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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3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Editor: 전종현, 김재훈, 박산하, 진채민

,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

, Photographer: 송시영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지금까지는 박민희, 람한, 노상호 등 동시대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 네 번째 인터뷰는 색다릅니다. K팝 산업에서 20여 년간 활동 중인 민희진을 만나보았어요.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하이브의 CBO, 하이브 신규 레이블 어도어ADOR 대표로 국제적인 네임 밸류를 쌓아온 민희진과의 독점 인터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심도 있는 그의 인사이트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4: 민희진

우리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의 네 번째 주인공으로 민희진을 선택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신한류를 대표하는 K팝 산업에서 늘 화제를 모았던 그는 2019년 하이브에 CBO로 합류했다. 작년 말부터는 하이브의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ADOR의 대표를 맡아 ‘민희진표 걸그룹’ 데뷔를 진두지휘하는 중이다. «비애티튜드»는 대중문화평론가인 차우진을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초대하고, 민희진 키즈와 K팝 소비에 적극적인 내부 인원을 인터뷰어로 보강해 총 다섯 명의 인터뷰어가 민희진 대표와 대담하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두 편의 아티클을 발행한다.

Part 1.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얼마 전 신선한 소식이 들려왔다.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인 어도어ADOR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인 «버라이어티Variety»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 리스트에 선정된 것이다. 선정 이유도 명확하다. K팝 브랜딩 혁신가로서 ‘콘셉트’의 개념을 재정립하며 과거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새로운 걸그룹 시대를 열었고 샤이니, 엑소 등을 통해 혁신적인 아티스트 브랜딩을 제시했다는 것. 더불어 2022년 어도어에서 새로운 걸그룹 론칭을 준비 중인 점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아직 멤버조차 공개되지 않은 신인 걸그룹은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K팝 걸그룹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체 노출을 극도로 지양한 까닭에 우리가 접근 가능한 최근 소스는 첫 방송 출연인 유 퀴즈 온 더 블럭 정도다. «비애티튜드»와 민희진 대표의 만남은 글로벌해진 K팝 산업의 중심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인 그의 시각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전종현) 안녕하세요. «비애티튜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에 저희와 함께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강박적이고 솔직한 성격 탓에 말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훼손되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특히 일의 성격상, 맥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복잡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통상 인터뷰는 분량 제한이 있잖아요. 제한된 분량 내 충분히 설명하고 맥락을 전달하기 어려워서 인터뷰는 최소한의,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응해 온 편이긴 해요. 받아들이는 사람이 각자의 이해도에 따라 같은 단어도 각기 다른 개념으로 인식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말을 아끼다 보니 생기는 오해도 있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작년 겨울 처음으로 방송 출연을 하게 됐어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요. 노출이 너무 없으니, 마치 ‘상상 속 동물’ ― 정확히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 처럼 인식하는 것 같다고, 감정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렸으면 좋겠다는 ‘어도어ADOR’ 팀원들과 지인들의 조언이 있었어요. 마침 레이블도 론칭했고, 제작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느꼈고요. 그런 맥락에서 «비애티튜드»는 분량에 제한이 없는 웹진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좀 엉뚱한 얘긴데, 인터뷰를 처음 요청하실 때 당연히 제가 거절할 줄 아셨나 봐요. 거절도 하기 전에 미리 예상하시고 장문의 설득 문자를 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그 예상을 엎고 싶었죠. (웃음)

(전종현) 하하. 처음 경험한 방송 출연은 어떠셨나요?

2020년 겨울에 첫 섭외가 왔는데, 제가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아서 처음엔 어떤 프로그램인지 몰랐고 애초에 방송 출연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2021년 봄, 재차 출연 제의가 와서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진솔하고 따뜻한 내용에 완전히 반했어요. 그럼에도 출연 결정이 어려웠는데 몇 달에 걸친 작가님과의 대화로 부담이 좀 덜해졌어요. 따뜻한 마음으로 진행을 해주신 스태프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런데 방송에서 말했던 내용이 다르게 해석된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전종현) 어떤 내용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업계에서 (내가 아닌) 남이 말해줬을 때 듣기 좋았던 단어가 세계관과 아티스트더라”라고 말했는데, 그 내용이 ‘업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두 단어’로 좀 다르게 해석됐더라고요. 아무래도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그렇게 해석된 것 같아요. 저는 평소 스스로는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아요. 조금 복잡한 설명이 될 수도 있어요. 작업을 할 때 작업 방향성을 구상하면 그에 맞는 내러티브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저는 ‘가능한 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설정보다는 대상의 본래 모습이 투영된 자연스러운 흐름과 복선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물론 때에 따라 설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요. 아무튼 자연스러운 열린 전개를 원하기 때문에 결말을 확정짓는 방식보다는 주로 화두를 던지는 방식을 좋아해요. 그러면 그 이후의 전개는 어느 때든 훨씬 자율성을 갖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최근 K팝 신에서 자주 사용하는 ‘세계관’의 의미나 어감이 제겐 다소 과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본래 제가 지향하는 맥락과는 거리가 있는 느낌이죠. 하지만 소비자가 작업물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묶어 ‘세계관’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제 작업의 방향성이 타인에겐 어떤 ‘세계관’으로 충분히 인지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기도 해요. 제가 생각하는 세계관의 개념은 주입보다는 스스로 깨달아지는 개념에 가까워요. 그래서 ‘내가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남들이 말해주는 편이 나은’이란 의미로 말했던 거예요. 말과 글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 새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렇게 텍스트로 실리는 인터뷰에도 응하게 됐고요. 요즘 친구들은 읽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분명 기록이 갖는 힘이 있거든요.

(김재훈) 이번 인터뷰는 희진 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SM엔터테인먼트를 퇴사한 후, 개인 인터뷰는 물론 각종 출연 제안을 모두 거절해왔어요. 과거를 논하고 싶지 않았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때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방송에서도 가급적 이전 회사와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거의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가 그간 여러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젠 회사를 대변하는 입장이 아닌, 비로소 제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는 우연찮게 다양한 인터뷰어가 참여하게 된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터뷰어 구성을 보니 ‘대중음악평론가’, ‘직접 K팝을 소비하고 즐겨온 20대’, ‘K팝 화제도에 주목하는 대중’으로 그룹을 나눌 수 있더라고요. 언젠가 공급자(제작자) 입장에서 ‘비평가/직접 소비자/간접 소비자’라는 모든 소비 집단을 한 번에 만나 동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재밌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간략하게 실현된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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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우리가 아는 희진 님은 SM엔터테인먼트의 아트 디렉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하이브의 CBO, 그리고 현재는 어도어의 대표입니다. 대화에 앞서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BO, 레이블 대표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알고 있는 것과 희진 님이 생각하는 간극을 줄이고 싶어서요.

용어 정리를 위해 인터뷰 분량을 할애하고 싶진 않네요. (웃음) 제겐 직함이나 타이틀이 중요해지지 않은지 꽤 됐어요. 조직 내에서 역할이라는 개념은 분명 중요해요. 하지만 자발적이라는 전제하에 업무 수행 영역이 애초에 주어진 역할 이상의 것이 되는 순간, 타이틀은 이미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방해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이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역할의 확장은 기본적인 수행 영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바탕으로 시작되죠. 명확한 목표나 목적을 성취하려면 본연의 업무 이상의 것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역할의 확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이고, 오히려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상식적인 경우라면요. 그렇게 역할이 확장되기 시작하면 어차피 하나의 타이틀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워져요. 타이틀은 조직 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개인의 의식 수준이겠죠.

(차우진) 한국 콘텐츠 산업의 빠른 성장을 목격하는 입장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K팝이라는 점을 부인하진 못합니다. K팝의 성장은 다양한 아티스트 덕분이겠지요. 그렇지만 K팝 성공 공식에서 자주 말하는 시각적인 강점에서 희진 님이 차지하는 지분은 굉장히 크다고 느낍니다. 주류 K팝 디자인에도 어떤 흐름이라는 게 생겼고요. 스스로 생각할 때 K팝 산업에 기여한 바는 무엇이라고 분석하시나요?

저 스스로는, 그간 진행해온 업무 영역을 시각적인 부분에 한정하지 않아요. 앞선 언급처럼 저는 직함을 조직이 조직 관리를 위해 부여하는 분류명 정도로 생각해요. 실제 업무 영역을 포괄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설명한다고 해도 각자가 지닌 기존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완벽한 이해가 어렵기도 하고요. 사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원하는 결과를 획득하는 게 중요하죠. 영혼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제가 SM엔터테인먼트에 처음으로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K팝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상당히 달랐어요. 당시의 고정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개성을 부여하고 싶었죠. 주류 아이돌 시장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일에 뛰어들 수 있었던 치기가 여기서 비롯된 것 같아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는 ‘K팝 산업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는 개념에 의의를 둬요. 시각 요소와 디자인에 한정한 이야기는 다소 작은 개념이지만, 동시대성 측면과 가시성의 관점에서 여전히 주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 요소가 진정한 강점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사실 시각 외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지능적인 융합이 필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해요. 시각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업의 근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과 결합을 기반한 새로운 시도만이 오히려 새로운 시각 문화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어요. 

(차우진)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가 보이는 것 같네요.

그간 매니저, 연예인, 작곡가, 프로듀서가 주로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해왔어요. 매니지먼트 출신 대표가 음악이나 시각 분야에 관여하는 것이나, 작곡가 출신 대표가 매니지먼트, 시각 분야를 관장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잖아요. 앞선 언급처럼 기존의 역할과 실제로 수행 가능한 역량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게 실상 놀라운 일도 아니에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기 때문에 더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제가 그리는 큰 그림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가 원하는 음악이 바탕이 돼야 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캐스팅, 트레이닝, 디자인, 사업으로까지 이어져야 하죠. 그래서 레이블을 설립한 것이기도 해요. 청사진이 확실할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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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Hilfiger © VOGUE

(박산하) 희진 님은 2000년대 후반부터 K팝 아이돌의 신한류를 이끌었고, ‘민희진 감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어요. 민희진 감성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외부의 인식과 제 개인적 시각이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저는 저의 모든 작업을 다 알고 있지만, 외부에서 인식하는 제 작업이란 어쩔 수 없이 접한 일부의 것 혹은 기억하고 싶은 영역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간극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요. 그간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대다수가 에프엑스의 ‹핑크테이프›만 언급하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관통되는 어떤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죠. 제가 촬영한 사진을 본 어떤 스태프의 말 중에 마음에 들었던 표현이 있어요. “희진 님 사진 속의 사람은 전부 사연이 있어 보여요.” ‘사연’이라는 말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번역하기도 어려운 굉장히 한국적인 표현이에요. 저는 작업을 통해 모두 다른 개개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각자만의 사연이요.

(박산하) 지금껏 많은 아이돌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오셨어요. 획일화되기 쉬운 산업 속에서, 아이돌에게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했나요? 그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아이돌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고 느껴요. 저는 지금도 아이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늘 어색한 기분이 들거든요. 뭔가 애초에 잘못 쓰인 말이 일상어로 고착된 느낌, 표준어가 아닌 말이 표준어로 쓰이는 걸 목격하는 기분 같다고 할까. 어떤 산업이든 안정화될수록 시스템 내 고유의 프로토콜 아래 운영되는 체계가 생겨요. 이런 체계를 선호하지 않지만, 현실적인 효율성을 위해 시스템을 부인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돼요. 특별한 극복 방식이 있다기보다는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극복 가능한 해법을 찾고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내는 집요함과 이에 따르는 피로함을 당연한 것으로 감수했던 것이요. 시스템의 파훼를 바라면서 보존하기도 해야 하니, 그 딜레마는 엄청난 피곤함을 만들죠.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모순을 동반해요. 시스템 의존성이 강해지면 몰개성으로 이어지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시스템은 안정화를 유도하고 자본력을 향상해 생태계의 근본을 구축하기도 하죠. 결국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균형감을 유지하려면 조직 내 한 파트를 담당하는 전략만으로는 부족해요. 결국 전체 전략이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귀결되죠. 일하다 마주하게 된 각종 딜레마와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결국 레이블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박산하) 지난 인터뷰와 작업을 살펴보면 희진 님이 고수하는 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반합’이라든지, 서로 상반되는 것을 함께 다루려고 노력한다든지, ‘숨겨진 진짜’를 추구한다든지, 본질과 진정성에 충실하다든지 등등요. 창작할 때 어떤 것을 마음에 담고 잊지 않으려고 하시나요?

일부러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긴 해요. 설사 당면한 현실에서 외면받는다고 해도 본질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찌 보면 ‘노력’ 그 자체가 에너지인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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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kpop, girlgroup

Krystal_[I Don’t Want To Love You) © SM Ent.

(진채민) K팝 업계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희진 님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사전 미팅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라고 말씀하셔서 모두가 놀랐죠. (웃음)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가상 공간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어 비평과 해석의 대상이 되고, 찬사와 비난을 받으며 소비되기 일쑤입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많은 관심은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하지만 어설프게 알려져서 괴로운 것도 사실이에요. 이 또한 누군가 허세로 오해할까 벌써부터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네요. 일하는 동안 상업적인 제안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광고 모델, 방송, 출판 등 종류도 다양했죠. 하지만 응한 적이 없었어요. SNS도 하지 않았죠. 그게 제 캐릭터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명세로 부수적인 이득을 취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세로 인한 고통만 당하는 것 같아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드러나지 않고 정보가 없어 그런지 더 쉽게 도마 위에 오르는 것 같아서, 작년 말에 방송에도 출연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개설해봤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저 스스로는 지금 시대와 그리 잘 맞는 인간 유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금의 형태가 바라던 것인지 모르겠어요. 소통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기 때문에, 사실 여간 어려운 게 아니죠. 애써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 측면에서 소비자와 진짜 소통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공들여 만들었는데 오해가 생긴다면 너무 속상할 테니까요. 해법을 모색하고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생각대로 잘 진행되어야 할 텐데요. (웃음) 

(진채민)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대한 해법은 무시 또는 초연함 밖에 없는 걸까요?

비평과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제 호불호를 떠나 응당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하지만 근거 없는 황당무계한 내용이 저를 힘들게 하죠. 이유를 모르겠는데, 저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안에 연루되는 이상한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타 레이블에서 론칭하는 팀의 특정 멤버 영입을 제가 주도했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었고요. 참고로 저는 만나본 적도 없거든요. 또 타 레이블 팀의 해체에 제가 관여했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소문이 있다고도 들었어요. 이런 근거 없는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일까 정말 궁금해요.

(진채민) ‘민희진 만물설’인가요? (웃음) 그런 소문을 접하면 무척 힘들겠어요.

무섭죠. 그리고 슬프고요. 오히려 너무 비상식적이면 웃고 넘길 수 있지 않으냐 하시는데, 저도 처음엔 무시했어요. 제가 가십을 찾아보는 성격도 아니고요. 그런데 안 봐도 들려오더라고요. 그런 엉뚱한 내용이 기사화라도 되면 근거 없는 내용도 믿는 사람이 속출하고, 그 내용이 비상식적일수록 소문의 근원지를 가늠할 수 없어 적발도 어려워요. 특히 출처 없는 소문이 기사화되는 걸 경험하면 세상이 무서워져요. 이전 직장에 다닐 때도 시달려왔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이에요.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된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디렉터로서 각종 고단함이 있었어요. 일관적이지 않은 잣대도 경험해봤고요. 혹평일 땐 무조건적인 개인 탓을 하다가도 호평이면 ‘혼자 했겠어?’ 한다든지. 그래도 이런 일들은 디렉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여왔어요. 총괄 책임자는 찬사도 비평도 대표로 받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정신을 피폐하게 해요. 제가 겪는 사회와 세상일 대부분이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한 과정과 이유로 엮여 있어요. 단번에 한마디로 요약이 어렵고, 누군가를 단순히 단죄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복잡미묘한 레이어를 단숨에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꼭 저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잘 모르는 일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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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_[4 Walls] © SM Ent.

(김재훈) 희진 님은 ‘기괴한 아름다움’ 같은 단어의 조합으로 콘셉트를 정하거나, 아이돌의 필름에 오래된 이탈리안 재즈를 덧입히는 등 상반적인 것을 결합해 사람들을 끌어당긴 바 있어요.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모순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런 모순의 법칙을 활용한 창작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표현하는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거나 늘상 똑같다면 금세 흥미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죠. 특히 아이돌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있어 그런 전형성이 곧잘 드러나곤 하는데,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력해왔어요. 그래서 어떤 프레임을 장착하고 바라보는 소비자 입장에선 일종의 트위스트된 개념으로 보였을 거예요. 특히 저의 이런 디렉팅 방식은 제가 관여하기 이전의 초기 SM 스타일 ― 1세대 아이돌의 성공과 함께 정착된 SM의 상징적 스타일 ― 이 존재했기에 그와 대비되어 흥미로울 수 있었어요. 당시 기존 1세대 SM 스타일의 반대 개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질적인 느낌과 함께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죠. 산업적 관점에서도 기존 아이돌의 전형성을 탈피한 개념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어요. 내심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나름의 계산하에 작업을 진행했었죠. 통상적으로 집단의 크기와 혁신의 속도는 반비례하기 마련이라,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시도만이 혁신의 인상을 만들 수 있어요. 따라서 모순의 활용, 그 자체로 유효하기보다는 적기와 적소를 파악해 입체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이 훨씬 영리하다고 생각해요.

(김재훈) 무척 흥미롭네요. 하지만 많은 어려움이 존재했겠어요.

일반적으로 규모가 있는 조직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작업이 나오면 반갑기 마련이에요. 시각적 완성도를 위한 호기였다기보다 회사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쓸쓸하게도 현재의 풍요는 과거의 어려움을 흐릿하게 만들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시각 요소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따라서 지금과 달리, 중요 개념이라는 인식의 부재로 예산 편성이나 시간 할애에 대한 배려가 존재할 수도 없었죠. 산업에 있어 주요한 전략이자 개념으로 인지시키기까지 의외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열정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퇴사하기까지 10여 년가량 SM의 시각적 구현 방향성은 제가 구축한 방식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죠. 그래서 퇴사 당시 아무 미련이 없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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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e_[Married to the music]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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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Velvet_[The Red] © SM Ent.

Red Velvet_[Perfect Velvet]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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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e_[Odd] © SM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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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_[SING FOR YOU] © SM Ent.

(진채민) 희진 님은 매일 치열한 하루를 보내실 것 같아요. 창의적인 일에 대한 생산성이 절대적인 면, 상대적인 면 모두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놀라운 생산력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견해 또한 묻고 싶습니다.

업무의 효율은 스스로의 목표 의식 수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억지로 심어줄 수 없는 개념이죠. 타고난 재능이 각자 다르듯, 효율의 방식을 공식화할 순 없어요. 공식화한 대표적인 예가 주입식 교육이죠. 모두 그 폐단을 알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요. 자발적 깨달음 없이 남이 주입하는 효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해요.

(진채민) K팝의 스테레오타입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죠. 희진 님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스테레오타입을 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고 생각하는 전제부터 암묵적으로 학습된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안정’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올바른 개념인 양 인지되어서 그렇지, 교육된 올바른 개념과 개인이 현실에서 원하는 실제 내용은 매우 다를 수 있어요. 겉으로는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삶이 이상적인 듯 말해도, 사실 속으로는 각종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요. 그래서 대부분 새로움을 바란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새로움을 바라는 건지 잘 모르겠기도 해요. 

새로우면 낯선 것이 당연하거든요. 그런데 찬찬히 제대로 뜯어보기도 전에, 즉시 낯섦에 대한 불평이나 비판이 선행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요. ‘시대를 앞선 비운의 ○○○’… 저희 모두 많이 봐왔잖아요. (웃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다거나, 낯선 것이 무조건 새롭고 좋은 것이라는 의미도 아니에요.

(진채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예를 들어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전형성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해요. 즉 ‘새로움이라는 가면을 쓴 관성’은 오히려 새로움이라는 개념에 잘못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분별해내야 해요. 결국, 새롭다(낯설다) 라는 개념에 천착할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갈구하는 이유, 궁극적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죠. 의외로 각자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말로만 새로운 것을 찾을 때, 대환장 파티가 열리죠. 각자의 눈높이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뻔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새롭게 만족시키는 건 어찌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신기(神技) 같아요. 그럼에도 본질을 상기하며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는 것에 대한 피곤함을 감수하는 것이 제가 하는 노력 같고요. 레이블 대표가 되고 일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어요. 중압감이 엄청나 가끔은 해내야 할 일들을 떠올리다 압박감에 잠을 설치기도 해요. 제가 모든 상황을 가늠하고 계산한다고 해도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에 대한 여지를 인정하고 오히려 기대한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겠네요.

민희진, 어도어, 하이브, 걸그룹, 화보사진, 케이팝, 아이돌, idol, minheejin, ador, hive. kpop, girlgroup

(차우진) 하이브는 ‘음악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업의 방향성으로 잡고 있어요. 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통한 가치 창출’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희진 님이 CEO를 맡은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 어도어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요?

논문을 쓸 수도 있는 주제 같습니다. 문제가 없는 업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죠. 주제가 무거워 단숨에 말하기 어렵네요. 제가 레이블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해서 긴 설명이 필요한 내용이지만, 요약해보자면 기존 사업의 정형화된 루틴을 벗어나서(뻔한 말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죠), 용기 있게 새로운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대안적 출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이브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방시혁 님과 저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각자 추구하는 결은 달라요. 그 다름에 대한 필요와 인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레이블을 론칭하게 되었죠. 하이브의 CEO인 박지원 님도 동일한 생각이었고요.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기보다 조직 내 서로 다른 가능성이 공존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져요. 산업이 어느 정도 고도화되면 기존의 안정적 방식에 안주하는 정체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지만, 현재 K팝 신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해지려면 적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고요.

(김재훈) 지금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겪으셨을 것 같아요. 선택이란 행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편인가요? 희진 님에게 가장 중요했던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대부분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감이 왔던 것 같아요. 매사 저의 선택엔 나름의 결연한 당위가 분명했기 때문에 막상 우선순위로 나열하자니 후순위로 밀려날 다른 선택들에 미안해져서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제일 크게 다가오는 건 오래 일한 회사를 그만둔 일 같아요.

(차우진)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 밸런스와 텐션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사람은 현실 감각과 몽상가적 기질을 동시에 가져야 하죠. 크리에이터 민희진과 CEO 민희진은 밸런스와 텐션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조절하나요?

크리에이터로 존재하고 싶어 CEO가 되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기 굉장히 다른 역할입니다만, 또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어요. 자본으로 치환할 수 없는 상업 창작물은 생명력이 떨어져요. 마찬가지로 창작물과 이질적인 사업은 대성하기 어렵다는 선례를 무수히 봐왔고요.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상업물에서 창작과 자본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순간, 모든 일이 꼬이더라고요. 

저는 CEO라는 타이틀 자체엔 관심이 없어요. 겪는 와중이지만 엄청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하는,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의 괴로움과 피곤함이 가득한 역할이에요. 제가 원하는 의사결정을 위해 레이블을 설립했고 그래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책일 뿐이죠. 좋은 창작물이 효율적인 사업과 만나 상업적인 성공으로 꽃피게 된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이 펼쳐질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날을 위해 오늘의 균형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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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민) K팝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늘 궁금했던 지점이 있어요. 아이돌과 팬의 심리적 거리를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기획사의 전략인데요. 희진 님이 콘텐츠를 만들 때 이런 거리감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최대한 가까운 것을 좋아해요. 애초에 제가 밀당 하는 성격이 아니고 퍼주는 성격이라 더 그럴 수도 있고요. 피곤한 건 딱 질색이에요. 밀당을 의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제가 진행하고 주도하는 작업에서만큼은 매사 솔직하고 친절한 것을 선호합니다.

(전종현) 해외 K팝 팬이 투표한 ‘2022년 가장 기대되는 K팝 걸그룹’으로 어도어의 걸그룹이 선정됐더군요. 아직 멤버 구성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면서요. 그만큼 희진 님에 대한 기대가 굉장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올해 데뷔하는 걸그룹에 대한 비밀은 언제 풀릴까요?

2019년 9월에 오디션을 진행했고 그해 연말 즈음 오디션 외 캐스팅 작업까지 마무리해서 2020년 초부터 약 2년간 연습한 친구들이에요. 처음에는 합작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2021년 론칭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이슈로 늦춰졌고, 그 사이에 제 레이블 론칭이 예정보다 앞당겨지며 2022년에 어도어에서 선보이게 됐어요. 오래전부터 제가 그려온 새로운 걸그룹에 대한 방향성이 있어요. 올해 3분기 중 론칭할 예정입니다.

(박산하) 방향성이 있으시다니 멤버들이 궁금해져요.

급한 데뷔는 어린 멤버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격무에 시달린 고통을 알기 때문에 모두를 조급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팬분들의 오랜 기다림도 간과할 수 없고 분명 타이밍상의 적기라는 것도 존재하기에 어느 한쪽에 치중하기보다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인 시기를 도출한 것이 올 3분기입니다.

우리 멤버들은 남이 채근하지 않아도 이미 굉장히 열심히 노력 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걱정이 많죠. 애초 우리가 하는 일은 엔터테인먼트(오락)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에요. 기록을 경신하거나 등수를 매기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 아니죠. 제가 진정 바라는 건 서로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상황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즐겁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거든요. 즐거운 마음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비롯되고,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런 노력의 에너지는 분명 다르게 발산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저희 팀의 지향점을 ‘숙련’보다는 ‘즐기는’에 두고 있어요.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엄청나게 강력해서 보는 사람까지도 춤추게 해요.

(전종현)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팀이 나올지 더 기대돼요.

저희 나름의 기준점을 만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희 팀의 에너지는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바라는 건 모두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거예요. 평소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즐기는 문화 와중에도 경쟁의식을 갖는 거예요. 적당한 경쟁은 건강한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죠. 오랫동안 봐 온 모순인데,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아이돌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친구들에게 다소 과한 기대를 걸거나 줄 세우기, 혹평하는 행위 말이에요. 일상에서 겪는 모순을 즐기는 대상에까지 그대로 투영시키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올해 참 많은 팀이 데뷔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팀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데뷔하는 모든 친구들에게도 따뜻한 응원을 바랍니다. K팝이 경쟁보다는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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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거칠게 정의하자면, K팝 산업은 ‘아티스트십을 프로듀싱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나요? 희진 님이 보시기에 K팝 산업은 과거 2010년대에 비교해 현재 2020년대에 이르러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요?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K팝 산업에 대한 의의나 정의 또한 정말 다양해졌다고 생각해요. 이 또한 논문감이라 짧게 요약하기 어렵겠네요. 근 10년 새 참 많은 것이 빠르게 변했어요. 인식의 변화도 크게 달라졌죠. 따라서 투입되는 자본력도 향상됐고요. 제가 이직한 후 최근 3년간의 음반, 뮤직비디오 제작에 쓰인 예산 규모만 보더라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더라고요. 그런데 공급(제작)이나 소비 방식이 규모 외의 영역에 있어 급격히 달라진 위상만큼 크게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바뀌었으면 하는 지점은 변화에 대한 수용력이에요. 언젠가부터 고착화된 패턴에 안주하며 일관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마냥 비슷한 콘텐츠가 양산되고 소비되고 있어요.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마찬가지로 누가 더 문제냐고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아 보여요.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노력하는 자는 조금이라도 다른 개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에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굶어 죽을 수도 있는 도전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어요. 소비 없는 공급이란 존재할 수 없죠. 그래서 앞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인식의 개선, 경쟁보다는 즐기는 자세에 대한 바람을 말씀드렸어요. 

코로나 시대의 비극인지, 심화된 반목이 개인적으로 참 아쉬워요. 사소한 일에도 과하고 심각한 잣대와 검열을 내세워 싸우는 모습을 거의 매일 목격하는 기분이에요. 넓은 포용력과 수용력이 생긴다면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특히 문화 산업에서는 새로움을 수용하는 자세가 선행, 수반하지 않는다면 다양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어요. 비단 크리에이티브 영역뿐 아니라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당면한 기본 숙제를 외면하면서 미래의 이상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공염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art 1. 민희진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Part 2. 민희진의 세계에 잠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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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Red Velvet, NCT 등 소속 아이돌의 실험적인 콘셉트를 주도했다. 2019년 하이브의 CBO(최고브랜드책임자)로 합류해 하이브 브랜딩과 신사옥 공간 디자인을 총괄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하이브가 신규 론칭한 레이블인 어도어(ADOR, All Doors One Room)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현재 첫 번째 신인 걸그룹 데뷔를 준비 중이다. 2022년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으로 선정됐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Contributing Editor

차우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사람이다. 팬덤과 콘텐츠/음악 산업,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다룬다. 개인 뉴스레터 TMI.FM을 통해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고, 여러 매체에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인디펜던트 워커』 『음악산업, 판이 달라진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등의 책을 썼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하는 음악산업백서 및 포럼 등에 기획 자문을 맡고 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한국대중음악상, 현대카드뮤직라이브러리 등의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제작했다.

Photographer

송시영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다.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다양한 음반 커버 작업에 참여했고, 독일의 «Zeit Magazin», 미국의 «W»,  한국의 «매거진B» 등과 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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