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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정보와 감각의 집에서 유영하기: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Writer: 전종현

지금 부산을 찾아갈 일이 생긴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전시가 있다.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한 전시도 아니고, 만인이 좋아할 만한 유명한 명화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의 전시가 얼마나 탄탄하고 명징하게 자료를 정리해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지 그 전범을 확인하는 경험만으로도 전시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주인공은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열리는 «홈 스토리즈Home Stories»다. 전시의 부제는 ‘20개의 혁신적인 인테리어로 보는 100년의 역사’. 1920~40, 1940~60, 1960~1980, 2000s~지금까지 총 네 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홈 인테리어의 변화상은 역사적인 대표성을 띠는 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특히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에서 출발하지 않고 현재에서 출발하는 역순을 택하고 있는데, 고전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변화의 분기점에 초점을 맞추며 홈 인테리어의 결정적 순간을 독립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연대기를 전시로 옮기려는 행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현대 모터스튜디오가 협약을 맺고 가져온 해당 전시의 기획 주체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힘든 단단한 짜임새와 깊이 있는 내용물은 더욱더 귀하게 다가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 뮤지엄에서 가장 자신 있는 주제인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한 통시적인 관점을 쏟아부은 전시답게 정말 모든 전시물이 수준 높은 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홈 인테리어 실물을 직접 가지고 올 수 없는 상황을 역이용해 거대한 사진 자료로 눈길을 빼앗고, 관련 가구는 물론, 스터디를 통해 인테리어 공간에 대한 모형까지 따로 만들어서 가상 체험이 가능하다. 게다가 의외의 백미는 바로 영상물이다. 전시 대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각종 오리지널 영상은 대부분 뮤지엄이나 정부 기관에서 소장한 아카이브 자료라 이번 전시가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해당하는 예시에 대한 이해도를 놀라울 정도로 증폭시키는 터라 실물로 존재하는 각종 자료보다 오히려 전시에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홈 인테리어의 모습을 기록한 전경 사진, 관련 스케치, 모형, 가구, 텍스트, 그리고 영상이 함께 엮이며 선사하는 복합적인 정보는 국내 전시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대단한 심도를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점은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의 역할이다. 순회전으로 진행하는 «홈 스토리즈»를 부산에 선보이는 과정에서 현대 모터스튜디오 측은 그 자체로 온전한 전시를 그대로 모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맞춰 변형을 꾀했다. 아카이브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점 앞에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을 배치해 자사가 추구하는 새로운 자동차 공간을 제시하며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인 쉘터의 시간대를 미래로 확장한다. 그리고 1920년대에 끝나는 섹션 뒤에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와인의 신작 ‹흐르는 들판 아래›를 설치하며 다양한 빛의 움직임을 네온 튜브로 구현한 푸른색 플라스마 공간으로 풀어냈다. 지구는 우주에서 가장 큰 인간의 쉘터라는 말을 연상시키듯 인간과 지구, 지구와 우주의 근원적인 면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흐르는 들판 아래›에는 세븐에 쓰인 친환경 내장재를 재료 삼은 소파를 배치했는데, 덕분에 첫 번째 섹션과 마지막 섹션이 맥락적으로 맞닿는 효과를 발휘한다. 인간을 둘러싼 쉘터를 바라보는 장구한 시간 축에 생동감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엘리의 ‘요지겐 포케토’, 어쎔블의 ‘그랜비 포 스트리트’, 앤디 워홀의 ‘실버 팩토리’,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라인홀드 아파트’, 칼 라거펠트의 ‘라거펠트 아파트’, 베르너 팬톤의 ‘베르너 팬톤 하우스’, 클로드 파랭의 ‘메종 파랭’, 구로카와 기쇼의 ‘나카진 캡슐 타워’, 리나 보 바르디의 ‘까사 데 비드로’, 핀 율의 ‘핀 율 하우스’, 스탠리 클라인과 앤드류 겔러의 ‘X-61’, 영화 ‹나의 아저씨› 속 ‘빌라 아르펠’, 요제프 프랑크와 오스카 블라흐의 ‘빌라 비어’, 에른스트 메이가 주도한 ‘뉴 프랑크푸르트’, 현대 주방의 원점인 ‘프랑크푸르트 키친’,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빌라 투겐트하트’, 아돌프 로스의 ‘빌라 뮐러’, 세실 비튼의 ‘애쉬콤’ 등 서구 홈 인테리어의 중요한 순간을 간접적으로, 하지만 효과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풍요롭고 압축적으로 흡수할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hibition

«홈 스토리즈»

기간: 2023.04.06 – 2023.10.01

Place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  부산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20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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