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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느리더라도 꼿꼿하게

Writer: 안진균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안진균 작가는 사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입니다. 전통적인 사진의 형태를 벗어나 설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죠. 그는 ‘예술이란 주류에 저항한 결과’라고 믿어요. 당장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유행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하는 작가가 되길 바라죠.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만큼 작품도 성숙해진다고 믿는 안진균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Hanged Man» 전시전경, 2016, 서울 유치원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인가요?

사진 작업을 하는 안진균입니다. 사진의 매체적 성격, 특히 재현성을 주요한 탐구 주제이자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전통적인 사진의 형태를 벗어나 설치의 모습을 취할 때가 자주 생겨요. 그래서 사진작가라고 소개하기에 애매한 지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 한국의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찍부터 유학을 준비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게 되었죠. 미국은 전공을 먼저 정한 후에 대학을 지원하는데요. 한국 교육 환경에서 적성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보통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하기 마련인데, 그건 지금껏 원치 않은 방식으로 휘둘려 살던 삶에서 벗어나려는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던 디자인을 공부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전공을 덜컥 산업 디자인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입학 첫해에 전공이 아닌 예술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지식과 사고를 쌓는 기초 수업을 배웠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Hanged Man» 전시전경, 2016, 서울 유치원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되었어요. 기존 작업실에서 새로 시작하는 작업을 제작하기에는 더 큰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난지 창작스튜디오는 공원이 된 거대한 쓰레기 산을 뒤로하고, 강변북로와 한강을 마주한 비밀스러운 곳인데요. 그래서 서울 안에 있으면서도 도시와 단절된 느낌을 줘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마음속 불편한 지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불편함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추적하는 과정에서 감정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어느 순간 조금씩 유형화된답니다.

‹무제›, 2022, 디지털 C-프린트, LED 스트립, 호두나무 액자, 28.9×37.7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불편함’의 성격이 어느 정도 파악되면, 이를 파훼할 방법을 상상해요. 그중 여러 엉뚱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마음속에 떠오른 추상적인 감각을 더듬고 프로토타입을 발전시키면서 어렴풋한 느낌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2년에 SeMA 창고에서 개인전 «영원한 휴가»를 열었어요. 이 전시는 무의식 아래 덮어둔 어두운 기억과 마주하고 이와 결별하는 과정을 전개합니다. 가족 앨범은 행복한 순간들만 선별적으로 수집한 사진 책이에요. 그래서 어둡고 불쾌한 기억은 선발 과정에서 탈락하지만, 우리 무의식 아래 끈질기게 남아있어요. «영원한 휴가»에서는 가족 앨범에서 찾은 가족사진의 일부를 가려서 사진에 담을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조명하려고 했어요.

«영원한 휴가»는 ‹영원한 미소들›과 ‹영원한 다리들›로 나뉘는데요. ‹영원한 미소들›은 가족 앨범에서 발견한 미소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흙으로 가린 작품입니다. 이 미소가 친근한 미소인지, 비웃는 미소인지 본래 의도를 가늠하기 힘들도록 설계했어요. ‹영원한 다리들›은 차렷 자세의 사진을 거꾸로 뒤집은 채로 나무 판재에 끼워 넣어, 마치 사람이 거꾸로 처박힌 듯한 착시를 일으켜요. 얇은 알루미늄판에 압착한 사진이 나무를 날카롭게 베어내는 느낌으로 설치했어요.

가족 앨범의 기능은 기억을 지속함으로써 과거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생명력을 절단한 ‘죽은 사진’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가족 사진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전시 제목처럼 ‘영원한 휴가’를 떠나게 되는 거죠.

«영원한 휴가» 전시전경, 2022, SeMA창고

‹영원한 휴가를 위한 준비운동›, 2022, 디지털 프로젝터,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가변설치, 반복재생

«영원한 휴가» 전시전경, 2022, SeMA창고

‹영원한 다리들 #40›, 2022, 디지털 C-프린트, 알루미늄, 호두나무 무늬목, 101X9.8X4cm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형식과 내용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주고, 내용이 형식에 영향을 주는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거든요. 예를 들어, «영원한 휴가»에서는 어두운 기억과 결별하려는 내용을 ‘자르기’라는 형식으로 전달하려고 했어요. 사진을 덮는 흙이 만들어 낸 기계적이고 직선적인 틈새의 모양과 알루미늄을 나무 판재에 날카롭게 삽입한 결합 방식을 통해 작품의 내용을 감각적으로 제시합니다.

‹영원한 미소들›, 2022, 디지털 C-프린트, 배양토, MDF, 90x125cm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영원한 휴가»의 전시 기간을 연장하지 못한 부분이 불만족스러워요. 전시가 만족스러워서 기간을 조금 더 늘리고 싶었거든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일에는 오전 9시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합니다. 예전에는 작업실과 거주 공간, 작업 시간과 일상 시간이 구분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모가 되면서 두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더군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사진의 전체성이 파괴되고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작업인데요. 이를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단계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가 본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 작품에 반드시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묻어나지 않는다면, 작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겠죠. 반대로 어떤 작가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거짓이라면, 작업에 묻어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20150208› #7, 2018, DIgital C-print, 142.5x190cm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새로운 길을 찾을 때까지 어둠에서 허우적거려요. 작업실에서 끙끙대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관을 찾아가기도, 전시를 감상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해요. 작가가 인간으로서 성장한 만큼 작품도 성숙해진다고 생각해요. 삶이 변하지 않는데 자기 작업이 새로운 길을 찾기를 바라는 건 모순입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현실 자체가 문제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꼰대 같은 말이지만, 작가는 자기 작업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해요. 지금은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작업을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는 이유로 휩쓸려 흉내 내거나, 뛰어난 영업력으로 섭외한 조력자들의 집단 지성에 의지해 자신을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유사 작가가 주목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주류에 대한 저항의 결과물이에요. 주류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순응하는 태도는 예술가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겠죠.

«Hanged Man» 전시전경, 2022, 이프리미디스 갤러리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예술가를 초월적 존재라고 여기는 고루한 경향이 존재하는데요. 예술가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입니다. 작업을 판매해서 재정적인 안정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공부해야 해요. 때로는 돈이 예술적인 독립성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는 보루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예술적 지지자도 필요해요. 작업에 관해 언제든지 솔직하고 깊이 있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야 해요. 동료는 동료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비예술인 친구들도 포함합니다.

«Hanged Man» 전시전경, 2022, 이프리미디스 갤러리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타협하지 않은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유행에 타협하지 않고 저의 예술을 탐구하고 끝까지 추구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속도는 느리더라도 꼿꼿하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이 실현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상을 그리지 않습니다.

Artist

안진균의 사진 작업은 부모와 자식의 닮음을 사진의 재현성에 비유적으로 담아낸다. 그는 사진의 질서 아래 원본과 복사본 사이에 형성되는 위계처럼 부모와 자식도 서로에게 닮음으로 종속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닮음의 견고한 체제를 전복하려는 일련의 공허한 시도를 통해서 그는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의 권위에 질문을 던진다. 개인전으로 «영원한 휴가»(2022, SeMA 창고), «Hanged Man»(2019, 이프리미디스 갤러리), «Slice»(2019, 보안여관) 등을 열었고, «Fresh Faces Wild Eyed»(2013, The Photographers’ Gallery), «Foam Talents»(2014, FOAM)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헤적프레스와 함께 아티스트 북 『Slice』(2019)와 『Hanged Man』(2016)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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