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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코드가 섬유라는 물질로 재탄생한다면

Writer: 윤충근
, Photographer: 윤충근
아트선재센터 최태윤 시코드실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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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예술계의 현재를 살펴봅니다

시(詩)와 코드(Code).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두 가지가 긴밀히 연결되었다면 믿기시나요? 홍콩 섬유예술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 «시-코드-실»이 아트선재센터에서 동명의 이름으로 열리고 있어요. 시적연산학교의 공동 창립자로 잘 알려진 최태윤 작가와 동료들이 ‘최태윤과의 협업자들’이란 이름으로 시와 코드를 흥미롭게 연결시켜 작업으로 풀어냈습니다. 윤충근 님의 전시 리뷰와 손수 찍은 사진이 담긴 리포트를 아티클로 만나보세요!

시(詩)와 코드(Code).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최태윤과 협업자들’의 전시 «시-코드-실(Interweaving Poetic Code»에서는 돌봄의 관점으로 시와 코드를 엮어낸다. 최태윤은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교육자, 활동가이다. 그는 2013년에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공동 설립했고 예술과 기술의 접근성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태윤의 개인전은 아니다. 워크숍,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온 그의 작업에는 수많은 협업가가 함께했고 이번 전시에는 이들이 함께 작가로 참여함으로써 그의 작업이 가지는 커뮤니티 아트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시-코드-실»은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홍콩 섬유예술미술관(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 CHAT)에서 있었던 동명의 전시를 재구성하고 확장한 전시이다. 비물질인 코드가 섬유라는 물질과 맞닿을 수 있는 까닭은 둘 사이에 기술적인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복잡한 패턴의 직물 제조 공정을 단순화한 자카드 직기에 쓰이는 기술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쓰이는 이진법 구조와 같다. 또한, 코딩은 용어 면에서도 섬유 산업의 언어를 상당 부분 차용한다. 웹(World Wide Web)을 발명한 팀 버너스리 경(Sir Tim Berners-Lee)은 1999년에 책 ‘웹 직조하기(Weabing the Web)’를 발간해 웹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주제별로 분류해 총 여덟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사분할한 원 모양이 특징적인 아트선재센터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흰 벽에 검은 선으로 그린 단순한 드로잉이 관람객을 처음 맞이한다. 손과 발이 달린 숫자 0과 1을 각각 양손에 맞잡은 사람 한 명과 시계와 지도, 기계 부품을 그린 드로잉 위에는 다음의 문장이 인사를 건넨다.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자” 

입구를 지나 처음 마주하는 구역은 ‹미래 보증(Future Proof)›이다. 천장에 매달린 가늘고 긴 철골 구조물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달린 작은 조각은 이따금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낸다. 이 작업은 지난 «2016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과 함께 선보인 작품의 아카이브 영상과 함께 놓여 청각적인 감각을 환기한다. 이어지는 구역은 ‹손으로 만든 컴퓨터(Handmade Computer)›이다. 얇은 나무판으로 만든 2단 테이블 위에는 서로 다른 크기와 비율의 작은 직육면체 기계 부품이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선은 벽면에 부착된 초록색의 납작한 판과 연결되고 그 주변에는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드로잉이 액자에 걸려 있다. 

아트선재센터 최태윤 시코드실 전시전경 코드가 적힌 2행2열 천
아트선재센터 최태윤 시코드실 전시전경 코드가 적힌 2행2열 천
아트선재센터 최태윤 시코드실 전시전경 작품 클로즈업

벽을 따라가다 보면 ‹분산된 돌봄의 웹(Distributed Web of Care)›구역에 진입한다. 흰 벽면에 굵은 주황색 선으로 두 명의 사람이 전시실의 높은 층고를 꽉 채울 정도로 크고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이 그 림은 벽면을 셋으로 나누고 각각의 영역에는 웹과 관련한 다음의 키워드를 선보인다. ‘분산, 탈중앙화를 넘어.’ ‘돌봄, 통제를 넘어.’ ‘정보, 데이터를 넘어.’ 벽화를 지나면 안무가 코리 크레스기(Corl Kresge)와 함께 진행한 ‘움직임 스코어(Moving Score)’를 만날 수 있다. 이 작업은 참여자가 실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네트워크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리적인 형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참여자는 함께 걷는 활동으로 시작해 서로 의존하는 감각을 익히고 ‘중앙화 네트워크 – 탈중앙화 네트워크 – 분산된 네트워크 –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움직임을 통해 순차적으로 경험한다. 둥근 벽이 끝나고 모퉁이를 돌아 마주하는 구역 ‹가든.로컬(Garden Local)›에서는 버섯의 생존 방식에 주목한다. 전시실을 방문한 관람객은 특정한 와이파이에 연결해 자신의 모바일 기기에서 가상의 전원을 경험할 수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엠보싱 처리가 된 두툼한 상아색 천 네 개가 2행 2열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고 각각의 천에는 짙은 회색 실로 코드와 숫자, 기호 등이 새겨져 있다. ‹스레드란 무엇인가(What is thread?)›라는 이 구역에서는 홍콩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딩 워크숍의 결과물을 소개한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컴퓨터 화면 낭독 프로그램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를 사용해 코드를 읽고 쓰는 법을 익히며 이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수문자를 반복해 만든 추상적인 패턴에서부터 사람이나 동물,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과 같은 구체적 형상까지 이들이 만든 이미지는 노트북 파우치로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다음 구역에서는 컴퓨테이션에 관한 페인팅 작업 ‹연산할 수 없음(Uncomputable)› 최태윤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자신을 돌봄(Care of the Self)›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언러닝 공간(Unlearning Space)›이 펼쳐져 있다. 언러닝이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 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대해 재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이 공간에는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짜 만든 세로로 긴 직사각형 자카드 원단 열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일부 원단에는 0과 1이 반복해 쓰여 있고 나머지 원단에는 선으로 그린 사람 또는 실의 모습이 있다. 원단 아래 바닥에는 어두운 회색의 넓은 카펫이 있고 그 위에 작은 나무 책상 두 개와 의자 두 개, 칠판이 놓여여 분홍색 실이 그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이 공간에서는 책상 위에 놓인 영상을 통해 워크숍을 통해 진행한 작품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직접 실을 활용해 워크숍을 체험할 수도 있다.

웹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표방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웹과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은 국가나 성별, 장애 유무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되며 이러한 차별은 웹을 통해 오히려 심화된다. 또한, 코딩 언어는 영어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자 만이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코드도 결국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수십 년에 걸친 읽고 쓰는 훈련과 충분한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드를 시와 직물로 연결한 이유는 코딩이 시를 쓰는 것, 또는 스웨터를 짜는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각 이외의 감각을 활용한 작업, 참여를 통해 방식 등은 이러한 태도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함이 아닐까. 전시실을 나오며 입구에 쓰여있던 제안을 다시 떠올려본다.

아트선재센터 최태윤 시코드실 전시전경 주황색 벽면 인물 드로잉

Exhibition

«시-코드-실Intervweaving Poetic Code»

날짜 : 2021.10.14-2021.12.12

장소 : 아트선재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율곡로3길 87

@artsonje_center

Writer & Photographer

윤충근은 스튜디오 ‘충근’을 운영하며 평면·공간·시간 위에 시각 요소를 적절하고 아름답게 배치하는 일을 한다. 실천적 공동체 ‘새로운 질서 그 후…’로 활동하며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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