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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3

나는 허영이다

Writer: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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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허영심. 이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다가도 불현듯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김도훈 작가는 다양한 상품들을 둘러싼 자신의 허영심에 대해 솔직한 생각과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배달시킨 마라샹궈를 빈티지 그릇에 담아 먹을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아래 아티클에서 한번 확인해보세요!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다. 오랫동안 부정했지만, 확실히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었다. ‘허영’이라는 단어를 직접 마주하게 된 건 한 10년 전의 어느 술자리였다. 타로를 잘 보는 양반이 동석했다. 모두가 점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점을 좋아한다. 점집도 가본 적 있다. 나의 과학적 이성은 언제나 무속 앞에서 고개를 돌리라 강조하지만, 인간은 과학적 이성에 따라서만 뭔가를 선택하는 법이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명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하튼 나도 타로점을 봤다. 그 양반은 내가 골라낸 타로를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허영이 많은 분이시네요.” 맙소사. 나는 그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허영이 많은 사람이라고 불린 적이 없다. “예쁜 걸 참 좋아하시네요”라거나 “쇼핑 참 좋아하시네요” 같은 소리는 들은 적이 있다. 아, 생각해보니 그것도 허영이 많다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처음 느낀 건 수치심이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준비해놓고 있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허영. 그 얼마나 허영스러운 단어인가.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확신이었다. 지금 내 앞에서 타로를 무심하게 빼 들고 내 눈을 보고 있는 이 사람은 용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런 확신이었다. 타로 한 장으로 나라는 인간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 숨어있던 죄책감을 뼛속 깊이 읽어내 버렸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어도 괜찮다. 그는 나에게 “곧 이동수가 온다”고 했다. 다음 해 나는 직장을 옮겼다. 그는 “10년 안에 연애는 힘들겠다”고 했다. 아무렴. 그 뒤로 10년간 나에게 연애라고 부를 법한 연애는 전혀 없었다.

타로의 밤 이후로 나는 허영이라는 단어를 굳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다.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다. 그건 지금 내 집만 돌아봐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내 옷장에는 아마도 당신이 상상하는 과하게 폼내는 브랜드가 모두 다 들어있을 것이다. 그깟 비닐로 만들어놓고 100만 원 넘게 받아먹는 양심도 없는 프라다 셔츠? 있다. 딱히 좋은 재질로 만든 것도 아닌데 로고 라벨을 보이는 곳에 붙여놨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아먹은 발렌시아가 코트? 딩동댕. 있다. 그냥 보통 야구 모자인데도 로고가 그려진 탓에 야구 경기에는 도저히 쓰고 나가지 못하는 셀린의 모자. 없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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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시 에르메스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그나마 저렴한 물건이지만, 있다. 샤넬? 아 그게 문제다. 그러나 내 화장실에 고고하게 벌꿀 빛으로 빛나고 있는 ‘샤넬 넘버 5’도 샤넬로 친다면, 역시 있다. 남자가 왜 그 향수를 쓰냐고 묻지 마시라. 젠더리스 시대란 말이다. 물론 몸에서 엄마 향이 난다는 게 딱히 장점은 아닐 수도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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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의 허영은 빈티지 그릇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짜를 먼저 검색했다. 파리의 ‘방브Vanves’에서, 칸Cannes의 자그마한 모퉁이 시장에서, 런던의 ‘선버리 앤티크 마켓Sunbury Antiques Market’에서, 베를린 곳곳의 벼룩시장에서 그릇을 샀다. 그릇을 사게 된 이유는 집에 놀러 온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너는 식기가 다 이케아밖에 없네.” 나는 그 문장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이케아 식기는 양반이었다. 서울로 이사 오던 날 어머니가 원룸에 놔두고 간 온갖 꽃 그림이 그려진 접시들은 차마 찬장에서 꺼낼 수도 없었다. 만약 그걸 꺼냈다면 그 친구는 이케아고 나발이고 묘연하게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애인이 침대에 구겨져 있는 엄마표 꽃무늬 이불을 보며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한국 남성들은 정말이지 엄마표 이불로부터 먼저 독립해야 마땅하다.

다시 주제를 그릇으로 돌려보자. 나는 끊임없이 그릇을 샀다. 더는 둘 데가 없을 정도로 샀다. 대부분이 빈티지 그릇이다.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빈티지 찻잔 세트는 아마도 내가 구입한 가장 값나가는 그릇일 것이다. 당신이 아침에 커피를 담아 먹으며 ‘역시 핀란드 찻잔은 커피 맛이 다르네’라고 생각했을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의 찻잔들도 당연히 있다. 컬렉션이 완성되는 동안 이케아 그릇들은 하나씩 깨지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미있게도 아름다운 그릇을 모으기 시작하자 그릇의 진정한 용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릇은 장식품이 아니다. 그릇은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나는 깨질까 조심조심하며 진열장에 올려둔 그릇들을 보며 결심했다. ‘밑반찬을 ‘락앤락’에 담긴 그대로 테이블에 옮겨 식사하지 않겠다. 절대 뜨겁게 데운 햇반을 플라스틱 용기 채로 퍼먹지 않겠다. 배달 음식도 절대 배달 용기 채 먹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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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훈. 필자가 소장 중인 물건들을 직접 사진 찍어서 보내주었다.

결심을 아직도 지키고 사냐고? 그렇다. 지금도 나는 배달 시킨 마라샹궈를 베를린에서 깨질까 조심조심 마음을 졸이며 사 온 70년대 빈티지 그릇에 깨끗하게 다시 담아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나는 조만간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건 허영이다. 환경 오염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당신은 내가 플라스틱 배달 용기에 담긴 음식을 다시 그릇에 옮겨 담는 것으로 소비하게 될 수돗물과 세제의 양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옳은 지적이다. 나는 그냥 용기 채 먹어도 될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는 행위를 통해 결국 기후 변화에 해를 끼치고 있다. 어쩌겠는가. 인간의 허영이라는 것은 원래 정치적 공정함이나 사회 운동과는 약간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릇에 대한 허영이 내 삶을 어느 정도 바꾸어 놓았다고 확신한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다. 가장 원초적인 행위일수록 우리는 작은 존엄을 지켜야 한다. 아름다우면 더 좋다. 때로는 허영스러워도 괜찮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기 위해 엊그제 뼈 없는 닭발집에서 시킨 매운 닭발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포르나세티 접시에 담는 당신의 허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허영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일상의 작은 허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아주 약간 더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우리는 락앤락에 담긴 김치를 ‘웨지우드Wedgwood’ 접시에 옮겨 담는 행위로 김치공장 노동자에 충분한 경의를 바쳐야 할 의무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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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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