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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몸의 기억을 저장하는 덩어리

Writer: 김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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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김채린 작가의 조각품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어요. 조각에 난 구멍에 얼굴을 집어넣어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직접 손으로 두드려 사운드를 만들면서요. 조각에는 우리가 접촉하는 기억과 시간이 저장된다는 믿음 아래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랍니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오래오래 조각가로 남고 싶은 김채린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Affordance Sculpture 2 들여다보기›, 영상스틸컷, 2020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조각 작업을 하는 김채린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지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조각을 하셔서 집에 조각상이 많았는데요. 손으로 만지고, 올라타기도 하고, 옷을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생활밀착형 조각’에 가까웠죠. (웃음)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영향받아, 제 작업도 만질 수 있거나 다양한 기능을 더했어요. 저는 ‘만지는 조각’의 효능을 믿거든요. ‘조각sculpture’엔 우리가 접촉할 때의 기억과 그 시간을 저장한다고 생각해요.

‹만지는 조각›, 2018

‹세이브 미 2005-2022›, 2022, 촬영 Studio MASIL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예전에 중학교였던 공간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긴 복도에 교실이었던 방이 늘어서 있는 건물인데요. 열 명 정도의 작가분들이 함께 계시고, 저는 그중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바닥이나 창호가 오래됐지만, 아주 깔끔하게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웃음) 그리고 작은 작품 창고도 하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일상에서 얻어요. 제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편이죠. 오랜 기간 정말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미술을 전공한 학생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친구들, 중도 입국 자녀들, 문화 소외 지역의 어르신들, 발달장애인, 직장인 등 각기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죠. 제가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특정한 지식 없이도, 남녀노소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는 조각품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Affordance Sculpture 5 조합하기›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제게는 이 조각을 어떻게 만질 수 있을까 여부가 중요한 문제예요. 그래서 이미지를 그리기보다, 관람객이 작품을 만지고, 무엇을 느낄지 먼저 떠올려 봐요. 만질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에서 시작해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 접촉으로 우리 몸에 남겨진 것을 덩어리에 담아내거나, 공간에 행위의 기억을 새기는 작업을 합니다. 조각 덩어리를 작업실에 두고, 꾸준히 관찰하며 작업을 이어 나가죠. 평소 관심 가는 재료들을 조금씩 구매해 작업실에 모아두었다가, 적절한 작품 계획이 나오면 재료를 꺼내 사용하는 편이에요.

‹Affordance Sculpture 1 끌어당기기›

‹Affordance Sculpture 1 끌어당기기›

‹팔베개_에코플렉스0030실리콘›, 2019년, 촬영 민준기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팔베개›는 15년 정도 꾸준히 만들고 있는데요. ‘몸이 가진 기억을 저장한 덩어리’입니다.

‹행동유도조각(Affordance Sculpture)›은 특정 행위를 유도해 몸으로 관람하는 작업이에요. 그 중 ‹행동유도조각(Affordance Sculpture) #2: 들여다보기›는 작품의 일부인 계단에 올라 구멍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안을 들여다 보게 만들었어요. 작품 안에는 촉감을 자극하는 또 다른 조각품이 들어있는데요. 양옆과 뒤쪽의 작은 구멍들에 손을 넣어 만질 수도 있답니다. 구멍을 통해 작품의 일부분을 감상할 수도 있죠. ‹조각음계(Sculpture Scale)›는 사운드 아티스트 서혜민 작가와의 협업 작업이에요. 조각을 음악의 구조로 끌어들여, 연주할 수 있는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활용해 김석중 무용수와 선민수 타악 연주자와 함께 사운드 퍼포먼스 ‹두 귀 사이에는 얼굴이 있다›를 선보였어요. 그림 악보를 함께 제시해 관객이 음악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적도 있어요. 조각이 몸의 경험으로 남길 바랐거든요.

‹조각음계, 조각연주지침서›, 김채린X서혜민, 2020

‹두 귀 사이에는 얼굴이 있다›, 김채린X서혜민, 김석중(무용), 선민수(타악), 2020, 영상촬영 윤관희

작년 개인전부터 올해까지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두 작업도 소개하고 싶어요. 하나는 버려진 패각(貝殼, 조개의 껍데기)을 재료로 활용한 조각이에요. 2018년부터 생애 주기를 가진, 자연적 해석이 가능한 재료를 찾다가 패각을 활용해 시멘트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이 작업은 패각을 활용한다는 점 이외에도, 조각품의 재료를 관람자가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보통의 조각 재료는 이름만 듣고 원재료를 파악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패각의 경우 바지락이나 전복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재료라서, 관람객이 변화 과정을 유추하며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요. 또한 패각을 모으고, 분류하고, 씻고, 말리고, 분쇄하는 과정도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일상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니까요. 이 작업을 통해 우리 주변의 다양한 대상과 일상적 행위가 예술 작품과 예술적 행위로 변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이 작업은 올해 국립현대 미술관의 커미션 워크로 제작했어요. 어린이미술관에서 열리는 «예술가의 지구별 연구소» 전시에서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내일이 없던 과거의 오늘_굴패각, 바지락패각, 굴패각, 바지락패각, 고둥패각, 황금가리비패각, 홍합패각›, 2022

다른 하나는 ‹세이브 미›입니다. ‹세이브 미›라는 이름은 2022년 1월 «퍼블릭아트»에서 매년 진행하는 신진 작가 발굴·지원 프로그램 ‘뉴 히어로New Hero’에서 홍승택 작가가 저를 소개한 글의 제목에서 인용했어요. ‹세이브 미›는 누군가에게 남겨진 것과 제 과거 작업의 부산물로 만들었습니다. 버려지는 잉여물과 계속 무언가 창조하고픈 작가적 욕구의 중립 지대에 존재해요. 그래서 이 작업은 조립형 모듈처럼 각 부분이 다른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고, 계속 순환하며 작품에 재등장할 수 있답니다. 조각이 놓이지 않을 곳에 위치하거나, 위장처럼 풍경에 동화하기도 하죠. 작품과의 산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는데요. 해당 작업에 속하는 조각품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고, 어디에든 놓일 수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2022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조각충동» 전시에서 소개한 ‹세이브 미 2005-2022›는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한 작업을 참조해 재탄생한 작품이에요. 변화하는 조각이 가진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다루고자 했죠. 실제로 작품 일부는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하거나, 일상 사물의 모습으로 돌아갔어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어린이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 «예술가의 지구별 연구소», 서정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Reinterpretation», 헬로우뮤지움의 «마이터틀» 전시에서 ‹세이브 미› 작업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세이브 미 2005-2022›, 2022, 촬영 Studio MASIL

‹세이브 미 2005-2022›, 2022, 촬영 Studio MASIL

‹세이브미_다채널영상› 영상스틸컷, 2022, 촬영 김용현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조각품은 종종 화려한 외관과 거대한 규모로 우리를 물리적 함정에 빠지게 만들죠. 이러한 현상을 멀리하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흠모하고 있어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매주 하루는 부산에 강의를 가고, 이틀은 연구소에서 일합니다. 나머지 시간은 작업실에 있어요. 집에 있을 때는 요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Affordance Sculpture2 들여다보기› 영상 스틸컷, 2020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순환하며 공존하는 방법, 건강하게 관계를 유지하기.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 작품의 주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등등 작업 전체에 삶의 태도가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주변 사람에게 전화해 힘들다고 찡찡댑니다. (웃음)

‹그로부터 비롯된 flying tiger›, 2019년 (좌)
‹그로부터 비롯된 Landscaping, Modeling and Diorama›, 2019, 촬영 민준기 (우)

‹그로부터 비롯된 flying tiger›, 2019년 (상)

‹그로부터 비롯된 Landscaping, Modeling and Diorama›, 2019, 촬영 민준기 (하)

‹둥근 모서리›, 2019, 촬영 민준기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품을 보관하는 일이요. 조각품은 회화처럼 규격에 맞게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잘 정리한 회화 작가님들의 작업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제 작업물은 크기와 무게가 제각각, 부피도 크거든요. 때때로 작품을 모두 이고 지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 우울할 때도 있어요. 이런 고민에서 ‹세이브 미›라는 작업이 탄생하기도 했답니다. 또 다른 고민이라면 사포질 때문에 비염이 생겼다는 점과 손목에서 소리가 나는 일이 있겠네요.

‹세이브 미 2005-2022›, 전시전경 2022, 촬영 민준기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문득문득 생각나는 작업을 하는 사람.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의 배우자와 함께 사이좋게 작업하며, 오래오래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그리하여 언젠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비교적 건강한 조각가 할머니가 되는 것.

Artist

김채린은 부산에서 태어나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몸이 가진 기억을 저장한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 접촉으로 남겨진 것을 덩어리에 담아내거나, 공간에 행위의 기억을 새기는 작업을 한다. 개인전으로는 «세이브 미»(2022, GS칼텍스 예울마루 장도전시실)와 «따뜻한 여름의 둥근 모서리»(2019, OCI미술관), «열한가지 조각»(2018, 김종영미술관)을 열었고, «조각충동»(2022, 북서울시립미술관), «퀀텀점프:조각음계»(2021,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 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 가볍거나 유연하거나»(2020, 성산아트홀)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퍼블릭 아트» ‘뉴 히어로’(2021), OCI 영크리에이티브스 (2019), 김종영미술관 창작지원 작가(2018)에 선정됐다.

결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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