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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유일하게 남은 청춘의 절정

Writer: 김도훈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지금 한국은 ‹슬램덩크› 열풍입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 한국에서는 1992년 첫선을 보인 만화 ‹슬램덩크›의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얼마 전 개봉했기 때문이죠. 일본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만화로 꼽히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30년 세월을 넘어 다시 한번 한일 양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이미 ‹슬램덩크›에 대한 글을 쓴지라 지독히도 써지지 않았다고 고백한 김도훈 작가의 ‹슬램덩크› 글을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사실 이 글은 지난주에 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쓰지 못했다. 큰일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매체에, 지나치게 많은 ‹슬램덩크› 관련 글을 써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다 나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구글이나 소셜 미디어에 ‘슬램덩크’를 검색해보시라. 과거의 영광을 스크린으로 다시 보며 울부짖는 엑스세대 아재들의 글, 그게 보기 싫다고 불평하는 Z세대의 글, 그 사이에서 마음껏 좋아하면 아재 취급을 받지 않을까 갈팡질팡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글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전자다. 1976년에 태어났으니 확실히 엑스세대다. 아재다. 모든 엑스세대 아재가 ‹슬램덩크›를 좋아했던 건 아닐 것이다. 나도 딱히 그걸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슬램덩크›를 읽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나는 농구를 좋아한 적이 없다. 당시 한국에서 농구의 인기는 점점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농구대잔치’가 야구를 위협할 정도로 폭발하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슈퍼스타 농구선수였을 문경은이 프로에 데뷔한 시기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1994년이었다. 다만 마이클 조던의 이름은 모두가 알았다. 농구는 확실히 미국의 스포츠였다.

나는 농구가 싫었다. 농구라는 이름부터 싫었다. 싫어하는 걸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건은 고등학교 1학년 체육 시간에 벌어졌다. 왜 체육 선생이 농구를 실기평가에 어울리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실기는 간단했다. 코트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농구공을 드리블해 골대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단 드리블은 가능했다. 문제는 골이었다. 아무리 골대를 향해 공을 던져도 도무지 바스켓에 들어가질 않았다. 대여섯 번을 실패하자 애들이 응원을 시작했다. 내 삶이 농구 만화라면 열띤 응원을 받는 순간 “대지여, 바다여, 산이여,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여. 아주 조금씩 나에게 원기를 나눠 줘!”라고 외치며 멋지게 골대에 공을 넣었을 것이다. 인생은 만화가 아니다. 그로부터 나는 운동장 한쪽에 있는 농구장 출입을 영원히 (심적으로) 금지당했다.

잘된 일이었다. 나는 어차피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는 그저 스포츠 선수들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스탠드에 앉아 농구하는 친구들을 감상하며 ‹슬램덩크›를 읽었다. 몰래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빠져들었다. 도대체 왜? 그건 내가 남자 고등학교라는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 본질적으로 최하위에 속하는 허약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고등학교 3년과 군대 2년 중 무엇을 다시 겪겠냐고 말한다면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군대를 선택할 것이다. 군대에는 규율이라도 있다. 그 시절 고등학교에는 규율도 없었다. 내가 무슨 ‹말죽거리 잔혹사› 시절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건 아니다. 그럼에도 1990년대의 고등학교는 세렝게티에 가까웠다. 거기서 나의 위치는 약간 발이 빠른 톰슨가젤 정도였을 것이다. 덩치가 크면 물소라도 되었겠지만 165cm가 채 되지 않는 키로 그런 위치를 점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송태섭이 되었다. ‹슬램덩크›를 읽는 동안 나는 송태섭이었다. 160cm대의 키로 도내 최고의 가드가 되고 싶은 송태섭이었다. 특히 나는 송태섭이 교화되기 전 정대만 일행과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송태섭은 작은 키라는 육체적 약점을 뛰어넘기 위해 빠른 스피드와 지형지물을 싸움에 이용했다. 그는 싸울 때마다 책상 같은 물건을 딛고 뛰어서 발로 상대방을 가격했다. 바로 그거였다. 나는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책걸상을 집어던지며 과하게 장난을 거는 놈들을 보며 ‘지금 책상을 딛고 뛰어서 발로 머리를 가격한다면 충분히 저놈을 쓰러뜨릴 수 있겠지’하는 망상을 하곤 했다. 이 망상을 가장 훌륭하게 극화한 것은 웨이브Wavve의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이다. 아직 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반드시 보길 권한다.

물론 나는 고등학교 시절 단 한 번도 누군가와 싸운 적이 없다. 톰슨가젤은 사자에게 덤비지 않는 법이다. 톰슨가젤은 오히려 톰슨가젤과 파벌을 나눠 싸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걸 통해 ‘약자의 연대’ 같은 건 좀처럼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배웠다. 약자의 연대가 그렇게 잘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학교 폭력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따져보자면, 나는 ‹슬램덩크›를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탐독하던 아다치 미츠루(安達充)의 세계가 오히려 나에게 딱 맞는 만화였다. ‹터치›와 ‹H2›의 온건한 세계야말로 내가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할 젊음의 유토피아였다. 아니, 생각해보시라.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양아치다. 교실에서 난리를 피우는 양아치들과 함께 살면서 양아치가 주인공인 만화를 좋아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슬램덩크›는 일종의 판타지였다. 온갖 양아치가 다 등장하지만 희한하게 온건하고 바람직했다. 양아치는 양아치와 싸웠다. 양아치가 보통의 학생들을 건드리는 장면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양아치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각자의 청춘이 있었다. 각자의 꿈이 있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선택한 것이 그가 좋아하던 스포츠인 농구였을 따름이다. ‹슬램덩크›가 그냥 농구 만화였다면, 나는 그 만화의 모든 장면을 여전히 기억하고 애장판을 사들이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른 중년과 함께 풋내기 슛을 흉내 내며 눈물을 쓱 닦지는 않았을 것이다. ‹슬램덩크›는 농구 만화가 아니었다. 그건 당시 청춘이던 나조차도 꿈꾸지 못했던 청춘의 절정이었다.

솔직히 말하자. 나는 키 작은 약골의 모범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덕에 이렇게 글을 써서 먹고사는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 시절 마음속의 나는 송태섭이었다. 종종 강백호였다. 가끔 서태웅이었다. 때로는 심지어 양호열이었다.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우리는 우리와 닮은 캐릭터를 우상화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순간 되고 싶은 캐릭터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고, 그런 캐릭터는 우리 자신과 전혀 닮은 데가 없다. 우리 상상 속의 우리는 정치적으로 공정할 수 없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악인을 목격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를 시원하게 두들겨 패는 상상을 하는 당신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것이다.

‹슬램덩크 더 퍼스트› 공식 티저 이미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되었나. 소설가 김애란의 위대한 표현처럼,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됐다. 당신은 자라 겨우 당신이 됐다. 우리는 자라 겨우 우리가 됐다. 자라면서 우리는 우상을 잃었다. 모든 우상은 우리와 함께 자라 겨우 그런 존재가 됐다.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만화적 우상을 떠나보냈다. 그 시절 열광하던 많은 만화 캐릭터는 십수 년에 걸쳐 지루하게 서서히 성장하다가 재미없게 사라지곤 했다. 혹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캐릭터들처럼 갑자기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진화한 뒤 “니들이 열광하던 에바는 끝났어. 이젠 현실을 직시해”라며 완벽한 작별 인사를 해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슬램덩크›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갑자기 ‹슬램덩크›를 닫아버렸다. 속편을 향한 모두의 희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천재니까”라는 대사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 강백호도, 서태웅도, 송태섭도, 더는 성장하지 않았다. 어른이 될 길목에서 그들의 청춘은 멈췄다. 바로 그 덕분에 그들은 여전히 늙은이들의 우상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열광하는 아재와 줌마들은 캐릭터의 새로운 성장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그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는 청춘 속으로 다시 뛰어들고 싶은 것이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슬램덩크›의 속편이 아닌 것이 정말이지 기쁘다. 그들은 그 시절에 머물러야 한다. 그들은 성장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성장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물불 가릴 줄 모르는 멍청하고 대범한 청춘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살아보니 우리는 천재가 아니었다. 강백호도 어쩌면 천재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혹은, 결국 부상에서 극복하지 못한 채 동네에서 운동화 대리점을 경영하는 검은 머리의 덩치 크고 성격 좋은 아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맙소사, 우리에게 그따위 미래는 필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이따위가 됐지만, 강백호와 송태섭의 미래는 그따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니 ‹더 라스트 슬램덩크›는 절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누군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에게 내 간절한 메시지를 꼭 전달해주길 부탁드린다.

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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