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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미술관에서 사진 찍는 법

Writer: 박재용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동시대 시각 문화에 대해 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박재용 작가의 새로운 연재 글이 시작합니다! 앞으로 그가 다룰 주제는 ‘현대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대미술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재밌게 풀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글에서 박재용 직가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사진을 찍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세세하게 알려줍니다.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분들에게 이 연재 글은 분명 실용적이면서도 유쾌한 가이드라인이 될 겁니다! 더 자세한 건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베네치아 비엔날레나 카셀 도쿠멘타, 광주 비엔날레처럼 국제적인 미술 행사의 ‘프리뷰’ 기간에 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이 하나 있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개방하기 전에 ‘미리 관람’ 중인 ‘전문가’ 관객이 휴대전화나 사진기로 한결같이 열심히 뭔가를 촬영하는 모습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사진을 찍는 걸까? 일단 ‘전시장을 보는 멋진 나’를 기록으로 남기는 건 분명히 아니다. 이들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전시장과 작품을 쉴 새 없이 촬영한다. 말하자면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작품을 주인공으로 삼아 사진을 찍는다.

어떤 전시를 보고 그에 관한 글을 쓰거나 스스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는 이들이 이토록 맹렬히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작품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작품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작품을 어떻게 설치했는지, 액자는 어떤 식으로 벽에 걸었는지, 프로젝터 선은 어떻게 정리했는지 등을 사진에 담는 게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고 제목은 무엇인지도 기억해야 하기에, 벽이나 바닥에 조그맣게 붙은 ‘캡션’을 함께 찍는 건 필수다.

2014년 5월 19-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Arts Collaboratory Showcase’ 행사와 함께 열린 전시에서 소개한 키르기스스탄 알마티의 대안 공간 Art Group 705의 영상.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건 다 작품의 캡션을 꼼꼼히 찍어둔 덕분이다.

만약 주변에 미술계 종사자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부탁해보자. 혹은 최근 들른 전시에서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보여달라고 물어보아도 좋다. 일단 작품과 캡션을 찍은 사진이 있을 것이고 전시 공간의 문짝이나 창틀, 나사, 전선 따위를 잔뜩 찍어 놓은 이미지를 마주할 확률도 결코 낮지 않다. 만약 사진에 사람이 등장한다면 아마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우연히 포착된 경우와 전시 오프닝 인파, 뒤풀이에서 남긴 기념사진일 경우가 높다.

이렇게 전시장에서 작품, 캡션, 장비 사진을 셀 수 없이 많이 찍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일까? 이 질문을 미술계 종사자에게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략 비슷할 것이다. 다만, 대답의 종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1. 진심으로 미술을 애호하는 자

미술 전시는 ‘기간 특정적’이란 운명을 지닌다. 정해진 기간 특정한 장소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행사라는 의미다. 전설로 남을 어떤 전시에서 무언가 보았다는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전시 기간 중 전시장에 방문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역사가 되어 미술 잡지에 실린 자료로 접하거나, 드물게는 미술사를 다룬 책에 적힌 몇 마디 문장으로 마주한다. 또한 아주 뛰어난 작가나 작품의 꼬리표를 달지 않는다면, 동일한 작품을 여러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칠 확률은 애초에 높지 않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심으로 미술을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거다.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 작품을 어떻게 설치했는지 그리고 작품의 캡션도 같이 찍어놔야죠.”

이건 어쩌면 ‘대포 렌즈’를 들고 같은 공연을 ‘n회차’ 관람하며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직캠’으로 촬영하는 팬의 마음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미술 작품 하나하나를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전시는 자주 볼 환경을 갖추지 않은 ‘그/그녀’를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서 매우 소중한 자리가 될 수 있다. 물론 베네치아 비엔날레나 카셀 도쿠멘타처럼 한국에서 아주 먼 장소에 큰맘 먹고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내 전시는 대체로 n회차 관람이 가능하다. 심지어 같은 작품을 다시 마주치는 아주 귀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오랜 시간 미술 애호가 생활을 지속하거나 여러 나라,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를 들르면 분명 한 번쯤은 겪게 될 일이다. 하지만 분명 같은 작품이라도 해당 전시의 맥락에 따라, 연출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미술 애호가의 대답을 굳이 옮겨 적지 않아도 우리 모두 짐작할 수 있겠다.

Hito Steyerl, HellYeahWeFuckDie, 2017, 3-channel-video installation, environment, 4 min., HD video (2016), 사진 제공 © 박재용

올해 큰 관심을 받았던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에 출품된 작품 HellYeahWeFuckDie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거대한 ‘화이트큐브’에서 볼 수 있지만, 내가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10년에 한 번 열리는 독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십여 년 동안 빌보드 차트에 오른 노래에 가장 많이 쓰인 다섯 단어를 차용한 이 작품은 당시 1975년 건설한 은행 건물 로비에 설치되어 있었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특수 목적의 은행이었지만 전시를 위해 특별히 개방한 그 건물은 미래적인 동시에 관료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공간으로 디지털 기술에 의해 묘하게 열화되는 미래를 말하는 슈타이얼의 작품과 역설적인 한 쌍을 이뤘다. 그리고…2022년 서울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서는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내 모습’을 박제하기 위한 일종의 포토존으로 기능했다.

2.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는 자

모든 사람이라고 할 순 없지만 수많은 작가와 큐레이터, 평론가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합리적인 의심을 던질 수 있다. 불시에 그들의 사진첩을 열어본다면 작품 사진만큼이나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디테일’ 사진이 가득할 것이다. 사실 이들은 미술 작품 만큼이나 온갖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는 자’로서, 평소 책상 정리, 전선 정리, 물건 배치 따위에 유난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들이 열광하는 것에 대해 몇 장의 사진으로 알아보자.

위 사진은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촬영한 풍경이다. 형광등을 배열한 조형으로 널리 알려진 댄 플래빈의 작품을 위해 설치한 변압기가 그 정체다.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는 자라면 이미 이 사진을 본 순간부터 감탄사를 내뱉고 있을 거다.

또 이건 어떤가? 런던 북부의 대안 공간 ‘The Show Room’에서 거칠게 드러난 벽에 아주 무심한 것 같지만 꼼꼼하게 프로젝터를 거치한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약 10년 전에 촬영한 이미지를 보면 이주 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지금은 난민이 많이 산다)의 특성을 반영한 거친 공간에 적절히 어울리는 장비 설치 방식이 아주 일품이다.

이번 사진은 5년 전인 2017년 열린 카셀 도쿠멘타의 한 작품이 캡션을 처리한 방식을 포착했다. 작품 정면에서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을 노출하는 방식에 어울리도록 캡션을 받치는 방식마저 세심하게 구성한 모습은 매우 큰 감동을 선사한다.

정면에서 보면 이런 점을 더욱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캡션을 인쇄해 창백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주기보다 텍스트를 손으로 직접 썼다. 따라서 이런 성격의 캡션을 지지할 때는 좀 더 따스함과 개별성을 안겨주는 조약돌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를 들면 끝도 없다. 서울의 어느 전시장에서 작품을 벽에 건 방식, 일본의 어느 미술관에서 지진이 일어나도 천장에 매단 프로젝터가 떨어지지 않게 와이어로 무게를 분산해놓은 모습, 누구 전시를 갔더니 월텍스트를 어떻게 붙여놨더라, 바닥에서 전선을 어떻게 뽑았더라 등등…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는 자들이 남긴 기록은 미술에 대한 애호를 전제로 하되, 언젠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고하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는 업계인 혹은 전문가의 태도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3. ‘미술을 보는 자신’을 기록하는 자

인스타그램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 국내외 유명 전시 공간을 검색하면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증샷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한국인 유저가 검색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을 찍은 사진을 띄워주는 걸까?’ 의심이 들어 여러 번 다르게 시도해봤지만, 아무래도 전 세계의 ‘미술관 인증샷’을 이끄는 주체는 한국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진을 분석해보면 인증샷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단순한 인증샷으로, 미술 작품 앞에 선 자신을 촬영한 것이다. 아래에 첨부한 가수 RM의 최근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아주 좋은 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심화 단계는 미술을 보는 자기 모습을 기록한 이미지다. RM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다시 한번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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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진심으로 미술을 애호하는 자’와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는 자’에게는 못마땅하게 다가갈 모습일 수도 있지만, 미술관에서 사진 찍는 방법에 정답이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드문 경우지만, 진심으로 미술을 애호하며 동시에 디테일에 눈이 돌아가면서 미술을 보는 자기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또한, 많은 미술 애호가는 대체로 한 가지 이상의 분류에 속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현대 미술을 보는 내 모습’을 남기려고 다른 사람의 감상에 지장을 주지는 말자…

이 글을 읽고 시도해 봄 직한 건 무엇일까? 자신이 속하지 않은 분류의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찍는 사진을 한 번쯤 시도해보자. 작품 앞에 선 모습으로 인증샷만 남기던 당신이라면 액자의 디테일이나 공간 디자인에서 특이한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해보는 것이다, 작품과 캡션만 찍고 다니던 당신이라면 작품과 전시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도 한 번쯤 사진으로 남겨보자. 전시의 구성을 깨지 않으면서 관객이 전시장에서 사진을 남기도록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한 공간 디자이너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작품과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기는 행동은 어떻게 해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Ei Arakawa,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ünster, 2017, 7 LED strips on hand-dyed fabric, LED transmitter, power supply units, SD cards, transducers, cardboard, amplifiers, media player, 사진 제공 © 박재용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운영하며, 공간 ‘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를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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