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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에 배팅한 사람

Writer: 전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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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전하윤 포토그래퍼가 가진 사진에 대한 열정은 진심입니다. 정말로요. 엄청나게 계획적이거나, 단계적이거나, 치밀한 성격의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더 좋은 사진과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자신만의 태도와 철학을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사진 찍는 게 제일 재밌고 행복하기에 그걸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사회초년생 전하윤 포토그래퍼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iamhay’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전하윤입니다. 미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이고,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하는 26살 사람이에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부생 시절에 전공보다는 사진에 관심이 더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콘트라contra’라는 학부 내 사진 소모임에 들어가며 사진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어요. 1학년 때부터 캠퍼스 패션을 스냅숏으로 찍는 매거진 대외활동이나 사진관에서 증명사진과 이미지 사진을 찍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사진 관련 수업을 전부 수강했답니다. 사진을 과연 업으로 삼는 게 맞을지 충분히 고민하며 사진에 대한 짝사랑이 길어지자 시각 디자인과로 전과하거나 사진학과가 따로 있는 대학교로 편입하지 않고 그대로 제품 디자인 전공으로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졸업하고도 사진 찍는 게 제일 재밌고 행복해서 결국 이 길을 택하게 됐어요.

Digital image, Shang Hai, China, 2017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년 가을 작업실을 따로 얻었어요. 배경천을 높게 설치할 수 있는 복층 사무실을 개인 작업실로 쓰고 있습니다. 테스트 촬영이나 피사체의 부피가 작은 경우 스튜디오 촬영이 가능해요.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한 ‹tutti frutti›도 전부 이 작업실에서 찍었답니다. 거의 매일 생기는 컴퓨터 작업도 여기서 하고 있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출근합니다. 프리랜서라 출퇴근이 자유롭지만 그만큼 맘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적어서 그런지 주말에도 일단 작업실에 와서 뭐라도 하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더라고요.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을 얻을까 생각해봤지만, 집중할 때는 혼자 있는 걸 선호해서 결국 개인 작업실을 택하게 됐네요.

그리고 제가 맥시멀리스트라 작업실에 작고 귀엽고 특이한 소품이 정말 많아요. 제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을 모으고 전시하는 일이 제 가장 오래된 취미거든요. 야광색 고양이 모양 피규어, 2층을 꽉 채운 인형들, 여러 가지 무드등, 해외여행을 다니며 모은 잡지와 사진집, 포켓몬 액자와 슈프림 소품들, 바이닐 컬렉션과 벽에서 돌아가는 CD 플레이어 등등…제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채운 덕분에 작업실에서 뭘 하든 심신이 상당히 안정됩니다. 돈과 공간만 충분하다면 더 큰 작업실에서 더 많은 물건을 꽉꽉 채우며 지내고 싶어요. 미니멀하고 깔끔하게 정돈한 집에서 살림하는 친구를 보면 가끔 부럽지만, 저는 절대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된 계기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면 ‘뭐든지 전유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들어서 빠르게 매료된 것 같아요. 제 작업실의 모든 게 제 것인 것처럼요.

35mm film, Arizona, America, 2019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지금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늘 귀 기울여요. 자기애가 넘치는 편이라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궁금증을 가졌는지, 어떤 창작물에 감동하는지, 세상에서 저 자신이 가장 궁금해요. 머릿속에만 남으면 이런 생각은 그냥 휘발하거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영양가 없는 대화로 소모되겠지만,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실에 남기면 가시적인 의미가 생기더라고요. 상상으로 끝날 실험이나 요즘 제가 관심 두는 것에 대해 저만의 시각으로 발전시키고 사진찍기의 행위로 남기고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35mm film, Phuket, Thailand, 2019

35mm film, Phuket, Thailand, 2019

35mm film, Arizona, America, 2019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엄청나게 계획적이거나, 단계적이거나, 치밀한 성격의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중구난방으로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 중 ‘분명하게’ 생각이 계속 맴도는 머릿속 주제가 있습니다. 제 안에서 이미 우선순위로 등극한 주제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 저는 이런 아이디어를 촬영이란 행위를 통해 결과로 도출해놓지 않으면 계속 제 머리에 남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해요. 실행하고 머릿속에서 치워야 다른 일을 여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창작 과정은 그 주제에 따라 매번 다르게 변모합니다.

사진은 디자인이나 다른 매체(영상이나 글)와는 다르게, 순간적이고 직관적으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에게 참 잘 맞는 매체입니다. ‘어떤 걸 어떤 이유로 찍어야겠다’라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지만, 정작 찍고 나면 제가 기대한 값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도출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생산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제에 집중하며 ‘언제 어디서 무엇을 일단 촬영해야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미지를 상세히 설정하면 오히려 가장 좋은 이미지를 골라낼 때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개인 작업은 궁극적으로 ‘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긋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입니다. 그래도 프로젝트 이름은 꼭 먼저 지어놓고 시작해요. 제 프로젝트에 ‘가제’는 없어요. 제목이 제 맘에 꼭 들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싫거든요. 그리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A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부터 Z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까지 모두 사진집으로 엮어서 책장에 진열하면 ‘보람차고 행복한 삶이었다’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제 프로젝트 중 ‹good goods›, ‹Birthday Brothers›도 이런 규칙으로 제목을 지었어요. ‹tutti frutti›도 T 또는 F로 제목을 통일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좋은 제목이 없어서 타협했어요. 대신 제목 그래픽에서 t와 f를 180도 회전하면 완전히 같은 모양이 되도록 작업했습니다.

‹mouse mat›, photography & product design project practiced in 2020 for Unlimited Edition 12.

제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제목에 어울리는 폰트를 고르고 변형해 타이틀 그래픽을 직접 만들어요. 사진의 방향성에 맞게요. 여러 장 작업하다 보면 원래 프로젝트의 시각적 문법이나 내용에서 벗어날 때도 종종 있는데, 제목과 제목 그래픽을 먼저 만들어두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돼요. 그다음에는 ‘보여줄 이미지’와 ‘보여주지 않을 이미지’를 선별하고, 주로 포토샵으로 작업합니다. 요즘 시대에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사진을 숨 쉬듯이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 마구잡이로 셔터를 눌러대는 건 정말 말 그대로 난사(shooting)하는 것이니까요. 능력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불안한 마음에 저 또한 계획한 장수보다 더 많이 찍을 때가 있는데요. 비슷한 사진 중 최종 이미지를 고를 때 신중하게 진행합니다. 고르는 데만 며칠이 걸릴 때도 있어요. 자고 일어나서 다시 보면, 다른 사진이 더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것 같기도 해서요. 이런 경험이 ‘프로페셔널’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토샵은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전 세대의 회화적인 사진이나 전통적이고 중후한 사진에 집착하는 마인드를 이어받는 사진가는 최소한의 먼지를 지우고 이미지를 더 깨끗하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포토샵을 사용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정석에 따라 빛과 구도가 아름다운 원본 사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듯 한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렌즈로 찍은 사진 이미지가 카메라라는 수단을 통해 이미 매우 왜곡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거든요. 보정 프로그램을 통해 한 번 더 왜곡하고 주관적인 변형을 부여하는 일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진이 가지는 양면적인 특성, 즉 현실 세계를 투영하지만 결국 아무런 실재도 가지지 못하는 이중성을 더 극적으로 보여줘서 마음에 들어요. 이미지를 훼손할 때 드는 쾌감이 있어요. 그리고 완성물이 마음에 들면 세상에 보여줍니다. 사진은 원본을 동일하게 복제할 수 있는 특성에 맞춰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물론 실제 전시를 하면 제공하는 경험의 폭이 완전히 달라지긴 하지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은 과일이에요. ‹tutti frutti› 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는 A부터 Z까지 각 철자로 시작하는 26개의 과일을 촬영하고, 과일의 각 이름을 그래픽 작업으로 합성한 이미지입니다. 세상에 과일 사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제가 찍은 과일의 모습이 궁금했어요.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과일의 이미지니까요. 과일을 사서 맛, 향, 질감을 느끼며 사진에 어떻게 옮길까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가장 먼저 작업한 건 ‹tomato›이고, 가장 좋아하는 건 ‹green grape›에요. 청포도가 풍선처럼 반짝거리게 찍혀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tutti frutti› is fruity photography project practiced in 2022.

이전 프로젝트도 설명하자면, ‹good goods›가 있습니다. 제 첫 개인 프로젝트인데요.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며 따로 진행한 프로젝트라 우여곡절과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제 전공인 제품 디자인에 대한 배움과 경험을 살려 일상 제품에 사진을 결합하면 어떤 결과가 탄생할까 궁금해서 최대한 다양한 제품에 여행에서 찍은 이미지를 1:1로 합쳤어요. 사진의 물리적인 확장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12 – 서울아트북페어 2020»에 참여해서 영광이었어요. 앞으로도 사진과 제품을 결합한 시도를 계속하고 싶어요. 제 사진으로 뒤덮은 여러 물건을 보여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저의 최종목표이기도 합니다.

‹candle›, ‹chiffon scarf›, photography & product design project practiced in 2020 for Unlimited Edition 12.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잖아요. 결국 사진은 시각 매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사진의 특성인 직관성은 제가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단 한 장의 사진을 맞닥뜨릴 때 심적인 울림이나 단박에 찾아오는 아름다움, 혹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면 의미를 갖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사진이 영화나 음악처럼 감상 시간이 긴 매체는 아니니까요. 보자마자 ‘이 사진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놔서 불만족하는 부분은 크게 없어요. 테크닉에 관해서는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습니다. 만족하는 부분도 크지 않아요. 그래도 이 정도면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어서 공개해봤어요. 저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좋아하지만, 디테일에 약해요.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상업 사진 외에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정물 사진만 보여드렸는데, 앞으로는 초상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포함한 더 큰 규모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며 발전하고 싶습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요. 제게 가장 어려운 일은 동일한 양의 노력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직장인이 되지 못했나 봐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밥 먹고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고 한 편으로는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제 방식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흥미가 생기는 기회가 오면 사생활 없이 매달립니다. 급발진하는 스타일이에요. 정말 이 일이 재밌으니까 자나 깨나 지금 제가 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에 배팅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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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Birthday Brothers›라는 제목의 초상 사진 프로젝트에 가장 관심이 갑니다. 외동이라 그런지 어려서부터 형제자매가 있는 집이 늘 부러웠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형제를 만들려고 합니다.

저의 초상 사진을 시작으로, 생일이 같은 사람을 찾아 피사체로 촬영하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촬영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 인물의 초상 사진이지만 이건 사실 모든 사진에 저를 투영한, 결국 여러 장의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과 같다고 생각해요. 빨리 결과물을 얻고 싶네요. 혹시 생일이 1월 27일이신 분이 계신다면 제발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제 모델이 되어주세요. 프로젝트 마지막에는 촬영에 참여한 모든 분을 초대해 성대한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 목표 중 개인 웹사이트 오픈과 유튜브 채널 개설이 있는데, 둘 다 시작에 성공해서 지속적으로 관리 중이에요. 웹사이트에는 제 모든 사진 작업을 아카이빙하면서 책, 영화 감상, 공부한 것도 기록하며 다양하게 활용하려고 해요. iamhay.online을 방문하시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웹사이트를 구경할 수 있어요. SNS에는 완전히 끝나고 정리한 작업만 올리곤 해서 가끔 피곤한데, 저만의 웹사이트가 생기니까 훨씬 개인적인 공간으로 다가와서 미완성 프로젝트도 부담 없이 올려놓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Project Birthday Brothers is a series of extremely personal portraits and some still lifes, started with self-portrait in 2022.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인생은 길고 긴 여정이고, 제게 주어진 인생에서 저는 모험가라고 생각해요. 도전하거나 모험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해요. 결과가 좋든 나쁘든 직접 경험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주관을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한 이유가 크고요. 앞서 설명한 프로젝트처럼 저는 지극히 작고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해 보편성을 아우를 수 있는 메시지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제 사진을 보고 ‘세상을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반응과 견해를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상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극복하지 못하고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맨몸으로 맞는 편이에요. 정면승부죠. (물론 박살 나는 건 자주 제 쪽이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진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사진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평정을 유지하는 편이에요. 예방주사를 잘 맞았죠. 고민이 많았을 때는 아무런 답도 내지 못했지만, ‘오래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온다’라는 교훈 하나는 제대로 얻었기 때문에 요즘엔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은근슬쩍 못 본 체합니다. 우울증은 무기력한 전조 증상을 반드시 수반하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기 전에 스스로 기강을 단단히 잡아놔야 해요. 이렇게 말해도 파도에 빠져있을 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직접 깨닫고 직접 빠져나오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35mm film, Jeju, South Korea, 2018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사진을 더 배우고 다양한 것을 찍고 싶어서 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준비 중인데요. 2년 안에 입학하는 걸 목표로 두어서 걱정도 되고 떨립니다. 첫 번째 걱정은 입학이고, 두 번째 걱정은 외국 생활에 대한 적응이에요. 다음 프로젝트로 포트폴리오 사진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 외에 영어 성적 등 준비할 것이 꽤나 많아서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씩 해보려 하고 있어요.

창작자로서 가장 중시하는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요즘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대한 것입니다. 한글로는 ‘독창성’인데, 그 뉘앙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아주 참신한 것만 창의적이고 새롭다고 느끼게 해서 오히려 창작자에게 압박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요즘 세대의 창작자는 누적된 창작물을 다 피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므로 분명히 더 힘든 지점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 걸 훔치면 안 돼요. 그건 아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아직 보잘것없고 아무도 작업을 봐주지 않더라도 제가 만족하고 제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를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요.

35mm film, Hyatt Regency Indian Wells Resort & Spa, California, 2019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지금 내 작업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작업을 공개했을 때 반응이 미미하거나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 결과가 시원찮아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아요. 저만 하더라도 정말 사진가가 되고 싶은 게 맞나, 어쩌면 그냥 사진가로서 겉멋 때문에 하고 싶은 건 아닐까 오래 의심했어요. ‘그건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고 나니까, 예전처럼 불투명한 미래에 자주 자신감을 잃거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너무 오랫동안 성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슬럼프가 또다시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자신을 다독입니다. 모두 몸과 마음이 다치는 일없이 건강하고 지속적인 창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환경과 사회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창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미적 감각을 세련되게 발전시키고 전달하는 데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성향이 제 사진에도 투영되었으면 합니다. 분명한 표현법과 개성 있는 사람으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 확실하게 보인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매일매일 사진 찍는 삶이요. 찍고 싶은 사진만 찍고 살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 좋겠어요. 내면의 감정이나 하고 싶은 말을 일정 부분 소모하는 다른 미디어와 다르게, 사진은 피사체만 있으면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환경이 여유로워지면 더 많은 것을 제 시선으로, 제 카메라로 담고 싶습니다.

Artist

전하윤(iamhay)은 서울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 이미지를 생산하는 포토그래퍼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고 주로 사진 작업을 통해 전시 및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과일 사진 프로젝트 ‹tutti frutti›를 그룹전 «Life is Fine»에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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