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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환영의 세계

Writer: 조효리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조효리 작가는 3D 프로그램으로 가상 세계에 상상을 실현하고 이를 현실 속 그림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마치 꿈에서 본 듯한 환영이 기이하고 이질적인 느낌으로 캔버스에 펼쳐집니다. 만들고 싶은 가상의 대상에 온 신경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 밖에서 사람과 만나며 보내는 일상적인 시간, 이 두 가지 모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의 교차는 작업에서도 충분히 드러나죠. 예상이 쉽게 되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조효리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조효리입니다. 만들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누워서 의식의 흐름대로 공상하기를 즐기고 행동이 느려서 효북이(효리+거북이)라고 오랜 친구들이 부릅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하고자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죽어도 하기 싫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에요. 융통성 없고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쳐야 할 것 같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근데 그런 성격이라 지금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걸 거야’ 라고 해서 조금 위안을 얻는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객관적으로 또래보다 매우 특출나지도 않았던 것 같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장래 희망이 화가였어요. 중학교가 끝날 무렵 한동안 심취하던 집짓기 게임 ‘심즈’의 영향으로 건축가를 꿈꾼 적이 있는데요. 이내 건물을 짓는 일은 게임처럼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후 우연히 세계 미술관 기행문 책을 읽고 ‘역시 미술작가가 정말 멋지다’는 결론을 내린 뒤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초반에는 인물을 그리기도 하고, 물감을 뿌리거나 건식 재료로 거칠게 표현하는 등 지금 작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방식의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건축 교양 수업을 듣고 여전히 남아있던 건축에 대한 미련이 다시 떠올라 진지하게 건축과로 다시 진학할까 꽤 오래 고민했죠. 하지만 만약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너무나도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건축은 나중에 기약하고 대신 3D 프로그램을 배워서 만들고 싶은 것을 가상 공간에 실현하고 그걸 토대로 그림을 그렸어요. 이때부터 3D 프로그램으로 상상한 걸 만드는 과정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Now›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대학원 졸업 후 작년 2월부터 충무로 근처에서 동료 작가 한 명과 작업실을 공유하고 있어요. 제 공간은 방 2개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길고 좁은 형태로 입구 쪽에 컴퓨터를 놓은 책상이 있고, 가장 안쪽에는 각종 재료와 포장한 오브제 작업을 벽면 가득 선반 위에 올려놨어요. 그 사이에서 그리는 작업을 하죠. 이 방과 연결된 다른 방에서는 에어브러시를 써요. 에어브러시는 물감 입자를 분사하며 공기 중에 퍼뜨리기 때문에 다른 공간과 분리되어야 해요. 학교에서 작업할 때는 비닐로 만든 작은 집에서 했는데 지금 작업실의 경우, 책장과 나무 문으로 확실하게 나누어 놓아서 이전에 비해 많이 업그레이드됐답니다. 입체 작업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친구 작업 공간을 침범하게 되는데, 서로 작업 시간이 겹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에요.

‹The Way›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주변 모든 게 영감의 가능성을 갖는 것 같아요. 영감은 일상적인 경험에서 오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확실히 디지털 화면을 통해 자주 접하고는 해요. 영화,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같은 창작물에서 얻기도 하고, SNS에 흘러 다니는 이미지일 때도 있고요. 예전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네요.

‹Try Another Angle_2›

‹Try Another Angle_2›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이미지가 떠오르면 연필로 작게 대강의 구성을 그려보고 3D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해요. 그러면 큰 틀은 잘 바뀌지 않지만 세세한 표현과 제작 방식을 계획하는 데 변화가 생기죠. 이렇게 작업을 구상할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릴 때 비교적 제일 간소한 과정을 거치게 된답니다. 금속이나 목재로 그림 지지체를 만들 경우에는 그리기 직전까지 필요한 밑 작업이 복잡해져요. 도면과 예상 결과물의 형태를 그려서 철공소, 목공소 사장님들께 제작을 부탁드려야 하거든요. 수정에 수정을 거쳐 결과물이 나오면 작업실에서 조립하고 젯소칠과 사포질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그리기 위해 화면 앞에 서게 돼요. 요즘은 아크릴 에어브러시와 유화를 활용해 그리고 있어요. 지지체를 제작하거나 새로운 재료를 쓰면서 시행착오를 겪지만, 다음 작업을 진행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Its raining, Mr. Judd›

‹Its raining, Mr. Judd›

작가님의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는 을지예술센터와 두산 갤러리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전시마다 신작을 작업했어요. 그 두 작업을 소개해보자면, 먼저 을지예술센터 «용도의 쓸모 3장» 전시에는 Wind를 선보였어요. 이단 하이힐 부츠 오브제에 긴 털을 둘러 바람에 흩날리듯 걸어가는 형상을 가로로 길게 그렸습니다. 첫 개인전 때 그렸던 이단 부츠 Bootss는 연속하는 계단과 오르내리는 움직임에서 형태를 착안해 신발이라는 오브제에서 연상되는 움직임 그 자체의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한 것인데요. 여기에 털을 둘러 연출한 이유는 2D의 선적인 표현에서 시작해 명암과 원근감을 더하여 3차원 공간을 묘사하는 표현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털 한 올을 표현한 그림 속 한 획이 모이고 겹쳐 양감을 가진 물체가 만들어지니까요. 바람과 같은 외부 자극에 쉽게 움직이는 유동성과 가느다란 형태, 단독으로 존재할 때와 밀집해있을 때 생기는 극명한 이미지 차이를 이용해서 부츠가 시간의 흐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양새에  움직임의 잔상을 표현하고, 이를 바람에 휘날리는 털에 빗댄 작업입니다.

‹Wind›,을지예술센터,용도의 쓸모 장, 전시전경

또 다른 작업인 ‹Forward›는 도로를 달리는 차 창 밖으로 비 오는 밤하늘 아래 가로등이 반짝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번개가 치는 검은 하늘 뒤에 멀리 지평선 가까이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이 작업은 앞, 뒤 양쪽 면에 그림을 그렸는데요. 뒷면으로 돌아가 보면 맑게 갠 하늘과 가로수가 창에 비치는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나 밝은 곳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의 극적인 이미지 전환을 상상하며 앞뒤 그림을 제작하게 되었어요. 멀어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작아지는 도로, 가로등, 흐린 윤곽선 등 원근감을 표현하며 그림에는 환영적인 가상공간이 연출되고 화면 속 더 깊은 곳으로 시선이 끌립니다. 그림을 향해 전진하는 시선의 흐름을 차가 앞으로 달리는 것과 연결 지어 구상했어요.

‹Forward›

‹Forward›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림 속의 환영적 가상 공간, 실제 공간에 있는 이의 움직임, 그리고 가상과 실제 세계에 교차하는 시간, 이렇게 세 축을 연결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회화 지지체의 형태나 소재를 다양하게 해보는 시도는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료를 실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것과 그로 인해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디테일과 마감이 아쉬웠어요.

‹Memory Lane›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전시를 앞두고 작업할 때는 다른 일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더 좋은 이미지나 방법이 없을지 생각을 길게 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제작에 들어가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이때부터 설치를 완성할 때까지 정말 작업만 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남습니다. 길게 봤을 때 썩 좋지 못한 습관인 것 같아 바꿔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잠깐 쉴 때는 홀린 듯이 유튜브를 봐요. 작업에 대한 생각이나 다른 걱정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비우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 같은 것인데요. 특히 쇼츠를 보면서 휙휙  내리면 뭘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멍해진다는 단점이 있죠. 대신 공연 실황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를 찾아볼 땐 굉장히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제 취향인데 잘 몰랐던 아티스트의 음악을 발견하면 참 기쁩니다. 여유 있을 때는 영화, 드라마를 몰아보고 친구를 만나요. 최근에 생긴 취미는 게임입니다. 친구랑 종종 온라인에서 함께 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닌텐도를 샀는데 특유의 아날로그적 요소 덕분에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재미있었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다음 전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잘 쉬면서 인풋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업을 하다 보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져요. 만들고자 하는 가상의 대상에 온 신경을 쏟는 거죠. 물론 생각은 현실에서 탄생했고, 그 결과도 현실 세계에 만들지만, 혼자 상상에 빠지다 보니 외부와 단절한 상태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느낌도 받아요. 제 성격상, 이런 독립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가끔 밖에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면서 타인과 싱크로라이징을 맞출 때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신선함을 느끼게 돼요. 제 삶은 이 두 가지 모드의 스위치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에도 이런 주관적인 시간의 교차가 드러난다고 봐요.

‹Set time automatically_off›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충분히 지겨워질 때까지 며칠이고 누워 있다가 대청소를 하고, 산책하고, 친구를 만나면 다시 리셋되는 느낌이 들어요. 전시의 막을 올리면 방전된 듯한 무기력감이 오는데요. 그때마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대처했던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업실이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창고 공간이 있긴 한데 거의 꽉 찬 상태라서 짐들이 점점 제작 공간으로 밀려와요. 작업실 테트리스가 다시 한번 필요해 보여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하고자 하는 것에 확신을 두고 밀고 나가는 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신을 가지게 되기까지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이리저리 끌리는 대로 기웃기웃하더라도 결국 자신이 겪은 것이 응축되어서 결과물로 나와요. 그게 쌓이다 보면 ‘저’라서 가능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Ahead, Behind›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상황에 대해 참 운이 좋구나 싶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힘들고 하기 싫은 순간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작업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친구가 있으면 정말 엄청난 힘이 됩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예상이 쉽게 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다시 말해, 다음이 기대되는 창작자였으면 합니다. 궁극적으로 제 작품을 보는 이가 그들만의 다양한 이유로 ‘그 사람 작업이 참 좋더라’ 말한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넓은 작업실을 가지고, 작업의 크기, 무게, 제작비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는 상황이 이상적인 미래입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Overture 서곡›

Artist

조효리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전공 전문사를 졸업했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편집한 가상의 장면을 통해 시공간과 이를 엮는 시점의 움직임을 압착해 담아보고자 한다. 《Extended Play》(2021, 갤러리 아노브), 《Your Clock is BEHIND / Your Clock is AHEAD》(2020, 엔에이)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물거품, 휘파람》(2022, 두산갤러리), 《용도의 쓸모 2, 3장》(2022, 을지예술센터), 《The Seasons》(2022, 디스위켄드룸), 《공중체련》(2021, 라라앤) 《Clearly Blurry Air》(2019, 중간지점)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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