봅니다. 느긋하게 누워 그릇에 담긴 당근만 골라내는 나무늘보처럼요. 의지는 있는데 애착은 없고, 탐착하지 않은 채 초연하게 살아가려 하죠. 안분지족의 삶을 꿈꾸는 돈선필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작업하는 돈선필입니다. 평소 관심사를 입체 조형물이나 영상 작업 등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상이 주로 서브 컬쳐 축에 속해, 종종 오타쿠로 오해받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한 분야에 몰입을 못 하는 성향이라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적당히 수입을 버는 게 작은 바람이었죠.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작가라 불리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포트레이트피스트Portrait Fist», 아트선재센터, 2020

«포트레이트피스트Portrait Fist», 아트선재센터, 2020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집과 레지던시를 전전하다 작년에 처음 개인 작업 공간을 만들었어요. 10평 남짓한 공간에 실제 작업 공간은 절반 정도인 작은 규모의 작업실입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이라 집보다 시설이 좋고 내부가 상당히 쾌적해요. (웃음) 완성된 작업은 다른 곳에 보관해두고 작업실에는 수집품과 책만 복작복작하게 쌓아두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트위터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어요. 10년 넘게 이용하고 있는 유일한 플랫폼인데요. 그동안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타임라인 덕분에 흥미로운 것을 자주 발견하게 돼요. 누워서 영감도 받을 수 있는 낭만적인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웃음)

«끽태점», 아라리오뮤지엄, 2019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보통 작업실에 멍하니 앉아 인터넷을 뒤적거리거나, 생각을 언어로 정리해봐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나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모호한 문단으로 글을 쓰는 거죠. 원래 드로잉이나 모형 등을 만드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기억력이 가물거려서 포스트잇에 낙서처럼 그림 메모도 남기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해요. 어떤 점에 중점을 두셨나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제 작업을 관통하는 한결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감정이나 생각, 개념이나 느낌처럼 모호한 영역을 구체적인 사물처럼 다루는 태도, 혹은 그것을 반영한 물건에 집중하는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피규어에 눈이 계속 가요. 대부분 피규어는 캐릭터라는 기호와 이미지에 의지해서 탄생하는 결과물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천여 명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에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뤄낸 성과가 또렷한 형상을 띤다는 점을 작업에 자주 적용하는 편이에요. 지난해에 작업한 ‹정동 현상 표본(Specimen of affect phenomenon)› 시리즈와 ‹자본주의의 고양이(Cat of Capitalism)› 시리즈에서 이미 세상에 존재하여 쓰이는 형태를 다시 활용하는 행위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대화할 때 일정한 법칙이나 사회적 약속 안에서 언어를 조합해 쓰잖아요. 이처럼 이미 저에게 주어진 사물들이 작업의 최종적인 모습을 결정해요. 이런 과정에서 작가인 저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닌 것도 많이 개입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고치기보다 관망하며 지켜보게 되네요.

‹정동현상표본(SAP) Metamorphosis›, 2022

‹정동현상표본(SAP) Error+Conservation›, 2022

‹자본주의의 고양이_그리퍼 Cat of Capitalism_gripper›, 2022

‹자본주의의 고양이_앵거 Cat of Capitalism_anger›, 2022

‹자본주의의 고양이_트롤러 Cat of Capitalism_troller›, 2022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내와 주로 시간을 보내요. 생활 범위가 비슷해서 같이 움직이다 보니, 비교적 규칙적으로 지내고 있어요. 남는 시간에는 게임을 하거나 영화, 혹은 드라마를 몰아봅니다.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모아두었다가 해치우려는 성향이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여가보다는 일의 연속 같기도 하네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전시 준비를 위해 미소녀 피규어에 대해 열심히 리서치 중입니다. 피규어 장르 중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상 중 하나죠.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정보가 산발적이라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만 피규어 커뮤니티를 살피다 보면, 미소녀 피규어의 기저에 깔린 욕망 등 어두운 면도 자주 접하게 돼요. 어느 순간 그 심연이 저를 보는 것 같아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네요.

«조각충동»,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22

«SADER x SABER», 미도파, 2021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수년 전부터 애정을 품은 짧은 영상 클립이 있어요. 나무늘보가 느긋하게 누워서 그릇에 담긴 당근만 골라서 먹는 장면이에요. 저희 고양이만 하더라도 음식에 엄청나게 집착하곤 하는데, 영상 속 나무늘보는 접시도 보지 않고 다른 야채를 무려 골라내면서 당근만 편식해요. 의지는 있는데 애착은 없고, 탐착하지 않은 채 초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묘한 감동을 줍니다. 아마 제가 비슷한 태도로 작업에 임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목표는 있지만, 목적을 위해 지나치게 애쓰지 않고, 현재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자세 말이죠. 이런 태도가 작업에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는 어떤 분야에 무척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게는 슬럼프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만약 슬럼프가 온다면 기쁠지도 모르겠네요. 작가로서의 정점을 지났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함께 사는 고양이가 연초에 신부전 말기를 진단받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졌어요. 막연하게 상상하던 이별이 갑작스레 찾아오게 되어서 마음의 준비가 쉽지 않네요. 남은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데요. 앞으로 제 삶에 더 많은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있어요.

«괴·수·인 Kai·Ju·People», YPC스페이스, 2022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무엇이 되건 간에 오래 마주하거나 반복적인 습관이 되면 피곤한 노동으로 바뀌고 지겨워지기 마련이에요. 시간 앞에서는 모두가 무력해지지요. 오랜 시간을 함께하려면 애정하는 대상에서 새로운 점을 발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애쓰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든다면, 아마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말하고 나니 뭔가 연애 상담 조언 같은데요. (웃음)

‹디버깅 스테이션Debugging Station›, 2019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태평한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두가 물질적인 풍요와 기술의 발전만을 바라진 않았으면 해요. 과거보다 조금 가난해질 순 있어도, 현재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미래 아닐까 생각합니다.

Artist

돈선필은 캐릭터나 사물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와 다양한 측면에서 소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작가다. 사회 속 크고 작은 사건을 ‘피규어’의 관점으로 정의하고 이에 어울리는 입체 조형물이나 서사적 영상을 제시한다. 개인전으로는 «괴·수·인 »(YPC스페이스, 서울, 2022), «Cats on Mars»(쿤스트할 오르후스, 덴마크, 2021), «Portrait Fist»(아트선재센터, 서울, 2020), «끽태점(喫態店)»(아라리오 뮤지엄, 서울, 2019), «METAL EXP :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취미가, 서울, 2018), «민메이어택 : 리-리-캐스트»(시청각, 서울, 2016) 등을 개최했고,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땅속 그물 이야기»(아르코미술관, 서울, 2022), «Fake it Real»(대만디지털아트센터, 대만, 2022)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피규어 TEXT : Wonder Festival Report』(킷타이텐, 2019), 『피규어 TEXT』(유어마인드, 2016) 등의 단행본도 출간했다.

결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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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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