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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Room: 디자이너 이예주의 작업실

Editor: 전종현
, Photographer: 박도현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서울에서 ‘예성 ENG’를 운영하는 이예주입니다. 예성 ENG는 그래픽 디자인과 아트 디렉션을 진행하며 문화예술기관, 기업 및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파트너로 두고 있습니다. 책,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시, 공간을 다루는 커머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해 작가, 안무가, 사진가, 공간 디자이너 등 다양한 협업자와 독립 프로젝트를 구상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5년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더배곳 과정을 졸업하자마자 동료들과 충무로에 작업실을 얻었어요. PaTI에서 작업실로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동했기에 작업자로서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지금 운영하는 스튜디오와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유롭게 실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동료와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주 님을 대표하는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주시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2021년 MMCA에서 열린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임» 전시 그래픽 아이덴티티입니다. MMCA에는 경험 많고 잘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기 때문에 외부 디자이너가 일을 의뢰받을 때 보통 전시 도록을 진행하곤 하는데요. 이 전시의 경우 전시에 필요한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제게 맡기셨어요. 학예사, 전시 디자이너, 인하우스 디자이너, 그리고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까지 한 팀이 되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작업물 역시 만족스럽게 나왔고 평면부터 공간까지 폭넓은 영역을 다룬 프로젝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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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에서 열린 «움직임을 만드는 움직임» 전시 그래픽 아이덴티티

가장 최근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의뢰한 행사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영화를 다루는 행사라 이미지에 ‘FILM’이란 단어를 볼드한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죠. 필름이라는 형식을 상징하는 불투명 트레싱지를 재료로 사용했고요.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해외 여러 매체에서 소개할 정도로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어요. 이 프로젝트 역시 유쾌하게 작업했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14기 졸업영화제» 포스터, 2022

개인 작업으로는 ‘2015년 시작해 현재까지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도무송’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클라이언트 작업이 아니라 제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반면 작업자로서 일관되게 끌고 가는 태도와 주제에 대한 연구를 다양하게 할 수 있죠. 2020년 팩토리2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지난 5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정리해 출판 연도가 다른 네 권의 책을 하나의 세트로 완성했고, 책의 요소를 공간과 연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무가, 사진가, 공간 디자이너 등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협업자를 만났고, 하나의 주제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책을 넘어 사물과 공간을 다룰 때마다 확장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지점이 제게는 흥미롭고 활력을 주기 때문에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매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예주 님의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작업에 대한 이해와 실현 가능한 요소, 그리고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환경, 이렇게 세 가지를 매 작업을 대할 때마다 적용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숙련되면 그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새로운 요소에 관해 탐구하는 여유가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첫 단계로 다시 돌아가더라고요. 제게는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여기에서 얼마나 계셨나요? 이곳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청 근처에 있는 현재 작업실은 2년 전에 오게 되었어요. 5년 정도 충무로 작업실을 동료들과 사용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PaTI 졸업의 연장선처럼 작업 공간을 사용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저만의 작업 스타일과 태도가 형성되었고 작업 공간의 성격과 환경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어요. 작업실을 찾고 있을 때 마침 아티스트프루프의 최경주 작가가 자신의 사무실 옆 공간을 소개해주며 여기로 옮기게 되었죠. 공간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 시점과 맞아떨어져서 지금의 작업실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에 가구와 사물을 배치한 기준이 있을까요?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을 분명하게 구분 짓고 싶어서 작업실을 얻었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제 작업실에 오면 두 개의 큰 테이블이 보이는데요. 하나는 일하기 위한 테이블,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과 미팅하거나 식사와 차를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는 테이블로 사물과 공간의 역할을 나눴어요. 그래서 작업용 테이블은 차분한 느낌이 나는 검은색 상판과 하얀색 철제 프레임으로 구성했고 휴식용 테이블은 몸에 닿았을 때 따뜻한 느낌이 나는 나무 소재의 상판과 부분적으로 철제 프레임이 뒤섞인 재료를 택했죠.

각 테이블의 색깔, 재료의 차이와 그에 따른 공간의 구분은 일할 때와 쉬어야 할 때의 태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줘요. 두 개의 테이블은 모두 전산 시스템에서 만들어줬어요. 작업용 테이블 뒤로 폭이 높고 넓은 하얀색 불투명한 커튼이 보이는데요. 커튼 뒤로는 넓은 창이 가득 나 있어서 다른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시선과 강한 햇빛을 피하는데 용이해요. 작업실에서 테이블과 커튼, 이 두 가지 요소는 공간을 구성하는 동시에 고유의 역할을 맡은 중요한 사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공간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테이블과 커튼 이외에 제가 매일 이 공간에서 마주하며 자극받는 대상은 스툴과 선반 그리고 행어에요. 제가 도무송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포스트스탠다즈 김민수 대표와 협업한 작품이죠.

지난 개인전에서 실제 전시했었는데 현재 공간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원래 몇 년 전 저 혼자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었을 땐 보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는데요. 전시를 기획하며 설치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작업해서인지 실용성과 기능성, 심미성을 모두 충족하는 사물이 되었어요. 도무송의 기능적인 부분을 확장해 사물로 옮긴 구조로, 각각의 요소가 기능적으로 잘 연결돼있고, 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이렇게 기능을 잘 결합한 사물을 매일 마주하면 이를 통해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이어질 때가 있어요. 앞으로도 이런 부류의 사물을 공간에 맞물려 연결되도록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을까요?

음, 옥상이 있으면 좋겠어요.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거나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는 작은 야외 공간으로요. 근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되겠죠? (웃음)

작업실에 출퇴근하며 예주 님이 설정한 루틴한 스케줄이 궁금해요.

저는 평일 아침 시간에 운동을 해요. 오후 시간에 집중을 잘하는 편이라 오전에 운동 시간을 잡고 일찍 미팅이 있거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시간을 조절하죠. 보통 8, 9시에 운동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작업실에 출근하면 오전 11시 반 정도가 되죠. 30분 정도는 작업하기 위한 모드로 몸을 전환하는 시간을 가져요. 마치 운동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요. (웃음) 이 시간에 컴퓨터를 부팅하고, 환기를 시키고, 그날에 맞는 음악을 고른 후, 차나 커피를 마십니다.

그다음에는 하루 할 일을 정리하고 전날 도착한 메일이나 계산서를 처리하는 등 사무적인 일을 먼저 끝내요. 그리고 오후 1시부터는 그날 해야 할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오후 5시 정도에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이후 8시까지 이어서 작업하고 퇴근하는 게 하루의 루틴이에요. 매주 목요일은 식물에 물을 주는 날이고요. 공휴일과 주말은 꼭 챙겨서 쉬는 편입니다. 작업실을 옮기면서 만든 규칙 중 하나가 ‘쉬는 날을 지키자’였어요. 꾸준한 운동과 잘 먹고 잘 쉬기는 앞으로도 잘하고 싶습니다.

루틴한 스케줄을 소화할 때 애용하는 도구에 대해 소개를 해주세요.

앞서 말한 루틴에 따른 도구를 소개한다면 텀블러, 노트, 샌드글래스, 의자, 테이블 정도가 되겠어요. 먼저 무지 노트는 제가 6년째 사용하고 있는 물건입니다.

검은색 커버와 가로줄 내지로 구성한 노트인데요. 공사용 야광 테이프를 직접 붙여 저만의 노트를 만들어요. 검은색 종이 위에 경고용 야광 테이프가 사선으로 들어간 형태가 묘한 긴장감을 주는데요. 이 묘한 긴장감을 가진 노트에 하루 일정 및 중요한 미팅 내용을 기록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 오래된 습관이에요. (웃음) 샌드글래스는 저와 작업했던 김지영 작가가 선물로 준 물건인데요. 작업을 너무 하기 싫을 때 유용한 사물이에요. 모래가 떨어지는 데 30초가 걸리는데요. ‘이것만 다 떨어지면 작업해야지’하고 다짐하는 용도로 제격이에요.

작업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카무플라주 포스터, 스툴, 행어, 선반, 러버콘, 꽃병, 식물을 꼽을 수 있겠네요. 각각 다른 형태와 경로로 제게 영감을 주는 도구들이에요. 카무플라주 포스터는 액자로 만들어 작업용 테이블 바로 맞은편에 잘 보이도록 배치했어요. 이 작업의 과정 하나하나가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13년 열린 컬러 워크숍에 대한 포스터인데요. 지하철에서 군복을 보고 카무플라주 리서치를 했어요. 이 형태가 보통은 전쟁에서 필요한 위장술로 활용되잖아요. 그런데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오방색을 사용했어요. 허허벌판에서 적과 싸울 때 화려한 색깔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거죠. 그래서 카무플라주 아웃라인을 인쇄한 후 수작업으로 다양한 색깔을 채워나가고, 재료도 시트지, 가죽 등 다양하게 사용해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참여도 유도했고요. 자신의 컬러를 찾는 워크숍 내용에도 잘 맞는 포스터라고 생각했어요. 이 작업을 보면 당시의 작업 개념과 수행 방식, 작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무의식적으로 이 포스터를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요.

혹시 작업실에 필요한 도구가 더 있으신가요?

아니요. 지금 공간에는 제게 꼭 필요한 사물로 채워져 있어요. 저는 지금 이 상태가 좋습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오브제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식물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작업실에 있는 식물에 물을 줘요. 알로카시아, 고무나무, 홍콩야자, 아레카야자 등 여섯 가지 종을 기르고 있는데요. 작업실에서 저를 제외한 유일한 생명체죠. 관심을 쏟는 만큼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즐거움과 그것을 가꾸는 일은 꾸준한 운동과 잘 먹고 잘 쉬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작업실을 옮기더라도 그곳에 항상 존재할 오브제가 있을까요?

선반과 행어 그리고 스툴이 아닐까 해요. 도무송 프로젝트는 평면에서 시작했어요. 종이가 그 공간을 다루는 것에 흥미를 갖고 시작했는데, 개념이 사물로 확장하고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관계 맺는 경험을 해보니 점점 더 관심이 깊어집니다. 다른 곳으로 작업 공간을 옮긴다면 (아마 더 넓은 공간이어야 가능하겠죠?) 그곳에 필요한 다른 역할의 사물을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요. 작업실이 하나의 쇼룸이 되는 형태를 종종 상상하는데, 무엇보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쌓이길 바랍니다. 도무송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는 이와 관련한 작업으로 구상 중이에요. 재미있는 작업을 계속 꾸준히 하고 싶어요.

혹 영감을 주는 오브제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이 공간에는 제가 독립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곳곳에 있어요.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 옆면에는 마그네틱으로 만든 코스터가 달라붙어 있고, 상자를 보관하는 일시적인 창고 개념의 공간은 이를 가리기 위해 이전에 만든 도어 커튼을 걸어놨죠. 이렇게 작업실 곳곳에는 제가 영감을 받아 만든 작업물이 일상에 필요한 사물과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현재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죠.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운 공간이에요. (웃음)

만일 이 공간에 오브제를 추가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하시겠어요?

추가할 것은 없습니다. 지금 이 상태에 만족해요.

Artist

이예주는 서울을 기반으로 디자인 스튜디오 예성 ENG를 운영하고 있다. 평면부터 공간, 사물과 사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개인전으로 «3MM»(한국, 2020), «UNUSED SPACE»(한국, 2017)를 열었고, «A.assemble»(독일, 2021), «서울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한국, 2019), 2018 광주 비엔날레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DOMUSONG (SET)』(2020),  『기억 박물관』(2015)을 출간했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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