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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축적과 중첩이 만드는 환상의 그래픽

Writer: 채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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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채병록 작가는 시각 요소를 축적과 중첩으로 쌓아 올려 환상적인 그래픽을 생성하는 아티스트입니다. 특히 그의 자기 주도적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요. 만인이 감탄하는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그는 세상 어디에나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 존재한다며 한계에 다다랐을 때 조금 더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굳게 갖곤 해요. 화려한 그래픽을 옷에 얹히며 세상에 내놓은 반팔 셔츠를 비애티튜드 익스클루시브로 선보이는 그의 작업 세계를 소개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클라이언트 의뢰를 받아 작업하기도 하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표현 작업에 집중해 다양한 매체와 협업해요. 몇몇 대학교에서 그래픽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강의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다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 업무를 맡았어요. 디자인 업무라기보단 관리 업무에 가까웠죠. 그렇게 30살이 다 되어갈 때 디자이너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표현적이면서 생성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방식을 교육받았는데 제 디자인 인생의 변곡점이었어요. 한국으로 귀국한 후, 회사에 다시 들어가 일하기보다는 제가 그간 공부했던 걸 밖으로 뿜어내는 방법을 고민하며 지금까지 작업을 진행해왔어요.

작가님이 작업하는 창작 공간의 특성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통유리로 되어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개방된 공공공간에서 작업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혼자 숨어서 하는 느낌으로 작업을 진행해요. 작업이란 혼자서 고심하며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밀실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시간도 이른 새벽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주변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제한하는 거죠. 낮에 걸려 오는 전화나 이메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해요. 이렇게 외부와 차단되는 환경을 선호하지만, 대신 제 공간에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요소로 가득 채우는 편입니다.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전에는 다양한 크루들과 함께 일해보기도 했고, 이런 활동이 필드에서 중요한 사실도 알고 있지만,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제 성향을 알고 난 후에는 지금처럼 일하게 되었어요. 특히나 오랫동안 디자인에 매진하고 싶기 때문에 제가 상황을 관리하거나 리드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을 저어하게 되더군요. 이런 성향은 제 작업 공간에 충분히 반영돼있어요. 한국적인 작업을 할 때는 국악을 틀어놓거나 한쪽 모니터에 한국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틀어두며 그 분위기에 흠뻑 빠지는 편이죠. 제가 집중하고 몰입하는 방법입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소개해주시겠어요?

요즘 들어 점점 더 한국과 관련된 의뢰가 많이 들어와요. 특히 근대보다는 민화 쪽으로요. 제가 좋아하고 편하게 느끼는 분야이기 때문에 저도 기쁜 마음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성수동에 위치한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물아일체» 전시에 책가도와 관련한 작품을 선보였어요. 특히 저는 그래픽의 맛을 옛것과 겹치고 버무리는 데에 큰 관심을 두고 있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생의 찬미»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문자도를 선보였어요. 제가 민화에 집중하는 까닭은 간단해요. 민화란 우리나라의 그래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양화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미 그래픽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이미지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요즘 매체와 아이디어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가 흥미롭게 다가와요. 옛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요즘과 어떻게 결부하는지가 중요하죠. 컴퓨터로 그린다고 해서 현대성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거든요. 기술적인 변화를 통해 형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봐요.

과거의 것을 재해석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시나요?

제가 아닌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봐요. 디자인은 이제 상향 평준화가 되었고, 누구나 인지하고 몸에 밴 언어의 일부에요. 그래서 남과 차별화하면서도 저에 대한 어떤 궁극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해당 장르를 좀 더 깊이 있고 독창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탐구해야 하는 절실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눈으로 단번에 이해할 수 없거나, 처음 접하는 시각 요소로 여길 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시각심리학적 특성을 한층 더 부각할 때 사람들의 몰입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에 임합니다. 현재 매체는 굉장히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예전에 그래픽으로 표현하던 범주는 지금 보았을 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그래서 그래픽은 살아 움직이는 것, 성장하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런 성장에 걸맞은 조형성과 개념이 기본으로 깔려야 합니다. 지금 시대의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에 적절한 추임새를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예전에 그래픽 작업을 옷으로 변환하는 작업도 진행하셨어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매일 고민하는 생각의 결과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전시를 위한 작업 혹은 의뢰를 받아 진행한 작업이 쓰임새를 다하고 소멸하는 상황이 늘 아쉬웠어요. 제가 빚어낸 그래픽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공예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변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래픽이 잘 얹히는 직조, 나염 등이 인쇄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텍스타일은 궁극적으로 문양, 모양, 패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옷을 보면 되게 그래픽적으로 느껴지는데, 사실 그도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거든요. 포스터를 제작하고 벽에 거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원단에 인쇄가 되고, 더 나아가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이 가능한 지점을 생성하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저는 그래픽이 꼭 2D에만 머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D 매체로 넘어갈 때 입체성을 띠면서 퍼스펙티브가 사라지고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형상이 나오는 데 무척 흥미로웠죠. 주름이나, 크롬 등 생각하지 않았던 레이어가 탄생하고, 패션 전문가와 협업하며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새로운 맛을 즐기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래픽 디자이너의 역할 또한 확장되는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 제게 중요했던 지점은 그래픽 요소가 어떤 사물의 위로 얹힌다는 사실이었어요. 이번에는 옷이지만, 다음에는 가구 위를 덮을 수도 있죠. ‘얹힌다’는 게 중요해요.

이번에 새롭게 작업한 반팔 그래픽 셔츠는 비애티튜드샵 익스클루시브로 전개됩니다.

비애티튜드는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요즘의 경향과 좋은 예시를 잘 보여주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과 창작의 관계, 이야기 중심의 콘텐츠가 잘 구성되어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 그래픽을 옷에 얹힌 새로운 작업이 비애티튜드의 독자와 샵의 고객에게만 독점적으로 선보여진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지점으로 다가옵니다.

창작자로서 어려움을 겪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제 생각대로 작업이 잘 안될 때가 어려운 순간이죠. 작업을 하면 할 수록 시작 단계에서 마지막 이미지가 보이는 편인데요. 이게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해요. 마지막 이미지가 보여도 제 의지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잦은데, 그마저도 보이지 않으면 정말 괴롭고 힘들죠. 작업을 하는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작업의 시작점이 제 논리를 납득시키지 않거나, 시간 부족 때문에 타협할 때, 또는 너무 과하게 의식하거나 힘을 주고 있을 때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기라고 생각해요. 그래픽은 몸의 훈련입니다. 그 훈련이 게을러지거나 루틴이 사라지면 이를 되살리는 게 필요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혹시 포기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는 사회적 구조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서 제게 주어진 일을 설계하고 해결하는 게 올바른 역할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것에 천착해왔고, 디자인이란 장르에서 스펙트럼을 넓혀 다른 이들도 포지셔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이런 걸 통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먼저 개척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결국 ‘팀’으로 움직이는 걸 포기했다고 여길 수 있어요.

작가님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내가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수입을 얻을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같은 문제가 가장 현실적이죠. 돈을 벌기 위한 디자인에 발을 못 맞추고 있는 것 같아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제가 돌파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제가 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버티는 갈림길에서 몇 년 지내다 보니 그 시스템이 안착하였죠. 그러나 저 또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작가로서 어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류와 디자인을 연계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거랍니다. 확장성에 대한 생각이죠.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변주, 확장하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앞으로 창작자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요즘 창작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이 많은데 모든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한 명의 개인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곤 해요. 곧 궁극적인 장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자신의 것이 없는 상태로는 생태적으로 오래 버틸 수 없어요. 앞으로 창작자는 더 집요해져야 하고, 더 전문적이어야 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할 거예요.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삶의 지혜가 궁금해요.

저는 남들보다 뭔가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뭔가 쫓아간다는 마음이 들 때면 스트레스가 계속 생겼는데 이런 게 많이 사라진 느낌입니다. 점점 더 제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니 예전에 가지고 있던 불편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희석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가 있어요. ‘우리 삶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다’는 뜻인데요. 세상 어디에나 저를 겸손하게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 존재해요. 그런 자극이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보이면서 제가 앞으로 전진하도록 만들어요. 운동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조금 더 나아가는 게 궁극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하잖아요. 극한에서 저를 조금 더 몰아세우거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작업에 묻어나오길 바라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영감은 영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오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오죠. 만들어진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지 않을 것을 만들려는 게 중요해 보여요. 관찰자의 시점에서 찾아내고 조합하는 역할이 요즘 그래픽 디자이너가 갖춰야 하는 거 아닐까요. 또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로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요즘 많이 느껴요. 불혹을 넘기며 과거에 잘하는 척했던 순간이 창피하게 다가와요. 잘하는 건 결국 꾸준히 하는 거고, 꾸준히 하려면 이걸 스스로의 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물론 그래픽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잘 나타내는 게 중요하지만, 너무 그것에만 중점을 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본질을 찾아야 해요.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 일이 나의 업이라는 걸 늘 상기하며 작업에 임한다면 어떤 생명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가장 좋은 거는 인정 받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부름을 받고 연락을 받으면 단편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죠. 하지만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일 말고 딱히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봐요. 즉, 다른 선택지가 없어야 한달까요. 다른 일을 했을 때 별로 행복하지 않은 느낌이요. 다른 일을 했을 때 더 행복하다면 그 일을 하는 게 맞아요. 그게 업이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제 작업을 굉장히 자주 봐요. 특히 작업을 끝낸 이후 자주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생각해봐요. “아, 내가 이때는 왜 이렇게 했을까?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건 제게 설렘을 주는 일이기도 하죠. 다음에 더 새롭게 하는 데 힘이 되고요. 주제와 표현 방법을 바꿀 때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렘으로 작용해요. 이런 게 종합적으로 합쳐져서 버티는 노하우가 되는 게 아닐까요.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더 다양한 장르, 기준, 분야, 접목, 확장. 이제 우리나라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서양을 동경해왔다면 이제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느껴요. 앞으로 더 활발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Artist

채병록은 한국의 그래픽 아티스트다.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 표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2014년부터 디자인스튜디오 CBR을 운영하며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문화재단 등 다양한 문화기관 및 나이키, 롯데백화점 등의 기업과 활발히 협업했다. 그의 그래픽 작업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뮌헨 국제디자인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 영구 소장됐다. 도쿄 TDC, 뉴욕 TDC 모스크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등 수많은 해외 그래픽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현재 이화여대와 건국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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