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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고 흐릿했던 것들이 뚜렷해질 때

Writer: 이해선
이해선, 흐릿하다, haesunlee, art, illustration, drawing, 드로잉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보통 그림을 배울 때 가장 처음으로 연습하는 건 분명한 형태를 그려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뚜렷한 윤곽선이 필수적이에요. 그걸 통해서만 대상과 배경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고 덕분에 사물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해선 작가는 희미하고 흐릿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세상이 요구하는 뚜렷한 경계선을 지워나갑니다. 그 결과 모호하고 알쏭달쏭하지만 잔잔한 감각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흥미롭게도 이해선 작가는 이제 흐릿하고 희미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쪽에서 좀 더 분명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그림을 그리는 이해선입니다. ‘희미함 속에서 온전해지는 그림을 그린다’고 주로 소개하는데요. 최근 2년간은 희미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변화하는 저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재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눈이 나빠졌으면 하는 상상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안경이 없으면 안 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그러면 무서운 것을 전부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모든 게 또렷한 세상에서 겁이 많던 저는 그림 안에서만큼은 온전해지고 싶었답니다. ‘희미한 그림 속에선 모든 게 나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렇게 중심이 서던 시기에 이젠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독립 출판을 시작하고, 자연스레 페어에도 참가하고, 서점에 입고도 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창작 공간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도 되나요?

제 방의 독서실 책상이 창작 공간이에요. 서울에서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방이 좁아지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해봐도 책상 자리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나름 수납력도 좋고, 집중도 잘되고, 약간의 공간 분리도 되니까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아요.

이해선, 흐릿하다, haesunlee, art, illustration, drawing,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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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최근 ‹왜›, ‹밝은 우산› 등의 인물 그림을 연이어 선보이고 계세요. 영감을 얻고,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다듬어 완성하는 작가님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커버 작업의 경우, 대부분 곡을 받아 계속 들으면서 작업을 해요. 그러면서 영감을 얻고, 콘셉트를 정하죠. ‹왜›는 노래를 들었을 때, 마치 연인이 서로 다투는 대화처럼 들렸어요. 곡에서 ‘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심정이 느껴졌죠. 그래서 티저에는 ‘왜’를 수없이 쓴 듯한 그림과 이해를 못 해주는 연인이 메시지로 와다다다 쓴 듯한 후렴 가사를 작업했어요. 커버를 보면 서로 노려보지만 그런데도 화면이 꽉 차게 붙어있죠. 대비되는 색을 통해 둘이 너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서로 사랑하니 떨어지진 않게 작업했답니다. ‹밝은 우산› 같은 경우에는 비가 오는 눅눅하고 서늘한 여름날에 화자의 쓸쓸함을 느꼈어요. 곡에서 화자는 밝은 우산으로 자신의 표정은 숨기고 사람들에게 밝은 면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인물의 쓸쓸한 표정이 커버에 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화려한 안경과 전체적으로 밝은색을 활용한 이유는 밝은 척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였죠. 하지만 인물의 표정과 빗물처럼 흐르는 글씨, 여백이 많은 배경은 밝은 모습과 대비됩니다.

요즘 작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근 들어 저를 더욱더 강조하고 있어요. 인물을 그리는 것도 같은 맥락 같아요. 예전에는 인물을 쓰는 게 직접적이라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림도, 저도 계속 변화하면서 이제는 희미함 속 온전함이 아니라 혼돈이어도 온전해지고 싶어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어디서든 저다운 것이 창작자로서도, 개인으로서도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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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2020년부터 희미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 작업에서 만족한 부분과 불만족한 부분이 비슷해요. 스스로 만든 틀을 꽤 없애서 만족하지만, 틀을 없애니 산만하고 괜히 화려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불만족하죠. 지금은 비우고 집중하는 지점을 찾고 있습니다.

창작자로서 어려움을 겪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창작자라는 자아가 자주 흔들려요. 주변에 저를 소개할 때도 한 단어였으면 좋겠는데, 사족을 붙여야 겨우 알아주는 기분이 들기도 하죠. 극복은 제가 저 자신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선 큰 목표를 세우면 ‘아, 이럴 때가 아니구나’ 생각이 들면서 흔들렸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포기한 것은 무엇인가요?

주말?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주말을 통째로 쉬면 불안해요.

이해선, 흐릿하다, haesunlee, art, illustration, drawing,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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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만큼은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늘 주변 사람과 대화면서 극복하는데요. 최근에는 아빠의 말 덕분에 극복했어요. “누가 비행기를 사든, 뭘 하든 휩쓸리지 마. 누가 뭐라고 하든 네 갈 길을 천천히 가.” 명강의 잘 들었다고 했어요.

작가님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태도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방해받는 게 싫어서 대부분 헤드폰을 끼고 생활해요.

작가님의 삶의 태도 및 가치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어디서든 저다운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작업에 좀 더 직접적이고 약간 불친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삶의 지혜가 궁금합니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정보를 찾아보다가 결국 안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순서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죠. 일단 해보고 그때부터 정보를 알아보는 거죠. 이편이 더 빠르고 뭐라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물을 작업하고, 보일 때 과한 몰입과 설명을 지양해요. 과한 몰입은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결국 고이게끔 하는 것 같아요. 과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작업으로 하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말로 하지 못하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건데, 설명을 추가하면 과하고 중심이 쏠린 기분이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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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저는 ‘버틴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무작정 다작하거나 스스로 퀘스트를 주는 편이에요. 버틴다는 마음은 주로 생각이 너무 많을 때 나타나는데, 그때에는 생각을 멈추고 손을 써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의외로 고민점이 단순했다는 걸 알게 되어요.

최근 창작의 경계가 급격히 흐려지며 서로 긴밀히 얽히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창작은 어디로 향할까요?

창작자에게 더 초점이 맞춰질 것 같아요. 관심 있는 창작가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어떤 매체로 나타내든 간에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좋아할 것 같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매일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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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해선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me»(2021), 단체전 «비명횡사»(2021),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2021)에 참여했으며, 독립출판, 앨범 아트워크, 기업과의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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