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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3

현대미술은 에너지 도둑일까?

Writer: 박재용

Report

시각 예술계의 현재를 살펴봅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인사이트를 안겨주는 박재용 작가님의 새로운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열역학과 엔트로피로 바라보는 현대미술인데요. 너무 어려워하지 마세요. 읽어보면, 현대미술이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이랍니다. 게다가 다음 편에 추가로 다루기 위해 의견을 받는다고 해요. 인터랙티브한 에세이를 원하신다면 글 마지막을 꼭 살펴봐 주세요.

현대미술 탄소발자국

2019 여름, 뉴욕. 역사상 번째로 연평균 기온이 높은 해였고, 7 동안 뜨거운 더위로 응급실에 실려 시민이 546명에 달했다. 10월까지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여름, 미지근한아이스 커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사람은 핀란드 출신의 큐레이터 옌니 누르멘니에미. 그녀는 2010년대 초반부터 헬싱키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https://www.hiap.fi에서 일하며 생태와 관련한 여러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퇴사 잠시 뉴욕의 레지던시에 머무르던 참이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항공산업의 고객으로 각자의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까지 날아온 처지지만 미지근한 커피와 함께 진지하게 나눈 대화의 주제는 ‘현대미술 탄소발자국’이었다. 좀 더 자세히는, 전시를 한 번 할 때마다 엄청난 규모로 쏟아지지만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 ― 나무로 구조물을 만든 뒤 페인트를 칠하는 가벽, 월텍스트를 위해 만드는 비닐 소재의 커팅 시트지 등 ― 부터 전시장의 온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한 전기, 작품 운송에 필요한 연료, 심지어 작품을 만들 때 소모되는 소재나 에너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현대미술 작품을 둘러싼 전 과정에 이르는 탄소 발자국을 파악해본다면 어떨까. 물론 미술 창작, 운송, 전시가 소모하는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탄소발자국이라는 단위를 통해 미술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제시할 수 있다면, 최소한 사람들의 인식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19 6 아트바젤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동시대 미술과 탄소 발자국에는제로 웨이스트미술품 운송사인 Rokbox CEO 앤드류 스트라멘토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전반적 생태계 담당 큐레이터이자 201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기후 변화를 소재로 리투아니아관 큐레이팅을 맡아 황금사자상을 받은 루시아 피트로이스티, 비영리 단체줄리의 자전거에서 창의적 친환경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는 캐서린 보트릴이 연사로 참여했다.

미술 전시 탄소 회계감사

2021 10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쓰레기 시대» 회계 감사를 받았다. 전시 과정 전반에 관한탄소회계 감사였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11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앞두고 시작한 전시는 10톤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10 가운데 80% 전시 공간 구성 과정에서 배출했다. 만약 디자인 뮤지엄이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전시장 운영에만 185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을 것이다. (참고로 2017 디자인 뮤지엄이 이전한 새로운 건물은 재생 에너지를 통해 탄소 발자국을 95% 줄이고 있다.) 한편, 디지털 탄소 발자국을 체크해보니 전시 준비 과정에서 오간 1 1000통가량의 이메일과 11GB 데이터는 탄소 발자국 10 가운데 10% 1톤으로 추산되었다.

Waste Age (쓰레기 시대) 전시 소개 영상 

이런 수치가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다. 평균값을 바탕으로 한 추정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계산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디자인 뮤지엄 건물이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쓰레기 시대» 전시 준비 과정에서 무슨 시도를 했더라도 건물에 조명을 켜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일만으로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전시장 가벽과 구조물조차 최대한 친환경적이고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한 덕분에 이 전시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10톤은 다행히 영국인 한 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평균 이산화탄소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잠시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서울에 있을 법한 미술관과 전시를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보자. 이 미술관은 런던 디자인 뮤지엄처럼 재생 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의 95%를 줄이지도 않았고, «쓰레기 시대» 전시처럼 거의 모든 구조물과 전시 자재를 친환경 소재나 재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만들지도 않았다. 이메일과 데이터 전송에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특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전시의 탄소 발자국은 얼마나 될까? 서울에서 열린 상상의 전시는 한국인 연평균 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몇 명분에 해당할까? 참고로, 한국인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평균의 두 배인 15.5톤이다.

미술이 환경과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

이번에는 미술 작품을 환경과 에너지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두터운 질감을 자랑하는 유화 점을 만들기 위해 휘발성유기화합물질 솔벤트가 다량으로 쓰였을 것이다. 솔벤트는 여러 연구에서 생식독성 유발 물질로 의심받고 있는데, 작가는 작품을 그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기화되는 솔벤트를 들이마셨을 거다. 완성한 작품에서도 미량의 솔벤트가 실내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을 재료로 사용한 조각이나 설치물은 어떤가.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컬렉터나 미술관의 수장고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인공 소재로 만든 물체들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대형 폐기물 신세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돌을 쪼아 만든 조각품은 대형 폐기물이 아니라 건설 폐자재로 신고해서 처리할 있다. 적어도 풍화작용 때문에 다시 흙이나 모래로 돌아갈 있으니.

에너지 사용의 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영상을 매체로 삼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480p에서 720p로, FHD에서 4K, 이제는 8K까지…1080p라고 부르기도 하는 FHD 이후의 디지털 영상 포맷은 업데이트할 때마다 픽셀 수는 2배가 아니라 2의 제곱인 4배가 늘어난다. 따라서 지난 20년 동안 HD가 8K로 업데이트되면서 영상의 한 프레임당 쓰이는 픽셀 수는 30배 넘게 증가한 거나 다름없다. 물론, 그동안 영상 장비의 효율도 좋아졌을 테니 전기 사용량까지 그대로 30배 늘어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이제는 영상 작품이 없는 전시를 보는 게 더 드문 일이라는 것을. 심지어 미술의 틀 아래서 만드는 영상이 시네마 퀄리티를 지향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미술가가 직접 카메라를 들지 않고 촬영감독이 카메라 여러 대를 운용하며 마치 소규모 영화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일 또한 만만찮게 에너지를 소모한다. 고해상도 영상과 섬세한 사운드를 전달하려면 상당량의 전기를 빛과 진동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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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미국에서 재생 횟수가 급증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이거 : 무법지대 탄소발자국을 추정한 연구(관련 링크) 있다. 미국 기준으로 자동차 75,834대가 내내 운행하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에 해당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10 동안 기른 나무 5,804,061그루가 필요하다

열역학으로 바라보는 미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아티스트거나 큐레이터라면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화학용제를 쓰는 회화도 안 되고, 인공 재료를 쓰는 조각이나 설치도 안 되고, 전기를 너무 많이 쓰는 영상도 안 된다면, 계란 노른자와 아교를 섞은 템페라 기법으로 회화를 그려야 되나? 아니면 흙이나 돌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료를 권장한다는 건지… 재활용도 못 하는 대형 생활 폐기물이나 건설 폐자재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미술 작품은 더 이상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지구의 환경을 위해 아예 미술을 그만하자는 이야기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환경과 에너지의 측면에서 지금의 미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과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소비한다. 열역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지금의 미술은 과거의 미술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 만드는 데도, 운송하는 데도, 전시장을 유지하는 데도 더 많은 ‘일’이 필요하다. 이런 비효율이 미술만의 특징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나날이 더 비효율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 출시할 아이폰은 분명 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자동차의 연비는 갈수록 더 향상되겠지만, 그런데도 세상은 점점 더 효율이 떨어진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고, 개인의 할 일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당장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더 많이 쓰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이 과거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유는 열(heat)과 일(work)의 관계를 다룬 열역학의 기초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열역학 2 법칙에 의하면 세계의 엔트로피(무질서도) 무한히 증가한다. © Martin LaBar

엔트로피로 생각을 전환하기

열역학의 2 법칙, 엔트로피의 법칙 따르면 세계의 무질서는 전체적으로 항상 증가한다. 또한 쓸모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감소한다. 인간의 삶은 쓸모 있는 에너지로 유지하는데, 이게 항상 줄어드니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 복잡한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에너지를 뽑아내고 소비하는 과정은 효율적으로 변하지만, 우주 전체의 차원에서 이는 에너지의 분산과 무질서 또한 점점 빨리 증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같은 행위를 두고 작은 일을 하는 효율성이라면, 점점 빨리 쓸모 있는 에너지를 써버리는 우리는 갈수록 효율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옛날이라면 며칠이 걸렸을 작업을 마우스 클릭 두어 번으로 뚝딱해내는 과연 일을적게하는 걸까? 에너지소비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수백, 수천 많은에너지가 들어간다.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가 영원히 증가하는 과학적인 사실이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이를 바꿀 없다. 하지만 결코 줄어들지 않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도를 늦추는 우리의 의지를 통해 어느 정도 해낼 있는 일이다. 팬데믹 이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나눴던 현대미술 탄소 발자국에 대한 이야기, «쓰레기 시대»에 대한 탄소 발자국 회계감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에 대한 추정 연구 등은 모두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늦추기 위한 생각의 전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미술과 삶에서 엔트로피 증가를 늦추기 위해 무엇을 (더 혹은 덜) 해야 할까? 다음에 이어질 글에서는 질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미술과 삶의 엔트로피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다음 링크로 공유해주길 부탁한다. http://www.jaeyongpark.net/updates/inquiry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 현대미술서가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 운영하며, 공간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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