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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 허구적 공간 속으로

Writer: 권아람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권아람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양면성’입니다. 특히 스크린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스크린 그 자체의 물성을 충돌시켜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해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부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스크린’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늘 존재하기에 권아람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는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거주하며 언어, 미디어에 관한 사유와 개념적 연계성을 압축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다매체 설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디지털 스크린과 거울을 주재료로 삼아서 미디어의 허상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만들고 그리는 일을 자연스럽게 좋아했어요. 여러 학위 과정을 거치며 규격화된 방법에서 벗어나 다른 창작 언어를 구축하고 싶었죠. 하고 싶은 이야기와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풀어내는 일이 지금의 직업이었어요. 특히, 주변 사물을 관찰하고 조립하던 일상의 관심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현재 하는 일은 개인적인 생각을 작품이라는 시각적인 대상으로 도출하는 일입니다. 주로 당시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키워드 리서칭을 하고 작품에 단서가 되는 대상을 발견해 나간답니다.

작가님이 작업하는 창작 공간의 특성이 궁금해요.

저의 경우, 창작 공간보다 작품이 구체화하는 전시 공간이 작업 과정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위해서 전시 공간과 긴밀하게 대화하는 편인데요. 전시 기획 단계에서 정해진 공간과 천천히 호흡하며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작업의 물리적인 방향성과 이미지가 구조화되어요. 그중 원앤제이 플러스 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송은에서 진행했던 신작의 경우, 비교적 공간과 교류가 잘 이루어졌던 전시였습니다. 공간과의 대화는 항상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지만 그만큼 풀어가는 과정이 즐거워요.

‹유령 월(Ghost Wall)›, 2019, 티브이, 아크릴 거울, 채색된 철 구조물, 소리, 가변크기,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시전경 ⓒ 권아람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주시겠어요?

2017년 제작한 ‹납작한 물질(Flat Matter)›에 이어 2018년 원엔제이 플러스 원에서 진행한 개인전 «납작한 세계(Flat Matters)»(2018)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작업 방법론이 구축되었는데요. 거울과 일체된 스크린이 서로를 반사하며 스크린 너머의 허구적 공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정보가 스크린을 통해 유통되는데요. 그 정보가 전달되는 종착지인 스크린 밖에서 우리는 단편적으로 조작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죠. ‹납작한 물질›에서부터 이어지는 연작 ‹납작한 세계(Flat Matters)›(2018), ‹유령 월(Ghost Wall)›(2019) 모두 이미지를 유통하는 매개체인 매체에 관한 사유를 단순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작업이었어요. 특히, 죽음의 블루 스크린과 레드 스크린은 PC 화면에 나타나는 오류 중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미디어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그전의 작업이 개인적 경험과 사념을 복합적으로 엮어낸 것이라면 위 작업에서는 주제와 형식의 관계가 하나로 정리된 시기였습니다. 영상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점차 스크린 내부에서의 내러티브보다 스크린 밖 매체 자체에 관한 사유와 관심이 넓어지며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전면으로 드러난 작업으로 발전했죠. 휘발하는 디지털 신호와 지지체로서의 스크린에 초점이 옮겨갔고 오브제적 스크린의 물성과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적절히 만남을 이루던 시기의 작업으로, 제 입장에서 가장 주된 작업으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월스(Walls)›, 2021, LED, 4채널 컨티뉴어스 비디오, 사운드, 아크릴 거울, 가변 설치 ⓒ 권아람

여러 연작이 이어졌지만, 특히 2021년 송은에서 선보인 ‹월스(Walls)›는 ‹납작한 물질›에서 기성 사물에 한정한 형식과 내용을 더욱 확장한 작업으로 이번 기회에 함께 언급하고 싶은 작업이에요. 전시 공간의 허공에 조각난 스크린은 반사되는 거울과 결합해 점멸하는 노이즈를 송출하는데요. 매끈한 스크린과 이미지 뒤에 자본과 경제의 원리,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오류의 상징으로 덮어낸 작업이죠. 스크린 위에 송출한 정보가 소거되고 부동하는 물성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스크린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미디어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데요. 파편화된 스크린은 레스터 이미지의 불량화소처럼 미디어를 현실 속 ‘불량 입자(Dead Pixel)’로 비유한 것입니다. ‹월스›에서 이야기하는 ‘허상’이란 ‘인간의 헛된 생각’ 그리고 ‘수신 화면상 나타나는 오류 현상’을 함께 지칭합니다. 스크린은 전원을 차단하면 벽이 되고, 입자가 켜지면 인간이 욕망을 투영하는 통로가 되는 모순적인 존재죠. 곧 미디어로서의 스크린은 물질이자 비물질, 공간이자 입자가 되는 양면적 대상으로 작동합니다. ‹월스›는 이전 작업을 포괄하는 대명사처럼 정리하려고 노력한 작업인데요. 감사하게도 제21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가장 의미 있는 작업으로 남았습니다.

영감을 얻고,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다듬어 작업을 완성하는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작업을 구상할 때 주안점으로 두는 것은 관심사에 대한 연쇄적인 생각, 의미의 상관관계입니다. 주로 하나의 대상을 바라볼 때 관습을 버리는 태도로 주변에 관계한 단서를 결합하며 관통하는 주제를 찾는 편이에요. 작업의 단서는 보통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천천히 쌓아온 직관과 이전 작업과의 맥락을 주로 많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작업의 물리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작업 내용과의 관계,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꼽을 수 있죠. 작업의 내외부가 긴밀하게 관계 맺는지 여부를 매 순간 중시하는 것 같아요.

최근 작업에서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품의 최종적인 모습뿐 아니라 창작자가 지닌 생각입니다. 저 또한 여러 전시에서 작품을 보며 그 작가가 가진 생각의 프로세스나 관심사를 궁금해하는 편입니다. 서로가 지닌 작업 이면의 이야기나 태도가 상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죠. 공통분모보다 차이분모에서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게 많아요. 특히 제 작업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단서가 더 많기 때문에 작업 이면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보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창작자로서 어려움을 겪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작업 과정에서는 고민하는 부분과 현실적인 제작 과정 사이의 조율도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데요. 한편으로는 생각과 가까운 작업 혹은 더 좋은 작업이 될 때 특히 다음 작업의 큰 동력으로 기능하는 것 같아요. 여유가 될 때 휴식을 취하며 인풋의 시기로 삼습니다. 주로 책, 영화, 연극 등을 통해 다른 분야의 언어를 습득하고 긴장을 이완하는 편입니다. 경험보다는 사념, 내러티브보다는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정보가 내부에서 다음 작업의 모티브로 반영되는 시간을 보냅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혹시 포기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중요한 순간 스스로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하는 편입니다. 작업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현실적인 상황뿐 아니라 일과 생활을 이어가는 수많은 결정 앞에서 던지는 질문이죠. 일상을 이루는 중첩된 일들 사이에서 한 번의 결정은 늘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치 않을 때는 작업을 결정하고 만드는 사소한 순간과 큰 선택지 앞에 놓이는 상황 중 무엇이 중요한지 되물으며 최선의 답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더 많은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제한된 시간과 조건 아래에서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늘 고민합니다. 작업자마다 각자의 매체적 조건을 갖고 있는데요. 제 경우, 물리적 규모와 테크니션 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르기에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긴 과정을 유연하게 핸들링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작가님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나 태도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독특한 생활방식은 아니지만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관습화된 생각을 버리고 다차원적으로 다가가려는 태도가 선행하는 편입니다. 이때 생각은 정교화되고 형식은 간결히 정리되는데요. 작업에서 긴 이야기는 텍스트를 통해 전달하고 작품은 직관적으로 풀어냅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작업 글을 읽은 관객이 작품에 대해 더욱더 공감을 잘해주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삶의 태도와 가치가 작가님의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창작자마다 저마다의 태도와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요. 제 작업은 과정보다 결과, 이야기보다 함축이 크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실제 사고하는 방식과 일상에서의 성격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작업과 일상이 크게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 편이죠. 큰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작업 맥락을 이어가는 형태로 다음 작업을 지속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삶의 지혜가 궁금합니다.

보편적인 이야기겠지만 창작 활동은 자유로운 동시에 책임이 많이 따릅니다. 작업을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과 때로는 새롭게 필요한 방식을 오롯이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데요. 구상, 설계, 제작에 따르는 적합한 방법, 전문가와의 협업이 매번 쉽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작업을 이어가는 데 큰 배움과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지난 한 해는 미디어와 이미지의 유통, 새로운 경제 체제가 특히 주목받았던 시기였습니다. 공간에 설치하는 물리적 형태에 기반한 작업에서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매체와 형식으로 전달을 시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매체를 통해 매체를 사유하는 게 주된 방법론인데요. 매체에 대한 성찰은 미술에서 가장 근본적인 태도 중 하나같아요.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에 대한 고민 모두를 담아내는 작업의 형태와 재료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의 균형 감각이 중요한데요. 가장 어려울 때 작업을 지속하는 힘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걸 따르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진되거나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인데요. 때로는 작업이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감각과 활동을 따르다 보면 아주 작은 동력이 어느 순간 다시 작업의 동력으로 돌아오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자신의 작업관이 어떻게 지속해서 이어지며 발전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요. 미래에도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목소리로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일 때 창작자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업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효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건 지속성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작업과 전시로 미래에 주목받는다면 가장 이상적인 미래일 것 같습니다.

Artist

권아람은 개인적인 경험과 사념을 바탕으로 텍스트와 언어 그리고 미디어와 같은 근본적인 매체에 관한 구조적 사유를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주요 개인전으로 «프리즈»(더 그레잇 컬렉션, 2021), «납작한 세계»(원앤제이 플러스 원, 2018) 등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플랫폼-L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신한갤러리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제21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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