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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파스텔 소녀, 그 몽환적인 눈맞춤

Writer: 산밤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산밤 작가는 소녀를 그립니다. 소녀는 마법 소녀가 되기도 하고, 우주선 소녀, 혹은 비디오게임 소녀가 되기도 해요. 묘한 기시감이 드는 소녀의 모습을 파스텔톤으로 풀어내면 우리는 마법에 걸린 듯 몽롱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버린답니다. 그는 각자 타고난 성향을 믿고 개성을 발휘하는 걸 중시해요. 다른 이에게 느끼는 열등감 때문에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성격이죠. 자신에게 솔직한 덕분에 슬럼프에 빠져도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탈출하고,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마주하는 용기를 발판 삼아 작업을 지속합니다. 산밤 작가와 그의 분신 파스텔 소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산밤입니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묘한 기시감이 드는 장면을 파스텔톤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재는 현실 속 찰나의 순간부터 잠이 들어야 보이는 꿈속 장면까지 다양한 곳에서 얻고 있어요. 2016년부터 매달 한 번씩 갤럭시 테마를 작업하고 있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분히 상업적인 이유에서 시작했어요. 학생 시절 함께 일하던 에이전시에서 매달 일정 수익을 보장한다며 갤럭시 테마 제작을 권했는데, 열심히 만들어 제출했더니 다음 달 수익이 1000원도 채 되지 않았어요. 수익을 위해 시작했는데 고작 몇백 원 정도가 손에 쥐어진다는 게 참 충격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거지만…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인지도 하나 없이 오직 단일 작품 하나만 올려놓고 ‘잘 만들었으니 잘 팔릴 거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때 감상으로서의 ‘예쁘다’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예쁘다’는 서로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죠. 이후 여러 가지 스타일로 작업을 출시하며 사람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작업물을 가려내는 나 홀로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중 파스텔 소녀의 반응이 꽤 좋아서 지속하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그림 그리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일을 좋아해요. 스스로 상업 미술에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파스텔 보라요정›, 2022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요즘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작업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눈 때문에 더 집중되는 것 같아요. 쉽게 흐트러지기도 힘들고요. 아무래도 카페에서 누울 수는 없…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정말 별거 아닌 찰나의 순간에서 얻어요. 길거리에 떨어지는 햇빛, 철 지난 아이돌 MV, 낮잠을 자다 꾼 꿈 등 소재는 많고 다양한데 얻는 순간이 다분히 우연에 기초하고 있죠. 그래서 우연의 폭을 넓히기 위해 쉬는 날에는 이것저것 많이 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움직일 때마다 번개처럼 영감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돌아다녀요.

‹파스텔 홍콩 소녀›, 2022

‹파스텔 여름 집 소녀›, 202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이제는 안 되겠다, 지금 놓치면 마감을 어기고 만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극한까지 미루는 것 같아요. 미리 작업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주로 마지막에 갑자기 엎는 경우도 있더군요. ‘이게 아니야!’ 외치며 도자기를 부수는 장인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오고 마는 것이죠. 심지어 저는 장인도 아닌데요…겨우 정신 차리고 시작하면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메신저에서도 로그아웃하고요. 당연하겠지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으니 그래야만 합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제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1~2년 내 작업한 결과물을 소개할게요. 

‹파스텔 마법소녀› (2021) : 저는 마법소녀물을 좋아해요. 그 알록달록한 변신 장면과 효과음이 사람을 매혹하지 않나요? 전시 포스터를 염두에 두고 A2 사이즈로 제작했기 때문에 실제 걸어놓으면 아주 좋고 예쁩니다. 포스터였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테마로도 제작했어요.

‹파스텔 마법소녀›, 2021

‹파스텔 우주선 소녀› (2021) : 사람을 홀리는 변신 장면과 이펙트의 마력은 히어로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적에 남동생과 마법소녀 만화와 로봇 만화를 번갈아 틀며 사이좋게 본 기억이 있어요. 저는 메카닉 그리기도 꽤 재밌어하는(?) 편입니다. 이 작업은 아쉽게도 전시 포스터용으로만 제작했답니다.

‹파스텔 비디오게임 소녀› (2022) : 애니메이션도 테마가 된다고 해서 오랜만에 아주 약간의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했는데요. 아쉽게도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로 올라갔어요. 마음에 들지만, 테마 세트로 나오지 않은 점이 아쉬워서 여기에 공유합니다.

‹파스텔 우주선 소녀›, 2021

‹파스텔 비디오게임 소녀›, 2022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현업 때문에 작업량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디테일하게 잡고 싶지만, 놓치는 부분도 많아졌고요. 작업할 때 집중하고 싶은데 수시로 연락받아야 해서 집중도가 떨어지는 점이 결과물에 반영되는 게 아쉬워요. 결과물에 만족하기 힘든 상황인 거죠. 그래도 구시렁거리면서 대견하게(?) 작업을 이어 나가는 점에 만족합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올해 초를 기준으로 말하면, 평일에는 회사에 갔다가 주말에 작업을 해요. 회사-집, 회사-집, 회사-집이 일상이죠. 주말에 가끔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만나서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놓고, 한두 달에 한 번 날 잡아서 지도에 핀을 꽂은 온갖 핫플을 돌아다닙니다. 재작년 이쯤에 응한 인터뷰에서 이제 프리랜서로 살겠다고 선언했는데 어쩐지 다시 회사에 다니고 있네요. 회사에 다니면 힘들 때 회사 탓을 하면 되는데, 프리랜서로 사니까 온전히 제 탓이라서 제 탓을 해야 하는 게 조금 고달팠습니다. 하지만 또 언젠가는 프리랜서의 삶을 꿈꿔봅니다.

‹파스텔 지하철 소녀 (1)›, 2022 (상)

‹파스텔 지하철 소녀 (2)›, 2022 (하)

‹파스텔 지하철 소녀 (1)›, 2022 (좌)

‹파스텔 지하철 소녀 (2)›, 2022 (우)

‹파스텔 가을볕 소녀›, 2019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게임을 정말 좋아해요. 현재 사이버 세상에서 피땀 흘려 농장을 키우고 있습니다. K팝 아이돌에도 관심이 많고요. 그 외에 음식 기행 책이나 고슴도치 영상을 보는 것을 즐깁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주변의 힙한 아티스트보다 제 작업에 대한 고뇌가 조금 적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유명한 분들과 저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에 빠지는 경우도 적고요. 쉬운 것, 쉬운 길을 좋아해서 진지함과 철학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래서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그림이 좀 더 눈에 띄지 않나 싶어요.

‹파스텔 새벽 아침 소녀›, 2023

‹파스텔 그해 여름›, 2023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도무지 그리고 싶지 않은데 꼭 그려야 할 때는 카페에 갑니다. ‘무엇을 어디까지 그리겠다’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게 포인트에요. 그냥 ‘맛있는 거나 먹자’ 하면서 손에 아이패드 혹은 메모지와 연필만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밤 나들이 기분으로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카페에 가서 맛있는 메뉴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종이와 펜만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게 돼요. 그렇게 단 한 시간이라도 짧고 굵게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면 약간의 보람찬 기분이 슬럼프의 고리를 끊어줘요. 사실 따릉이를 타고 오면 최고인데요. 너무 춥거나 더울 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현업이 조금 덜 바빠지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는 것이 평생의 숙제 아닐까 싶어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각자 타고난 성향을 믿고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 주변에는 굉장히 염세적이고 진지하지만 그래서 정말 멋진 작업물을 만드는 친구가 있어요. 저는 꽤 게으르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가늘고 길게 작업물을 내보이는 편이고요. 강점과 약점은 어떤 시각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지, 사실 딱 떼어놓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불 포켓몬과 물 포켓몬처럼 각자의 강점 및 약점이 필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창작물이 전부 개성 있게 나오는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강점까지 억누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스텔 노을소녀들 (1)›, 2022 (상)

‹파스텔 노을소녀들 (2)›, 2022 (하)

‹파스텔 노을소녀들 (1)›, 2022 (좌)

‹파스텔 노을소녀들 (2)›, 2022 (우)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지속하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창작할 때면 필연적으로 슬럼프가 오고, 돈을 못 벌 때도 있고, 비판도 받고, 핀잔도 듣고, 도용도 당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게을러지면서,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 시기도 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당연한 거예요. 비단 창작이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선이 아닌 선택과 부끄러운 결과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죠. 그냥 그걸 ‘알고’, ‘마주하고’, ‘어쩌라고’ 마인드를 가지고 계속하면 지속하기가 훨씬 편해집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든, 현실과 맞서 싸우든 여러분이 생각한 길이 맞고, 어떤 형식으로든 창작물과 교감한다면 감정이나 작업은 대체로 지속가능할 것 같아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냥 기억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저보다 창작물이 기억되는 게 훨씬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관계로…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먼저, 올해 작업하는 프로젝트가 잘 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프로젝트 건으로 해외에 가보고 싶어요. ‘이것이 비즈니스 여행…?’이라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달까요. 더불어 흥미로운 작업을 하며 나날이 바쁘고 오래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Artist

산밤은 매달 ‘파스텔 소녀’ 시리즈를 제작하는 디지털 아티스트다. 몽환적인 눈맞춤과 향수가 느껴지는 색채로 소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부분의 작업은 갤럭시 테마 스토어의 배경 화면 및 아이콘 더미로 구성한 테마 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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