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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로 다시 태어난 용광로 속 유리공예

Writer: 글로리홀
gloryhole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박혜인은 글로리홀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미술과 생활에 쓰일 수 있는 유리를 만드는 작가입니다. 요즘 예술에서 NFT가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차에 박혜인 작가도 NFT에 도전했어요. 디지털에서 유리 작업을 주조한 것이죠. 보통 유리를 만들 때는 뜨거운 불을 거치며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데요. 디지털에서는 이런 한계가 없어지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으로 다가왔다고 해요. 과연 디지털 세계에서 유리답게 유리를 작업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양한 고민이 담긴 작업 후기를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Flowing Highlight_ Glass sculpture› 작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Flowing Highlight_ Glass sculpture› 시리즈는 저의 첫 NFT 작업이에요. 지난 11월 Shoyunft.com이라는 NFT 플랫폼에서 공개했는데요. 유리를 디지털 이미지로 옮겨서 유리 표면에 맺힌 빛(하이라이트)이 그래픽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확장하는 과정을 다뤘어요. 처음과 끝이 같은 GIF 애니메이션 포맷으로 만들면서 이를 디지털상에서 블록체인 알고리즘 기술을 이용하여 ‘주조’했답니다. NFT에서는 이런 걸 ‘민팅minting’이라고 해요. 해당 작업은 Shoyu 플랫폼에 공개된 총 5개의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작업하게 된 계기와 콘셉트를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유리를 예술 매체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유리는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불로 만들어서 현실 세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데요. 이를 디지털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 디지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면 유리가 지닌 물리적인 제약을 어떤 부분에서는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작업의 주요 무대가 현실이 아닌 디지털로 옮겨진다면, 무엇이 유리를 유리답게 만들까(가령 해상도일지, 투명함일지), 유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NFT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와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업의 콘셉트는 유리에 맺힌 빛을 그래픽 알고리즘을 통해 움직이게 만들면서 어떻게 형태가 바뀌고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 그 과정을 그려내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유리를 3D 그래픽으로 옮기고 유리 재질을 입힌 것으로 작업했지만, 플랫폼 측과 조율하면서 최종적으로 실제 유리 작업을 찍은 사진으로 결과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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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서 재미있는 점, 주목할 점이 있다면 힌트를 주시겠어요?

이번 작업은 포토샵 Photoshop으로만 제작했는데 제가 사용한 Liquify픽셀유동화라는 기능은 동그라미 커서로 이미지의 픽셀을 이동시키는 작업이에요. 포토샵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했을 법한 기능입니다. 이 작업은 사람이 수동으로 이미지의 부분들을 옮기고 나서 다시 한번 픽셀 유동화 작업을 실행시키면 프로그램이 스스로 제가 이동한 방향으로 다음의 길을 만들어 나갑니다.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스스로 픽셀들을 일정 형태로 재조합해서 만들어 나간다는 지점이 재미있어요. 이 과정을 30번 정도 반복하면 어느 순간 마치 더 이상 만들어 나갈 길이 없다는 듯 변화가 미미해집니다. (그래도 아주 미세한 부분들은 조금씩 움직입니다) Flowing Highlight_Glass sculpture Series는 이 30번의 과정을 각각 저장하여 그것을 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입니다. 재미있는 지점은 Liquify가 이런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 조차도 우연히 발견하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에요. 알고리즘이 유리의 표면을 해체시키고 빛들이 유리 안에서 어떻게 흐르는지를 관심있게 본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 앞에서 유리를 다룰 때와 디지털에서 유리를 다룰 때는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가요?

우리가 유리를 유리로 인식하게 되는 지점은 투명함, 물질의 두께에 따라 투명함 너머로 보이는 이미지의 왜곡, 그리고 무엇보다 그 물질에 반사하는 빛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점이라면 실제 유지와 디지털 유리 모두 이런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다른 점이라면, 불 앞에서 유리를 다루는 일은 중력과 협업을 해야 하죠. 뜨거운 유리는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고, 저는 그로 인한 우연성을 크게 포용하는 편입니다. 그래픽에서 유리를 다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알고리즘과의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렌더링 프로그램을 통해 유리의 재질감을 입힐 때는 미리 설정한 빛의 광량과 방향, 반사 등이 알고리즘으로 계산되어 우리가 보기에 유리라고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그럴듯한 표면이 만들어지니까요. 고온의 불을 통해서만 가능하던 유리의 표면이 순식간에 만들어지죠. 그렇지만 알고리즘의 계산으로 만든 표면을 확대해보면 실제 유리와는 전혀 다르답니다. 그래픽이 유리답게 보기에 위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볼 수 있는데요. 현실에서 유리를 현미경으로 아무리 확대해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렌더링 프로그램(Keyshot)의 알고리즘이 만든 일종의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NFT로 작업을 판매한다는 사실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유리를 만드는 일은 큰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해요. 1300도가 넘는 고온을 가진 용해로, 1000도의 화력을 가진 거대한 화로(글로리홀), 유리 원료, 그 밖에도 수많은 도구와 시설이 있어야 하죠. 그러나 NFT를 시도하면 이런 제약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손톱만 한 유리를 만들건, 집채만 한 유리를 만들건, 작업을 디지털로 작업을 디지털로 옮기면 스케일이 사라져요. 다시 말해 디지털 안에서 거대해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죠. 더불어 실물을 다루는 작가로서, NFT로 작업을 판매하면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유리의 실제적인 스케일에서 오는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미시적으로 접근해봤는데요. 이런 디지털 작업이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제게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Flowing Highlight_ Glass sculpture› 시리즈는 ‘피지털Phygital’ 작업이에요. ‘Physical’과 ‘Digital’의 합성어인 피지털 작업에는 NFT를 구매한 사람에게 작업에 들어간 실물 유리 작업을 배송해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죠. 구매한 사람들의 주소를 모르는지라 저한테 직접 연락해서 작업을 달라고 청구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는데요. 판매된 3개의 NFT 중 실물 배송을 부탁한 분은 단 1명뿐이었어요. 심지어 해당 작업은 유일하게 실물이 포함되지 않았던 작업이었답니다. 정작 실물이 들어간 작업을 구매한 두 분은 제게 연락하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NFT 컬렉터 중에는 디지털 작업만을 원할 뿐 실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더군요. 여전히 그 유리 작업은 보관하고 있어요. 이번 경험으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벌써(!) 디지털 재화가 실물 재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유리의 디지털화를 더 실험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유리가 디지털로 옮겨지면서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무엇이 새롭게 파생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검토하며 시도해보려고 해요. 사실 처음에 디지털화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디지털 유리가 유리의 표면을 유지하면서 움직인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유리의 형태는 액체에서 태어나고 움직이는 순간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식은 상태에서는 정지해 버리니까요. 이런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의 디지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뜨거운 유리에서 보았던 움직임과 그 생명력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생명의 정의 또한 다시 정해지지 않을까요? 그런 과정에서 유리에게 일종의 생명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요즘 혹시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스테레오타입이 있을까요? 생활 방식, 작업, 그 외 여러 가지 측면에서 편하게 말해주세요.

가능하다면 스테레오타입을 경계하려고 해요. 가령 저는 같은 시기에 글로리홀로서는 커머셜한 캔들 유리를 만들고, 박혜인으로서는 유리로 첫 NFT 아트를 시도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한 사람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이 모든 게 보인다는 점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것도 또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활 방식과 작업적인 영역 모두에서 일견 달라 보이는 두 가지가 평행선처럼 보이다가도 끝에 만나는 지점이 생길 수 있도록 작업하며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이 기대고 있는 이 시대의 스테레오타입, 작가님의 작업을 유효하게 만들어주는 이 시대의 특징들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제 작업을 실물로 직접 보기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으로 접한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늘 암묵적으로 생각하며 작업해온 것 같아요. 창작자인 저도, 그리고 다른 분들도 카메라가 유리 작업의 실물이 주는 느낌을 100% 온전히 담지 못하는 걸 대체로 당연하게 생각해요. 실물을 찍은 디지털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실물과 비교해서는 조금은 열화된 부분도 있고, 더 극대화된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만큼 디지털은 이미 현실의 기본값으로 이미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디지털이 현실을 압도할 때, 현실의 다운그레이드가 아니라 업그레이드로 작동하는 때가 온다면, 유리의 디지털화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번 작업에 한정해서 본다면, 알고리즘이라는 것도 시대에 유효한 이야기이고요. 미래에는 많은 것들이 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될 테니까요. 저는 제 작업이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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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해요.

생소한 NFT 커뮤니티 용어와 세계, 가지고 있는 노트북이 최대 화질의 GIF를 저장하지 못해서 계속 이미지 크기를 조정해야 했던 일, 스스로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일 등이 어려운 지점이었어요.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 이더스캔(Etherscan) 같은 사이트를 통해 잘못 민팅한 작업을 태우거나, 판매된 작업의 정산을 받는 과정도 무척 생소했습니다. 사람이 입금해주는 일이 아니거든요. 모두 낯섦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어요. 작년 봄에 처음 NFT의 존재를 알았는데 그에 비하면 꽤나 빠른 도약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극복 방법은, 앞으로 더 공부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제가 이걸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조금은 늘 불안했고, 다른 길로 가려고 시도한 적도 있답니다. 다 지나고 나니 그럭저럭 잘 버텨온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는지 몇 가지가 생각나는데요. 잘 모르더라도 일단 시도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을 가지기, 작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작업의 일부로 여기며 즐기기, 생계와 작업을 분리하지 않기,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다음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말기. 이 정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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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박혜인은 서울에서 미술과 생활에 쓰일 수 있는 유리를 만들며 그 둘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글로리홀Gloryhole Light Sales’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면서 조금은 결이 다르기를 목표로 한다. 작년 «봄의 윤무»(갤러리 나인), «UNPARASITE»(플랫폼엘), «2021 아티언스 대전»(대전예술가의집)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자신의 유리 작업으로 첫 NFT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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