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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제 조각품을 편하게 만져보세요

Writer: 차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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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장난감과 기계의 나라에서 태어난 차슬아 작가는 만화, 영화, 게임 속에 등장할 법한 물건을 입체 작업으로 만듭니다. 그는 전시장에 놓은 작업을 만지지 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손대기를 권유하는 엉뚱한 면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조각을 더 가까이서 감상하고 제대로 경험하는 장면이 즐겁기 때문이랍니다. 손가락을 구부릴 수 없을 때까지 작업하고 싶어서 요즘 스트레칭에 몰두하는 유쾌한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을 기반으로 입체 작업을 하는 차슬아입니다. 친구와 함께 만든 IAB STUDIO에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 작년에 이사 가서 이제 경기도민이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이것저것 만드는 일을 즐거워하고, 장난감, 게임, K팝을 좋아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애니메이터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생 때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物の怪)’를 보고 크게 충격받은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서 동시에 제가 보던 만화에서 튀어나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도 환장했죠. 만지며 놀 수 있고 그것이 내 거라는 확신이 들 때의 만족감이 제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갖고 싶은 것을 만들기 시작한 게 지금 작업의 근간이 되었어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업 도구를 공유할 수 있고, 작업 방식과 성격이 잘 맞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있는 점이 좋더라고요. 작업의 기본은 ‘정리 정돈’이라는 신념 아래 최대한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작업을 하다 보니 꾸준히 정리와 청소를 안 하면 작업을 진행하는 데 방해가 돼요. 공간도 크지 않아 자주 버리지 않으면 금방 비좁아져서 대청소를 주기적으로 한답니다. 이제 청소도 제법 수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ancient soul++» 전시 전경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음… 90% 가까이 게임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나머지 10%는 자연물에서 얻고요. 게임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스토리라인에 매료되기보다는 시스템이나 이미지 자체에 더욱 흥미를 느낍니다. 아이템의 생김새나 인벤토리에 보관하는 방식, 데리고 다니는 펫, 마법 기운을 이용하는 장치, 지도의 모양 등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선 저는 레퍼런스 이미지를 많이 모아두고 시작하는 편입니다. 게임 중 캡처한 스크린숏과 직접 찍은 사진, 그동안 샀던 물건을 바라보다가 떠오르는 것을 스케치해보곤 해요. 크기나 색, 무게 같은 것도 처음부터 미리 다 정해두는 편이에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상상한 첫 모습의 스케치가 나중에 완성한 작업과 거의 똑같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재료 실험 시간을 따로 갖습니다. 실험에 성공해서 마음에 드는 방법이 나오면 물성과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작업을 구상하기도 해요.

«PET» 전시 전경

«PET» 타이틀 이미지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올해 여름에 «PET»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했습니다. 게임 속 플레이어와 동행하는 ‘펫’의 기능과 진화 개념을 조각과 이어 붙였어요. 점점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돌멩이도 기르는(?) 모습을 접하고 나니 조각도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려조각’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를 반겨주는 강아지와 고양이,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적, 감정적 교류가 생기듯 조각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조각을 더 가까이서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전시장에 가면 관객과 작업 사이에 암묵적인 거리감이 있다고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입체 작업은 공간에서의 부피감과 물성이 중요한데 눈으로 보기만 할 때보다 손끝으로 만지거나 두 손으로 들어보았을 때 경험하는 폭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간 쌓인 미술 작품의 가치나 다른 작가분의 성향과 가치관 또한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다 만져보라고 주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 작업은 구경 온 사람 모두가 좀 더 편하게 접하면 좋겠습니다.

«the floor is lava» 전시 전경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전시 도중 전시장에 들렀다가 작업 위치가 살짝 바뀌어 있는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누군가 만져보고 다시 조심스럽게 놓아두는 모습을 상상하면 즐거워요. 하지만 전시장 관계자분들은 저 때문에 항상 고생이 많으시죠……작품이 파손되는 부분을 걱정하셔서 전화도 자주 주시고 염려하시는데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불만족 사항은 아니지만, 전시 작업을 만져도 된다는 저만의 규칙 때문에 아무래도 판매가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이름 모를 사람이 주물럭거려 조금은 지저분해진 작업을 사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이 부분은 제가 해결할 장기적인 숙제라고 생각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년 이사를 했는데요. 드디어 그간 모았던 장난감과 만화책, 음반을 정리해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어요. 원래 운전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친구들 만나러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이사를 기점으로 제 방에 정을 많이 붙여서 집에서 노는 시간이 꽤 많아졌습니다.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장난감 자세를 바꿔서 다시 진열하고, 해가 뜰 때까지 게임도 합니다. 아주 가끔 피규어 쇼핑을 가고, 연예인 생일 카페도 가고. TV를 틀어두고 밤새도록 수다 떠는 날도 꼭 필요하답니다.

«ㅁ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 전시 전경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균형’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하는 일도 즐겁고,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도 재미있어서 두 가지 일 사이의 균형을 잘 조절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잘 아는데 만약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면 분명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게 피로해질 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지금처럼만, 무탈히 걱정 없이 쭉’ 지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스트레칭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한없이 망가뜨린 몸의 균형을 다잡고, 굳어버린 관절에 기름칠해주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무엇이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확실히 알아서 딱 그 정도까지만 일을 저지르자는 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제 작업의 규모는 ‘저 혼자 들 수 있는 정도의 무게와 크기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결정합니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아요.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정도가 여러모로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욕심이 없는 편이고,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주 얕은 슬럼프가 종종 찾아오는 것 같긴 한데요. 침체하는 기운을 느낄 때 ‘이거 슬럼프다!’라고 딱히 정의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그런가 보다~’ 받아들이는 편이죠. 게다가 어떤 일을 오래 붙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서 금방 까먹고 지나가 버리는 것도 일종의 극복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이겨내고 극복하려고 애써 싸우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레이(グレイ)›, 2022, 석분점토, 아이소핑크, 동선, 노끈, 70 x 118 x 89cm

‹그레이(グレイ)›, 2022, 석분점토, 아이소핑크, 동선, 노끈, 70 x 118 x 89cm

‹파노삐(パノッピ)›, 2022, 천사점토, 스티로폼, 140 x 15 x 90cm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세차…입니다…내부 세차를 안 한 지 정말 2년 가까이 됐어요. 며칠 전에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와 누적된 매연 국물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 상태로 또 계속 그냥 다니고 있습니다. 조금만 일찍 출근하고 이동하면 충분히 세차 시간을 만들 수 있는데 왜 계속 미루게 되는지 정말 저 자신이 답답합니다. 이번 기회에 꼭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일이 금전적으로 직결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상황이지만, 아니라 해도 좋아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 마음을 주고 푹 빠져서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삶의 활력이 된다고 맹신하고 있어요. 아,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함께 기뻐하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mmm» 전시 전경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마음, 그런 애정과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창작물을 접할 때 개인의 기호와 상관없이 만든 사람의 집요한 애정이 느껴지면 더 호감이 갑니다. 저 또한 제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되고,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즐거우니 이런 부분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은근히 계속하고 있는 사람. 가볍고 재미있지만 손재주는 꽤 괜찮은 정도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QUAD ALTAR›, 2022, 석고, 우레탄, 에폭시, 아크릴, 점토, 아이소핑크, 종이, 나무, 120 x 120 x 147cm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전시나 외부 활동과 관계없이 작업은 더 이상 손가락을 구부릴 수 없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봄, 가을이 남아 있는 한국 어딘가의 바닷가에 별장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건강한 삶…마스크 없는 가까운 미래. 농담이지만 진심이기도 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의 많은 부분이 큰 변화를 맞이한 건 사실이니까요.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족들과 친구들과 여행을 많이 가고 싶습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차슬아는 장난감과 기계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났다. 만화, 영화, 게임에서 탄생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가로서 게임의 다양한 문법과 실제 존재하는 사물의 사이즈 및 작동 방법을 탐구한다. 현재 IAB STUDIO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PET»(카다로그, 2022), «The Floor is Lava»(소쇼, 2019), «Ancient Soul++»(취미가, 2018)에서 조각과 게임의 유사성에 주목해 연구한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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