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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적당한 무게로 경쾌히 사는 법

Writer: 박세은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박세은 작가는 핸드 페인팅으로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기억에 남은 인상과 감정에 따라 그려내는 창작 과정을 중시해요. 다채로운 색과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가 작품의 서사와 메시지로 나타나길 바라죠. ‘압도되지 않을 적당한 무게의 마음으로 경쾌하게 살고 싶다’는 삶의 태도가 작품에도 드러나는 듯해요. 나다운 것을 가장 새로운 것이라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박세은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A year in the garden : February›, 202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박세은입니다. 핸드 페인팅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크고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를 디지털화해 모션 그래픽으로 만들기도 해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는 커머셜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고, 오래 해도 질리지 않았어요. 무언가에 푹 빠져서 꾸준히 하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그림은 항상 그리고 있더라고요. 살면서 가장 오래 몰두하는 일 같아요. 물감이라는 매체로 원하는 색(色)과 형(形)을 화면에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그림이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어요. 그림을 그리며 매 순간 고민이 생겨도, ‘평생 질리지는 않겠다’는 막연한 믿음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삶으로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웃음)

‹Blue Daisy›, 2021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서울 남산 근처로 작업실을 옮겼어요. 산과 나무를 좋아해서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을 기대하는 요즘입니다. 얼른 작업 전후로 남산 산책에 나서면 좋겠어요. 작업실 내부 공간은 여러 작업을 위해 많이 비워뒀어요. 지금의 작업실은 영감을 얻는 장소로서의 기능보다, 편하게 작업하고 집중하는 실용적 공간의 기능이 더 큰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직접적인 영감을 주는 특정한 대상은 없어요. 다만 일상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장면, 대화, 감각이 내면에 쌓여 창작의 순간에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물론 여행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의 강렬하고 새로운 경험도 좋은 영감 거리가 되고요. 그렇게 축적한 영감이 주로 색(色)으로 치환되어 작업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색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기억들이 많은 영향을 줘요.

‹A year in the garden : March›, 2021 (좌)

‹A year in the garden : August›, 2021 (우)

‹A year in the garden : March›, 2021 (상)

‹A year in the garden : August›, 2021 (하)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정하면, 우선 손이 가는 대로 드로잉 해봅니다. 저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주관적 기억과 인지에 따라 재미있게 그려내기를 좋아해요. 예를 들어, 할머니 집 발코니에서 봤던 화분을 그릴 때 사진이나 다른 레퍼런스 없이 기억나는 모습대로 모양을 잡고 색칠해 봐요.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제가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크게 부각되고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은 완벽히 생략되기도 해요. 색도 실제와는 많이 달라집니다. 결과적으로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인상으로 조합한 새로운 화분이 나타나죠. 완성도를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 레퍼런스를 보며 몇 가지 추가하기도 하는데요. 기본적으로 이런 창작 과정을 가장 중시하고 즐기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년에 새롭게 관심을 갖고 시작한 모션 그래픽 작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평면 작업에서 한 번 더 확장한 세계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모두 30초 내의 짧은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형태이고, 그림 모티프들이 매끄럽지 않고 투박하게 움직이는 게 특징이에요.

‹The Garden›, 2022, Animation, 00:00:27

특히 서울의 밤 풍경을 담은 ‹City Night : Seoul›에 대한 반응이 좋았어요. 여러 경로로 많은 분들이 반응을 보내주셨거든요. 익숙하고 반가운 한강변 밤 풍경을 담아 좋아해 주신 것 같아요. 이 작업이야말로 켜켜이 쌓인 일상 속 영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날씨가 따뜻할 땐 종종 자전거로 작업실에서 집까지 퇴근하곤 했는데요. 한강변을 따라 천천히 달리는 1시간 남짓의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4월 봄밤의 나른한 공기, 한강 물 위에서 일렁이는 도시의 불빛들 모두 좋았지만, 특히 강변북로와 대교를 잇는 고가 차도 위의 자동차들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직접 운전할 땐 줄지은 차들이 성가시기만 했는데 말이에요. 자전거를 타며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니,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같은 방향으로 바삐 굴러가는 모습이 문득 재밌더라고요. (웃음) 유독 눈에 띄던 고가 차도의 빨간색마저 서울의 봄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City Night : Seoul›, 2022, Animation, 00:00:30

‹Sperm Whale and Friends›, 2022, Animation, 00:00:26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 작업을 보시는 분들이 그저 형(形)과 색(色)이 주는 고유한 에너지를 작품의 서사이자 메시지로 느끼길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작업할 때 했던 생각이나, 작업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공개하는 걸 선호하지 않아요. 다채로운 색과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로부터 마음껏 시각적 자극을 느끼고, 그대로 즐겨주셨으면 해서요. 심오한 메시지나 감성을 자극하는 밀도 있는 스토리텔링은 없을 수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색으로 그리고 싶은 대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결과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가볍게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LLE ACCESSORIES» 2022 F/W 매거진 삽화

‹A year in the garden : March›, 2021 (좌)

‹A year in the garden 2022 Calendar› 표지 그림, 2021 (우)

‹A year in the garden : March›, 2021 (상)

‹A year in the garden 2022 Calendar› 표지 그림, 2021 (하)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주 단위로 해야 할 일을 나누어, 퀘스트를 깨듯 헤쳐 나가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림으로 돈도 벌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창작 이외에도 할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서 간단히 컴퓨터 업무를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작업실로 출근해 그림 작업을 합니다. 유동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이지만, 최대한 루틴한 삶을 살아가려고 해요. 나머지 시간에는 계절을 많이 느끼려 합니다. 봄, 여름, 가을엔 야외에서 걷고 뛰고 오르며 계절을 직접 느껴요. 겨울엔 따뜻한 곳에서 다양한 영상 매체로 야외 경험을 대신합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어서요. (웃음)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큰 캔버스 작업이요. 지금까지는 작은 크기의 종이에 독립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는데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제는 큰 화면에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NEPA kids x GoOut Camp 협업 일러스트레이션, 2022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너무 심각하고 무거워지지 않는 것이 좋아요. ‘무겁다’라는 단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제게는 ‘too much’로 다가와요. 진지하고 깊어지는 걸 넘어 무거워지면 사람이 짓눌립니다. 너무 많이 쌓이면 결국 무너지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압도되지 않는 적당한 무게의 마음으로 경쾌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림도 경쾌하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느끼기에 좋고 무해한 대상을 그려요. 불편한 대상을 그릴 때는 기분 좋은 색과 형태로 화면에 담죠. 억지로 노력해서 무드를 맞추기보단, 삶을 대하는 태도와 그리기에 대한 취향이 맞닿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크게 겪지 못한 것 같아요. 작업 생활이 오래되지 않아서요. 중간중간 심적 슬럼프가 종종 찾아올 때는 주로 걷고 뛰면서 머리를 환기시켜요. 땀을 흘리는 일을 반복하며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다시 본래의 궤도로 잘 돌아오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도 하고요. 반복해서 시청한지라 새롭지는 않지만, ‘익숙함’과 ‘예측 가능함’ 덕분에 마음이 안정되더군요. 드라마 속 세계에서 삶의 기승전결을 겪으면, 실제 삶에서의 답답한 마음이 갑자기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NEPA kids 23 S/S ‹NEPA GOODY MARKET› 컬렉션 협업 일러스트레이션, 2022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만큼 많은 것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죠. 그럴수록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새롭다고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것을 모으고 빚어내다 보면, 고유한 나만의 무언가가 만들어지니까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니 오래 고민하게 되네요. (웃음) 아직 답을 하기 어려워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계속 고민해서 답을 찾아보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가진 즐거움과 설렘을 유지하면서 계속 열심히 작업하고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수식어를 가진 아티스트로 성장해 여러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길 바라요.

Sienne 2022 Holiday Collection 협업 일러스트레이션, 2022

Sienne 2022 Holiday Collection 협업 일러스트레이션, 2022

Artist

박세은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현재 핸드 페인팅 기반의 다양한 평면 작업과 모션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 작업뿐 아니라 매거진, 패션 브랜드, F&B 브랜드 등과 협업해 커머셜 작업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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