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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공간에 몰아치는 마법적 경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Writer: 전종현
, Photographer: 박도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1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깨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바로 옆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이끌던 공간그룹의 사옥이 있는 원서동 부지로 옮겨갔다. 원서동 부지에는 1977년 김수근이 지은 검은색 벽돌의 공간 사옥과 1997년 김수근의 후계자인 장세양이 설계한 시원하고 투명한 통유리창이 특징인 건물이 함께 존재한다. 공간 사옥은 아라리오의 김창일 회장이 사들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용도를 변경했다. 장세양의 건물은 현재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장소의 역사와 특징을 염두에 두고 1990년대 지어진 오른편 사무용 건물을 통째로 리노베이션하며 아리리오갤러리 서울이 입성하는 것은 아라리오 타운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만 11곳의 블루보틀, 그리고 서울과 상하이의 블루보틀까지 디자인하며 이름을 날린 스키마타 건축(Schemata Architects)의 조 나가사카Jo Nagasaka는 섬세한 결을 가진 빌딩을 최소한의 변형과 확실한 임팩트란 기준을 양손에 쥐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독특한 화이트 큐브를 완성했다. 검은색 벽돌로 지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특징을 갤러리 지하 1층과 결합해 시각적 동선을 만들고 지하 1층부터 한층 한층 올라가며 새하얀 화이트 큐브, 옛 벽돌의 향취, 그리고 거친 콘크리트의 흔적을 통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시퀀스를 의도했다. 이런 공간에 몰아치는 마법적 경험은 단순히 작품을 설치하고 거래하는 상업 갤러리를 넘어, 아라리오 타운을 찾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일종의 애티튜드를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영속성이 동시대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번 재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는 총 5명의 작가가 하나의 층을 통째로 쓰는 형태다. 아라리오갤러리와 깊은 관계를 맺은 안지산, 김인배, 이동욱, 노상호, 권오상 작가가 각각 지하 1층, 1층, 3층, 4층, 5층에 작품을 설치했다. (2층은 부분적으로 1층과 합쳤다.) 눈 폭풍을 맞이하는 고라니를 묘사한 안지산, 사람의 인지를 흩트리고 비껴 나가기를 유도하는 김인배, 성인 손바닥만 한 작은 인간 오브제를 연속적으로 배치해 심리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이동욱, 인공지능을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를 재조합해 에어브러시로 캔버스에 표현한 노상호, 특유의 사진 조각에 대해 탐구하는 권오상까지 서로 다른 작가의 독립관을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며 관람하는 경험은 스키마타 건축이 안배한 시퀀스와 묘하게 맞아떨어지거나, 교묘하게 엇갈리면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전시를 소개하며 할 말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권오상 작가가 차지한 5층은 원래 VIP를 위한 공간인데, 이번 개관전에 특별히 오픈해 사용 중이다. 삼면이 통창으로 열려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공간 너머로 원서공원과 창덕궁의 자태가 보인다. 원래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표현이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강력한 문구 아니던가. 아라리오 타운의 완성, 갤러리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는 와중에 은밀한 장소를 향유하는 기쁨을 즐기길 바란다.

Exhibition

«낭만적 아이러니»

기간: 2023.02.01 – 2023.03.18

참여작가: 권오상, 김인배, 노상호, 안지산, 이동욱(가나다 순)

Place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5

Write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AVENUEL»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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