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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지그의 이름으로: 송은

Writer: 전종현
, Photographer: 박도현

처음 송은에서 메일이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지난 2021년 9월 개관한 후 계속 화제의 중심에 섰던 송은의 인기는 건축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다. 자체적인 큐레이션 전시를 몇 번 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전시로부터 강탈하기에는 그 힘이 약했다. 전시장이 전시가 아니라 공간으로 계속 호감을 끄는 것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이란 이름의 무게가 그리도 무거웠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폭탄 같은 전시를 내밀었다. 바로 스위스 출신의 중국 현대 미술 전문 컬렉터인 울리 지그Uli Sigg의 컬렉션이었다.

스위스 출신의 울리 지그는 세계에 산재한 수많은 메가 컬렉터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언론사 기자였던 그는 1977년 엘리베이터 회사인 쉰들러에 입사한 후 중국 최초의 외국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1979년 중국이란 미지의 대륙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1990년까지 중국에 머물면서 격동하는 중국 현대미술이 제대로 아카이빙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하며 굉장히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스터디를 바탕으로 작품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원래 국가가 나서야 하는 한 나라의 현대 미술 흐름을 광범위하게 커버하는 컬렉션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북한, 몽골 주재 스위스 대사를 지내면서 더욱 강화됐고 결국 21세기 들어 그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중국 현대 미술 전문 컬렉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는 지난 2012년 350여 명의 작품 1510점을 홍콩의 시각 예술 뮤지엄인 M+에 기증했다. 원래부터 기증을 목표로 모은 컬렉션이란 이유에서였다. 그 후 개인적으로 소장한 600여 점의 컬렉션 중 47점을 선별해 이번 송은 전시가 성사됐다.

M+가 완공되기 전에 작품 기증을 기념한 전시를 홍콩에서 보았던 나로서는 다시 찾아온 그의 컬렉션이 일종의 환상처럼 느껴졌다. 깊고, 정확하고, 장대하고, 확실한 안목으로 차곡차곡 쌓은 미술 곳간의 흔적이란! 이번 전시는 울리 지그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그가 발견하고 성장시킨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으로 시작해 1층과 2층을 잇는 중간 공간에는 울리 지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아카이브가 자리한다. 그와 관계 맺은 작가들이 그린 초상화와 조소 작품이 있는 걸 보면 컬렉터 한 사람이 내민 헌신과 그에 대한 존중이 마음에 와닿는다. 다양한 재료와 방식을 동원한 평면 작업으로 채워진 2층은 중국 회화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트이게 한다. 여성과 환경을 주제로 구성한 3층 전시장은 세밀하게 뜯어보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송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어두운 지하 2층 전시장에는 아이 웨이웨이로 추정되는 시체와 벽면을 가득 채운 붉은색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기이하게 공간을 채운다. 어둡고 텅 빈 곳에 자리잡은 작업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울리 지그라는 사람과 중국 현대 미술이 맺은 긴 인연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단 한 명이 관여한 컬렉션을 유려한 큐레이팅으로 정리한 전시에는 차분하고 정갈하게 차오르는 벅참이 존재한다. 친절한 전시 구성과 다양한 주제를 다룬 작품에는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고, 따분하지 않게 관객을 돌보는 신중함이 닿아 있다. 늦기 전에 발걸음 하길 권한다.

Exhibition

«SIGG: Chinese Contemporary Art from the Sigg Collection»

기간: 2023.03.10 – 2023.05.20

Place

송은: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41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이다. 주로 렌즈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를 제작하며,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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