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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설렘과 확신의 순간

Writer: 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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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서인지 작가의 작업은 마치 마법 같습니다.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오거든요. 그는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 영원히 머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빠져나와야 하는 순간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싶은 본능을 작업으로 풀어냅니다. 다음 작업이 궁금한 창작자, 다음 작업을 계속 꿈꾸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서인지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서인지입니다. 제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순간을 붙잡아 그림으로 그려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졸업한 학교는 미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분위기였어요. 그때는 ‘굶어 죽어도 내 그림으로 벌어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뛰어나고 멋진 친구 사이에서 제가 취업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어요. 졸업 후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하나씩 포스팅하면서 계속 제 그림 좀 봐달라고 기약 없는 프러포즈를 했던 것 같아요. 막연하기도 했지만, ‘이 그림을 이런 식으로 사용해서 일하고 싶다’는 일종의 제안이기도 했죠.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을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졸업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잡지 «여성 중앙» 에 처음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기고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일을 이어가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운이 좋게도 ‘취업을 해야만 하나?’ 생각할 때마다 작업 요청을 받으면서 안도했죠. 한동안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만 집중했는데, 짧게 잘라 올려 놓은 졸업 작품 애니메이션 컷을 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EXO의 ‘Power’라는 곡의 리믹스 버전을 위한 비주얼라이저를 제작할 기회를 가지며 본격적으로 상업 애니메이션 작업도 병행하게 됐습니다. 적다 보니, 다시 인스타그램을 재밌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작업 아카이브의 목적이 짙어져서 작업 계정에 로그인하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 작업실 이사를 했어요. 짧게 짧게 공유 작업실을 써본 적이 있는데요, 출퇴근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메인 장비는 작업실에 두고 집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작업실을 구하는 절충안을 마련했습니다. 혼자 쓰는 작업실이 처음이다 보니 그동안 가졌던 로망을 가득 채우며 만끽하고 있어요. 제일 먼저 들인 것은 제 키보다 큰 크리스마스트리였어요. 작업이 디지털 기반이라 책상에 컴퓨터와 신티크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책상 자리를 제외한 공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면 마음이 설레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는 다른 일을 하거나, 일상에서 저전력 모드로 고민 회로를 계속 돌리게 돼요. 그러다 산책, 운전, 샤워 등을 할 때 쥐고 있던 고민의 답이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일상의 완벽한 분리는 이제 바라지도 않지만, 한때 작업에 대한 고민이 일상을 짓누르는 현실이 버겁기도 했어요. 이제는 적응이 좀 됐어요. 고민 회로를 계속 돌리는 일에 스트레스받거나 부담 갖지 않고,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캐치할 수 있는 탐색 모드를 켜두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만족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가장 친한 친구인 배우자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웹 이미지를 무작위로 골라 크로키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해요. 시선을 무심히 옮겼던 것을 찬찬히 살피며 그것이 가진 모서리를 펜으로 옮겨 그리면, 차분해진 생각의 수면 위로 이런저런 가능성이 떠오릅니다. 이런 때야말로 지난한 작업 과정 중 몇 안 되는 온전한 기쁨의 순간인 것 같아요.

‹Girls in the beach›, 2017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 첫 단계에서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여러 방향으로 스케치를 오래 하는 편이에요. 마인드맵도 자주 이용하고요. 이때 좀 뜬금없는 아이디어나 소스를 버리지 않고 이리저리 배치해서 재미있는 연결을 만드는 걸 좋아하죠. 낙서에 가까운 스케치 과정에서 소스가 많이 나올수록 다음 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줄일 수 있어요. 그다음 조잡한 소스를 정리하고 다듬어서 레이아웃을 잡고, 본격적인 라인 드로잉에 들어갑니다. 컬러링의 경우, 키 컬러를 제외하고는 마무리 단계까지 계속해서 바꾸며 가장 나은 색 조합을 고르는 편이에요. 그래서 스케치와 전혀 다른 색감으로 완성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애니메이션 작업은 스토리보드를 그린 후에 키 비주얼을 먼저 잡고 들어가요. 때로는 두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요. 클라이맥스 부분의 이미지를 제가 만족할 때까지 오래 잡고 완성한 후 나머지를 키 비주얼의 완성도에 맞춰 완급을 조절해요. 그다음 움직임의 키가 되는 프레임, 즉 ‘원화’를 그려서 함께 일하는 애니메이터 친구에게 전달하면, 그가 중간 단계의 그림을 완성해서 제게 보내줘요. 이후 에프터이펙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레이아웃을 완성하고 전체적인 보정을 끝내면 전체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프로젝트의 스케일에 따라 두세 명의 협업자를 더 구할 때도, 혼자 전체 과정을 진행할 때도 있어요. 

‹Black Coffee›, 2022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작업은 기타 브랜드 ‘펜더Fender’를 위한 필름입니다. 작업의 자유도가 매우 매우 높았던 프로젝트로 그 동안 하고 싶은 것을 신나게 모아서 만들었죠. 제 강아지 ‘토르’ 군단이 펜더 페달을 매단 마차를 타고 달려 나가 우주의 소음을 내는 빌런을 물리치는 이야기예요. 당시 하고 싶었던 건, ‘강아지 토르를 주인공으로’, ‘마차를 타며 기타를 치는’, ‘거대한 무언가를 만드는 우주인’ 등이 있었고요. 토르처럼 귀엽지만 동시에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시리즈를 두 번 정주행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거든요. 펜더 측에서도 작업물을 좋아해주고 격려를 많이 하셔서 만드는 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벌써 재작년이 됐네요. (웃음) 그해 여름에 페기 구가 발표한 ‘I go’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페기 님이 꺼내주신 몇 가지 키워드를 엮어 이야기를 만든 후 짧지만 확실한 내러티브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했어요.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같은 느낌으로요. 뮤직비디오 작업은 음악이 접속사 역할을 기꺼이 해주기 때문에, 푸티지의 나열만으로도 영상 전체의 맥락을 전달하는데 큰 수고를 덜 수 있어서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할 수 있답니다. 이 작업은 저 스스로 스토리 위주의 작업을 전개하고 연출하는 일에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던 터라, 작업 내내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였죠.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만큼 만족스러운 부분에서는 훨씬 짜릿하기도 했고요!

 

이 작업을 계기로 작년 릴리즈한 아이스크림 브랜드 매그넘의 프로젝트에서 키 비주얼을 맡게 되었는데요. 애니메이팅팀, 촬영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어요. 이전까지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때마다 친구들을 모아 팀을꾸렸기에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타임라인 위에서 작업을 했는데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제가 당장 소스를 내놓지 않으면 팀 전체가 손이 비어버리는 규모라 초반 스케줄에 부담이 조금 있었어요. 늘 직접 원화, 때로는 동화까지 해왔는데, 캐릭터 소스만 그려서 전달하면 애니메이팅팀에서 원화부터 동화, 클린업, 채색까지 모두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마술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어릴 때 꿈꾸던 것처럼 제 그림이 저절로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최근 IFC 몰의 나이키 매장 비주얼 작업을 했어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늘 협업을 꿈꿔왔던 브랜드라서 참여하는 것만 으로도 꿈만 같았어요. 직전까지 약 8개월가량 진행했던 다른 작업이 손에 익어버려서 나이키 프로젝트 초반에는 비주얼을 잡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제 스타일이라고 그렸는데, 저조차도 제 손이 가는 대로만 움직이는 걸 조절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이전 프로젝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가 캐릭터의 눈을 어떻게 그렸는지, 포즈는 주로 어떻게 그렸는지 다시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어요. 또 벡터 기반의 파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플랫한 작업을 시도해보는 좋은 기회가 됐죠. 가끔 디테일 묘사에 매몰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새로운 디테일을 찾으며 작업한 즐거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서인지 작가, 나이키 협업 매장 디스플레이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은 주로 즐거움, 기쁨, 설렘, 환희 같은 감정을 느꼈던 개인적인 순간을 재가공하여 내어놓는 일인 것 같아요. 대박 맛집을 알아낸 후 친구를 데려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처럼 ‘이거 정말 좋지!’ 외치며 만들거든요. 그래서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 두근두근거릴 때 얼른 스케치로 옮겨 놓아요. 나중에 보면 시시하고 재미없을 때가 더 많기도 하지만, 하얗게 텅 비어있는 새 파일을 만들 때마다 전에 끄적였던 낙서를 뒤적이는 걸 보면 스스로 제 얼렁뚱땅 낙서를 은근히 신뢰하는 중이란 걸 느낍니다. 재밌다고 생각한 상상이 그림과 영상으로 ‘그때, 그 맛’을 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기뻐요. 그래서 제게 있어서 작업은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 영원히 머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빠져나와야 하는 순간을 간직하고 기록하고 싶은 본능인 것
같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데뷔 15주년을 맞이해 컴백한 소녀시대의 앨범 커버를 작업했는데요. 앨범 커버의 경우 다른 작업에 비해 작업 기간이 훨씬 짧은 편인데, 이번 작업은 다른 프로젝트 사이에 끼어서 더욱 급하게 진행했던 일이라 스케줄 상의 아쉬움이 많았어요. 짧은 시간안에 디테일을 최대한 높이는 게 목표였는데요. 제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아티스트의 앨범을 작업한다는 영광과 기쁨에도 불구하고 생각한 만큼 속도가 잘 나지 않아서 작업 내내 부담감도 커지고 더딘 속도에 괴로웠어요. 그래서 파일을 전달하는 순간까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 아쉬움이 남았고요. 그래도 앨범이 릴리즈 됐을 때 팬분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살피면서 되려 안도와 감사,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앨범 커버 작업은 아티스트와 리스너 사이에 오고 가는 러브레터의 봉투를 만드는 일과도같아요. 신곡의 음악 감상문인 동시에 주고받는 긴밀한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 커버 아트워크 프로젝트에서 맡은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에는 운동과 강아지 산책으로 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식사 후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며 일과를 시작해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간단한 장비를 챙기고 카페에서 작업하기도 하고요. 마감이 다가오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밤늦게까지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요. 한때 망가진 루틴을 자책하며 워라밸이나 루틴에 목맨 적도 있었는데요. 프리랜서라는 숙명 때문에시간을 탄력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때가 분명 존재하는데, 루틴에 집착할수록 되려 스트레스만 받더군요.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시간을 자유로이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이런 부분에 좀 더 너그럽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종종 혼자 일하는 게 심심하다 싶으면 작업실로 친구들을 부른 후 함께 수다를 떨면서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요. 작업하다 틈틈이 강아지 토르와 산책도 나서는데요. 토르가 오기 전에는 종일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곤 하던 걸 생각하면 제 삶의 루틴이훨씬 풍성해진 것 같아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상한 일이지만, 이제 진짜로 애니메이션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제게 애니메이션은 ‘내 그림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딱 이 정도였거든요. 제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이야기’가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움직여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림 자체의 재미있는 움직임만으로는 긴 러닝 타임을 채우는 게 무척 버거웠던 적도 있었어요. 물론 잘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이 프로젝트마다 있었기에 열심히 매달리고 완성이 가능했지만요. 요즘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아쉬웠던 부분과 새로 배우는 부분을 바탕으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고 있어요. 그래서 연출에도 더 관심이 가고, 이야기를 잘 구성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을 처음 가져보게 됐습니다. 우선 짧은 클립을 만들어보면서 가지고 놀아볼 계획입니다!

‹I GO›, 2021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되, 낙천적으로 대하려고 해요. 타고난 기질도 분명히 있겠지만, 잘 흘려보내려고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대신 기쁘고 즐거운 일과 마음에 좀 더 귀를 기울입니다. 별거 아닌 일에 내적 댄스를 추는 일이 잦은데요. 그런요란한 마음은 그림에 곧잘 반영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면, 둘 다 그려 넣으면 더 좋지’하는 심리로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요즘의 저라면 잠시 내려놓고 체력 단련을 하는 방법을 택할 것 같아요. 찾아오는 슬럼프마다 이유도, 종류도 달라서 매번 다른처방을 내리는 편인데요. 한동안 모든 감각이 얇은 패딩을 껴입은 것처럼 둔하고 멍해져서 펜을 잡지 못하고 시간을 보낼 때가있었는데, 숨이 차도록 달리고 계단을 오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의 감각’을 다시 찾았던 게 기억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몸이라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마감 주간에 낮과 밤을 지키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저로서는, ‘마침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건강 문제가 생겨요. ‘이렇게 일해서는 오래 못한다’ 생각하면서도 잠깐만 방심하면 어느새 새벽 4시가 된답니다. 최근 건강검진 결과가 경고장처럼 날아왔기 때문에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루틴을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게 있어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엉덩이력’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끝내 결과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면 끝난다, 안 하면 안 끝난다’는 언젠가 제 배우자가 했던 말인데요. 마음에 무척 들어서제 좌우명이 됐어요. 창작자라면 어찌 됐던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 같아요. 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만 창작을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하고, 다만 앉아서 작업물에 시간과 애정을 들이는 일이 제가 할수 있는 한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한 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든 요즘의 저에게 다시 한번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한다는 것은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일인 동시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때에 따라 재정적으로도 많은연료가 필요한 일이에요. 중요한 건 지속하는 거니까, 당장 찾아오는 좌절에 크게 흔들리더라도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경우, 할머니 작가가 된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한참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다 보면 그런 모습으로 늙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 가령, 좀 더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거나, 게을러진 느낌이들 때 일부러 작업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 같은 거죠.

‹Google Design – People, Products, and Epiphanies(Eureka moments don’t just happen—you have to cultivate them intentionally›, 2022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다음 작업이 궁금한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결의 작업을 한다는 점을 파악하고도 그다음 작업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건 제게 최고의 칭찬이거든요. 저만의 시선을 인정해주시는 것이니까요. 작가로서 가장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스스로 다음 작업을 계속 꿈꾸는 창작자이고 싶습니다. 최근 번아웃이 크게 와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사라졌던 시기가 있었어요. 아예 작정하고 휴식 시간을 오래 가졌더니 다시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더군요. 그런 면에서 다음 작업을 계속 꿈꾸고 계획한다는 건, 저 스스로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건강하게 잘 일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다음 작업을 할 생각에 설레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Artist

서인지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설렘과 확신의 순간을 강렬한 색감과 위트로 그려낸다. K팝 뮤직비디오, 브랜드 필름과 광고, 북 커버와 지면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이다. EXO, 레드벨벳, 소녀시대, 페기 구, 선우정아 등 여러 뮤지션과 더불어 애플, 인스타그램, 구글, 나이키, «롤링스톤», «블룸버그» 등과 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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