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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면, 발견하기

Writer: 곽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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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곽이브 작가는 또 하나의 다른 면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그림과 입체에 대해 여러 차원의 정의와 입장이 있지만, 입체적인 것을 평면에 그리는 것이 그림이고, 평면적인 것을 다양화하는 것이 입체라고 생각해요. 이런 관심은 비단 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까지 확장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외부 세계에 대해 다른 면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렇게 여러 면이 생기는 게 아닐지 이야기합니다. 미술과 삶에 대한 곽이브 작가의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가 곽이브입니다. 미술의 즐거움과 필요를 느끼는 사람,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무거워서 가벼워지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그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해서 거의 1년 주기로 작업실을 이동했어요. 그러다 보니 레지던시와 레지던시 사이 기간에도 작업실 이동이 꽤 많은 편이었고요. 지금은 작은 작업실 두 곳에 월세를 내고 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총 작업 공간은 세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지금 제 상황에서 가능하고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 2021년 초 레지던시를 나오며 작지만, 마음에 드는 공간을 얻었는데, 가지고 있던 짐을 놓으니까 작업할 공간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어째서인지 오랜 시간을 머물며 작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고요. 마침 작업 속도도 줄어든 시기라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 공간이 되었네요. 하지만 조만간 다른 일을 도모하고 싶은 공간이에요.

올 초부터는 막연히 집 가까이에 드로잉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그림 방을 두고 싶었는데요. 마침 지난봄에 집 바로 앞에서 적절한 곳을 발견해 그림방(이라고 이름을 지었죠)을 얻었어요. 그런데 아직 그림방은 생각처럼 많이 가지는 못해요. 올여름에는 본격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두 작업실은 공통으로 인터넷과 컴퓨터가 없어요. 작업하는데 컴퓨터는 필수인데도, 저는 이상하게 작업실에서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작업실에서는 물질을 다루자’는 마음으로 세팅했는데, 정작 작업실에 가서는 ‘아, 이거 알아봐야 하는데’ 또는 ‘이러저러한 건 집에서 컴퓨터로 해봐야겠다’ 하면서 계획보다 빨리 컴퓨터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거든요. 역시 가장 이상적인 작업 공간은 인터넷과 컴퓨터가 세팅된 공간에 물질 작업도 충분히 가능한 공간인가 봐요. 그런데 작업 공간에 대해 반추하다 보니 전시 공간도 제게는 작업 공간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시 장소에서 작업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만나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설치를 완료해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제게는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늘 주변에 있지만 불현듯 발견하는 것들이요. 아파트, 전단, 평면도, 창문, 하늘, 단풍, 빛, 눈, 지하철 역사, 빌딩 숲, 옷, 용달차, 버드세이버, 이사, 셀프 인테리어, 흰머리, 치매, 달력, 근육 테이프, 시장, 문자, 한복 체험, 장례 물품 등등. 그러고 보니 ‘생로병사’네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작업방식이나 매체가 다양한 편이어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미술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지지체에 비물질적 요소들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모양과 방향, 그리고 물질의 속성에 대해 연구를 해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현상과 변화를 관찰하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면대면 Face to Face›(2015~) 시리즈는 대량 인쇄 주문을 통해 제작한 출력물을 건물의 유리창, 벽돌처럼 사용하며 전시장의 벽면에 도시의 건축 환경을 그리는 설치 작업이에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으로 그린 각 장면의 부분들을 종이 위에 담아 물질화하는 것인데요. 하나의 그림 데이터가 몇백 장으로 복제되고, 그 무리가 모이면 현대 도시의 건축물이 생성되죠. 대상에 따라 인쇄 프로세스의 옵션을 다르게 선택하고 다양한 후가공법을 활용해서 재현의 디테일을 추가하거나 이미지를 입체화했고요. 전시 성격에 따라 전시장에서 장면을 구현하고 남은 인쇄물은 작업 주변에 두고 관객들이 가져가서 활용하거나 그 자리에서 직접 조형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그린 장면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개입을 받으며 변화하게 되죠. 제가 관찰하고 그리고 싶은 건축이라는 구축적 행위와 사람의 문화가 그런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작품에 여지를 만들고, 사람들은 제 작품에 반응하며 적극적인 행동 하나를 하게 되죠. 전시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을 꽤 즐거워하세요. 건물과 건축 같은 환경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적이라고 인식하기 쉬운데요. 처음이 어떻게 그려지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든 간에 접촉하며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에 따라 단단한 모습도 변화하고 생애주기를 가지고 생존한다는 걸 알았어요. 건설적인 삶을 향한 사람들의 행동과 조형 행위는 공통점이 있어요.

‹면대면 Face to Face› 시리즈, 2015~

‹흰머리 Gray-White Hair›(2017)는 당시 눈에 띄게 흰머리가 나던 제 개인적인 경험과 2014년 4월 치매 판정을 받은 아빠의 시간을 함께 보며 진행한 작업이에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흰머리를 가리며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요양원에 있는 아빠가 병실 공간을 과거 살던 집으로 인식하고 착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머리가 하얗게 되면 시간 뿐 아니라 공간 인식에도 오류가 생긴다는 걸 알았어요. 치매라는 병은 병으로 표면화 되기 20년 전부터 시작된다는 정보를 접하면서 20년 전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잦았는데요. 20년 전에 내가 몇살이었나, 그때 아빠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치매에 걸렸나 같은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단일로부터 20년전의 과거, 전시가 열리는 시간대의 현재, 그로부터 20년 후의 미래를 담은 44년 6개월의 시간을 담은 ‹달력›(2017)을 제작했고, ‘현재’를 감각할 수 있는 그림 ‹날›(2017)을 그렸죠. 달력은 흔히 나날을 표시하는 매체로 객관적 시간의 양을 볼 수 있고, 시간을 담보한 특수한 차원의 공간이기도 해서, ‘시간의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달력에서 매월 반복하는 숫자와 그 숫자가 위치한 공간을 각각 35개의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날›을 전시장 벽면 따라 두른 벽처럼 보이도록 설치하고, ‹달력›(2017)은 전시장에서 손으로 들고 볼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 관람객이 벽면의 시간과 대조할 수 있도록 했어요. 방문하신 분의 선택에 따라 비닐 포장된 새 ‹달력›을 가져갈 수 있었는데 지금 그 달력을 어떻게 쓰시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흰머리 Gray-White Hair›, 2017, 캔버스에 유화

‹쿠키Cookie›(2020)는 쿠키 부스러기처럼 ‘남은 물질’을 가지고 기억과 성질을 담아낸 설치 회화에요. 웹 이용자가 방문한 사이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온라인 브라우저의 쿠키 기능처럼, 창작자에게 작업 재료는 작업 활동을 기억하고 과거를 상기하며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는 잠재력을 가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인 작업 동기는 여러 번 작업실 이사를 하면서 매번 함께 이동하는 짐과 물감을 눈여겨보다가 ‘왜 이 물질은 자기가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한 재료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떠오른 ‘쓰레기와 작품’에 대한 상념에서 시작했죠. 작업에 사용한 주재료는 제가 2010년 인사동 화방에서 구입한 이탈리아 특정 지역의 토양을 담은 유화물감이에요. 특히 ‹쿠키-이탈리아›는 13가지 물감을 그 특성에 따라 3가지로 분류했고, 2개, 5개, 6개의 물감으로 그림 3종을 그렸어요. 캔버스 그림은 오랜 미술 역사에서 가상 공간을 매개하는 일종의 창처럼 기능하는데요. 캔버스 구조의 형태를 따라 외곽에 창틀을 그리고, 내부에는 플로렌스, 베로나, 시에나, 사르데냐, 베네치아, 헤르쿨라네움, 카라라의 흙으로 만든 물감을 칠했어요. 화면에 펴 바른 물감은 그 자체로 특정 지역의 물질적 정보를 가진 풍경이 되고, 창처럼 만들어진 그림을 일상 공간에 설치해 실제로 가보지 못한 시공간의 어느 한 부분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상상을 했었죠.

‹쿠키Cookie›, 2020, 전시 전경

가장 최근에 부산현대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Re: 새- 새- 정글›(2021)은 전시 디자이너 이웅열과 협업한 작업이에요. 미술관이 위치한 을숙도를 찾는 철새처럼,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과 휴식을 위한 플랫폼으로 만든 임시 설치물인데, 환경을 위한 특별전이라는 야외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지속가능한 상태를 도모하며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이후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조합과 확장이 가능한 모듈로 디자인했어요. 재활용이라는 용어를 ‘재생하는 새로움’이라고 풀어보았고,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과 미세 먼지를 일상에서 접하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또 그간 주변 공간과 환경 조건에 대한 관심을 가져오던 미술가로서, 더 큰 자연환경에 대한 미술의 역할에 응답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빌리온 해체 후에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능을 가지며 답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면서요. 그런데 설치 후 장마가 시작돼서 아직 제대로 된 작품 촬영을 하지 못해 사진이 없네요.

‹Re: 새- 새- 정글› 스케치, 2021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또 하나의 다른 면이요. 그림과 입체에 대해 여러 차원의 정의와 입장이 있지만, 저는 입체적인 것을 평면에 그리는 것이 그림이고, 평면적인 것을 다양화하는 것이 입체라고 생각해요. ‹면대면› 작업을 통해 더욱 확인하게 된 것인데, 입체를 평면에 담고 그 평면을 모으면 기존의 입체와 유사하지만 새로운 입체가 생겨나는데, 그 모습 역시 진실이라고 봐요.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외부 세계에 대해 다른 면을 하나씩 발견하고, 그렇게 여러 면이 생기는 게 삶의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지난 제 작업을 돌아보는 것이 작업인 것처럼 작업을 반추할 기회가 많았어요. 자료들을 보다가 ‘아! 내 작업은 탐구생활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는데, 꽤 충격이었답니다. 그래서 만족스럽기도 했고, 불만족스럽기도 했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이라는 말 때문에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늘 중요하게 관심 가지는 것을 제외하고 답변한다면, 몸의 정렬인 것 같아요. 작업할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하는데, 전시가 많고 작업이 바쁘면 몸을 챙기기 어렵거든요. 몸을 소모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요. 요즘은 지난 세월의 흔적으로 변형되고 변화한 몸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습관이 만든 불균형과 그로 인한 통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고, 질병과 비뚤게 굳은 몸이 저라는 사람의 개성이겠구나 싶기도 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업 설명을 보시면 아실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라는 단어가 꽤 신선해요. 극복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아마 슬럼프 상태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슬럼프의 뜻을 찾아봤어요. 제자리에 저조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현상이더군요. 상황의 호전이나 악화는 모두 계단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제자리에 있는 건 부단히 노력해서 제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움직이지 않으면 제자리에도 있을 수 없거든요. 지금 제자리에서 열심히 발장구를 치면 언젠가 오르겠죠? 저조한 상태라면 저조하지 않은 상태가 무엇인지 안다는 거니까 그걸 바란다면 그에 맞는 방법을 강구해야겠죠. 저는 슬럼프 상태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작업의 단계도, 삶의 단계도 다른 챕터로 넘어왔다는 게 느껴져요. 작업할 시간을 만드는 일이 지금 제게 가장 시급한 미션인 것 같네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세요. 좋아한다면 지속하게 됩니다. 다만, 좋아하는 것이 이끄는 길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길!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곽이브로 기억되고 싶어요.

Artist

곽을 성으로 쓰는 곽이브는 이름에 있는 유일한 한문의 뜻 덕분인지 테와 틀을 가진 온갖 종류의 박스와 담는 것, 건축물에 마음이 끌렸다. 경험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각과 책, 페인팅과 원단을 제작하고 퍼레이드를 기획하거나 파빌리온을 만들어 한국 생활에서 보이는 테와 틀의 공간을 재조형 한다. 주요 개인전으로 «흰머리»(2017, 공간형), «평평한 것은 동시에 생긴다»(2015, 갤러리조선, 이노주단, 가변크기)를 열었고, «숏서킷»(2021, 취미가), «나메»(2020, 뮤지엄헤드), «제19회 송은미술대상전»(2019, 송은아트스페이스)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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