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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으로 기억되고 싶은 디자이너

Writer: 홍정희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앤트프넌(ENTFNUN)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딘, 로꼬, 크러쉬, 라비 등 다양한 뮤지션의 앨범 아트워크를 작업한 홍정희 작가는 삶과 작업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복잡하지 않게 결단력을 발휘하며 옛 작업에 대한 책임감도 높죠. 창작자는 본인의 생각을 세상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점과 오점 모두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매우 멋집니다. 본인을 믿어야 모든 일에 확신이 생긴다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티클을 확인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는 2D 기반의 그래픽, 브랜딩, 앨범 아트워크 등을 작업하는 비주얼 디자이너 홍정희입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어플리카의 대표이며, 브랜드 ‘NTFU COLLECTABLES’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보다 더 좋은 환경에 대해서 오랜 기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업실과 집을 나눠보기도 하고, 합쳐보기도 하고, 지인과 공유해보기도 했는데요. 고민 끝에 제가 자주 머무는 공간, 필요한 것이 가까이 있는 공간이 작업 능률을 올린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현재 제 작업 공간은 집이에요. 브랜드 관련 업무는 외부 사무실에서 처리하곤 하지만, 디자인과 관련한 일은 모두 집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파 또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시간제한 없이 작업에 몰두하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고양이와 놀기도 하고, TV를 보며 잠시 쉬기도 하며 한 공간에서 연속적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솔직히 특별하게 어떤 영감을 받아서 작업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의 동기 부여에 초점을 맞춘다면 생각과 경험입니다. 미디어와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는 시각 요소에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데요. 그건 모든 창작자가 가지는 습관적인 행동 아닐까요. 저는 작업을 구상하는 일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편이고,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 제가 느낀 경험에서 오곤 한답니다.

‹Omnibus series 2020›, 2020, APRO 싱글 앨범 커버

‹Instagram›, 2017, DEAN(딘) 싱글 앨범 커버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마다 달라요. 클라이언트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매번 동일한 과정을 거쳐 작업하지 않는 점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7~8년째 기획, 작업, 마무리 과정을 모두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다루다 보니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과정을 크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에요. 여유로운 시간이 좋은 결과물을 담보하진 않더라고요. 프로젝트의 깊이와 무게감과는 별개로 일을 시작하는 행동력과 마무리하는 완성도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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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TALK›, 2022, Lil Cherry & GOLDBUUDA, 피지컬 디자인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는 기예림, 박소윤, 정인우 총 세 명이 공동 감독으로 참여한 31분 길이의 SF 영화 ‹분더카머 10.0 Wunderkammer 10.0›의 출판물 편집 디자인을 맡았어요. 아티스트 ‘릴체리&골드부다Lil Cherry&GOLDBUUDA’의 앨범 ‹SPACE TALK›의 피지컬 디자인을 진행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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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 10.0 Wunderkammer 10.0›, 2022, 출판물 표지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분더카머 10.0›의 출판물 편집 디자인을 작업할 때는 연결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100개가량의 메일링으로만 진행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이 영화를 대변하는 책의 연결성이 독자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갈 수 있길 바랐죠. 책만 접한 사람은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영화만 본 사람은 책을 통해 영화를 간직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답니다. 릴체리&골드부다의 앨범은 이미 다른 작가님의 아트 워크로 커버가 나갔기 때문에 그 한정된 소스를 바탕으로 피지컬의 무드를 핸들링하는 일이 집중했어요. 처음부터 계획한 작업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실제 캐릭터 무드와 어울리는 타이포그래피, 백그라운드 등 피지컬의 형태까지 직접 아이데이션했던 기억이 납니다.

‹분더카머 10.0 Wunderkammer 10.0›, 2022, 출판물 내지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게 비슷해요. 제게 작업을 의뢰한 이유가 분명하고 그 이유가 빛을 발하도록 자유도를 주면서 서로 신뢰하고 조율하는 작업일수록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반대로 빠듯한 일정에 쫓겨 어수선하게 마무리하거나 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의뢰를 받는 경우, 항상 불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기억하는 듯합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일 주말 상관없이 매일 아침 일어나서 고양이 밥을 주고 1시간 정도 청소를 해요. 그럼 잠이 완전히 깨거든요. 하루도 빠짐없이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오전에는 브랜드 관련 업무를 봐요. 점심시간 이후에는 개인 작업 일을 처리하고 있죠. 이렇게 평일을 보낸 후 주말이 되면 업무 관련 연락을 받지 않고 무조건 쉽니다. 특별한 일정이 밀리지 않는 이상, 주말에는 일과 관련한 모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패션 브랜드가 자신을 노출하는 다양한 방법을 유심히 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쇼 인비테이션, 콘셉트, 컬래버레이션 라인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최근에는 처음으로 어떤 브랜드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브랜드 이름은 비밀입니다. (웃음) 추가로 올해 말에 계획한 개인전 준비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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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I ZIMMER›, 2019, ENTFNUN 홍정희 디자이너 개인전 포스터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의사도 확실히 주고받는 걸 좋아하고, 꺼내기 어려운 말도 저는 철판 깔고 말하는 편이랍니다. 기다 아니다 여부가 확실한 걸 좋아해서 삶 또한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요. 하고 싶으면 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것이고, 결단력과 책임감이 명확하기 때문에 삶을 돌이켜도 후회로 남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제 작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죠. 쉬지 않고 일하고, 매 순간 작업한 결과물을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부분도 그렇고…삶과 작업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실 좋지 않은 방법인데… 보통은 작업을 더 해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기보단, 작업을 하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는 게 좋아요. 업무량이 많아서 다른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거나 혼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땐 종종 호텔에 가곤 해요. 노트북만 들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작업하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평소 습관이라고 봐요. 슬럼프가 자주 찾아오지 않도록 일주일 단위로 쪼개서 주말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아예 끊어버리는 생활 방식이 도움 될 때가 많답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외로움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외로움이 커지는 기분이 들어요. 사랑하는 존재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예전에는 작업적으로 교류하는 대상이 많았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하던 친구들이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하며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작업자의 길을 고수하더라도 업무가 많아지면서 서로의 작업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나눌 일이 적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외길을 홀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 때면 외로움을 느끼곤 한답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는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꿈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잘못된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고 실수하는 경우도 많아요. 창작자도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건 자유지만, 세상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점과 오점 모두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행동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Deep End Mix Tape›, 2020, Tabber EP(미니) 앨범 커버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데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아직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해보세요. 좋아하는 걸 진심으로 하고 싶은데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살아가면 그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 더욱더 깊어져요. 그러다 뒤늦게 뛰어들었을 때 실망감을 느끼면 그 파급은 배로 커지죠. 모든 일에는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부분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또 좋아하는 일이 결국 자기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시작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어요. 다만, ‘돈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는 일을 하면서 현실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하지만 하기 싫은 것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인데요. 참을성을 보이며 싫은 일을 하다 보면 배울 점도 많더라고요.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매일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면서 그 일을 놓지 못하게 되는데요. 인정하고 나아가세요. 남자친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해줘요. 완벽한 계획이 있더라도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를 미리 생각할수록 일이 부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방해 요인이 된다고 봐요. 본인을 믿어야 모든 일에 확신이 생깁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작업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베테랑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한 분야에 외골수인 분을 보면, 한 가지에 엄청난 시간을 쏟는데요. 그 일이 반복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분명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도, 깊이감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에서도 느낄 수 있듯, 여러 가지 일을 하더라도 제 색이 묻어나고 제 작업인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였으면 해요. 3D를 직접 하지 않고 작업자를 고용하면서까지 2D를 고집하는 이유도 아직 2D에서 배울 게 많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인식을 새로운 것에 녹아내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베테랑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Artist

홍정희는 서울에 거주하며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다양한 방면으로 풀어내는 창작자다. 2D 기반의 작업, 앨범 아트 작업을 메인으로 다루면서 디자인 스튜디오 어플리카, 스테이셔너리 굿즈 브랜드 NTFU COLLECTABLES를 운영한다. 2019년 열린 개인전 «DREI ZIMMER : 세 개의 방»을 통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아티스트 딘DEAN의 앨범 ‹Instagram›(2017) 을 시작으로 현재 다양한 아티스트와 앨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 앨범 아트와 관련한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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