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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내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만든 것

Writer: 김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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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두희 작가는 혼자 작업하지만 동시에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팬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어 나갈지 같이 결정해요. 그러므로 김두희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팬이 함께 만든 ‘우리’의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창작의 과정과 많이 다르죠. 이 과정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히더지’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관객과 실시간 소통하며 일어나는 심상을 작품에 담는 작가 김두희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영화 세트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일을 꽤 하다가 직접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어서 영화 일을 그만 두고 작업실을 얻었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낙서를 하곤 했는데, 2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글은 없고 낙서만 엄청 쌓였더라고요. 작업실에 널린 낙서를 본 예술계 지인의 권유로 그동안 모아놓은 낙서로 전시를 기획했는데 서울문화재단의 개인전 지원을 받게 되었죠. 그후 본격적으로 동시대 미술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제 작업 공간은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곳이에요.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의 타인과 만나 각자의 일상 속 각양각색의 사건과 감정을 대화로 주고받고, 이를 소화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저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업 소재가 만들어지죠. 주로 성수동 작업실에 앉아서 작업을 하지만, 나가 놀고 싶거나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공원에 나가 앉아 있을 때, 자건거를 탈 때 모바일 방송 시청자와 함께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새 그날의 그림 하나가 만들어져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무래도 방송에 참여하면서 하루 작업 시간을 수다로 채워주는 시청자 아닐까요? 각자의 일상 속 사건과 감정을 주고받을 때 직접 겪지 못한 상황에 저를 이입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감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주제 아래 동시다발적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직업, 연령대, 관심사, 살아온 환경이 각양각색이죠. 저의 또다른 정체성인 히더지를 안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인 이분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각자의 일과 상황을 마주하고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요. 마치 제가 이분들과 수다를 떨며 작업을 하는 것처럼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아이디어를 억지로 구상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하면 제가 스스로 소화한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 안에 떠다니는 사소한 감정과 생각을 먼저 머릿속에 이미지로 구체화하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는 기억에 가까우니까 이를 밖으로 끄집어내서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안에서 밖으로 꺼내놓기에 가장 적절한 매체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게 그림인지, 조형인지, 음악인지 말이죠.

‹쥐 혁명›, 2022, Cyanotype of Pen Drawing
다이어트로 배가 홀쭉해진,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탈모가 있고 귓털 과다증이 있는, 목소리가 작고 수줍음이 많아 말 대신 노래로 이제 바나나빵을 먹지 말자고 쥐들을 선동하는 혁명가.

‹쥐 혁명›, 2022, Cyanotype of Pen Drawing
다이어트로 배가 홀쭉해진,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탈모가 있고 귓털 과다증이 있는, 목소리가 작고 수줍음이 많아 말 대신 노래로 이제 바나나빵을 먹지 말자고 쥐들을 선동하는 혁명가.

‹The Queen›, 2022, Cyanotype of Pen Drawing
작업실 안 바나나좀비 하이브(the queen)와 이를 숭배하는 쥐들.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바나나 빵’, ‘쥐’, ‘벌름벌름’, ‘두더지’, ‘플라시보’, ‘분자 이동’ 등 방송에서 선보인 일상 속 사건으로 만든 제 커뮤니티의 MEME들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형태의 좀비 세계관을 구성하는 이번 작업의 키워드가 되었어요. 그래서 좀비 사태에 직면한 우리의 일상을 소재로 ‘열대 광기(Tropical madness)’라는 타이틀의 세계관을 만드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만약 좀비 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원정대를 꾸릴 건데 팀에 합류할 의사가 확실히 있는 사람’이 있는지 투표를 진행했는데요. 15명이 정말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추첨된 시청자에게 배역을 주고 마치 자신의 스토리의 등장 인물이 된 것처럼 상상하며 인터뷰를 진행해서 캐릭터를 그렸어요. 그렇게 열대 광기의 스토리를 이어갈 등장인물을 구체화시키는 걸 시작으로 서로 마주하게 되는 장면, 좀비 사태로 아수라장이 된 회사, 좀비 바이러스가 퍼트려지는 상황에 대한 스토리를 장면 장면 그려나가는 중이에요. 그림 작업을 진행할 때 스토리를 완전히 완결짓고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대광기’라는 이름 아래에 존재하는 각 작품은 시간이나 구성의 순서와 상관없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17개의 영화 장면과도 같아요. 그래서 영화의 OST처럼 각 장면의 테마곡을 만들어 정서의 흐름을 잡고 싶었죠. 국가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 이수자이자 작곡자인 SAZA(이호윤)와 음악 작업도 함께하는 중이랍니다.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관점의 차이’를 구체화하는 표현 방법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이런 면도, 저런 면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이 보는 모습으로 상대를 규정짓잖아요. 캐릭터라는 건 사실 대상의 모방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상태인 것같아요. 그러니 제 마음 상태가 바뀌거나 상대와 저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지면 상대 모습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요즘 작업하는 열대광기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바나나 좀비’에는 타인이 그를 기억하는 과거 인간으로서의 모습, 좀비가 된 현재의 상태,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가능성을 담은 다면적인 의미들을 다루고 싶었죠. 좀비 캐릭터 중 하나인 ‘곰대리’의 돌연변이 진화 과정을 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좀비, 돌연변이라는 기괴하고 흉측한 모습을 따듯한 양모실을 뭉쳐 만든 것과도 연결되죠. 피해야 할 괴물이라는 존재에는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포실포실 귀여운 감촉에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중적인 느낌처럼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정서를 포착해 그림으로 옮길 때는 종이 안에 담긴 요소 하나하나에 그 정서와 내러티브가 드러나도록 만들고 배치할 수 있는데요. 이를 다시 종이 밖으로 끄집어내 만질 수 있는 하나의 조형으로 구현할 때는 정서를 꾸며줄 장치도, 무대도 없고, 심지어 바라보는 시선의 앵글도 제어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모든 각도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이미지로 모이게 하는 게 이번 작업의 챌린지였지만 만족스럽게 나오고 있어서 굉장히 기뻐요. 하지만 니들 펠트 기법의 특성상,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형태가 몇 달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고 눈앞에 구현되지 않는 점은 엄청 답답해요. 어깨도 아프고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게임을 즐깁니다! ‘APEX LEGEND’라는 FPS 게임은 판마다 텀이 짧아서 스릴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고요. ‘DON’T STARVE TOGETHER’라는 생존 게임은 제가 노동을 하는 만큼 무언가 완성되는 게 눈에 바로 보이니까, 작가 생활을 하면서 좀처럼 성취하기 힘든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 류의 즉각적인 보상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올 10월에 개인전을 기획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제가 쏟아내고 싶은 걸 모자람 없이 모두 담을 수 있으면서 재미있는 전시로 만들 수 있을지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답니다. 일적인 부분 외에는 게임을 더 잘하는 방법과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살은 덜 찌는 방법에 관심이 있어요. (웃음)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막연한 것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갖지 않으려고 마음을 유지하는 편이라, 작업할 때도 의연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억지로 하는 작업 없이 매번 새롭게 즐길 수 있어요. 형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방식도 부담 없이 유연하게 취할 수 있답니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너무 다행스럽게도 아직 슬럼프가 올 정도로 작가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아서 아직 특별히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 슬럼프를 겪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을 하기 어려울 때 슬럼프가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로 활동할 때는 잘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해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잘 이겨내 왔고, 앞으로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어려움도 아직은 재미있게 다가와요. 언제나 현실 속 문제에 무던해지고 좋은 꿈만 꿀 수 있도록 늘 응원해주는 팬분과 동료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로서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는 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자기 창작물에 생사를 거는 마음으로 모든 걸 갈아 넣잖아요. 그래서 그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게 되면서 작품의 성공 여부가 마치 인생의 성공 여부와 동일한 것만 같은 중압감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은 작품일 뿐이죠. 당장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며 그 과정을 즐기며 제 삶을 살아가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억지로 꾸며내지 말자’는 생각을 일상에서도, 작품을 대할 때도 자주 해요. 제가 느끼고 배우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저의 삶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어서, 작품과 제가 꼭 닮은 채로 함께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삶에 깊이가 생기는 만큼 작품도 함께 깊어진다는 마음으로 현재의 저를 담으려고 노력한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완성된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재 자기 모습을 비교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면 지금 하는 작업, 작가로서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질 테니까요. 계속해나가다 보면 길이 어떻게 이어지고, 그 길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버틴다는 느낌보다는 쌓아가고 있다고 믿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고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묵묵히 해야겠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웃으면서 하는 게 훨씬 이득이겠구나!’ 생각하면서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정해진 양식을 따르기보다 저를 나타내는 양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행복한 유명인!

Artist

김두희는 영화 세트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동시대 미술작가로 전향 후 ‘히더지’라는 닉네임으로 트위치에서 실시간 방송을 통해 만나는 익명의 가상들을 인터뷰하는 작가다. 대상에 관한 깊은 관찰을 통해 시각적 정보가 아닌 내면의 이야기를 재료로 작가가 재해석한 캐릭터를 모으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개인전으로 «ARCADE FANTASY»(2020, STAN artcenter), «정모展»(2019, gallery9), «hang in there!»(2018, gallery9)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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