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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리는 것을 붙잡고 고민하는 게 숙명이라면

Writer: 이해민선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해민선 작가의 인터뷰는 왠지 모르게 무척 매력적이에요. 어렵지도 않고 길지 않은 답변들이지만, 하나 하나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동시에 작가의 태도가 물씬 묻어나오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런 이유에서 평소에 이해민선 작가의 태도나 작가로서의 고민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은 더욱더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는 귀여운 사람, 오늘은 갈등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활동하게 된 드라마틱한 계기는 없어요. 구체적 계기를 말하자면 «석사학위 청구전» 이후 각종 기획전에 참여하게 되었죠. 회화는 모든 공부의 기본이라 무엇을 하든 늘 함께 가는 것이라서 지속하는 게 자연스러웠답니다. 오히려 전공 이후에 평생 창작자로 사는 점에 대해서 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 역시 벗어나야 할 드라마틱한 계기가 없었어요. 대학 졸업 후 창작을 지속하려던 에너지는 기억이 납니다. 미술에 속고 싶었어요. 그래야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주거 공간을 업고 있는 공간이랄까요. 주거 공간이었던 곳을 작업실로만 사용해요. 그래서 안방이 페인팅 실, 작은 방이 드로잉 실, 다른 작은 방이 작품 보관 창고, 거실이 페인팅 실, 부엌이 새 캔버스와 작품 보관용 창고, 베란다는 각종 오브제 재료 보관 및 이유 없이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모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어요. 제가 이곳을 떠나면 방들도 제 이름을 되찾을 것 같네요.

‹나와 말한 적 없는›, 2013, 연필로 프로타주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온 세상이 노다지입니다. 다만 영감을 얻었다고 바로 실행하기보다, 몇 년 묵혔다가 어느 날 최근 작업과 중요한 연결점이 보이면 갑자기 시작합니다. 전시에서는 마치 즉흥적으로 대상을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제겐 질긴 연결고리가 마음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위의 답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요. 작업으로 하나의 높은 탑을 쌓는 것에 몰두하기보다 여러 개의 구덩이를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그 구덩이들이 어느 날 하나의 구덩이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답니다.

‹살갗의무게-땅_덩어리›, 2015, 사진 화학약품, 79 x 109cm

‹살갗의무게-돌산_덩어리›, 2015, 사진 화학약품, 79 x 109cm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풍경 속 사물에서 개인으로서 버티는 삶의 은유를 발견한 ‹바깥›, ‹강풍›이라는 그림, 대상의 표면과 외피에서 시작하는 ‹Cast› 시리즈로 나무를 프로타주한 그림, 사진 표면을 녹이며 작업한 ‹살갗의 무게› 시리즈, 최근 식물의 사물에서 인간의 사물로 넘어온 ‹Cast 2› 시리즈인 ‹환지촉 정물체 ›. ‹덜 굳은 사물› 작업은 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쓰던 깁스 73개를 구해 작업한 드로잉입니다.

2022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기획전시 «워키토키쉐이킹»에 설치된 이해민선 작가의 작품 ‹바깥›, 2022, 면 혼방목에 아크릴, 155 x 285cm

‹바깥›, 2018, 면천 위에 아크릴, 162 x 130cm

‹바깥›, 2018, 면천 위에 아크릴, 182 x 226cm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이미지보다 ‘생각’이 중요한 사람인데요. 그렇지만 작업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없어요. 다만 작가로서 요즘 자주 하는 말은 있어요.
“나는 페인터가 아니다.”
“나는 원하는 이미지가 없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점층적인 확장과 반복을 통해 작업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소재가 바뀔 때마다 매번 0에서 시작하는 점이 매번 너무 고통스러워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 나무를 그렸다고 홍콩에서 나무를 보고 또 그리지 않아요. 만약 홍콩의 나무에서 서울의 나무와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면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부터 의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작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날에-네모난 돌과 초록풀›, 2015, 사진에 화약약품, 104.5 x 143cm

‹비슷한 날에-네모난 돌과 초록풀›, 2015, 사진에 화약약품, 104.5 x 143cm

‹살갗의 무게-중앙역›, 2015, 사진에 화약약품, 85.5 x 119.7cm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 단계에는 ‘개념 정리기’, ‘준비기’, ‘시도기’, ‘몰입기’가 있어요. 어떤 시기냐에 따라 일상이 조금씩 다른데요. 그래도 모든 구간의 아침에는 고요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를 고요하게 놔두는 거죠. 텅 빈 시간을 확보하면 일상이라는 팩에서 공기가 새지 않고 잘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나 ‘몰입기’가 오면 텅 빈 시간은 개나 주고 눈 뜨자마자 작업실로 뛰어갈 때가 많습니다.

금호미술관 단체전 «B컷 드로잉»(2017)에서 선보인 이해민선 작가의 ‹무생물 주어›, 2014-2017, 종이 위에 오일 페인팅, 스티로폼, 나뭇가지, 나무 토막, 유토 등, 가변 설치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작업과 관련해 ‘무해한 화학약품’ 찾기.
저 혼자 만들고 저 혼자 즐기는 ‘노을 감상 협회’의 부지런한 활동 촉구.
사회적 가장자리에 있는 모든 소수자의 해방.
드로잉 북 시리즈 출간은 언제 만드나.
가수 이소라는 도대체 새 앨범을 언제 낼 것인가? (2024년 가을쯤 어떠신가요?)
디스코 음악 찾기. (아마 2024년 가을 전까지?)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지금까지 슬럼프는 없었어요. 안 풀리는 것을 붙잡고 고민하는 게 숙명이라서요. 항상 매번 겪는 필수 과정이라 고민이 많은 상태가 매일이에요. 물론 이런 고민은 슬럼프와 본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겠지요. 어쩌면 저도 모르게 증상 없는 감염병처럼 지나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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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롤모델을 찾지 마세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

Artist

“관념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사물 보기를 흥미로워한다. 모든 것이 동등한 물질의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각기 자기 힘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 사물을 화면으로 불러들이고 그것이 이미지인 동시에 사물이기를 기대한다. 매체의 제한은 두지 않지만 ‘그리기’를 주로 한다. 나에게 재료는 단지 도구가 아니며 그 역시 물질이다.” 

이해민선은 «젊은모색 2006»(국립현대미술관, 2006), «Planet A: 종의 출현»(일민미술관, 2009), «B컷 드로잉»(금호미술관, 2017)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해왔다. 2021년 12번째 개인전 «디코이»를 페리지 갤러리에서 열었다. 오는 202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종근당 예술지상 기획전»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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