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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사람

Writer: 최혜진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최혜진 작가는 이번 글에서 정보의 관계를 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을 잘 수행하려면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정보 사이에 존재하는 미적·심리적·논리적 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거예요. 이를 기반으로 최혜진 작가가 제시하는 다양한 훈련 방법을 연습하면 ‘에디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흥미진진한 에디팅의 세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신문사, 출판사, 방송국도 있는데, 왜 잡지사에 들어가셨어요?”

살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신문과 단행본은 이미지 다룰 일이 적어요. 방송(영상)에서는 글 다룰 일이 적죠. 저는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는 매체를 좋아해요.”

잡지 에디터를 생업으로 선택한 2003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내 선호는 변하지 않았다. 인식의 암흑 지대 어딘가에서 갑자기 전구를 ‘탁!’ 켜는 문장을 쓰는 사람도 멋지고, 문자 언어로 도저히 번역할 수 없는 압도적 비주얼을 만드는 사람도 멋지지만, 나는 글과 이미지가 만날 때 생기는 긴장과 확장에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6개월째 연재하면서 ‘편집이란 무엇인가? 에디터적 사고력이란 정확히 어떤 능력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집요하게 던지고 있다. 편집자 타이틀을 가진 여러 사람―이를테면 일간지와 주간지의 편집 기자, 문예지와 단행본 편집자,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 다양한 플랫폼의 콘텐츠 에디터, 영상 편집자 등―이 하는 공통적인 행위에 관심이 간다. ‘글과 이미지 모두에 적용가능한 편집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편집이 가진 창조성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존재하는 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힘을 더욱더 기를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정보를 해석하는 주체로서 에디터십을 가지고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지니고 연재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다섯 편의 글에서 전했듯 에디터는 ‘브리콜라주bricolage’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료를 모으는 사람, 정보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고 연결하는 사람, 인식의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 의도한 관점과 맥락에 맞추어 정보를 정리하는 사람, 그렇게 하기 위해 때론 생략할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다각도에서 에디팅의 의미를 살폈지만, 여전히 뿌옇게 다가오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다. 정보의 관계를 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을 잘 수행하려면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오늘은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지난 6개월 간 최혜진 작가가 비애티튜드에서 선보였던 글들이다.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아티클을 확인할 수 있다.

1. 에디터적 사고력이 왜 모두에게 필요하냐고요?

2. 수집으로 예술을 할 수 있다고요?

3. 어디에 주목할지 결정하셨나요?

4. 관계를 알아차리셨나요?

5. 생략이 주장이 되는 순간

파편화된 정보가 맥락 없이 난잡하게 흩어지거나 혹은 과잉하여 범람할 때 사람들은 편집의 필요성을 느낀다. 재료를 선별하고 자리를 찾아주면 혼란이 잦아들고, 의미·메시지·스토리·취향·의도 등 정보의 지향점을 읽어낼 수 있다. 다음 예를 살펴보자.

[사례 1] 

1 – 2 – 3 – 4 – 5 – (     ) – 7

제시한 숫자를 하나의 정보 단위, 즉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선택·배치한 편집의 결과물로 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독자가 괄호에 무엇이 들어갈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보의 간격을 일상적인 관습 안에 놓은 편집 덕분에 그 관계를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신 지적·미적 흥미나 자극을 느끼기는 어렵다. 다른 사례는 어떨까.

[사례 2] 

16 – 06 – 68 – 88 – (     ) – 98

이번 조합은 정보 사이에 구축된 관계의 끈이 희미하다. 괄호에 들어갈 숫자를 단박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유추력을 사용해 구조를 파악하려 애쓰고, 가설을 세워서 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러면서 인식이 날카롭게 벼려진다.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예시의 답을 다들 찾았는지 궁금하다. 편집자가 숨겨놓은 구조가 보이면 괄호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단어의 조합으로 예를 살펴보자.

[사례 1] 

원숭이 엉덩이 – 빨갛다 – 사과 – 맛있다 – 바나나 – 길다 – 기차 – 빠르다 – 비행기 – 높다

[사례 2] *

밀가루 뒤집어쓰기 – 퉁퉁 부은 발 – 자정 넘어 벽에 못 박기 – 기울어진 시소 – 썩은 씨앗 – 몸을 터는 젖은 개

(* 안희연 시인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실린 시 「소동」에 등장하는 시어들)

에디팅은 무엇과 무엇을 어떻게 붙일지 선택하는 일, 다시 말해 재료 사이에 존재하는 미적·심리적·논리적 거리와 간격을 다루는 일이다. 글만 다루는 편집자, 이미지만 다루는 편집자,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다루는 편집자 모두 정보 사이의 거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행위를 한다.

다만 어떤 편집은 [사례 1]처럼 관습적 약속에 충실하고, 어떤 편집은 [사례 2]처럼 도전적인 초대장을 보낸다. 다수와 무난하게 소통하기 위해 정리하는 편집이 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나 심상을 의도하는 편집도 있다. 무엇이 낫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목적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선택과 배치가 어떤 결과를 만들기 원하는지 정확한 목적지를 찍고, 그에 맞춰 정보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 이것이 바로 에디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다루는 에디터는 단어와 단어가 맞붙을 때 피어나는 뉘앙스를 포착해 기억에 남는 제목을 뽑거나 카피를 쓴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흐름을 감지하고 정보의 공백을 늘이거나 줄인다. 편집장으로서 잡지 한 권을 엮을 땐 필자와 필자, 아티클과 아티클을 묶으며 생기는 주장과 메시지, 매체의 연상 이미지를 조정하기도 한다.

이미지가 재료일 때는 어떨까? ‘2022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된 두 아티스트, 프랑코 살모이라기Franco Salmoiraghi와 임충섭 그리고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아서 자파Arthur Jafa의 작업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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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살모이라기, ‹Tortured Metal, Broken Stone›, 1994(2022 재제작), 알루미늄 판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60.96 x 106.88 cm © 최혜진

이탈리아계 미국인 프랑코 살모이라기는 1968년부터 하와이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하와이의 자연환경과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Tortured Metal, Broken Stone› 연작은 하와이에서 신성한 섬으로 여기는 카호올라베섬에서 촬영한 것이다. 카호올라베섬에는 고고학적 유적이 많이 있었지만, 1941년 미국 연방 정부가 차지해 포격 연습장으로 사용하며 황폐해졌다. 운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20여 년 만에 군부대가 철수하며 섬이 반환되었는데, 살모이라기는 반환 직후부터 꾸준히 섬에 들러 폭력의 흔적과 그 와중에 다시 피어나는 연약한 생명의 흔적을 병치한 사진 작업을 진행했다. 이 두 가지 사물과 풍광은 하나의 알루미늄판에 배치했는데, 의미적·조형적으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두 컷을 붙여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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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충섭, ‹Scape@Fossil 1-8›, 2008, 아크릴, 발견된 오브제, 혼합매체, U.V.L.S. 겔, 45.7 × 47×15.2 cm © 최혜진

197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활동한 임충섭 작가는 매일 허드슨강변을 산책하며 주운 물건을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재료로 사용해 ‹Scape@Fossil 1-8›를 작업했다. 종이, 나뭇가지, 철제 부품, 돌멩이 등 이질적인 사물을 함께 놓아, 기존에 학습한 인식의 틀로는 설명하기 힘든 새롭고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발견된 사물로 쓴 시’라고 불릴 만한 서정적인 작업이다.

2019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대규모 개인전에서 만난 아서 자파는 혀를 내두를 만한 편집광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추적하기 위해 온갖 잡지와 인터넷에서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스크랩하고 일련의 순서로 배치했다. 분명 기존 맥락을 도려낸 이미지 파편의 모음인데, 스크랩 북을 넘기다 보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 복잡미묘한 느낌과 감정이 피어오른다.

아서 자파의 개인전이 열렸던 스톡홀름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전시장 풍경. 전시장 한쪽 벽에는 자파가 컴퓨터에 저장한 디지털 이미지의 출력본을 빼곡히 붙여두었고, 전시장 중간 테이블 위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스크랩 북을 놓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방식이나 흑인 문화의 흔적과 관련한 이미지, 작가를 매혹한 낯선 이미지가 뒤섞인 상태였다. © 최혜진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영상 작업 ‹APEX›은 8분 22초의 러닝타임 동안 전자 사운드 박동에 맞춰 점멸하는 일련의 이미지 모둠을 보여준다. 미키 마우스, 전자 현미경으로 본 곤충, 흑인 운동선수, 흑인 음악가, 폭동 현장,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 훼손된 시체 등 언뜻 맥락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차례차례 보고 있노라면 불편함과 무서움, 기이함과 매혹 사이 모호한 지대에 머물게 된다. 자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섬뜩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장엄하면서도 비참한 것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담기 위해 이미지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조정했다.

아서 자파, ‹APEX› 중 일부, 2013 © 최혜진

“모든 것은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의 이미지와 뒤의 이미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약 당신이 이것과 저것을 가져다가 포갠다면 그 포개진 장소가 바로 당신이라는 점입니다.”

– 아서 자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한 ‹APEC› 코멘터리 인터뷰 중

프랑코 살모이라기, 임충섭, 아서 자파 모두 수집한 이미지를 편집·배치하며 자기 작품을 창작했다. 그러면서 ‘잘 설명하기’와 ‘낯설게 하기’라는 목적의 스펙트럼 양극단에서 조금씩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었다.

에디터적 사고력을 위한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다루든 이미지를 다루든 정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신선한 재미가 없고, 너무 멀면 소통이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사용할 재료 사이의 거리를 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현대 그래픽 노블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워드리스 북wordless book’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 린드 워드Lynd Ward가 남긴 아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에디터의 임무를 상기한다.

“(그림과 그림의 연결로 이야기를 짓는) 이 작업의 어려움은 효과적인 구성 요소들 사이의 간격을 알아내는 것이다. 간격이 너무 크면, 독자는 받은 정보로 이야기를 연결할 수 없고 당신은 독자를 잃게 된다. 반대로 간격이 너무 좁으면, 새로운 구성 요소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고 작품은 독자의 관심을 잃게 될 것이다.”

– 린드 워드, 『대사 없는 스토리텔러 : 린드 워드의 목판화』 중

그렇다면 정보 사이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는 어떻게 연마할 수 있을까? 그간 나에게 유용한 훈련이 되었던 몇 가지 놀이를 공유하려고 한다.

첫 번째 놀이는 타인의 창작물의 구성 요소를 분해하는 ‘해부하고 바꿔 끼기’다. 완성형 창작물을 다시 원천 재료 레벨로 분리한 다음 각 재료를 다른 것으로 바꿀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하는 훈련이다.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에토레 소트사스, ‹Olivetti DomusLife›, 1993 © Associazione Archivio Storico Olivetti

위 포스터는 디자인 그룹 ‘멤피스Memphis’의 멤버이자 기능주의 중심의 모더니즘 디자인에 반기를 들었던 이탈리아의 스타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가전·가구 기업 올리베티Olivetti를 위해 만든 가정용 PC 광고 포스터다. 이렇게 흥미를 자극하는 창작물을 만나면 “와, 예쁘다. 재밌다” 등의 감탄에서 멈추지 말고 원천 재료 레벨로 해체해 보자.

  • 표현 방식 : 종이 인형 놀이 모티브의 일러스트레이션 
  • 등장 요소 : 3인 가구 구성원, 지붕과 응접실, 가구들, 주방 가전, 가정용 PC
  • 톤 앤 무드 : 위트, 즐거움, 재미
  • 최종 메시지 : 종이 인형 놀이를 할 때처럼 자율적이고 전능한 기분을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선사하는 올리베티 제품

그런 다음 가정형 질문을 이어간다. ‘만약 종이 인형 놀이 모티브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3인 가족을 촬영한 사진을 썼다면 어땠을까? 3인 가구가 아니고 1인 가구였다면 어땠을까? 광고의 대상인 컴퓨터를 더욱더 크게 키웠다면 어땠을까? 최상단에 배치한 제품명이 ‘DomusLife’가 아니라 ‘Almighty Home’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등등…이렇게 상상을 이어가다 보면 현재 조합을 최종본으로 결정한 창작자의 의중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자기만의 감각과 판단의 가늠자 역시 자연스럽게 조금씩 선명해진다.

두 번째 놀이는 ‘아무거나 잡화점 주인’이다. 가상의 상점 주인으로서 진열대를 어떤 조합으로 꾸릴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진열대1]

보디 워시 – 샴푸 – 컨디셔너 – 핸드 워시 – 로션

위 조합으로 물건을 모은다면 진열대 제목은 영락없이 ‘보디 & 헤어 케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조합으로 진열대를 꾸린다면 어떤 제목을 달아줄 수 있을까?

[진열대2]

보디 워시 – 커피 – 3M 소음방지 귀마개 – 책 『글쓰기 좋은 질문 642』 – 유칼립투스 오일

사람마다 모두 다른 제목을 상상할 수 있다. 나라면 ‘마감을 코앞에 둔 창작자를 위한 부스터’라고 지을 것 같다. [진열대1]과 [진열대2]에 있는 보디 워시는 사물 그 자체가 변하지 않았지만, 함께 놓인 사물(정보)에 의해 그 함의가 달라진다. 이렇게 관습적인 분류법에서 일부러 멀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물(정보)의 의미와 연상 이미지 네트워크를 다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고, 다른 사물(정보)과의 관계를 어떻게 신선하게 맺을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놀이는 제롬 케이건Jerome Kagan의 책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에서 힌트를 얻은 ‘아무 단어 챌린지’다. 랜덤으로 두 단어를 떠올리고 그 쌍이 공유하는 특성을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찾아내는 연습이다.

“대부분의 성인은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아무 단어나 쌍으로 잡아도 그 쌍이 공유하는 특성을 적어도 한 가지는 감지할 수 있다. 좋은-나쁜(good-bad), 활발한-활기 없는(active-passive), 강한-약한(strong-weak), 남성-여성(male-female)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기본적인 단어 쌍이 겉으로는 완전히 별개로 보이는 단어의 쌍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스피린과 백신은 좋다(good). 눈보라와 운동선수는 활발하다(active). 아기와 빗방울은 약하다(weak). 바다와 여왕벌은 여성(female)이다. 마법 의식은 이런 종류의 연관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던 고대 이집트의 한 여성은 밀랍과 남자의 마음은 둘 다 부드럽게 녹아내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남자의 모양으로 빚은 밀랍 조각상을 녹였다.”

– 제롬 케이건,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가』 중

자세한 훈련법은 이렇다. 먼저 머릿속 단어 주머니에서 아무 단어나 골라잡는다. 지금 글을 쓰는 내 머리에는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다음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를 적어본다. 강아지. ‘고양이-강아지’ 조합이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이라고 정리했다. 만일 ‘고양이-가방’ 조합은 어떨까?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속성이 연상된다. ‘고양이-택시’라면 어떨까? ‘불러도 절대 안 옴’. ‘고양이-빨간색’은? ‘강인하다’. ‘고양이-몰스킨 노트’는? ‘쫙 펴진다’. ‘고양이-달력’은? ‘뭔가를 하라고 조른다’…

이 놀이 역시 단어(정보)가 품은 연상 네트워크를 활성화한다. 단어(정보)는 모양, 색, 촉감, 크기, 기능, 소리, 일반적으로 위치하는 장소, 움직임, 습성, 범주, 상징성 등의 다양한 갈고리를 지닌다. 이를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연결 가능성이 높은 재료나 개념을 유연하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놀이를 응용하면 브랜드를 가운데 놓고 기업이 자신의 차별점에 어떤 연상 이미지를 부여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랜딩의 핵심은 결국 연상 이미지 관리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리브랜딩을 한 토스Toss는 ‘공 던지듯 쉬운 금융’이라는 기존의 연상 이미지를 지우고, 3D 로고와 함께 ‘새로운 차원을 향한 비틀기(도전)’라는 새로운 연상 경로를 제안했다. ‘Toss(던지다, 뒤섞다)’라는 단어에 이전에는 멀리 있던 ‘도전’이란 연상 개념을 가까이 놓기 위해 어떤 모션 그래픽, 캠페인, 굿즈 등을 제작했는지 해부해보면 어떨까? 티파니Tiffany를 ‘청혼’과 연결한 경로, 올드 셀린느Old Céline를 ‘우아함, 절제’와 연결한 경로, 볼보Volvo를 ‘안전’과 연결한 경로, 설화수를 ‘헤리티지’와 연결한 경로, 맥심을 ‘여유와 행복’과 연결한 경로 등 브랜드 연상 네트워크 사례를 공부하면 정보 사이의 간격을 감지하는 센서를 연마할 수 있다.

자, 이렇게 곳간 구석구석까지 탈탈 털어 에디터적 사고력을 기르는 다양한 요령을 정리해 보았다. 재료 소진으로 오늘은 이만 영업을 마쳐야겠다. 다음 글을 준비하려면 ‘브리콜라주’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료를 모으러 다녀야 할 것이다. 인풋과 아웃풋, 배움과 소진을 빠르게 오가는 삶은 꽤나 피곤하지만, 날 것의 정보를 잇고 연결하는 끈을 찾으면 모든 피로를 잊고 흥분해서 노트북을 열게 된다. 이로써 밝혀진 사실 하나. 에디터는 마감을 기점으로 망각을 반복하는 이상한 동물이라는 것.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 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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