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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Writer: 박그림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박그림 작가는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작업하는 독특한 창작자예요. 그는 퀴어로서의 성정체성, 정읍이라는 지방 소도시 출신의 배경, 한국화에서 마이너한 불교 미술 등 자신의 정체성을 ‘소수자성’으로 정의하고, 대중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서사를 통해 소수자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답니다. 불교미술의 특색을 고루 갖췄지만 그림에 출현하는 주인공들은 각종 상징을 품고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그가 원하는 건 동시대에서 차별받고 소외되는 모든 존재가 존중받는 세상인데요. 이런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작업에 열중하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퀴어, 그리고 동시대 인간관계와 함께 이분법적 고정관념의 해체에 관심을 두고 이를 불교미술로 표현하는, 관심이 싫지만 관심받고 싶은 환쟁이 박그림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으로 칭찬받는 게 좋아서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시골에서 미술의 꿈을 유지하기엔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척박한 상황이었어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미술을 포기하고 꿈이 없어진 저 자신을 보게 되었죠. 그러다 20대 초에 문득 ‘아 이렇게 살 순 없어. 이렇게 살기 싫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 다짐 이후,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힘들 땐 삭발까지 하면서 약해진 마음에 회초리를 들며 미술의 꿈을 잡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네요.

‹虎言 호언 Houn_silent tiger›, 2023, 비단에 담채, 27.3x 22cm

‹好奇 호기 curiosity›, 2023, 비단에 담채, 31.5×21.8cm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실은 신사역 근처 간장게장 골목 쪽에 있어요. 이 동네에 7년째 머물고 있는데, 전속 갤러리인 Gallery THEO에서 제공해 주셨어요. 집 근처에 작업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1층에는 갤러리가 있고 작업실은 2층에 있는데요. 공간 자체가 크진 않지만 혼자 쓰기 딱 좋아요.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 손님이 오시면 전시장과 작업실을 한 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서 편하고, 항상 상주하는 느낌이 들어서 갤러리에 대한 친밀감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요즘 관심사가 인간관계에 있다 보니 주로 사람을 만나며 생기는 상황이나 대화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기획자이자 친구인 정찬용과 시시콜콜하게 나누던 대화 주제가 많은 도움이 돼요. 이 친구와는 서로 살아온 환경이나 처한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른데요. 저와 대비되는 사람과의 대화가 작품의 영감으로 작용하는 거죠. 또 퀴어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마주할 때나 종교 경전과 신화 등에서 영감받기도 합니다.

‹日蝕 일식 solar eclipse›, 2023, 비단에 담채, 34.7×24.2cm (좌)

‹月蝕 월식 lunar eclipse›, 2023, 비단에 담채, 45.4×27.3cm (우)

‹三位一體_삼위일체_The Trinity›, 2023, 비단에 담채, 38.5×50.3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하나의 작품에 여러 가지 서사와 상징을 넣는 걸 좋아해요. 표면적인 도상에서 읽히는 서사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퀴어 서사를 어떻게 숨겨 넣을지 고민합니다. 주로 그려진 오브제의 상징을 통해 비유하다 보니 그에 대해 가능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釖流 검류 a dagger of VegaBond›, 2023, 비단에 담채, 35.5×21.8cm (좌)

‹眷戀 권련 Kobus magnolia›, 2023, 비단에 담채, 28.2×22.3cm (우)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현재 Gallery THEO에서 이규식 기획자님의 기획으로 태킴 작가님과 함께 전시하는 작품을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심호도-월광›과 ‹심호도-일광›이 있습니다. 심호도는 불교의 ‘심우도’ 설화를 차용해 제 개인적 서사와 결합한 시리즈예요. 전통 회화를 동시대적 맥락으로 재현 및 구현하면서 종교화의 특징을 이용해 이를 수용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는 작업입니다. 퀴어, 지역 출신의 배경, 상대적으로 소수 장르인 불교미술 등 제 정체성은 ‘소수자성’으로 대표할 수 있는데요. 대중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서사를 통해 이런 소수자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답니다. 한 소년이 소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심우도에서 ‘소’는 소년에게 깨달음을 주는 매개체이고, ‘소년’은 본성을 찾기 위해 나서는 수행자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저는 소년을 호랑이로, 소는 보살로 치환해 깨달음을 주는 이와 얻는 이의 위치를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호랑이는 대중이 영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근간인 ‘단군 설화’에서는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잖아요. 즉 불완전하고 미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요. 이를 페르소나로 삼아 개인 서사에서 만난 상징적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독립적인 세계관으로 형성하고 전통 회화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거죠. 여기서 확장한 월광과 일광은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인간의 판단 기준에 비유하며 의문을 던지고 있어요. 모든 인간은 양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의 ‘첫인상’에 따라 하나의 이미지로 제한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는데요. 이런 게 과연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거죠. 기존 작품을 크롭Crop하며 파편화한 작업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장에 방문해주시면 친절히 설명해드리고 싶습니다!

‹尋虎圖_日光 심호도_일광 Shimhodo_sunlight›, 2022, 비단에 담채, 122×250 cm (좌)

‹尋虎圖_月光 심호도_월광 Shimhodo_moonlight›, 2022, 비단에 담채, 122×250 cm (우)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동시대에서 차별받고 소외되는 모든 존재가 존중받기를 원해요. 비단 소수자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대해 고찰하기도 하고, 삭막해진 이 사회가 주는 시련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작품을 보며 의지를 품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년 작업 속도를 많이 올린 덕분에 올해에는 다작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는 많은 작품을 낳게 되었는데요.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전처럼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작업 속도를 끌어올리기 전에도 똑같았던 거 같기도 해요. (웃음)

«Finitioni 끝에게», THEO, 2023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 외에는 보통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애완 물고기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마음대로 잘 안 돼요. 집에서 쉬는 와중에도 ‘작업해야 하는데…’하면서 마음 졸이곤 하죠. 그런 날은 실상 그림에 손이 안 가서 집에서 쉬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문득 ‘아, 안돼!’하면서 작업실에 나가서 작업에 몰두하다가 집에 돌아갑니다. 요즘에는 이런 일상이 무한반복이에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4월에 열리는 «더프리뷰 성수»에서 선보일 신작과 Gallery THEO와 연계한 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제작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Finitioni 끝에게», THEO, 2023

«Finitioni 끝에게», THEO, 2023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품의 시발점인 영감은 제가 살면서 느끼는 순간순간의 기분이나 제가 처한 상황 그리고 상대와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부분에서 주로 얻는데요. 그러한 부분이 그대로 작품에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끼는 부분 중에서 관람객 또한 어디서 겪어본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에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를 믿고 응원하는 친구들과 제 그림을 좋아해 주는 분들을 생각해요. 이런 마음을 생각하면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 문득 ‘나 따위가 슬럼프를 겪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붓을 잡으려고 애쓰게 돼요.

‹白 백 Silence(white)›, 2023, 비단에 담채, 41x32cm

«Finitioni 끝에게», THEO, 2023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년부터 전시가 꾸준히 잡히면서 거의 몸을 믹서기로 갈 듯 작업하다 보니 급노화가 찾아온 기분이 들어요. 밤샘 작업은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아니었나 봐요. 점점 아픈 곳이 많아져서 건강이 제일 고민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단순히 예쁘거나 자기 위로만 되는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조금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을 안도하게 만들어서 자신을 스스로 가둘 수 있거든요. 저도 예쁜 것을 포기하지 못하지만, 그 안에 여러 서사를 넣으면서 사회 문제나 미술사적 가치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방식이 작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가능성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Finitioni 끝에게», THEO,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처럼 저 또한 창작에 임할 때 많은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러다 보니 딱히 뾰족한 노하우나 팁은 없지만요. 부디 작품을 처음 시작하고 완성했을 때의 기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기분을 늘 간직한다면 어떠한 방향으로든 창작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痕迹 흔적 trace 230224›, 2023, 비단에 채색 ,스크래치, 130x130cm

‹虎視 호시 Hosi_blind tiger›, 2023, 비단에 담채, 27.3x 22cm (좌)

‹虎聽 호청 Hocheong_deaf tiger›, 2023, 비단에 담채, 27.3x 22cm(우)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보다는 제 작품과 그 뜻을 오래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해요. 그런 세상이 오겠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요.

Artist

박그림은 1987년 정읍 출생으로 불교미술을 도제식으로 수학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했다. 퀴어와 불교미술을 융합해 한국화를 재창안하는 방식을 꾀하며, 사회의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虎路, Becoming a Tiger»(스튜디오 콘크리트, 2022), «CHAM; The masquerade»(유아트스페이스, 2021), «화랑도(花郞徒)-꽃처럼 아름다운 사내들»(불일미술관, 2018)을 열었고, «제21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3),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일민미술관, 2022), «BONY»(뮤지엄헤드, 2021), «남성모양»(Space9, 2020), «The Flags»(두산갤러리 뉴욕, 2019)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8년 ‘앱솔루트보드카 아티스트 어워즈’에서 WINNER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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