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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일상은 단순하게,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디자이너

Writer: 정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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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다양한 선택들이 눈앞에 존재할 때, 우린 자연스레 비교를 통해 나에게 더 맞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정해지 디자이너에겐 패션과 그래픽이라는 선택지가 있었고 ‘확장성’의 측면에서 그래픽 디자인이 꼭 알맞은 옷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평면적인 그래픽 디자인은 여러 가지의 물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을 알아보고 그걸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의 삶 또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느낌을 줍니다. 단단한 태도를 지닌 정해지 디자이너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정해지입니다. 주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기관 및 작가와 협업하면서 근근이 개인 작업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패션 디자이너를 오랫동안 꿈꿨고 첫 대학도 패션 디자인과에 입학했는데요. 일 년을 배워 보니 ‘이상과 현실은 다르구나’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화려함의 이면을 이해하기에는 환상만 비대하게 키운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 생각을 표현하는데 옷이 적절한 도구도 아니었던 거죠. 저는 확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그래픽 디자인과 잘 맞지 않았나 싶어요. 여러 가지 물성으로 변화하는 가능성을 지녀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외부에 따로 작업실을 두지 않고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몇 년간 습관을 만들어 놓으니 지금은 제게 더 잘 맞는 방식이라고 느껴요. 왔다 갔다 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도 좋고, 밥을 주로 해 먹어서 여러모로 집이 편해요. 그리고 저는 뭔가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어하는 타입이라 쓸고 닦고 애정을 담는 공간은 하나면 충분해요. 집에서 가장 크고 빛이 잘 들어오는 방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큰 책상 위에 27인치 아이맥과 와콤 태블릿, 레이저 프린터가 있고 두 개의 선반에는 좋아하는 책과 제작에 참고할 각종 샘플을 놓았어요. 눈에 뭐가 걸리는 느낌에 예민해서 소품도 거의 없고 장식도 잘 하지 않아요. 여백이 많고 심심한 공간으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무엇을 생각하고 경험하고 있는지 현재 상황이 가장 크게 작용하겠죠. 사실 영감이라고 딱 짚어서 말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게 영감이기도 하고요. 집중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보고 듣고 읽는 것들이 모두 나름대로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고는 해요. 게다가 시각적인 자극에 매 순간 노출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시각적 유희나 자극을 영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보다는 행동하게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대부분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어요. 좋은 문장을 만나면 되새기면서 제 삶에 적용하려고 하는데요. 자연스럽게 이미지로 구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때에 따라 달라요. 어떤 때는 단어나 문장으로 먼저 정리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리서치하며 모아놓은 이미지를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다가 나올 때도 있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걸 돌아보면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며 작업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든지 스케치는 꽤 빨리하고 이미지를 숙성하는 과정에 좀 더 시간을 두는 걸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최근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의뢰로 «Planet in the Box»라는 전시의 그래픽 작업을 했어요. 익숙한 인쇄물이나 설치물 이외에도 웹 디자인까지 맡았는데요. 복잡하지 않은 구조였지만, 웹의 경우 기본적으로 인터랙션을 고민해야 하니까 사용자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예상하고 정보를 잘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고민하는 시간이 재미있더라고요. 반응이 바로바로 보이는 점이나 제가 다루는 툴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는 점도 좋았어요. 작업의 폭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Better Kindness(가제)라는 개인 작업인데요. 작년부터 짧은 에세이와 포스터를 함께 SNS로 발행하고 있어요. 기호로서의 이미지나 은유적인 전달 방식에 관심이 많아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성을 자주 생각해요. 거기에 글 쓰는 습관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글을 아주 많이 압축한 후에 남은 단어를 가지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만드는데요. 약간의 놀이처럼 하고 있어요. 글과 이미지를 다른 맥락에 놓는 지점이 흥미롭기도 하고요. 꾸준하게 하기 위해 아주 단순한 선과 지면(공간)만을 이용해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2D의 한계를 2D 안에서 어떻게 매력적으로 풀 수 있는지 고민해요. 코딩이나 3D 툴을 이용한 무빙 이미지가 워낙 많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새로운 툴을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구상하는 걸 표현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거든요. 게다가 저는 툴이 중심이 되는 방식보다는 이미지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풀어내는 방식에 더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표현 기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간감이 느껴지거나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 구도, 모양, 다양한 경계선 등을 시도하고 있어요. 단순해도 읽을거리가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매우 단순합니다. 작업을 할수록 거추장스럽던 부분은 자연스럽게 빠지는 것 같아요. 작업, 요리, 산책, 요가. 이게 전부예요. 굉장히 재미없는 인간으로 보이겠지만, 일상을 단순하게 유지하면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 도움이 돼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음, 작업적으로는 아무래도 작업물을 하나의 중심축을 가진 결과물로 엮는 것이겠죠.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저는 비수기와 성수기가 분명하게 존재해서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있거든요. 그래서 외부 일이 들어왔을 때 개인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확실한 목적과 마감이 있는 편이 작업에 생기를 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나둘씩 받아서 일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죠. 균형을 잘 잡아가며 일하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매년 목표인 ‘책 내기’를 매년 실패하고 있습니다. (눈물)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삶도, 작업도 가벼운 농담 같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기분이 5도 정도 밝아지거나 한 번 피식 웃는 정도면 좋겠다 싶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주 무거워지고 또 자기 부정이나 혐오에 빠지기 쉬운데요. 물리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기준이 너무 멀리 있기도 하고, 자꾸 작업과 저 자신을 동일시하니까요. 저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유쾌한 마음으로 오래 작업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좀 더 가벼워져야겠더라고요. 단순함의 미덕을 작업에도 투영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일단 환대하려고 노력해요. 슬럼프라는 게 뭐든 치열하게 했으니까 오는 거잖아요. 제 경우에는 삶에서 작업의 영역이 너무 지배적일 때 그런 감정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작업자로서의 나를 존중하는 만큼 생활인으로서의 나도 존중해주어야 하는데 그 균형이 무너지면 우울해지는 거죠. 그 뒤로 엄청난 무기력증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는 빨리 생활인의 영역을 채워주어야 해요. 나가서 걷거나,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코인 노래방에 가요. 주의를 돌려서 물길을 살짝 틀어주면 다시 루틴을 찾아가게 돼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컬러풀한 이미지 기반의 작업이 다른 작업보다 반응이 좋다 보니 작업 의뢰가 대부분 그런 쪽으로 몰리고 있어요. 결과물을 딱 정해 놓고 연락을 취하는 클라이언트도 꽤 되고요. 하나의 작업 스타일로 국한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씩 다른 방향을 제안하며 반경을 넓혀가려고 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이 빨리빨리 돌아가고 디자이너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럼 결국 안일한 마음을 먹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자기복제를 하는 건 아닌지 매 순간 경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끈질김과 겸손,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위한 단단한 체력이요. 작업을 마무리하기 전에 정말 이대로 끝내도 되는지 끈질기게 스스로 물어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거든요.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작은 부분을 놓치게 되고, 애매한 지점에서 타협하게 돼요. 그런데 결국 그런 부분이 모여서 전체적인 퀄리티를 결정하잖아요. 작업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몸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도 찾아오고요. 그리고 어떤 작업이든 온전히 제 생각과 능력으로만 완성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많이 나눴던 일이 전체적으로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서 이런 방향을 도출했고, 이런 지점을 읽을 수 있는 결과물로 제안한다’라고 작업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편이에요. 그런 태도 역시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걸림돌이 생기는 이유는 각자가 다를 거예요. 저의 경우는 인정 욕구였어요. 그래서 창작의 즐거움보다 다른 걸 신경 쓰다가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고요. ‘왜 나는 이것밖에 못 하지’ 하면서 다른 디자이너와 비교하고, 어떻게든 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온몸에 힘을 잔뜩 줬어요. 스스로 열심히 팔자를 꼬아 온 셈이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른 생각은 제쳐두고 일단 해야 해요. 하지 않으면 안전하겠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물론 창작에는 자연스럽게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수반돼요. 생각과 결과물 사이의 괴리감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작업과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감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러면 작업을 대하는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고요. 중요성이 높아지면 불필요하게 무거워지고 긴장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사람들은 사실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고 내가 내놓는 작업물이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뭔가도 아니다’라는 걸 되새겨요. 그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원하는 현실이 당장 눈 앞에 펼쳐질 거라는 건 환상일 뿐이라서 계속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렇게 쌓인 결과물이 빛날 때는 분명 찾아올 거예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다음’이 궁금한 사람이고 싶어요. 꾸준히 나아가는 게 보여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혼자는 재미가 없어요.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함께 재밌는 일을 벌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어요.

Artist

정해지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종의 습관(Kind of Habits)’을 운영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통해 경계를 넓혀가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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