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Review

‘그리드’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국제갤러리

Writer: 방현식
, Photographer: 박도현

홍승혜는 특별하다.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사각 픽셀을 조합, 분해, 반복하며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증식하는 작업을 시작한 게 벌써 25년 전인 1997년이다.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에서 시작해 이후 어도비의 포토샵으로 작업하던 그가 이번에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활용해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특유의 ‘벡터Vector’ 문법은 크기를 아무리 변형해도 픽셀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를 발판으로 홍승혜가 시도하는 새로운 증식은 그동안 고수하던 그리드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Over the Layers)»의 후속편인 이번 전시는 K1과 K3, 총 두 곳의 전시장을 다채롭게 구성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유기적 기하학’이 어떻게 자유를 획득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K1 바깥쪽 작은 공간에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다양한 기능으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 연습 과정을 평면 작업으로 기록했다. 별, 꽃, 타원 등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난 작가의 유려한 색채와 선을 만날 수 있다. K1 안쪽 전시장에는 이런 평면이 입체로 변한다. 순수한 조형물뿐 아니라 테이블과 조명 등 디자인과 미술을 넘나드는 여러 오브제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K3에는 작업이 공중으로 부양했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한 무대에서 작가가 제작한 영상과 사운드에 맞춘 픽토그램 인형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1939년 개봉한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인 ‘Over the Rainbow’에서 착안한 전시 제목은 무지개를 구성하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상징하면서, 무엇보다 노래 가사에서 읊듯 ‘무지개 저편에 날고 있는 파랑새’를 좇는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이다. 벽화부터 조각, 사운드, 조명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시각 문법을 아낌없이 선보이면서 스스로 만든 사각형과 그리드라는 감옥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작가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Exhibition

«복선伏線을 넘어서 II»

기간: 2023.02.09 – 2023.03.19

참여작가: 홍승혜

Place

국제갤러리 서울 :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Write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