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제임스 채의 List List List

Writer: James Chae

Issue 01을 위한 에세이, 오피니언을 쓴 첫 번째 타자, 제임스 채에게 물어봤다. 당신의 리스트는 무엇인가요. 그의 리스트, 리스트, 리스트들.

당신은 어떤 종류의 뮤직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었나요?

음, 제가 갖고 있던 모델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아요.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모델은 아니었거든요. 사실 당시 모든 플레이어는 모델이 무척이나 다양했죠. 뭔가 특별하다고 꼽기 힘들 정도로요. 요즘 스마트폰 브랜드와는 달랐어요. 지금은 아이폰 아니면 갤럭시잖아요. 그때는 소니가 만드는 워크맨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용도에 맞춰 모델이 나오던 시기였어요. 당시 인기를 끌던 카세트 플레이어, MD 플레이어, 그리고 MP3 플레이어의 광고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Nippon Retro – 1979년 방영된 상징적인 소니 워크맨 TV 광고

Sony Walkman TPS-L2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레이 마사키는 일본 제품을 광고하는 데 백인이 출현하는 이상한 현상이 백인 우월주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서술한 바 있는데요. 이 광고야말로 그런 걸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지금 봐도 확실히 이상하죠.

Nippon Retro – 1979년 방영된 상징적인 소니 워크맨 TV 광고

Curve – Sony MiniDisc – 1997년 광고 풀 영상

흥미진진한 Sony MD 광고

미니디스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스킵 기능이 없다는 거였어요. CD플레이어와는 반대였죠. 여전히 레이저와 회전 모터로 음악을 재생하는 건 동일했지만 미니디스크는 그 크기가 작고 컴팩트했기 때문에 광고에서 주인공이 보이는 스턴트 같은 액션이 가능했어요.

Curve – Sony MiniDisc – 1997년 광고 풀 영상

First iPod Commercial 2001

2001년 첫 번째 애플 아이팟 광고

MP3 라이브러리의 운영이 쉽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우는 광고가 재미있죠. 손바닥 크기 기기에 우리의 모든 CD 컬렉션이 들어가는 편리함을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요. 게다가 카키색 일색의 평범한 옷차림은 광고 속 인물이 샌프란시스코의 테크업계 종사자인걸 알려줘요.

First iPod Commercial 2001

예전에 만든 믹스테이프 중에 아직도 즐겨 듣는 노래가 있나요?

카세트 믹스테이프를 만들던 때에는 팝 펑크 음악에 푹 빠져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젠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오랜만에 다시 찾는 것도 힘들어요. 그때 그 음악이 촌스러워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에요. 오히려 당시의 순진함이 온전히 그대로라서 음악을 들으면 바로 10대 시절로 순간이동할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점이 문제죠. 고민 많고 힘들던 사춘기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저를 포함해서요.

Little Honda

The Queers – Little Honda

이 노래는 비밥 펑크의 전통을 잇는 명곡이에요. 존재감 없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짧은 사랑 이야기라고 할까요. 거대한 할리 데이비슨도 아니고, 스포티한 느낌의 카와사키도 아닌, 그저 500cc 혼다 말이죠. 이 작은 아이들 중 분명 하나를 사고야 말거란 사실이 제 중년에 닥칠 위기란 걸 시인할 수밖에 없네요.

Little Honda

Sheena Is a Punk Rocker (2001 Remaster)

The Ramones – Sheena Is a Punk Rocker

라몬즈는 로커웨이 비치 출신의 4인조 밴드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사운드를 만들어내죠. 구조면에서 완전히 순수한 원형을 따르진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펑크 세계를 구축했어요. 엣지가 있으면서도 편하게 들을 수 있죠. 브루클린 남쪽 끝의 작고 이상한 로커웨이 구역 출신인 게 꽤나 쿨한 점이죠.

Sheena Is a Punk Rocker (2001 Remaster)

Phonographic Memory – Asian Man Records

Interview with Mike Park from Asian Man Records

마이크 박은 제게 신이었어요. 아주 작지만, 그가 신인건 여전하죠. 제 친구들이 K-팝과 R&B에 빠져있을 때 저는 홀로 튀는 편이었는데요. 마이크 박은 테이블에서 김치를 먹으면서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그 정체성을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는 걸 알려줬죠. 그는 백인 음악 씬에서 중요한 존재였거든요. 제가 이런 음악을 좋아할 수 있도록 견문을 넓혀주었어요.

Phonographic Memory – Asian Man Records

예전에 모아놨던 수많은 MP3 플레이리스트를 컴퓨터 하드의 죽음으로 영영 잃어버렸다고 하셨죠? 혹시 기억에 의존해 생각나는 곡 몇 개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아직도 자주 생각나는 음반들은 많죠. 유튜브를 활용하면 아마 그 곡들을 떠올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제가 대학생일 때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음악 파일을 모을 수 있었기에 하드드라이브와 함께 지워진 음악이 아까워서 가슴이 아파요. 친구들과 밤새 노래를 들으며 파일을 교환하고 토론하던 기억들도 함께 사라진 거잖아요. 그때 제 음악 취향이 발달하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에 다양성이 생겼어요. 친구들에게 많이 고마운 부분이에요.

Dump – Raspberry Beret

Dump – Raspberry Beret

대학교 때 ‘요라텡고Yo La Tengo’의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어요. 부드럽고 침울한 톤이 매력적이었죠. 덤프는 요라텡고의 베이시스트인 제임스 맥뉴가 개인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인데요. 4트랙 녹음기로 자기가 사랑하는 팝송을 녹음했어요. 그 로우-파이 음질이 생각나네요. 정말 진지한 열정이 담겨 있었고, 요라텡고에서 할 수 없는 음악을 공유하는 통로였죠.

Dump – Raspberry Beret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Neutral Milk Hotel –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사실 이 곡은 지금 들으려고 하면 무척 힘들게 다가와요.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춥고 외로운 겨울을 보낸 적이 있었어요. 친구와 저, 둘이서 차 안에서 이 음반을 들었는데, 제프 매그넘의 가사를 음미하며 우울하고 아름다운 삶의 아픔을 함께 고민했어요. 슬픈 기억들이 담긴 곡입니다.

In the Aeroplane Over the Sea

Arab On Radar – Queen Hygiene II LP Full Album (1997)

Arab On Radar – Queen Hygiene II LP Full Album 1997

로드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는 이탈리안 음식과 포르투갈 음식, 마피아로 유명해요. 그리고 노이즈 음악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죠. ‘아랍온레이더Arab On Radar’는 그렇게 유명한 밴드는 아닐지라도 그 씬에서 특별한 사운드를 머금고 있었죠. 보통 밴드들은 그냥 큰 소리로 지르면 끝이었지만 그들은 록의 매력을 함께 갖고 있었어요. 참고로 이 음반도 졸업 이후에 하드가 날라가면서 함께 소멸했어요.

Arab On Radar – Queen Hygiene II LP Full Album (1997)

요즘 스트리밍 플랫폼 덕분에 즐기게 된 음악 장르가 있나요?

솔직히 요즘 K-팝에 빠져 있어요. 전 블랙핑크의 팬이랍니다. 그리고 JYP나 SM보다 YG를 좀 더 좋아해요. 요즘 K-팝에서 옛날 J-팝의 감상적인 장점을 발견하곤 하는데요. 특히 나카타 야스타카가 프로듀싱한 그룹인 ‘퍼퓸’이나 ‘캡슐’이 떠오르죠. 근데 K-팝은 정말 중구난방이긴 해요. 과장해서 말한다면 애국가에 어울림직한 코러스 뒤에 갑자기 랩이 나오고, 산 정상과 계곡의 단차를 넘나드는 극적인 구성이 장대하게 짬뽕되죠. 관심 끌기를 짧게 거듭하며 엄청나게 사람을 꼬셔대요. 요즘 제 스트리밍에서 계속 돌고 도는 곡 몇 개를 공유해보겠습니다.

BLACKPINK – 휘파람 (WHISTLE) M/V

블랙핑크의 데뷔곡은 진짜 대단해요. 미니멀하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비트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죠. YG의 대표적인 인하우스 작곡가인 테디의 독창성이 돋보입니다. 특히 이 곡이 대단한 이유는 네 명의 멤버 중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하이라이트를 비추어 개성을 드러내게 하면서도 동시에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에요.

BLACKPINK – 휘파람 (WHISTLE) M/V

TWICE – Feel Special M/V

TWICE – Feel Special M/V

JYP 출신인 트와이스는 곡들이 무척 다양하죠. 이 곡은 도쿄의 레이 마사키가 소개하기도 했어요.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니까요. 그가 자본주의 사회에 지칠 때 트와이스를 듣는다고 하는데, 저도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이렇게 방방 뛰는 노래를 들으며 트라우마를 잠재운답니다.

TWICE – Feel Special M/V

CL – SPICY (Official Video)

CL – SPICY (Official Video)

CL이 극적으로 소속사와 헤어진 후 그녀는 다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보여요. 이 곡은 마치 묵은지 김치랑 해물 순두부의 냄새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CL이 신기한 건, 교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토종 한국인같지도 않다는 점이에요.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건 큰 장점이죠. 아이돌 세계에서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거든요.

CL – SPICY (Official Video)