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을 까무러칠 정도로 잘하고 싶은 사람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빈소연입니다. 가끔 만화도 그리고, 전시에도 참여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선배랑 무작정 그래픽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몇 년간 행복하고 즐겁게 지냈어요. 일이 없는 게 문제였지만요. (웃음) 스튜디오를 정리할 즈음 북페어에서 쪽프레스를 만났고 단편 시리즈 표지를 제안받게 되었어요. 그때가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할 만한 일을 정식으로 하게 된 때였죠. 쪽프레스의 제안으로 만화도 그려보면서 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때는 원고 안에서 영감을 얻고요. 만화와 전시작을 작업할 때는 대중문화에서 얻습니다.
영문만화 ‹Shape of Shame Ep. 1 The Third Eye›의 일부분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일러스트레이션을 의뢰받아 작업할 때는 그림을 통해 타인이 창작한 콘텐츠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서 소개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작업 과정을 구성해요. 제 일은 대부분 출판과 관계가 있는데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등과 협업이 중요해요. 작가가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만들어낸 귀중한 텍스트 작업의 첫인상을 만드는 일이라서 대중성과 구매력도 고려해야 하죠. 만화나 전시를 위한 그림을 그릴 때는 제가 이 주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로 먼저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 과정에서 떠다니는 생각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잦거든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만큼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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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단편 「하품의 언덕」 그래픽 노블의 일부분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문보영 시인의 단편 「하품의 언덕」을 그래픽 노블로 각색한 결과물이 알마출판사에서 출간되었어요. 가장 최근에 작업한 표지 그림은 조예은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입니다.
작업에 대해 요즘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전반적으로 늘 만족하는 동시에 늘 불만족스러워하는 편이에요. 일 하나,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매번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찾지는 않아요. 현재 전체적으로 어떤 사고와 테크닉을 가지고 작업하는 중인지 인지하면서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것, 나은 것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언제 자도 무조건 7시간은 잔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요. 늦게 일어나면 종일 뭔가를 도둑맞은 사람처럼 굴기 때문에 웬만하면 일찍 일어나려고 기를 씁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밥 먹고 하루 일정을 노트에 적은 후에 하나씩 ‘도장 깨기’처럼 진행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러브 리얼리티’ 쇼요. 대유행 중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주제로 9월 23일부터 개인전을 합니다. 웬만한 것 빼고는 거의 모든 쇼를 섭렵했어요. 더불어 같은 주제를 가지고 ‹Shape of Shame› 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를 내려 해요.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랑업’ 종사자와 그 일터를 관리하는 관리자, 사랑업과 사랑 시장을 만들어내고 움직이는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텐데요, 전시작은 시스템에 좀 더 집중해 다룰 예정이고, 만화는 지금까지 끌어온 해당 시리즈의 에피소드처럼 이러한 시스템과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구체적인 일화로 풀어보려 해요.
영문만화 ‹Shape of Shame Ep. 2 Spark Joy›의 일부분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건 좋은 사람이 하는 고민이란 생각도 들고요. 저는 제가 그렇게 괜찮은 인간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작업에서 저란 개인이 어떤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걸 진심으로 지향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내 의견이나 생각이 세상에 그렇게까지 중요할까’라는 의구심도 자주 들고요. 하지만 제 직업 특성상 다른 직업에 비해 개인의 사유가 더 잘 드러나긴 해요. 좀 모순적이죠. 이런 것도 태도라면 태도겠네요. 이 모순이 제 작업에 묻어날 수도 있겠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창작자의 ‘슬럼프’는 간혹 로맨틱한 방향으로 과장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슬럼프다운 슬럼프가 온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떤 고민이 주는 감정을 짧게 요약하고 특징화한 후 그런 기분을 느끼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 커리어에 타격이 있지 않을까요. 신뢰를 잃는다거나, 실력이 퇴보한다거나. 그냥 범사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SeMa 벙커에서 열린 그룹 전시회 ‹믿음의 자본› 전시 전경 사진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시간 부족, 디스크, 시력 저하.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태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철학입니다. 하하.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노하우나 팁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냥…할 수 있는 것 중 성과를 가장 잘 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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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Final Touch›에서 선보인 작품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창작자가 사람들 기억에 남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려면 약간 연예인이 되어야 하죠. 만약 신이 사람들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창작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면, 이왕 엄청난 업적을 이룬 위인으로 해달라고 할 거예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 하는 일을 스스로 까무러칠 정도로 잘하는 미래.
Artist
이빈소연은 가상과 현실이 혼재한 세계를 사는 인간에게 포착되는 행동 양식과 모호한 인간성을 담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몰두한다. 개인전 «The ocean rents a hint»(2021, 갤러리 밈), «Final Touch»(2020, 전시공간)과 그룹전 «Mix(image)Verse»(2022, 스페이스 소), «시간을 깨는 시간»(2022, 쇼앤텔) «믿음의 자본»(2021, SeMA 벙커) 등에 참여했다. 그 밖에 『다니자키 준이치로 전집 10』(민음사), 『부케를 찾았다』(열린책들), 『오리 이름 정하기』(위즈덤하우스), 『좀비썰록』(시공사), 『트로피컬 나이트』(한겨레출판사) 등의 도서 표지 삽화를 제작했고, 『Stay the Same』›, 『장례식 3부작』, 『모든 것의 시간(Time of Everything)』, 『Shape of Shame』 시리즈, 『하품의 언덕』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