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Post

시간이 만약에 그림이 될 수 있다면?

Writer: 박준형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일상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할 거예요. 박준형 작가는 일상, 하루 그리고 시간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요. 타임라인이라는 틀 안에서 하루의 다양한 일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시각화해요. 그 결과 그의 그림은 아주 길쭉한 동시에 마치 지층이 켜켜이 쌓인 듯한 인상을 줘요. 그래서 마치 고고학자가 화석을 찾는 것처럼 그의 그림은 위에서 아래로 또는 그 반대로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어요. 시간을 그림으로 옮기는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광명과 서울에 오가며 지내는 박준형입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먹고, 요리하고, 레시피를 찾거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봅니다. 또 50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이어서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따금 대중교통으로 다니던 곳을 걸어가기도 하고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2020년 겨울, 팬데믹의 여파로 계획하지 않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데요. 그때부터 약 1년 동안 창작과 휴식을 만끽하며 공모에 지원하거나, 주변에 그림을 보여드리고, 인스타그램에 저의 하루를 담은 드로잉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전시에 대한 계획이나 욕심이 없었습니다. ‘한 달에 내 몸통 정도 되는 크기의 회화 한 점, 혹은 하루에 작은 드로잉 하나 정도는 그리는 사람이 되자’는 꿈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왔어요. 그래야 스스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저는 여전히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습니다.

‹타임라인 드로잉(170207~170811)›, 2017, 70장의 종이에 색연필, 잉크, 수채화, 콜라주, 가변설치, 각 21 x 14.8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집에서 생활과 창작을 함께 하고 있어요. 아직 작업실을 따로 가져본 적이 없고, 삶과 그림이 서로 어울리는 모양을 찾는 게 작업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제 생활 환경에 맞는 작품 형식과 그리기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무척 재밌어요. 물론 한 공간에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요. 그래서 모든 공간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저희 집에는 창작과 생활의 공존을 위한 저만의 규칙이 가득합니다. 저는 주로 책상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는 편이라 의자에 앉았을 때 굳이 일어나지 않고 편안히 그릴 수 있도록 사물을 배치해요. 그리고 그에 맞는 습관이나 규칙을 만들죠. 그래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의 얼굴과 테니스 코트를 떠올릴 때가 있답니다. 물론 저는 책상의 배치와 그 위에 놓인 사물의 위치를 자주 바꾸기는 하지만요. (웃음) 짧게나마 저의 루틴을 소개하자면 드로잉을 하기 전에는 항상 비누로 손을 씻습니다. 그림을 그릴 땐 항상 외출복을 입고, 모자를 쓰거나 밑창이 깨끗한 신발을 신기도 해요. 이런 방법으로 집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언제나 문득 떠올라요. 아마 평소 주변을 바라보는 습관, 전시 관람을 통해 얻은 생각과 감각적인 부분이 질서 없이 쌓이다가 합이 맞는 경우 새로운 생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에는 무언가를 보면서 ‘만약 저게 그림이라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일종의 놀이처럼요. 이를테면 요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대사에 등장하는 ‘음식’이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요리’라는 낱말을 ‘드로잉’으로 바꿔 생각해 봅니다. 저의 ‹타임라인 드로잉› 연작 또한 ‘시간이 만약 그림이라면?’이란 생각에서 비롯했어요.

‹타임라인 드로잉(210117~210123)›, 2021, 이어붙인 일곱 장의 종이에 연필, 수채화, 먹, 색연필, 아크릴릭, 100 x 24cm

‹타임라인 드로잉(210117~210123)›, 2021, 이어붙인 일곱 장의 종이에 연필, 수채화, 먹, 색연필, 아크릴릭, 100 x 24cm

‹타임라인 드로잉(210404~210410)›, 2021, 이어붙인 일곱 장의 종이에 연필, 피그먼트펜, 먹, 수채화, 구아슈, 색연필, 아크릴릭, 100.4 x 24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매일, 매 순간 있었던 일을 글과 숫자로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하죠. 주로 공책과 스마트폰에 그날의 기록을 남기는데요. 이 기록이 그림의 대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크립트Scrip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스크립트의 첫 줄에는 해당 날짜를 먼저 적고, 줄을 바꿔서 그날 일어난 시간과 ‘기상’이라는 말을 적습니다. 그 밑으로 줄을 바꾸며 잠들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시간과 함께 기록합니다. 이후, 이렇게 남긴 기록을 종이와 나란히 펼쳐 놓고 사전에 정한 규칙을 따라서 내용을 색채나 기호로 바꿔 그리거나 즉흥적으로 표현합니다. 만약 기록을 상세히 남기지 않은 시간을 그릴 때는 스마트폰의 사진첩이나 문자 메시지, 결제 내역 등을 추적해 공백을 메우기도 해요. 이렇게 저의 하루를 한 장의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완성한 ‘하루’를 이어 붙여 타임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타임라인 드로잉› 연작입니다. 이와 함께 지하철 탑승 기록만을 골라서 각 호선의 상징색과 유사한 색상의 물감으로 월간 도시철도 탑승기록을 그리는 ‹메트로 페인팅› 연작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메트로 페인팅(2021-04, 서울)›, 2021, 캔버스에 연필, 아크릴릭, 20.5 x 36.5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에 맞춰 ‹타임라인 드로잉›의 규격을 조금씩 바꾸는데요. 지난주에 그린 ‹타임라인 드로잉(220612)›, ‹타임라인 드로잉(220613)›, ‹타임라인 드로잉(220614)›와 ‹타임라인 드로잉(220617)›은 2017년 이 시리즈를 처음 시작할 때 그렸던 크기와 유사합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림의 형식이 돌아오니까 긴 시간을 지나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생활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A5 규격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타임라인 드로잉(220612)›, 2022, 종이에 연필, 색연필, 구아슈, 수채화, 아크릴릭, 20.4 x 21cm

‹타임라인 드로잉(220612)›, 2022, 종이에 연필, 색연필, 구아슈, 수채화, 아크릴릭, 20.4 x 21cm

‹타임라인 드로잉(220613)›, 2022, 종이에 연필, 색연필, 구아슈, 수채화, 아크릴릭, 21.8 x 21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최근에는 작품을 보는 분께 무언가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합니다. 그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는 그려가면서 천천히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현재 저는 빼어난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드로잉이라는 행위를 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예술공간 의식주에서 차현욱 작가님과 함께 전시를 치른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업무와 생활에 적응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마음껏 그리지 못한 게 아쉽네요. 하지만 이제 다시 일과 그림 모두 집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부분은 그림을 잠시 뒤로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이제는 크게 불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린 그림이 정말 재밌다는 사실도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두 가지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야행성이었지만 현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보통 오전 6시 30분 이전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일주일에 절반은 7시 전에 집을 나와 기분 좋게 출근합니다. 그런 날은 대략 두 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는데요. 출근길에는 독서를 해요. 이번 달에는 고니 작가님이 빌려주신 『내 방 여행하는 법』과 제가 산 『사물의 언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퇴근길에는 가끔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정도 걷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싸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지만 조금 여유롭게 하루를 보냅니다. 오전에는 산책과 스트레칭을 하고 메일을 확인하거나 집안일과 작업 환경을 정리해요.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고 시장을 봅니다. 커피는 저녁이 되기 전에 한 잔만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전시를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타임라인 드로잉(220617)›, 2022, 종이에 연필, 색연필, 구아슈, 수채화, 아크릴릭, 14.8 x 21cm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슬의 편지›라는 가제를 붙인 작품을 구상하는 일이에요. 한 달 전에 박슬 작가님으로부터 전시를 축하한다는 쪽지를 받았어요. 한 변이 15cm 크기였는데, 이 쪽지를 닮은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당장은 제작할 수 없지만 조금씩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어요. 향후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길 희망합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살아가는 시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삶과 그림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림 생각을 많이 하면서 지내고, 삶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면서 그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이렇습니다’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다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삶을 축소한 형태이거나, 삶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래서 그림에 대한 태도를 말씀드리자면, 때론 다른 방법으로 알 수 있는 것도 그림을 통해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오늘 그림을 그리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아쉬운 부분은 내일 그림을 그릴 때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거짓 없이 그리려고 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몸과 마음이 지치면 집 밖에 나가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그럴 땐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내게 되지만 하루에 한 번은 꼭 나가서 산책하려고 합니다. 또 누워있더라도 식사 시간이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지키려고 해요. 하지만 눕는 것만큼은 제 능력보다 더 열심히 눕습니다. 그렇게 일차적인 회복을 통해 기운이 생기면 어떠한 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생활 공간과 작업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마음을 새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부진한 상태에서 벗어납니다. 말로는 굉장히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타임라인 드로잉(220303~220305)›, 2022, 이어붙인 세 장의 종이에 피그먼트펜, 먹, 수채화, 구아슈, 색연필, 아크릴릭, 50 x 26cm, 확대 부분
‹타임라인 드로잉(220324~220326)›, 2022, 이어붙인 세 장의 종이에 펜, 먹, 수채화, 구아슈, 색연필, 아크릴릭, 53 x 26cm, 확대 부분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올해 담낭절제술을 받은 후 소화불량이 잦아져서 식사와 외출에 어려움을 자주 겪고 있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증상이라 외출 시에 겪으면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 문제를 포함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지나치게 근심하지는 않습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 작업에 있어서 저는 작품이 가진 당위성과 독창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엄격하게 지키려는 부분이죠. 또한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작업을 하기에 앞서 두려울 때가 많은 저로서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노하우나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다른 이의 창작물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제 그림이 더 즐거워졌어요. 다른 분의 작품을 보면서 감탄과 경외심을 가질 때도 있고, 자신감을 얻거나 되려 작아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제가 그림을 지속하지 않을 이유가 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창작을 지속하는데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타임라인 드로잉(181221~181226)›, 2018, 이어붙인 여섯 장의 종이에 연필, 수채화, 색연필, 아크릴릭, 84 x 21cm, 서울시청 소장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는 최근 이태원의 리만 머핀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던 톰 프리드먼Tom Friedman의 작품을 몇 년 전부터 좋아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작업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의 작업이 전하는 소소한 유쾌함과 해방감, 담담한 태도에 반했어요. 그런 작품을 보면서 저도 ‘진지한 농담’ 같은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아직 제가 젊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의도보다 치열한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런 것보다는 ‘조금 웃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인터뷰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2020년 중순까지 일 년, 한 달, 한 주, 하루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사람이었지만, 현재의 저는 먼 미래를 그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현실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오늘도 충분히 좋은 하루였답니다.

Artist

박준형은 광명시에 거주하며 그림을 그린다. 바라보고 생각하기 좋아하며, 2017년부터 자신의 생활 기록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고 있다. 2021년에는 개인전 «일종의 물결»(예술공간 의식주, 2021)을 열었고, «아래로 흐르는 물결과 내일을 비추는 만화경»(예술공간 의식주, 2022), «남는 벽 빌려 드립니다»(상히읗, 2022),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수창청춘맨숀, 2021)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