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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아카이브가 뭐길래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작가에겐 아카이빙이 생명이다!’ 이런 말을 종종 들어보셨을 텐데요. 대체 현대미술에 종사하는 창작자에게 아카이브란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비애티튜드»에 현대미술 설명서를 연재하는 박재용 작가는 이번 글의 주제를 아카이브로 잡으면서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픽션과 논픽션이 섞인 세계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요절 작가의 아카이브 사태를 간접 체험해볼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번 요절복통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매일을 기록한 온 카와라(1932-2014)의 ‹날짜 그림(Date Painting)›과 그의 도록을 위한 부록(?)으로 만든 ‹날짜 그림› 스티커 시트

현대미술 설명서: 아카이브가 뭐길래

모니터 혹은 모바일 디바이스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은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혹은 장르와 관계 없이 활동하는 우리 시대의 창작자라 하더라도 별 상관은 없다). 이번 달에는 뭘 또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며 화면을 스크롤하려는 찰나, 갑자기 가슴을 꽉 누르는 듯한 압박감과 함께 쥐어짜는 통증을 느낀다. 식은땀이 나고, 숨은 쉬기 어렵고,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손에 쥐고 있던 마우스나 휴대전화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모든 게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당신은 창작 활동의 과로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상을 떠나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바로…

급히 꾸려진 당신의 장례식엔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전시 오프닝만큼이나 손님이 많다. 아직 창작의 꽃을 다 피우지 못하고 떠난 당신은 작가로서의 활동이 길지는 않았지만, 오랜 학교 생활을 하며 동료와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았다. 그런 만큼, 당신의 친구도 웬만하면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 하려 시간을 낸다. 개중에는 심지어 잠시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나라에서 부고를 듣고 급히 달려온 외국 친구에, 내일 오프닝을 앞둔 전시를 준비하다 달려온 학교 동기도 있다. 장례식장 한쪽에 놓인 대형 LED 스크린에는 당신의 휴대전화에 남은 작업실 사진, 동료들과 밤새 전시장 설치를 마치던 모습, SNS에 올렸던 여행 사진으로 만든 슬라이드쇼가 돌아가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의 장례식. 당신의 작업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슬프고 아쉬운 일이지만, 보통의 장례식과 달리 젊은 조문객으로 북적이는 장례식장에서는 사뭇 활기찬 기운마저 느껴진다. 며칠 뒤 있을 발인에는 당신의 조형예술학과 석사 과정 동기들과 최근 당신의 개인전을 기획했던 큐레이터 동료가 관을 들고 장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전반적으로는 슬프지만 기운 넘치는 이 장례식장 한구석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 중인 사람도 있다. 그중 한 명은 당신이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빠르게 주목받은 덕분에 인연을 맺은 갤러리에서 당신을 담당하는 갤러리스트다. 갤러리에서 훨씬 오래 일한 자신의 상사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경력이 짧은 그는 당신이 작가로 급격히 지명도를 높이는 동안 함께 성장했다. 친구이자 동료, 사업 파트너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어쩌면 지난 몇 년 동안 당신의 모든 작업과 창작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바로 그일지도 모른다. 어떤 작업을 얼마나 진행했는지, 어느 작업이 누구에게 판매되어 소장 중인지 등을 거의 모두 알고 있는 것 또한 그의 몫이었다. 심지어 스튜디오에 보관하기 어려워 창고나 수장고에 보낸 작업이 어디에 있는지는 갤러리스트인 그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릿속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 느끼는 슬픔과 더불어 갖가지 계산으로 복잡하다.

무엇보다,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 당신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맺혔던 장면이 갤러리스트의 심경을 복잡하게 한다. 얼마 전 구입한 당신의 맥프로를 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약 10년 전부터 당신의 바탕화면과 드롭박스, 구글 드라이브, 네이버 N드라이브와 개수를 세기 힘든 외장하드, USB 메모리 등에 무작위로 저장된 작업 파일들이 장례식장을 지키는 그의 눈앞에 소용돌이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중이다. ‘혼돈 속의 질서’라고 했던가. 당신의 정리 시스템에는 분명히 어떤 질서가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건 장례식장 전체가 보이는 자리를 전략적으로 선점한 채 미술계 인사들을 관찰하다 넋이 나간 듯 보이는 갤러리스트의 망상인지도 모른다).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 쇼를 여는 패션 하우스와 컬래버레이션을 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로 자리 잡은 당신이었지만, 아직 행정업무 처리나 작품과 자료 아카이브 구축을 담당하는 조수를 둬야 할 만큼 경력이 길지는 않았다.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창작물을 목록화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 제작은 당신이 수십 년 뒤에도 여전히 성공적인 작가로 남아있을 때나 꿈꿀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작업실 밖에서 당신을 만난 사람들은 적당히 흐트러져 있지만 항상 깔끔한 옷차림을 유지하는 ‘서울 기반의 동시대 미술 작가’인 당신이 10년째 정리하지 않은 온갖 파일 꾸러미를 짊어진 ‘디지털 호더Digital Hoarder’일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영원히 증가하는 것처럼 멈추지도 않고 계속 쌓여가는 파일 더미가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 또한 알 리가 만무했다.

1990-92년 시기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런던 스튜디오를 아일랜드의 휴레인 미술관이 1998년에 구매하여 통째로 옮겨 놓은 모습.

스튜디오의 모든 물품의 상세 내역을 별도의 웹사이트(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페리 오그덴, 제공: 프랜시스 베이컨 이스테이트.

‘그건 그렇고…’ 갤러리스트는 다시 생각한다. ‘지금 당장 급한 건 파일 정리가 아니라 스튜디오와 창고 정리 아닐까?’ 애써 두둔해보자면, 당신의 스튜디오는 매우 ‘창의적인’ 상태다. 마치 아일랜드의 한 미술관이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까지 통째로 옮겨간 현대미술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런던 스튜디오와 같은 모습이랄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죽을 때 이미 참여 중이던 국내외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스물두 곳에 작업이 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작업은 어쨌든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고, 운송업체가 작업을 반출하기 전, 전시장 도착 직후, 전시 종료 후 다시 포장해서 내보내기 전에 ‘컨디션 리포트’를 작성해두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뒤죽박죽 작업 더미와 문서 더미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선가 전시가 된 기록이 남겨진다면 언젠가 당신의 작업이 진짜라는 걸 확인해 줄 귀중한 자료가 될 테니까.

하지만 한 줌의 다행이 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너무 일찍 한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어버린 당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술 시장의 모든 사람이 기를 쓰고 뒤쫓는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누가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희소성’이라는 가치다. (한때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안겨줄 것 같았던 NFT가 획기적이었던 건 바로, 이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똑똑한 자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희소성’을 ‘무한히’ 만들 수 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청소 대행업체를 부르면 100리터 재활용 봉투와 잡스러운 건설 자재를 담는 마대, 5t짜리 트럭 두 대를 가져와 모든 걸 다 치워버릴 수 있는 당신의 스튜디오. 그 안에 대체 어떤 희소한 것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빈소를 열자마자 들러서 거액의 조의금을 두고 간 갤러리 대표 역시 갤러리스트에게 최대한 빨리 당신이 만들어 둔 작업을 목록으로 정리해서 보고하라며 넌지시 귓속말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차라리 프랜시스 베이컨의 런던 스튜디오처럼 작가의 스튜디오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소장품으로 만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수집하라고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재작년 개관한 홍콩의 시각문화 뮤지엄 M+는 작가의 작업만 수집하지 않고, 거리의 간판이나 디자이너가 작업한 공간 전체를 소장품으로 수집하기도 했으니, 한국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갤러리스트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만 간다.

엄청난 걸작을 잔뜩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무명 화가의 작품을 둘러싼 호러 스릴러 영화 ‹벨벳 버즈소Velvet Buzzsaw›(2019).

욕망에 눈이 먼 갤러리스트는 작가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이 모르는 곳에 작업을 숨기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1년에 여섯 사람 몫을 하는 것처럼 보이던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여섯 배 빨리 세상을 떠날 줄 미리 알았다면 뭔가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국의 미술 대학에서도, 외국의 아트 스쿨에서도, 작업을 아카이빙하는 교육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artworkarchive.com 같은 구독형 서비스를 알았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1년 동안 한 달에 24달러를 내면 무제한으로 작업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고, 어떤 작업이 어디에서 전시되고 있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물론, 사용자가 꼼꼼히 기록한다는 전제하에). 아니면, 당신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한참 전에 (이제서야 개관을 앞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같은 곳이 문을 열었다면? 그랬다면…제 작업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졌을까? (물론, 막상 아카이브에 가서는 앞서 세상을 살았던 작가가 남긴 뒤죽박죽 기록을 영원히 정리하는 아키비스트의 모습을 접하며 ‘역시, 소용이 없군’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신이 남긴 산더미 같은 아날로그, 디지털 작업과 자료가 당장은 갤러리스트의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령 학생 시절부터 만든 모든 것에 꼼꼼히 번호를 부여하고 분류해 두었다 한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테니까. “아카이브는 항상 자료가 부족하다.” (이 문장은 아를레트 파르주가 쓴 『아카이브 취향』(김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빌려온 것이다. 모든 아카이브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언제나 새로운 배열과 해석이 필요하다. 아무리 단단하게 잘 구축한 아카이브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갤러리스트가 잠시 상상한 것처럼, 화산 폭발 현장을 방불케 하는 복잡다단한 당신의 스튜디오 전체가 하나의 수집 항목이 되어 어느 미술관 수장고로 통째로 옮겨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현기, ‹무제›, 1980.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다시 한번 다행인 건, 비록 당신은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당신의 작업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기록이나 국가적인 역사에 관한 아카이빙도 아직 갈 길이 먼 한국에서, 미술 작가가 남기고 떠난 작업과 사물이 종종 처치 곤란한 짐이 되거나 보호받지 못한 채 사라질 뻔한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역경을 뚫고 끝까지 살아남은 자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아카이브 자료’가 되어 온 세상에 낱낱이 노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가 이중섭(1916-1956)이 살아생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영원히 남겨지게 되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냈던 인스타그램 DM이 뭐였는지, 죽기 며칠 전 트위터의 익명 계정에 툴툴거리며 남겨둔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는가? 당신의 사망 20주기를 추모하는 회고전에는 당신이 이곳저곳에 실명과 익명으로 남긴 디지털 발자국을 전시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깔끔한 종이에 인쇄되어 액자에 들어간 채. ‘왜 그걸 안 지웠지?’라는 후회가 드는 것도 있겠지만, 자고로 작가의 삶이 그러한 것을 어찌할까. 심지어 미국 국회 도서관에는 2006년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모든 트위터 사용자가 올린 모든 공개 메시지가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트위터 메시지를 감당할 수 없어 2018년 1월 1일부터는 선별적으로 ‘중요한’ 트윗만 보관하기로 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당신이 여전히 유효한 작가로 남아 있다면, 당신이 어느 겨울밤 술에 취해 올린 트윗 하나가 그 시기에 창작한 어떤 작업을 이해하는 미술사적 단서로 여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례식장의 밤이 깊어져 가는 사이, 당신의 친구이자 동료, 사업 파트너인 갤러리스트는 생각을 정리한다. 이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당신의 1주기를 맞이하는 내년 이맘때면 사망 직전 당신이 집중하고 있던 새로운 작업이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전시 도록에는 진지한 미술사 연구자와 생전에 당신의 작업에 대해 평론을 썼던 여러 평론가가 당신의 삶과 작업 전체를 훑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쓰게 된다. 도무지 정리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작업과 자료는 ‘혼돈 속의 질서’를 만들어 정리될 것이다. 그중 일부는 새롭게 문을 여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아카이브에, 또 다른 자료는 홍콩에 있는 아시아아트아카이브에 기증될 것이다.

당신의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중요하게 여겨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잠깐이나마 당신의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갑작스러운 죽음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영원히’ 보관하며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는’ 아카이브에 당신의 작업을 둘러싼 자료를 성공적으로 기증하게 된다면, 적어도 당신이라는 작가와 당신의 작업이 미술의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영원히 잊히는 일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당신을 아카이브의 한 조각으로 남겨두는 게 부디 당신이 남겨둔 작업을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갤러리스트로서는 더 바랄 게 없다.

1993년에 열린 전시 자료를 찾기 위해 방문한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자료 상자에서 찾은 1993년 신문 기사 스크랩. 

사진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미술관에서는 30년 전 치러진 전시와 관련된 편지와 문서를 모두 실물로 보관하고 있다. 사진: 박재용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 혹은 모바일 스크린으로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냈다면, 당신은 다행히 심근경색으로 삶을 마감하진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스물두 곳의 국내외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에서 동시에 전시를 진행하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당신의 디지털과 아날로그 공간의 정리 상태는…글을 쓰는 나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 당신의 컴퓨터 바탕 화면과 작업실이 부디 이 글의 주인공이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스튜디오 같은 상태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만일 비슷하다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예술가 생존법』(헤더 다시 반다리, 조나단 멜버 저, 김세은 번역. 미진사, 2015)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 『ART/WORK』에서 작품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부분을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 당신이 미술사에 기억되고 기록될 만한 작가이자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게 될지, 당신 인생의 어느 부분이 어떤 식으로 편집되거나 포착되어 미술관의 좌대나 벽에 걸리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나름의 체계를 갖춘 작은 아카이브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건 작가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의미 있는 일임이 틀림 없다. 일단 바탕 화면에 쏟아 내린 파일 더미와 작업실 한구석을 차지한 작업을 상대로 작은 질서를 부여해보는 건 어떨까. ‘아카이브’를 열쇳말 삼는 미술 전시의 서문이나 관련 자료에서는 항상 빠지지 않는 책이 한 권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쓴 책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Éditions Galilée, 1995)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직 단 한 번도 개인이나 집단이 열병에 걸린 것처럼 아카이빙에 매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게. 대체 아카이브가 뭐길래?

살펴보면 도움 되는 아카이브 몇 가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21년 말 개관을 목표로 준비한 미술 아카이브. 2017년부터 자료 수집을 시작했고, 2023년 올해 마침내 문을 열 예정이다. 

2000년에 설립된 아시아 현대 미술 아카이브. 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는 미술의 ‘여러 가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과 인도에도 지부가 존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미술아카이브 소장품을 검색하고, 직접 열람을 요청할 수 있다. ‘아카이브 계층보기’ 기능을 제공한다.

현재 약 20만 점의 작업을 색인으로 만든 온라인 컬렉션. 이 중 9만점 이상을 온라인에서 바로 열람할 수 있다.

1만 4000개 이상의 전시, 행사,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문서, 영상 43만 5000점 이상을 보관 중인 온라인 아카이브. 고화질 이미지로 전시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https://www.contemporaryartdaily.com/ 의 스핀오프로 만들어졌다.

199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디지털 아카이브. 현재, 7350억 개의 웹페이지, 4100만 개의 책과 글, 1470만 개의 오디오 기록, 840만 개의 영상, 440만 개의 이미지, 89만 개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수록 중이다. ‘Wayback Machine’ 페이지에서는 특정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해 최대 26년 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의 예술기록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웹사이트. 20세기 중후반 한국에서 이뤄진 다양한 예술 전시, 공연 등의 기록을 볼 수 있다.

2007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시작한 미술 아카이브.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와 함께, 물리적인 공간을 운영한다.

동시대 미술 창작을 기록하는 아카이브이자 라이브러리. 작가의 아카이빙 구축을 돕는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
(@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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