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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사진책에 대한 사진책을 통해 보는 시각디자인 연대기

Writer: 사월의 눈
Chungbyungkyoo Photobook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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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혹시 ‘정병규’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한국에 북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한 우리나라 1세대 북디자이너랍니다. 그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디자인한 31종의 사진책 자료를 모아 『정병규 사진 책』이 발간됐는데요. 사진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사월의눈이 기획하고 디자인했어요. 과연 ‘책’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다양한 사진책을 모은 기획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와 얽힌 장대한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밝힙니다!

『정병규 사진 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병규 사진 책』은 한국 1세대 북 디자이너 정병규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디자인한 31종의 사진책을 책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모은 기획물입니다.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콘셉트가 궁금합니다.

『정병규 사진 책』은 2013년 즈음 저희 은사님이시기도 한 정병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지고, 동시에 오래 걸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초기엔 소소한 기획으로 생각했으나 대화 과정에서 살이 붙고, 책의 뼈대와 틀을 갖추게 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행되었습니다. 매우 건조한 문체로 작성한 책의 ‘편집자 후기’에도 적었듯이,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긴 했으나 당시 서양에서 예술 출판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던 ‘사진책에 관한 사진책’ 장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스페인, 일본, 중국, 네덜란드, 스위스, 구舊 소비에트 등 국가별로 사진책 앤솔로지가 큰 유행인양 확산하고 있었죠. 이 중 몇몇 책을 구매해 각 책의 구성이나 내용, 디자인 등을 파악하면서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책이 기획될 수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획이 『정병규 사진 책』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또 하나, 정병규 선생님은 한국에 ‘북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신 분으로 한국 북 디자인사의 굵직한 흐름을 담당하십니다. 이는 두 가지를 함축합니다. 하나는, 그만큼 이분의 북 디자인을 기록할 가치와 의무가 있다는 것, 동시에 정병규 북 디자인 외의 다른 대안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로서 정병규에 대한 저작물이 나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 책은 정병규 디자이너의 첫 저작물이며, 동시에 사진책을 경유해서 보는 한국 시각 문화의 한 단면입니다. 조금은 독특한 서술 형식의 시각 디자인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Chungbyungkyoo Photobook Design

Photography © 장혜진

Photography © 장혜진

『정병규 사진 책』에서 재미있는 점, 주목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책은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책의 구조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정멜멜 작가가 유려하게 포착한, 다소 빛바랜 과거의 사진책들이 어떤 호흡과 리듬을 가지고 지면에 배치되어 있는지, 이에 정병규의 말은 어떻게 호응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책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 각 사진책에 있어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라 할 수 있는 주석 파트도 정말 애써서 작업했습니다. 여러 경로와 자료 확보를 통해 어렵게 구한 귀한 자료가 그곳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단순히 결과물로서의 사진책이 아닌, 사진책의 내부와 외부를 관통하는 생태계를 가급적 풍성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최재균, 김현호, 송수정, 박상순, 이영준 선생님의 기고 글을 비롯해 정병규 선생님의 생생한 이미지론 강의록 지면, 이미지와 글로 아기자기하게 구성한 부록도 매우 재미난 요소라고 자신합니다.

Chungbyungkyoo Photobook Design

책을 만들면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이 있을까요?

매 단계가 모두 특별해서 몇 가지만 꼽아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기억에 남는 주변의 반응이라면, 출판 관련 상에 응모해보라는 제안이랄까요. (웃음)

창작자로서 지니는 태도나 관점이 궁금합니다.

다소 아이러니한 대답일 수 있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내는 것보다 어떤 임계점이나 한계가 보인다면 그 끝을 인정하고 창작 행위를 그만두는 것. 이건 저희의 신념 중 하나인데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매하게 오래 가기보다는, 선명하고 멋지게 버티다 사라지고 싶어요 🙂

Chungbyungkyoo Photobook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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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로서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사진책 제작에 국한지어 이야기하자면, 결과물이 나올 때도 당연히 좋지만, (기쁨을 흥분감과 설렘으로 조금 바꿔 말한다면) 제가 원하는 기획 아이디어가 성사되는 단계에 진입할 때 가장 기쁩니다. 머릿속에 막연하게 그려놓은 책의 꼴을 드디어 구체화할 수 있다는 그 흥분감, 그래서 초반에 편집 기획안 등을 꾸릴 때가 가장 재미나요. 다소 성격이 내향적이라 사람들과의 장시간 교류나 이야기에 쉽게 지치는 편입니다. 그런 탓에 타인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메일을 쓰는 걸 힘들어하고요.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두었던 어떤 작가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그에 대한 긍정적 답신을 받고 기획안이 착수될 때 ― 말 그대로 ― 가장 기쁩니다.

Chungbyungkyoo Photobook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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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글쎄요, 한국이라는 국가적 조건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유년 시절 10여 년 이상을 유럽 3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저에겐 지금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어딜 가나 이상적인 제도란 없다는 거죠. 분명 이곳에는 악조건이 있지만, 막상 해외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또 타인의 다른 제도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저로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입니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만큼 힘을 얻는 시간도 없거든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자신의 뇌와 감수성을 연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게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사회에서 기성세대라는 걸 절감하게 되면서 자칫 굳어질 수 있는 생각을 최대한 유연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고의 방편은 공부라고 봐요. 공부가 책상에 앉아 현학적인 내용에 밑줄 그으며 읽는 것만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고, 자신감은 가지되 때에 따라선 겸손할 줄 알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채워나가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매우 교과서적으로 들리지만, 해가 갈수록 가장 어려운 과제더라고요. 고정관념은 게을러지는 순간 만들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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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사월의눈은 2013년 『사이에서』를 첫 책으로 사진책 출판을 시작해 지금까지 총 18종의 사진책을 기획· 출판했다. 디자인 저술가 전가경과 북 디자이너 정재완이 함께 운영한다. 젊은 사진가의 등용문으로서 사진책이 기능하길 바라는 희망, 저렴하지만 양질의 사진책 문화의 확산, 사진 순혈주의에 대한 의문 등이 사진책 출판의 모토가 되었다. 2013년도부터 대구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사진책 출판 외에 다양한 토크 및 강연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수집collection’의 의미가 강한 ‘사진집’ 보다 ‘사진’과 ‘책’이라는 두 매체의 교차와 접점 그리고 간극에 대한 생각을 자극하는 ‘사진책’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사용한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진과 이미지, 사진과 영상, 전시와 책, 사진과 텍스트의 사이 공간을 탐색하고자 하며, 이 틈새를 연결 짓는 행위로서 그래픽 디자인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라는 필터로 누락되는 이미지를 사진책이라는 공간에 새롭게 재생시키는 것; 사월의눈이 지속해서 실천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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