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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익살스럽고 예리한 연극: 리움미술관

Writer: 전종현
, Photographer: 박도현

벽에는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였다. 기둥 옆에는 노숙자가 쪼그려 앉아 있다. 바닥을 뚫고 도둑 같은 남자가 빼꼼 머리를 내민다. 여러 동물은 전시장 곳곳에서 얼음처럼 멈춰있고, 큰 코끼리는 천을 뒤집어썼으며 경찰관은 머리를 바닥에 박고 거꾸로 서 있고, 벽에는 초소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기도하는 히틀러와 운석을 맞아 쓰러진 교황, 한 침대에 나란히 누운 쌍둥이까지. 작업을 발표할 때마다 논쟁을 부르며 ‘선 넘기’를 즐기는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는 리움미술관의 풍경은 마치 한 편의 장대한 연극 같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라는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38점이 모였다. 잡지, 뉴스에서 보거나, 외국의 전시에서 가끔 접하던 유명 작품이 거의 다 모인 터라 매 순간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회고전에서 풍길 만한 영웅주의는 없다. 예술, 사회, 정치 등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가치 체계에 도전하며 익살스러운 블랙 유머를 보여주는 그의 작업이 자연스레 위계를 붕괴시키기 때문일 테다. 카텔란은 사기꾼, 협잡꾼, 악동으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어릿광대를 자처하는 작가다. 동시에 그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대중의 관점을 교묘히 이용해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힘을 내보인다.

이번 전시의 높은 퀄리티는 리움미술관의 탁월한 배치 능력이 한몫한다. 총 세 개 층을 할애한 넓은 공간을 예민하고 정갈하게 활용한 덕분에 바닥, 벽, 작품 간의 호흡은 안정적이고 조화롭다. 높은 층고에 맞춰 바닥과 정면, 천장을 오가는 시선 배치는 작품에 대한 거리감을 유연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동선은 여러 공간에 나누어진 작품의 흥미로움이 휘발되지 않도록 돕는다. 오랜만에 그의 작업을 싸그리 모은 이번 전시의 제목은 왜 ‘WE’일까?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원래 전시 제목을 ‘THEY’라고 하려 했단다. 하지만 너무나 시니컬한 느낌이 날까 봐 ‘WE’로 바꾸었다고. WE로 정한 이유는 마지막 층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느낌이 온다. 미리 말하면 스포일러이므로 직접 가서 보길 권한다.

무료 전시이지만 예매는 필수. 이미 2월 한 달 치가 꽉 찼다. 그래도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올봄의 하이라이트 전시로 강추한다.

Exhibition

«WE»

기간: 2023.01.31 – 2023.07.16

참여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Place

리움미술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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