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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설명서: 예술하려면 ‘미쳐야’ 하나요?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이 XX, 미쳤네. 대박!” 광기를 예술가의 천재성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옛날 옛적부터 있었어요. 정신이 아파 보일수록 천재의 비밀스러운 축복이자 저주라고 수군거리기도 했죠. 근데 예술가들은 진짜 어느 정도 미쳐야 위대해지는 걸까요? 결국 예술에는 광기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일까요? 박재용 작가는 창조성과 광기에 대한 여러 예시를 살펴보며 우리가 아는 선입견을 분석하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읽기만 해도 흥미로운 미친(?)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박이소, ‹우리는 행복해요를 위한 드로잉›, 2004, pencil, color pencil on paper, 30x21cm

창조성과 광기

창조적인 사람의 정신에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예컨대 기원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했다는 말을 살펴보자. “약간의 광기도 없는 위대한 천재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인이 보기에 창조성이나 천재성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안겨준 선물이었고, 그런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대가로 광기나 산란한 정신 상태를 앓았다.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1514

주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마녀로 취급하며 화형에 처하던 중세 시대를 지나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졌다. 16~17세기 유럽의 엘리트 계층 사이에선 ‘멜랑콜리Melancholy’가 유행했다. 구슬픈 모습으로 슬픔에 잠겨 생각에 빠진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더 예술적이고 창조적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한편, 이때 멜랑콜리는 단순히 슬픈 감정뿐 아니라 우울감과 불안 등 오늘날 우리가 ‘정신과 질환’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증상을 포괄했다. 창조적으로 되기 위해 반드시 미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이) 좀 아파 보이면 창조적일 거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셈이다.

한편, 18~19세기에 유행했던 낭만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낭만주의에서는 광기가 마치 천재의 특징인 것처럼 여겨졌다. 광기는 일종의 고양된 정신 상태이며, 광기를 통해 평범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숨겨진 영역이나 인식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고난 재능, 예술을 향한 열정,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불행과 이로 인한 고독함, 그리고 일반인이 지닌 뻔하디뻔한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까지. 이제 광기는 마치 창조성의 필요 조건이라도 되는 듯 여겨졌다. 일반인의 사고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독한 천재 예술가’의 고정 관념은 이렇게 굳어진 것이다.

미친 예술가들

그런데 예술을 하려면 정말 ‘미쳐야’ 할까? 이 질문에 화답하듯,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광기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1932~1963), 조울증을 앓다 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버지니아 울프(1882~1941), 거식증과 조현병에 시달리다 짧은 생애를 마감한 이중섭(1916~1956)까지…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많은 예술가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다. 물론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오늘날의 정신의학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증상은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정말 ‘제대로’ 미친 예술가는 의료 기록이 남아 있는 20세기 이후의 예술가 중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Andy Warhol at the Jewish Museum, 1980 © Bernard Gotfryd

“어렸을 적에 1년 간격으로 세 번의 신경쇠약을 겪었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여름 내내 찰리 맥카시 인형과 종이를 오려낸 인형과 함께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답니다.” 

– 앤디 워홀(1928~1987)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앤디 워홀의 증상은 그가 초등학생이던 여덟 살 때 처음 발생했다. 멈추지 않는 증상에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까지 더해지자 결국 워홀은 8주 동안 학교를 쉬게 되었다. 그때 워홀의 어머니는 그의 식사를 ‘캠벨 수프’로 대신했고, 불안감에 휩싸인 어린 워홀에게 점잖은 신사인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슈퍼히어로 만화를 안겨주었다. 워홀은 이때부터 유명인이 되는 꿈을 품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피부의 일부가 하얗게 뜨는 백반증을 앓았고, 종기로 고생했으며, 이로 인해 코에 피지선 문제가 생겨 붓기에 시달렸다. 게다가 음낭에는 작은 혈관종이 있어 그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워홀은 외모에 엄청난 신경을 쓰게 되었고, 다양한 화장품으로 외모를 꾸미고 성형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심지어 부어 오른 코를 사포로 갈아내는 시술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 수술의 효과는 ‘일시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마약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평생 하루에 두 알씩 복용한 체중감량제 처방전에는 (현재 한국에서 마약류로 분류하는) 메스암페타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워홀의 총격 사건을 보도한 «Daily News» 1968년 6월 4일 기사

기록에 따르면, 앤디 워홀은 공감 능력이 부족했고, 자신이 운영하던 ‘팩토리’ 직원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은 악덕 고용주였다. 1968년 그는 불만을 품은 동료 작가에게 총을 맞아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이때 자기 목숨을 살려준 의사에게 치료비 3000달러(2023년 기준으로 약 3000만원)를 죽을 때까지 지불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워홀이 사망하고 30년이 지난 뒤 그가 남긴 610개의 ‘타임캡슐’을 개봉하면서 밝혀졌다. 더불어 오랫동안 이어지는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워했고, 이와 동시에 인정과 칭찬을 갈구했다. 그런 워홀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되는 것 그리고 부자가 되는 것. 요약하면, 워홀은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앓았다.

워홀은 쇼핑 중독자이기도 했다. 일단 물건을 구매하면 절대 버리지 않았기에 그의 집은 10만 개가량의 물건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은 워홀이 사망한 후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의 작업실인 팩토리에 남겨진 610개의 타임캡슐에는 각종 영수증, 개봉하지 않은 편지, 고장 난 장난감, 편지, 음반, 상한 피자 조각 등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워홀은 갖가지 공포증에도 시달렸다. 어릴 적부터 어두운 곳을 무서워했고, 개인 주치의를 두고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방문했지만, 병원 공포증이 있어서 담낭 제거 수술을 미루기도 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열었기에 극복한 것 같기는 하지만, 한때는 비행 공포증이 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이 모든 강박과 성격 이상―혹은 광기는―앤디 워홀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걸까? 이처럼 성공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워홀처럼 ‘미쳐야’ 하는 걸까?

미친 사람이 정말로 더 창조적이다?

‘고뇌하는 예술가’라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유효한지와는 별개로, ‘창조성과 광기’라는 주제를 정신질환의 관점에서 다루려는 연구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정신의학자 아놀드 루드비히가 쓴 책 『천재인가 광인인가(The Price of Greatness)』이다. (원서는 1995년, 한국어판은 2007년에 출간됐다) 루드비히는 1000여 명의 비범한 사람들이 어떤 정신질환을 앓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꼼꼼히 조사했다.

루드비히가 세운 가설은 천재적인 창의성이 정신질환―혹은 광기―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고, 적어도 그의 검증에 따르면 결론은 ‘그렇다’에 가깝다. 예술계 종사자들은 조현병이나 조울증처럼 정신질환을 겪을 확률이 일반인 대조군에 비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예술계 종사자의 친인척들 역시 정신질환을 겪는 비율이 높았다. 고대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창조성은 정말로 정신질환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임을 명심하자).

Louis Vuitton × Yayol Kusama in Paris

이와 같은 주장은 유전자 차원에서도 검증이 이뤄졌다.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실린 논문 「유전 변이가 창조성을 정신의학적 문제에 연결짓다(Genetic variation links creativity to psychiatric disorders)」는 조현병 및 조울증과 관련한 유전적 위험 수치가 창조성과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역시나 일반인 그룹과 예술 단체 가입자 사이에 정신질환 비율이 유의미한 수치로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예술 종사자 = 정신질환자’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예술 종사자는 보통 사람과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조울증과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인지와 감정 처리의 일탈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았을 때 남다른 생각에서 유래하는 창조성의 특성을 되짚어보면 어느 정도 유사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광기와 창조성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라는 이야기다.

박이소의 유작인 ‹우리는 행복해요›는 그가 남긴 드로잉을 바탕으로 부산, 로스앤젤레스 등 여러 장소에서 재현됐다.

내가 조금은 ‘미친’ 것 같다면

“남들처럼 일하고 돈 벌고 하는 방식에는 전혀 적응이 안 되니, 이런 보호구역에 들어가서 약간 아픈 척하면서 적당히 뭉개 보려고 (작업을) 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예술의 영역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호구역이나 양호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故) 박이소(1957~2004)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을 앓거나 전문가를 통한 상담이 필요한 심리 상태에 놓여있지는 않더라도, 창조성을 요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구석이 있고, 창작자의 일이란 그걸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이를 타인에게도 전달하는 것일 테니까. 모든 게 마냥 편하고 좋기만 하다면, 세상이 참 살기 좋고 아름답다는 말을 던지거나 예술의 순수한 형식적 측면을 따지는 일 외에 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인격 장애를 겪은 앤디 워홀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러 예술가처럼 상태가 정신질환에 이를 지경은 아니더라도, 창조성을 다루는 우리 모두는 조금씩 ‘미쳐’ 있다. 자기를 둘러싼 환경의 갑갑함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이런 점을 어느 정도 타고났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스스로와 주변의 (몸과 마음에 대한) 건강에 주의를 더욱더 기울여야 한다. 창조성과 광기 또는 정신질환의 관계를 다룬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결국 창조성을 타고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정신질환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가진 창조성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스스로의 창조성에 도취하거나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전에 자신과 주변을 돌보는 시도를 해보자. 지금은 2023년이고, 지구가 불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집중해야 할 키워드는 ‘고독한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 미친 사람들마저도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연대’와 ‘협업’이다. 자조적인 비난처럼 쓰이는 ‘예술가병’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예술’ 혹은 ‘예술가’라는 알량한 단어를 방패 삼아 온갖 기행을 일삼고, 때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모습은 창조성을 질환으로 치환하는 지름길이다.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는―그러니까 당신은―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참고

1.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이규현 옮김, 나남출판, 2003)에서 광기 역시 사회 지배적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하미나의 인터뷰집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동아시아, 2021)을 추천한다.

2.  앞서 본문에서 소개한 아놀드 루드비히의 『천재인가, 광인인가 – 저명 인사들의 창의성과 광기의 연관성 논쟁에 대한 연구』(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역시 읽어볼 만하다. 아쉽게도 절판인 탓에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으니, 도서관 이용을 권한다.

3.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창작활동 과정에서 심리적‧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예술인의 고충해소를 통해 창작의욕과 심리적 건강을 도모”하고자 예술인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개인과 집단 모두 신청할 수 있다. http://www.kawf.kr/welfare/sub02.do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의 장서광이자, 뉴오피스(@new0ffice)에서 일한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연구자, 교육자이며, 허영균과 함께 NHRB(@NHRB.space)의 공동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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